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Apr 29. 2022

[동화] 4월 그믐날 밤

- 방정환 동화 

<4월 그믐날 밤>은 [어린이] 잡지 1924년 5월호에 발표한, 방정환의 대표 동화입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월 그믐날(4월 30일, 당시는 5월 1일이 어린이날), 설레는 맘으로 어린이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꽃과 풀과 동물들에게 투사하여, 그들의 대화를 방정환이 귀기울여 듣는 설정으로 담아냈습니다. 하도 간절한 방정환의 마음이,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꽃과 풀과 동물에 실어 들리게 한 것입니다. 이것을 천도교 말로 하면 천어(天語), 곧 한울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만물이 모두 한울님이니 결코 과장한 말이 아닙니다. 어린이날 이야기인데, (이슬)술 담그는 장면이나 제비가 (이슬)술 마시는 서슴없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장면 올해는 어린이날 제정(1922.5.1) 100주년이 됩니다. 어린이날 제정의 근본정신에 따르면, 365일이 모두 어린이날이고, 어린이날을 명절삼는 사람은 누구나 어린이입니다. 어린이는 생명의 사람이며, 새로운 사람이며, 희망의 사람입니다. 뜻깊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감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5월 초하로는 참말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잠자는 밤중이었습니다.

절간에서 밤에 치는 종소리도 그친 지 오래된 깊은 밤이었습니다. 깊은 하늘에 빤짝이는 별밖에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한 밤중이었습니다. 이렇게 밤이 깊은 때 잠자지 않고 마당에 나서 있기는 나 하나밖에 없는것 같았습니다. 참말 내가 알기에는 나 하나밖에 자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계도 안 보았어요. 아마 자정 때는 되었을 것입니다.


어두운 마당에 가만히 앉아서 별들을 쳐다보고 있은즉 별을 볼수록 세상은 더욱 고요하였습니다. 어데서인지 어린 아가의 숨소리보다도 가늘게 속살속살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가 들어서는 큰일 날 듯한 가늘디가는 소리였습니다.


어데서 나는가 하고 나는 귀를 기울이고 찾다가 내가 공연히 그랬는가 보다고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살거리는 작은 소리는 또 들렸습니다. 가만히 듣노라니까 그것은 담 밑에 풀밭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아이그, 인제 곧 새벽이 될 터인데 꿀떡을 입때(지금)까지 못 만들었으니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것은 고운 보랏빛 치마를 입은 조꼬만 조꼬만 앉은뱅이 꽃의 혼이었습니다.


"에그 꿀떡은 우리가 모두 만들어 놓았으니 염려 말아요. 그런데 내일 새들이 오면 음악 할 자리를 어데다 정하우?"

하는 것은 보라 옷을 입은 진달래꽃이었습니다.


"음악 할 자리는 저 집 2층 위로 정하지 않았나베, 잊어버렸나?"

하고 노란 젓(전)나무 꽃이 말을 하고는 복수(숭아)나무 가지를 쳐다보고,


"에그, 여보! 왜 입때껏 새 옷도 안 입고 있소. 그 분홍 치마를 얼른 입어요. 그러구 내일 거기서 새들이 음악 할 자리를 치워 놓았소?"

하고 물었습니다.


"치워 놓았어요. 인제 우리는 새 옷만 입으면 그만이라오. 지금 분홍치마를 다리는 중이에요. 그 아래에서는 모두 차려 놓았소?"

하고 복사꽃의 혼은 몹시 기뻐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보니까 거기는 진달래꽃, 개나리꽃,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날만 밝으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그들은 모두 새 옷을 입고 큰 잔치의 준비를 바쁘게 하는 중이었습니다. 할미꽃은 이슬로 술을 담그노라고 바쁜 모양이고, 개나리는 무도장 둘레에 황금색 휘장을 둘러치느라고 바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벌써 심부름을 다 하고 앉아서 날이 밝기를 바라는 아가 꽃들도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따르릉 따르릉' 하고 조꼬만 인력거 한 채가 등불을 켜달고 손님을 태워 가지고 왔습니다. 인력거꾼은 개구리였습니다. 인력거를 타고 온 손님은 참새 새끼였습니다. 왜 이렇게 별안간에 왔느냐고 꽃들이 놀라서 하던 일을 놓고 우루루 몰려왔습니다.


참새의 말을 들으면 제비와 종달새 들은 모두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꾀꼬리가 목병이 나서 내일 독창을 못 하게 되기 쉽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에그, 그래 어쩌게. 내일 꾀꼬리가 못 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들을 하다가 좋은 꿀을 한 그릇 담아서, '약으로 잡수어 보라.'고 주어 보냈습니다. 참새 새끼는 꿀을 받아 가지고 다시 인력거를 타고 급히 돌아갔습니다.


참새가 돌아간 후 얼마 안 있어서, 이번에는 '따르릉 따르릉' 하고 불켠 자전거가 휘몰아 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은 다리 긴 제비였습니다.


"어이그, 수고 많이 하였소."

"얼마나 애를 썼소."

하고 꽃들은 일을 하는 채로 내다보면서 치사(칭찬)를 하였습니다. 제비는 5월이 오는 줄 모르고 잠자고 있는 꽃과 벌레를 돌아다니면서 깨워 놓고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래 우선 애썼다고 이슬 술을 한잔 얻어먹고 좋아하였습니다.


동넷집 불 끈 방 속에서 시계가 새로 두 점[새벽2시]을 치는 소리가 들려올 때에, 나비 한 마리가, '나비들은 무도복을 모두 입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준비가 모두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것을 알러 왔다가 갔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울(하늘)의 빤작이는 별들은 '내일은 날이 좋을 것이다!'고 일러 주는 것같이 빤작빤작하고 있었습니다. 고요하게 평화롭게, 5월 초하로'의 새 세상이 열리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5월 초하로


새벽 4시쯤 되었습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벌써 종달새가 한울에 높이 떠서 은방울을 흔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꽃들이 그를 듣고 문을 딸깍 열고 빵긋 웃었습니다. 참새가 벌써 큰북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제비들이 길다란 피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주섬주섬 모두 모여들어서 다 각각 자리를 잡았습니다. 2층 아래층에서 꽃들이 손님을 맞아들이기에 바빴습니다. 아침 해 돋을 때가 되어 무도복을 가뜬 입은 나비들이 떼를 지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더 판이 어울려졌습니다.


목을 앓는다던 꾀꼬리도 노란 새 옷을 화려하게 입고 인력거를 타고 당도하였습니다. 꾀꼬리가 온 것을 보고 모두들 어떻게 기뻐하는지 몰랐습니다. 일년 중에도 제일 선명한 햇빛이 이 즐거운 잔치 터를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버들잎, 잔디 풀은 물에 갓 씻어 낸 것처럼 새파랬습니다.


5월 초하로(하루)! 거룩한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복사나무 가지 위 꽃그늘에서 온갖 새들이 일제히 5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맞춰서 나비들이 춤을 너울너울 추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잔디풀, 버들잎까지 우쭐우쭐하였습니다.


즐거운 봄이었습니다. 좋은 놀이였습니다. 특별나게 햇볕 좋은 아침에 사람들은 모여들면서,


"아이고, 복사꽃이 어느 틈에 저렇게 활짝 피었나!"

“아이그, 이게 웬 나비들이야!"

"인제 아주 봄이 익었는걸!"

하고 기쁜 낮으로 이야기하면서 보고들 있었습니다.


5월 초하로는 참말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었습니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