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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21. 2022

덕을 말함(德言)

개벽라키비움-천도교회월보강독7-1

[역자 주] 개벽라키비움-천도교회월보강독 ㅡ 7호 강독이, 4월 19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날은 제가 이종훈 선생의 '덕언(德言)'을, 라명재 동덕이 박명선의 '미혹과 깨달음을 해설함(迷與覺의 解說)'과 이준석의 '미신풀이(迷信解)'를 번역하고 함께 토론하였습니다. 이 중 제가 번역한 이종훈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글의 일부 문장은 강독하는 과정에서 두 분 선생님의 도움으로 분명한 해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글쓴이 이종훈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입니다.


이종훈, 회월보, 제7호, 1911.02.15


사람은 모두 ‘천덕’이 각자[我]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한울이 사람에게 강림[墮]하셨는데, 한울이 그 천덕[天]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 까닭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덕은, 비유해서 말하자면, 무형한 공기입니다. 무게가 지극히 가볍지만 그 성질이 지극히 넓게 퍼지는 것이어서, 덕이 미치는 바에 사람이 화하지(化) 않음이 없으며, 사물이 나부끼지(偃) 않음이 없습니다.


사람이 덕이 없음은 형(形)에 가려졌기 때문이니, 덕이 가려지 않고 온전히 형으로 화하면[化形] 하늘과 사람이 사이가 없이 천인합일이 되며, 형이 덕을 가리면 사람과 하늘이 제각각[有域]이 됩니다.


덕이라는 명사는 얻는 것[得]입니다. 하늘 또한 자득(自得)의 덕이 있습니다. 자득이라 함은 함이 없이 자연히 얻는 것입니다. 봄은 원(元)의 도를 얻어서 (만물이) 생성되는 때이며, 여름은 형(亨)의 도를 얻어서 생장하는 때이며, 가을은 리(利)의 도를 얻어서 이루어지는 때이며, 겨울은 정(貞)이 도를 얻어서 저장하는 때이니, 무릇 그 사이에서 천명을 받은 온 세상의 사물이 그것(원형이정의 덕-역자 주)을 얻지 못하고 ‘소성’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사람은 만물[萬品萬彙] 가운데 가장 신령하고 가장 뛰어난 자입니다. 원(元)에서 명을 받아 친족에게 어질고 족속(겨레) 사랑하는 성품이 이루어진 것이며, 리(利)에서 명을 받아 임금을 존숭하고 스승님을 높이는 성품이 이루어진 것이며, 형(亨)에서 명을 받아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少]을 품어주는 성품이 이루어진 것이며, 정(貞)에서 명을 받아 선함을 옳게 여기고 악함을 그르게 여기는 성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본연의 성[性]이 갖추고 있으되 갖추어진 성품[所性] 행할 수 없는 것은 본연한 성[性]의 잘못이 아니니, 사람이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옳습니다. 인에 어둡고 지혜에 어두워서 예를 업신여기고 의를 업신여기면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짐승과 같으며, 말하고 행하는 것이 금수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늘이 그 족쇄를 풀어주지 않으면 사람다움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슬퍼할 일입니다. 사람이 어찌 이에 이르겠습니까. 유학[儒]에서는 물질을 욕망하는 것[形欲]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하며, 불도[佛]에서는 뿌리 깊은 독[根毒]이 그렇게 하게 한 것이라고 말하며, 기독교[耶]에서는 살단(摋但=魔鬼, 사탄)이 그렇게 하게 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람의 한 한울도 구원하지 못하였으니,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흘러넘쳐서 온 세상에 미쳤습니다.


오직 우리 신성(神聖, 수운, 해월, 의암)은 하늘 성품 그대로이신 분들입니다[天而性者]. 원의 덕을 타서(乘) 화(化)하며, 형의 덕을 베풀어(施) 흐르며(流), 리의 덕을 거두어(收) 쓰며(用), 정(貞)의 덕을 지켜(執)서 견고히(固)하여, 그 밝음이 일월과 더불어 하고, 그 위엄이 풍뢰(風雷)와 더불어 하고, 그 혜택이 비와 이슬과 더불어 하나니, 큰 덕을 입음에 한울님의 덕이 밝게 빛나고, 만물[群物]이 춤추고 노래합니다[鼓舞]. 큰 가뭄에 장맛비가 내리고 깜깜하던 밤에 하늘에 태양이 나타나니, 메말라가고 깜깜하던 것이 신선하고 윤택해져서 이전의 모습[前相]이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都換].


