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개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Nov 26. 2023

서울로 가는 전봉준, 혹은 처녀

[다시, 동학, 주유팔로 _0.2] 

일찍이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대선생님이 세상이 종말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세상을 구제할 방법(道)을 찾기 위하여 집을 나서서 전국 팔도를 떠돌아다닌 일을 ‘주유팔로’라고 합니다. 


당시 수운 선생님이 느낀 위기는 안으로는 각자위심하는 인심세태와 밖으로는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서양 세력과 종교,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그는 20세에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를 '주유팔로'라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수백 년간 동아시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오던 중국 중심(중화)의 질서가 붕괴하는 소리가 큰소리를 내며 들려오고 있었는바, 이것은 하늘이 꺼지고 땅이 무너지는 듯한 위기감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또한 아득한 소문으로만 인지하던 서양 사람과 세력이 한편으로는 군함과 대포를 앞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알 듯 모를 듯한 가르침(서학)을 앞세워서 밀려오는 사태는, 오늘날로 따지면 외계인이 괴상망측한 말을 하며, 현란한 신무기(기술)를 앞세우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 상공에 나타난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수운 최제우 선생님 시대에 해마다 거듭되는, 또는 몇 해에 걸쳐 계속되는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앙, 괴질(콜레라)의 창궐 등으로 말미암아 숱한 사람들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맞아죽고, 물길에 휩쓸려 죽는 사태 또한 생지옥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터인바, 이는 오늘날 코로나19 팬데믹이나 대형산불이나 혹한혹서, 기후위기 등의 재앙과 판박이로 닮아 있습니다. 


도고일척 마고일장(道高一尺 魔高一丈)이라는 말 그대로, 근대화 이후로 인류가 과학기술문명의 발전과 경제적 풍요로 말미암아 수많은 질병을 극복하고, 빈곤을 벗어난 것은 놀랄 만한 성취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재앙을 야기하고, 공멸, 전멸, 절멸의 위기를 자초함으로써 인류는 물론 지구 전체를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AI 기술의 비약적 성장 발전으로, 이제 인류는 호모사피엔스로서 자리매김해 왔던 자기 존재의 새로운 도약, 월장(越牆)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티핑포인트에 서 있습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강요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하므로, 다시 길을 떠나려 합니다. 떠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수운 선생님은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아수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지만,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받아서 배우고 익혀 왔는지 확신할 수 없으므로, 이 길을 떠나서, 반드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를, 도무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느낍니다. 


원모심려하는 준비도 갖추지 못하였고, 좌고우면할 겨를도 없어 보입니다. 떠나서, 길을 가면서 행장을 수습하고, 엎어지면 일어서며, 자빠지면 잠시 쉬었다가라도 다시 일어나 가고 또 가야 한다는 마음뿐입니다. 길을 가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어진 사람을 만나 수문수답하여, 다시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돌아올 그 길을. 길 위에서 길을 묻는 나그네 신세. 그것은 나, 우리 한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 인류, 지구 전체가 놓여 있는 처지입니다.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길 / 몸팔러 간다 // 언제야 돌아오리란 /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 꽃 피어 돌아오리란 /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 분꽃이 잊힐까 밀냄새가 잊힐까 /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길 / 몸팔러 간다 (김지하, <서울길> 전문)


160년 전 수운 최제우 선생은 '보국안민' 즉 나라를 구하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인간과 만물)는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생존 조건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렇게 지구촌의 삶의 행태가 진전되어 왔으므로, 전 지구를 보존하고 전 생명(생태)를 평화롭게 할 계책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우리 처지가 서울로 가는 저 처녀, 혹은 서울로 가는 전봉준 같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그 말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 저로서는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의 <시즌 3>쯤에 해당합니다. <시즌 1>은 무려 35년 전, 1987년 전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에 함께하실 분을 기다립니다.(010-5207-6487 / sichunju@hanmail.net)


***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은 지역에 계시는 분들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불러 주시면, 찾아뵙고, 도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동학, 주유팔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