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Apr 28. 2022

우리들의 명절날

- 이정호(<어린이> 편집인)

우리들의 명절날!

- 이정호(<어린이> 편집인) 

[<어린이> 제9권 제4호 (1931년, 소화6년, 5월 20일 발행]



동무여!

깃거운 봄과 함께 우리들의 명절! 어린이날이 또 찾아 왔다.

그리하여 해마다 자라나는 우리들의 이 깃거운 날도

벌써 열 번째의 돌*을 맞이하였다. 


동무여!

이 날이 한 해 한해 거듭함은

즉 우리들의 세상이 그만큼 넓어지고

우리들을 위한 새로운 복리가 그만큼 늘고 커짐은 물론

장차 올 새 조선의 기초가 

그만큼 튼튼히 자리 잡혀짐을 의미함이라.

누가 이 거룩한 날을 깃브게 맞아하지 않으랴!


동무여!

벌써 나팔 소리가 들리노나.

어서 거리로 뛰어 나와

우리들의 행렬에 합치여 노래를 부르자!


가장 진검한 생각과

가장 경건한 태도로

이 강산 3천리가 쩡쩡 울리도록 

목소리를 다하여 

우리들의 노래를 부르자


*이정호는 천도교소년회가 창립된 1921년 5월 1일을 '어린이날 기점'으로 삼아, 이해를 어린이날 '열 번째 돌'이라고 하였다. 이런 견해는 오직 이정호에게서만 보인다.(장정희)

[편집자 주] 이정호는 <어린이> 창간호 1면에 천도교소년회 창립 경과보고를 쓴 인물로 이후 계속해서 어린이지 발간에 참여하였다.(개벽사 직원) 그는 방정환이 길러낸 <천도교소년회> 회원으로 시작하여, 방정환의 심부름꾼이 되었고, 이윽고 방정환의 동지가 되었으며(동화 구연 등을 함께 다니고, 어린이지 편집에 계속 참여), 마침내는 방정환의 후계자, 계승자가 되었다.(방정환 사후-1931.7-에 <어린이> 편집 책임자가 됨) 그는 방정환과 가장 닮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는 방정환의 피땀이 서려 있는 개벽사를 마지막까지 지킨 유이한 인물(이정호+차상찬)이기도 하다. 개벽사가 실질적으로 문을 닫은 1934년 이후 잠시 일반 신문사에 몸담았던 이정호는 1939년에 병사하였다. 그 역시 그의 선생님이자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과로로 인해 허약해진 몸을 견디지 못하고, 요절한 것이다. 그는 수백 편의 창작, 번안 동화와 어린이운동에 관한 글들을 남겼다.(글의 스타일이나 주장하는 내용이 방정환의 빼닮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덕을 말함(德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