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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12. 2023

삼성오신(三省吾身)에서 삼경오신(三敬吾身)으로

- 동학의 삼경사상을 돌봄의 철학으로 삼기를 제안함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위기와 인공지능의 특이점 돌파로 인한 인간위기가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중이다. 이러한 때에 ‘돌봄’이 새로운 가치로 부각되고 있다. 동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미 ‘삼경(三敬: 敬天, 敬人, 敬物)의 사상을 돌봄의 철학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뚜렷한 경향성인 탈종교화 속에서 그 너머로 가는 재영성화의 길을 잘 안내해 주는 진리이자 지혜이기도 하다.     


돌봄의 철학으로서 삼경은 삼성(三省)과 비견하여 이해하면, 명쾌해진다. 일일삼성(一日三省) 혹은 삼성오신(三省吾身)은 하루에 세 가지 일을 살피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맹자로 이어주는 제자인 증자(曾子:BC 506∼BC 436)의 말이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증자는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살핀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실하지 않았는지, 벗과 함께 사귀는데 신의를 잃지 않았는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지는 않았는지”라고 하였다.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이 말씀은 《논어》(학이편)의 첫 단락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냐”[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는 말을 재해석하고 확장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일상에서의 수양이고, 개인의 수양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가 여기에서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유학, 유교, 유도’(儒學, 儒敎, 儒道)가 고리타분하고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문명화된 현대인이 이 정도의 자기 관리를 할 수만 있다면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논어》의 가르침이 낡고 유효기간이 상실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이 그만큼 비천(卑賤)해짐으로서 그것이 본래의 위치보다 더 ‘고원’(高遠)해지고, 그것을 현대인은 이솝의 신포도처럼 ‘시어서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까워보인다.     


삼성오신의 가르침이 현대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유교(유학)을 자기 권위의 기본 근거로 삼은 조선사회 지배층 담당자들의 불성실함과 타락을 유교 자체의 흠결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오해한 것, 단지 개인수양의 도덕적 가치로 오해한 것, 탈세속의 유한자의 무위도식에서나 가능한 덕목으로 오해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는 사이, 현대 인류의 삶의 구조와 조건은 천양지차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지난 200여 년간의 인류 역사는 세계화, 지구화, 우주화를 삼위일체적으로 경과, 경험, 경영하여 왔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접하는 인간과 사회(세계)의 범위가 달라졌다. 이러므로, 삼성오신의 기본 실천덕목도 새로운 해석과 차원 상승이 필요해졌다.     


그에 값하는 것이 바로 삼경오신(三敬吾身)이다. 삼경은 동학의 2세 교조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이 제시한, 인간이 이 우주 안에서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인식의 지평이자 삶의 양식이다. 삼경이란 곧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이니 첫째 한울을 공경하며, 둘째 무형한 한울을 공경하는 것은 유형한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실현 가능하며, 셋째, 경천과 경인은 경물을 함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가르침이다.     


삼성오신도 본래 그러했지만, 삼경오신은 오직 나 자신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시세계와 비가시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쪽으로 확장되고 전면화된 인식을 기반으로 한 세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만 잘하면 돼”와 “나도 잘해야 해”를 통합한다.     


최근 들어 인류세의 개막으로, 지구적 차원의 환경생태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학의 삼경사사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가치를 오래도록 강조해 왔던 천도교인들은 정작 그 가치에 값하는 실천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였다면, 최근 들어 삼경, 그중에서도 경물(敬物) 사상의 의의에 주목하는 흐름에서는, 그것을 하나의 '사상'으로서만 접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일일삼경(一日三敬), 삼경오신(三敬吾身)은 그것을 일상의 자기돌봄의 철학, 사상으로 삼자는 뜻을 담고 있다. 삼경사상은 본디가 “한울님을 공경하라, 사람을 공경하라, 만물을 공경하라”라는 ‘명령형’이자 “한울을 공경하세요, 사람을 공경하세요, 만물을 공경하세요”라는 ‘당부형’이다.  

   

한울을 공경한다 함은 내가 이 우주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내 안에는 우주 전 시간과 공간이 매개되어/매개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무궁한 존재로서의 나의 본성, 본원, 본질을 알고, 믿고, 마음으로 느끼며 기쁨을 크게 만끽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일이다. 동학에서는 심고(心告)와 수련(修煉)을 가르치고, 세상에서도 명상(冥想) 등을 통해 이와 비슷한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사람을 공경한다 함은 내가 내 존재의 무궁함의 증언자로서 타자를 공경하는 일이다. 오늘날 ‘사람’은 ‘human’만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내가 살리는 모든 존재가 곧 ‘사람’이라는 인식이 점점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이른바 ‘비인간존재’와 ‘인간존재’의 대등함, 그리고 만물은 서로 연결됨으로써 존재하고, 존재하고, 존재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동학에서는 “‘사람’ 섬기기를 한울 섬기듯이 하라” 하는 것이다. 곧,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한울을 공경하는 것이요, 한울을 공경하는 것은 사람 공경을 통해 가시화되고 증명된다.     


만물을 공경한다 함은, 다시 한울 공경과 사람 공경을 나의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일이며, 내 감각이 닿는 범위뿐만이 아니라 내 인식이 미치는 범위, 좁게는 사회국가, 크게는 지구 전역의 존재 방식에 대하여 관심과 책임감을 느끼며 그에 값하는 삶의 방식을 채택하는 일이다.     


이처럼, 삼경으로써 나를 보살피는 일은 ‘자기돌봄’이며 ‘타자돌봄’이고 ‘지구돌봄’이기도 한 것이다. 하루하루를 이렇게 사는 일이란 버겁고도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란 존재가 본래 본디 이렇게 생긴 것인 만큼, 알고 보면 힘들 일도 없다.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는 삶의 길이다. 이것이 곧 탈종교화 시대에 ‘재영성화’의 진면목이다.     


삼경오신(三敬吾身)의 돌봄의 길은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매일 세 가지 기준으로 내 삶을 살핀다. 한울을 공경함에 정성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사람을 공경함에 정성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만물을 공경함에 정성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삼경오신’하는 사람은, 어느덧 사는 보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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