대신사(수운 최제우)는 이 세상의 한울님입니다. 내 마음의 한울[自心之天]을 존숭하여 내 한울의 덕[自天之德]을 행하시니, 덕을 천하에 펴는 것은 한울님 말씀[帝言]이 그 징험[徵]이 있게 되는 일니다.


덕은 유형과 무형의 구분이 있으니, 무형의 덕은 그 펴지는 바가 무궁하고[無外], 유형의 덕은 그 펴지는 바가 한정이 있습니다. 지금 굶주린 자가 있고 추위에 떠는 자가 있어서, 내가 옷을 제공하고 먹을 것을 제공하면 나에게 옷과 밥을 얻은 사람은 나의 덕에 고마워하나니, 이것은 유형의 덕이며 작은 덕입니다. 여기에서 나아가 온 세상[四海]의 굶주림과 추위를 구제하면 비록 성인이 행하시는 것이라도 그 넓지 못함을 근심하며, 비록 온 세상을 부유케 한다 해도 또한 부족합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에 메마른 밭에 말라죽어 가는 싹이 있으며 저기에도 메마른 밭에 말라죽어 가는 싹이 있으니, 비와 이슬의 혜택이 이 밭에는 여유롭고 저 밭에는 부족하여 마침내 풍성하게 거두어들임이 다르게 되니, 천지가 큼에 사물이 그 혜택이 충분하지 못함에 오히려 유감이 있을 것입니다.*

*유형의 덕을 펴는 것의 한계


한울이 지극히 건건한 덕[至健之德]이 있어 만물[萬品]을 생성[始, 시작]하며, 땅이 지극히 순순한 덕[至順之德]이 있어 만물[萬類]을 길러내니, 이것이 소위 무형의 덕이며 큰 덕입니다. 이것을 펴면, 천하가 (그 덕을 담아내기에) 부족합니다(=천하에 덕이 차고도 넘칩니다).


삼덕(三德, 천-지-인의 덕)이 비록 크지만, 사람이 하나의 덕으로 모두 갖추니[咸有一德], 그 본래 가진 것[固有]에 따르기만 하면 하늘과 땅(의 덕)도 또한 나의 덕이 됩니다.


수운 대신사님은 하늘의 건덕(양의 덕)을 체로 하여[體/天之健] 사람에 고유한 덕을 발현[發]하시며, 해월 신사님은 땅의 순덕(음의 덕)을 응하여[應/地之順] 사람에 고유한 덕을 기초[基]하시고, 성사님은 하늘과 땅의 중심에 서서 사람에 고유한 덕을 이루시니[成], 크도다 우리 천도교여! 삼재의 도가 갖추어졌습니다.  


그런 이후에, 온 우주의 생명[九宇含生]이 부지불식간에 이미 무형의 덕에 포함되었습니다.


하늘의 도를 써서 하늘의 덕을 펴는 것은 우리 천도교의 본분이니, 힘쓸지어다, 우리 동덕님들[宗徒]이여!


[해설] 이 글은 사람은 한울과 땅의 덕을 한몸에 갖추어 살아가는 존재, 즉 한울을 모신 존재라는 것, 사람이든 세상 만물이든 모두 한울의 덕을 입어 살아간다는 것, 덕에는 작고 유형한 덕과 크고 무형한 덕이 있는바, 천도교는 바로 크고도 무형한 한울의 덕을 써서 한울의 덕을 펴는 종교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울의 덕을 원형이정에 비기어 풀이하는 대목이, 한울의 덕이 자연지리로 드러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한울과 땅의 덕은 낡고 메말라 가던 것에 새로운 생명을 주는 것임을 말하며, 생명의 개벽, 새로움의 개벽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늘의 덕, 땅의 덕, 사람의 덕이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일러 삼재의 도라고 한바, 이는 바로 천지인삼재 개벽설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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