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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08. 2023

고속도로, 네 죄다

[개벽통문-책이야기와더불어]



고속도로 노선 하나가 또 다시 나라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큰 국책사업을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대한 절차를 거쳐서 이미 오래전에 결정된 노선을 은근슬쩍 변경하여, 특별한 혜택을 대통령 가족 일가에게 안겨주려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그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일이 불거지자, 담담 부처 장관은 "전면 백지화"라는 전대미문의, 한마디로 웃기는 쇼를 벌임으로써 공분(公憤)과 공분(共憤)을 자아내고 있다. 공분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멸감마저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낯부끄럽다는 말이다.


저런 사람이 장관으로 있는 그리고 저런 사람을 앞세워 놓고 뒤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며 미소짓는 이가, 대통령, 또는 대통령의 장모, 대통령의 처남 매부, 처형 등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에서, 국민으로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다.


그러나 공분을 너머, 자괴감을 너머, 다시 공분을 금치 못하는 것은, 한 장관 탈을 뒤집어쓴 못된 놈의 '백지화' 농간이 곧 지역민들의 반발을 불러와 "민주당이 책임져라"라는 식의 여론을 조장하고 있는 장면이다.


199원(어떤 장관 직의 값이라고 생각되는)을 걸고 말하건대, 이놈들은 '백지화' 운운하면서 이미 이러한 과정을 (예견했다기보다) 노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역인의 마음과 공공심(公共心)을 갈라치기 하면서 '분할하라, 그리고 지배하라'라는 원칙을 악착같이 써 먹고 있는 것이다.


실수를 더 큰 실수로 덮고, 적반하장으로 민주당 내지 전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우며, 그도저도 안 되면 압수수색으로 짓눌러 덮어 버리는, '그렇게 해 보니 되더라' 하는 경험적 진실놀이에 점점 깊이 빠져 드는 형국을 보며, 공분 - 자괴감 - 모멸감 - 공분을 너머, 다시 치욕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겨우 문제의 절반(최대치로 잡아서)만 온 것이다. 문제의 더 깊은 본질은 이런 것이다.


나도 경험해 보았거니와 서울에서 양평까지의 길은 주말이면 미어터지고, 그 아득하고 지옥같은 교통체증에 넌덜머리가 나서, 웬만하면 그 길, 그곳에 가지 않게 되는 경로이다.


그러니, 외지인의 방문과 그로 인한 경제활성화에 목을 매는 지역민으로서는,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고속도로만 내 다오'라고 목청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저놈들, 저 못된 놈들은 그걸 예감하고, 상황의 역전까지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건대, 우리나라, 이 좁은 땅에 골프장도 너무 많고(한 번도 가 보지 않았으나), 도로도 너무 많다.


경기도 남부 일원을 지나다보면, 토지나 주택 면적보다, 도로 면적이 더 넓은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이중 삼중 사중 오중의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신도시와 신도시가 담을 연하여 숱하게 들어선 그 지역이고 보니, 어떤 필요에 의하여 그러한 도로들이 개설되었으리라고 생각은 들지만, 그 광경은 '배고픔'에 절은 '아귀'가 자기 몸까지 씹어 먹고 결국 이빨만 남은 채 깍 깍 깍거리며 먹을 것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 도로망 하나하나가 아귀의 이빨과 같아 보이는 것이다.


그 아귀란, 결국 현대인, 성장에 목을 매달고, 성장제국주의의 노예가 되고, 성장장막교(成長帳幕敎)의 광신도로 살아가는 현대인... 성장뽕중독자로., 성장내상후스트레스장애자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번, '고속도로 게이트'의 실제 본질은 바로 이 '성장암병' 4기에 다다른 우리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이다. 변경하려고 했던 노선에 축구장 5개 넓이(이것뿐일까?) 땅을 가진 사람들이 그 변경이 백지화된다고 한들, 그다지 아쉬워할까? 그저 입맛 한번 쩍 다시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게 불보듯 뻔하다. 산에 오르는 길은 하나뿐인 게 아니지 않은가. 높은 자리, 산꼭대기에서 보면, 그 길들, 수많은 길들이 훤히 보이게 마련이다. 이놈들은 앞으로 남은 4년만이 아니라 두고두고 해 먹을 결심을 굳히고 있으며, 그 토대를 닦아가고 있으리라는 데, 다시 199원을 걸겠다. 


이놈들은 인간 본연의 '욕망'을 자극하여 욕망의 지옥불을 더더더더더더 크게 하고, 그 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을 놈들인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이렇다. 

저놈들의 농간에 빌미를 준, 


고속도로, 네 죄다!


진실이 그렇다 한들, 그게 대순가. 

그 아래, 아귀지옥도 속에서, 무명의 사람들, 나-너-우리들만, 아비규한 치는 우리들만 괴로운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귀지옥을 오간 목련존자처럼, 염불을 외노니 


이 치욕을 어찌 씻을 것인가.

이 굴욕을 어찌 잊을 것인가.

이 고통을 어찌 벗을 것인가.

이 아귀를 어찌 떨칠 것인가. 


..추신

책들 좀 사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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