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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학학당

돌봄, 생명학 호모 쿠란스 - 돌보는 인간이 온다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돌봄과 전환

by 소걸음





한 아이가 태어날 때, 우리는 그 순간을 ‘축복’이라고 부른다. 부모는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작은 숨결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조심스레 어루만진다. 그 순간, 아이는 세상의 가장 연약한 존재이지만, 또한 가장 거룩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아이를 돌보는 부모 역시 거룩한 존재가 된다. 오늘 ‘결핍’과 ‘고통’을 전제로 하는 ‘돌봄 노동’과 ‘돌봄 과제’가 만연하는 우리 사회이지만, 실은 돌봄이란 결국 거룩함과 거룩함이 서로를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돌봄을 경험한다. 때로는 받으며, 때로는 주면서. 하지만 돌봄을 특별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행위로 여긴다면, 우리는 세상의 참 모습의 거의 전부를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돌봄은 단지 아픈 이를 보살피거나 약한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스며 있다. 하늘과 땅이 나를 돌보고, 바람과 구름이, 바다와 강이, 반려종 동식물과 사물들이 우리를 돌본다. 우리가 그들을 돌보듯이.


그러니 돌봄은 의무가 아니다. 희생도 아니다. 돌봄은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책, 《호모 쿠란스 - 돌보는 인간이 온다》는 바로 그렇게 돌봄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본다.


돌봄은 인간을 잇는 방식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지만, 사실은 서로 얽혀 있다. 부모는 아이를 돌보고, 친구는 친구를 돌본다. 배우자는 서로를 살피고, 노년의 부모를 자식이 돌본다. 먼 곳에서 일하는 낯선 농부의 손길이 우리의 식탁에 닿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돌봄이란 결국 인간과 인간을 잇는 가장 깊은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돌봄을 너무 쉽게 간과한다. 어쩌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숨 쉬는 공기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돌봄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돌봄을 더 이상 의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


이 책은 돌봄을 다시금 의식하게 만드는 책이다. 돌봄이 단지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경제 시스템에서도, 심지어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작동하는 일이라는 걸 차근히 짚어준다. 돌봄은 단절된 개인들을 하나로 잇고, 우리가 속한 이 세계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돌봄, 취약함 사이 너머 거룩함


이 책이 말하는 ‘호모 쿠란스(Homo Curans)’, 즉 돌보는 인간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돌봄’의 이미지와 조금 다르다. 보통 우리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를 연약한 존재, 부족한 존재로 인식한다. 병든 노인, 어린 아이, 혹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이들. 하지만 돌봄은 단순히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아니다. 돌봄이란, 연약함과 연약함이 서로를 지탱하는 일이며,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서로 거룩함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순간의 경건함을 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엄숙하고도 숭고한 일인지 안다. 하지만 돌봄은 비단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작은 배려를 베풀 때마다, 그 순간 거룩함을 나누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돌봄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돌봄은 누군가를 낮추어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돌보면서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


돌봄이 있는 사회는 다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회적 위기, 관계의 단절, 외로움,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도 돌봄이 부족한 사회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돌봄을 가족 내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사회, 돌봄을 서비스로만 사고파는 사회, 돌봄을 노동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이 책은 돌봄이 단순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모에게만 맡겨지지 않는 사회,

노인이 홀로 남겨지지 않는 사회,

노동의 가치가 생산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 사회,

환경과 자연을 돌보는 일이 사치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돌봄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돌봄이 넘치는 사회는 단순히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회다.


돌봄은 삶의 방식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오늘 나는 누구를 돌보았을까?

또 누군가 나를 돌보아 주었을까?

커피를 타 주는 작은 손길, 지나가며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멀리 사는 가족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어쩌면 우리는 매일 돌봄을 주고받으면서도, 그것이 돌봄이라는 걸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돌봄은 우리의 삶 그 자체다. 이 책은 돌봄을 거창한 도덕적 의무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돌봄이란 우리가 원래부터 해왔던 일이며, 우리가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일깨운다.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돌봄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걸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거룩함이 거룩함을 만날 때

아이는 부모의 돌봄 속에서 자란다.

그리고 언젠가, 부모가 아이의 돌봄 속에서 나이 들어간다.

돌봄은 이렇게 이어지고,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돌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돌보며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호모 쿠란스, 돌보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을.


* 이 글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카페(네이버)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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