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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18. 2023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읽지않고서평쓰기





1.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제목만으로도 이미 다 보아 버린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나에게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아직은'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제목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양손에 떡을 쥐고 가다 과일가게 앞을 지나면 참외나 수박에 눈길이 가게 마련인 경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온다는 예고를 접할 때부터 사려고 마음 먹었던 이 책을 오늘 서울국제도서전에 가서 샀습니다. 책을 펴 보지도 않고, 상상을 펼칩니다.


2.


허무(虛無)는 동전의 뒷면입니다. 동전의 앞면은 유(有)의 세계입니다.

허무가 공(空)이라면, 유(有)는 색(色)입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입니다.

허무공(虛無空)은 실유색(實有色)의 거울이자 반영(反影)입니다. 


3.


수운이 '한울님을 만나 천도(天道)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수운에게 물었습니다.

"천령(天靈=한울님)이 선생께 강림하셨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러자 수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은 것이다."


가는 것이 유(有)라면 오는 것이 무(無=허무)입니다.

한 점을 중심으로 진자운동하는 구슬을 떠올려 보면,

왼쪽 극점에 도달하였을 때가 유(有), 오른쪽 극점에 도달하였을 때가 무(無=허무) 상태입니다.

존재란 이처럼 유와 무 사이의 왕복 상태입니다.

달리 말하면, 불연(不然)과 기연(其然)의 무궁한 순환입니다.


4.


노자는 <도덕경> 40장에서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나고

유(有)는 무(無)에서 생겨난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고 했습니다.


42장에서는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라고 하므로, 도(道)=무(無)이고, 일+이+삼=유(有)이며, 일이삼으로부터 만물이 생겨난다는 뜻이 됩니다.(일이삼은 '천지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무가 본체이고 유가 활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도덕경> 2장에서는

유와 무가 서로를 생겨나게 한다(有無相生)고 하므로

무는 유로 말미암아 무가 되고, 유는 무로 말미암아 유가 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5.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허무란

인생은 물론이고

존재자체(有)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겁니다.

허무(虛無)함에 젖어 우울할 필요도 없고

유유(有有)함이 유유(悠悠)하리라 착각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유는 곧 무로 돌아갈 것이요, 무는 곧 유를 낳을 것입니다.


6.


동학의 덕목에

유무상자(有無相資)와 유무상통(有無相通)이 있습니다.

이는 현실 세계 인간의 윤리로 제시되지만

동학이 가리키는 현실은 무궁함으로부터 자리매김하는바

그것이 곧 인간의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7.


인간은 홀로 있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나의 나 됨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됨은 찰라입니다.

영원한 것은 허무입니다.


8.


나란, 허무의 바다 위에 명멸하는 물거품 같은 것입니다. 

지속적인 것을 본질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본질은 허무한 것입니다.

홀로를 털고 일어서서, 허무의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욕의 바다에 뒤섞여서 분탕(粉湯)질 치며 사는 것입니다.


9.


그 분탕 속에서 들려오는 허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허무의 소리를 수신(수受信)

그것을 감응(感應)이라 합니다.


10.

經典의 文句만을 逐究치 말고

오로지 大道의 眞理를 直覺하는데 努力하여

조용히 天地未判前 의 消息을 들으라.

(의암, 신앙통일과 규모일치)


천지 미판전의 소식,

천지(天地), 즉 유(有)로 화생(判)하기 전(未)의 소식이란

허무의 소식입니다. 

한 소식 듣고자 애쓰는 일,

그것을 수도(修道)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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