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세,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말하다
"현재 인류는 얽히고설킨 '세계시장'이라는 복잡계와
통제불능의 '기후'라는 복잡계가 빚어내는,
문명의 대순환주기와 자연의 대순환주기가
맞물리는 시점에 와 있다."
이 책 [한국학 코드 : 생명세,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말하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인류와 지구가 함께 "사느냐 죽느냐"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세계시장의 복잡계' 경로의 정점에 인공지능(AI) 문제가 놓여 있다면, '기후라는 복잡계' 경로의 정점에 "기후위기" 문제가 놓여 있다.
전자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전개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공격적인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지고 있으며, 후자는 '기후 파국 특이점'을 필연적인 것으로 예감(전망)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이 인류(인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태, 사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이를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우주선에 비유할 수 있겠다. 지금 인간(인류)가 조종하는 지구호는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불리는 블랙홀의 경계면 근처에 도달해 있고, 점점 가속화하면서 지평선을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 지평선을 넘어서는 순간, 시속 30만킬로미터, 1년에 9.6조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빛의 속도'로도 역진, 즉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실질적으로 '탄소중립'은 이미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되었다고 본다. 현재 육지나 대기의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폭염이나 폭우, 그리고 유례없는 대규모의 산불 등의 재앙은 아직 예고편조차 되지 못한다.
본격적인 '지구적 규모의 기후 재앙'은 현재 '정중동'(靜中動)의 상태로 임계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바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바다는 (최소)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이 내뿜은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등)와 그로부터 야기된 열기를 거의 대부분 품어 내고 있다. 바다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바닷속의 생태계는 교란을 일으키고, 그것은 그의 동시적으로 육지로 파급되고 대기로 파급된다.
이미 지구상 산호초의 70% 이상이 파멸되거나 곧 파멸될 상황에 내몰렸다고 보고되고 있으며, 산호군락이 둘러싸고 있는 근해의 바다 생태계는 심각한 훼손, 회생 불능의 타격을 입어 가고 있다. 바다는 단지 '수산물'의 생산지일 뿐 아니라,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 유지를 책임지는 실질적인 인큐베이터이다.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바다와 바다의 연장으로서의 육지-대기라는 '양수(羊水)' 속에서 살아가는 태아 같은 존재이다. 그것이 파멸되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으로조차 묘사할 수가 없다.
세상 만물은 태어남(생겨남)이 있으면 죽음(소멸)이 있는 시스템 속에서 존재한다.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세계시장(인문학적)의 위기와 기후(생태학적)의 위기는 모두 "인간적인 시선"에 따른 른것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산불이든 화산이나 지진이든, 생물대멸종, 지구온난화 같은 사건들은 지구 탄생 이래로 '무시(無時)'로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므로, 지구에게는 생소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은 문제다.
문제는 인류, 인간이다. 인간 개인이 자기 몸의 건강(미적, 육체적, 정신적)을 지키기 위해, 헬스를 한다, 다이어트를 한다, 요가를 한다, 명상을 한다, (지적인) 공부를 한다, 종교를 믿는다 등등의 요란을 떠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생물학적, 심리학적, 인류학적인 수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데 있다.
지금 인류가 '기후위기'를 말하고, '인간 정체성의 위기'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인간이 헬스, 다이어트, 요가, 명상 등을 통해서 건강미,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온갖 노력을 통해서, 지구를 인류가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고 되돌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의 대처를 위해, 그리고 해결을 위해 많은 사람들, 국가, 단체가 움직이고 있다. 기후행동,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등을 위시하여 과학자 그룹이나 시민운동 차원 등의 각계각층에서 인류 생존 모드의 시스템적 회복을 촉구하고, 행동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위와 같은 비관적 전망과 반대로,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볼 때, 인간의 집단지성 능력이 이 문제를 극적으로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낙관론도 존재한다. 이들은 기후위기나 인공지능 등으로 말미암은 인간 정체성 위기 담론은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오히려 인간의 능력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을 한층 더 고차원적이며 이상적인 방향으로 진전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는 데 문제의 초점이 있다. 지금은 그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고 몰빵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 질서 있는 전진 또는 후퇴 등을 염두에 두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지혜를 모아내고 최고의 용기를 발휘하여 우리가 놓여 있는 위기의 트랩을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학코드 : 생명세,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말하다"는 이 과제를 '한국학'이 유전적 수준에서부터 온축하고 있는 생명문화로서(만)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주창한다. 그 핵심을 바로 "한국학 코드"라고 한 한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을 달리 말하면, "잃어버린 미래를 찾아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상고시대 우리나라가 세계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서, 사해(四海)의 공도(公都)로서, 세계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하게 했던 것이 바로 '한국학 코드'이며, 그것을 찾아 다시 세계와 인류 앞에 밝히고, 그 빛을 따라 미래 세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인디아나 존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에서부터 <컨택트>나 <인터스텔라>와 같은 영화의 서사구조와 닮아 있다. 끊임없이 인간의 한계와 과제를 극복하는 '성배'(지혜나 힘)를 찾아내려고 한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끊임없음'이 현존 인류를 모든 인류종의 최후 승자로 자리매김하였고 (5만 년쯤 이전가지 지구상에는 호모사피엔스 이외의 여러 종의 인류가 공존하고 있었으나, 결국 호모사피만이 현존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기댈 수 있는 덕목이 바로 그 끊임없음이라고 본다.
이 책은 판권면까지가 928쪽에 달하는 "벽돌책 오브 벽돌책"이다.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이 사안이 중차대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렵다면 어려운 글이지만, 절박함과 끊임없음을 두 바퀴로 삼아 읽어 나아가면, 새로운 세계로의 길이 환하게 열리는 경험을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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