[지구인문학연구소칼럼-003]
* 이 글은 <지구인문학연구소> 오리지널 콘텐츠-003입니다.
조성환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1990년대는 우리에게는 ‘세계화 담론’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기억되고 있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지구’ 담론이 대두하고 있었다. ‘지구의 위기’나 ‘지구적 위험’과 같이 ‘지구’가 인문・사회학적 연구의 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상의 학문을 우리는 ‘지구인문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1986년에 [위험사회]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위험의 지구화(the globalization of risks)"나 "지구적 위험공동체(the community of a global risk)"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산업화가 지구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위험도 국경을 넘어 지구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위험사회에서는 "긴급사태가 정상사태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경고까지 하였다. 실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와 같은 '뉴노멀' 상황을 35년 전에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위험사회]가 나온 1986년은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서울에서는 ‘한살림농산’이라는 작은 쌀가게가 문을 연 해이기도 하다(그로부터 30여년 뒤에 한살림의 조합원의 수는 50만을 넘었다).
이어서 2년 뒤인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미국에서는 가톨릭 신부 토마스 베리가 [지구의 꿈(The Dream of the Earth)]을 썼다. 지구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지구가 착취의 관계가 아닌 상생의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마치 울리히 벡의 ‘지구적 위험’에 대한 경고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지구의 꿈’이라는 해결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책의 내용도 신학적 어휘나 전문 용어의 나열이 아닌, 일반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 있어서, 말 그대로 ‘지구인문학’이라는 명칭에 부합하고 있다.
이 책에서 토마스 베리는 근대의 특징을 "매우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을 개선하려는, 즉 '진보'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지구의 기본적인 생명 체계를 폐쇄시켰다"고 분석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조건'은 1958년에 한나 아렌트가 쓴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최근에는 디페시 차크라바르티가 "The Human Condition in the Anthropocene"(2015)라는 강연을 통해, '인간의 조건'이라는 주제를 인류세 담론으로 끌고 들어왔다.
울리히 벡의 '지구적'은 영어로 'global'이라고 번역되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globe'에서 온 말이다. 반면에 토마스 베리가 말하는 지구는 'Earth'를 가리킨다. 이처럼 한국말로는 다 같은 '지구'라고 해도, 영어로는 globe와 Earth의 두 단어로 쓰인다. 어원적으로 보면, globe가 '球'를 강조한다면 Earth는 '地'의 의미가 강하다.
1990년대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세계화 담론의 '세계화'는 globalization의 번역어이다. 이때 '세계화=globalization'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다는 뜻이다. 가령 '위험의 지구화'라고 했을 때의 '지구화'는 위험이라는 현상이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globe에는 nation을 뛰어 넘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trans-national과 상통하는 개념이다.
1990년대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국경'이라는 장벽이 무너진 시대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국경을 뛰어넘는 '초국가 기업'들이 탄생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것을 'globaliz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globalization과 대비되는 말은 localization이다. localization은 '지역화' 또는 '지방화'로 번역된다. 그래서 공간적으로 말하면 localization < nationalization < globalization의 순이 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globe에는 인간이 사는 가장 큰 공간이라는 함축이 담겨 있다.
반면에 Earth는 '대지'라는 뜻도 있지만, 인간과 만물이 거주하는 '행성'이라는 의미도 있다. 후자로 쓰일 때에는 종종 'planet Earth'라고도 한다. 직역하면 '행성 지구'이다. '행성'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미국에는 '행성 헐리우드'라는 이름의 호텔과 레스토랑도 있다. '헐리우드'라는 세계를 재현한 곳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planet Earth에는 "인간과 만물이 사는 세계"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거기에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함축도 들어 있다. 토마스 베리가 [지구의 꿈]에서 사용한 'Earth Community'(지구공동체)가 그러한 예이다. '지구공동체'는 토마스 베리 이후로 널리 쓰이게 된 말로, 울리히 벡의 '위험의 지구화'와 상통하는 개념이다. 지구에 사는 인간과 만물은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Earth가 형용사적으로 쓰일 때에는 'planetary'라고 한다. 가령 한국어로 '지구 문명'을 영어로는 'planetary civilization'이라고 한다. 한편 인류세 담론이 인문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2010년대 이후로는 Earth보다 planet이 선호되는 경향이다. 이 외에도 1970년대에 제임스 러브록이 제안한 Gaia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에 지구인문학이 대두된 이후로 서양에서는 지구를 지칭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