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학당 제3강좌 - 네 번째
동학학당 제3강좌 – 사상으로 읽는 해월 네 번째 강의 ‘해월의 생태사상 – 이천식천, 먹음, 죽음, 분해’가 4월 15일 오후 7시부터 조성환 교수의 진행으로 온라인에서 열렸습니다. 전체 10강으로 구성된 이번 강좌는 해월 최시형의 사상과 철학을 체계적으로 살피기 위한 연속 강의로, 이날은 총 25명의 수강생이 참여하였습니다. 이날 강의는 해월 사상의 핵심 구절 중 하나인 ‘以天食天(이천식천)’—‘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표현을 생태철학적으로 해석하고, ‘먹음’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끌어올린 해월의 독창적 사상에 주목하였습니다.
강의는 “벌레가 사람을 먹는다”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대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인공이 시체를 보며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쇠파리가 오고, 그다음엔 구더기, 개미, 딱정벌레가 온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조성환 교수는 이 장면을 인용하며 “인간은 죽으면 파리와 개미, 곤충과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는 것이고, 이는 곧 벌레가 사람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만 먹는 것이 아니라 벌레도 인간을 먹습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생명 순환의 사슬을 철학적으로 통찰한 이가 바로 해월 최시형이며, 그 중심 개념이 ‘이천식천’이라는 구절로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 이날 강의의 핵심이었습니다.
조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해월의 ‘이천식천’ 설법을 “먹음과 먹힘의 철학”으로 조명하며, 황종원 교수가 2012년에 발표한 논문 「해월 최시형의 식사상 – 종교생태학적 해석」을 주요 참고문헌으로 소개하였습니다. 황 교수는 해월 사상의 특징으로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관계’를 생명의 희생과 수용, 그리고 생태적 순환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특히 “인간은 다른 존재들의 희생 위에 살아가는 존재이며, 우리가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라 신성한 교감”이라는 설명은, 해월이 먹는 행위에 신적 감응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이와 관련해 조 교수는 해월의 다음 설법을 직접 인용하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사람이 모신 한울님의 영기가 있으면 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죽은 것이니라. 죽은 사람 입에 한 숟갈 밥을 드리고 기다려도 능히 한알 밥이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한울님이 이미 사람의 몸안에서 떠난 것이니라. 그러므로 능히 먹을 생각과 먹을 기운을 내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은 한울님이 능히 감응하시지 않는 이치니라.”(해월신사법설, 향아설위)
해월에게 있어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하늘님과 감응하는 정(情)의 표현이자 살아있다는 증표이며, 죽음은 그 감응이 단절된 상태로 이해됩니다. 조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먹는다는 것은 곧 하늘님이 내 안에 살아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신적 감응이 실현되는 자리입니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강의 후반부에서는 해월의 사유와 현대 생태철학을 연결하는 시도로, 오스트레일리아 생태철학자 발 플럼우드(Val Plumwood)의 사유가 소개되었습니다. 플럼우드는 카약 여행 중 악어에게 공격당해 먹힐 뻔한 경험을 통해,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아닌 ‘먹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고, 이 경험을 계기로 기존의 인간 중심적 생태관을 전복하는 철학적 전환을 이뤘습니다. 조 교수는 이 체험을 “이천식천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라며, “우리가 먹는 존재인 동시에 먹히는 존재라는 자각은, 곧 해월의 기화(氣化) 사유—생명 간의 상호작용과 교감을 전제로 한 생명관과도 통합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김지하 시인의 시 「밥은 하늘입니다」도 이날 강의에서 중요한 참조로 언급되었습니다. 해월의 이천식천 설법은 김지하의 시에서 “밥은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라는 일상적 실천 윤리로 재탄생합니다. 조 교수는 이를 두고 “김지하는 해월의 사유를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한 대표적 인물이며, 이천식천의 정신이 공동체적 삶의 윤리로 구체화된 대표 사례입니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나아가 이날 강의에서는 먹는 행위의 생태적 신학적 재구성도 시도되었습니다. 최근 서구의 ‘음식신학’이나 ‘농신학’의 흐름 속에서, 해월 사상의 사유틀이 가지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시체는 하늘님이 떠난 존재이므로, 감응이 단절되어 먹을 수 없습니다”라는 해월의 말씀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곧 ‘하늘님과의 감응’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감응이 유지될 때, 먹는 행위는 신성한 예식으로서 의미를 지닙니다.
조 교수는 강의 말미에서 “이천식천은 인간이 만물과 감응하며, 스스로 하늘로서 다른 하늘을 영접하는 예식이자 순환의 원리입니다”라며, “단순히 농경시대의 자연 관찰을 넘어서, 현대 생명철학, 생태신학, 에코페미니즘까지 연결 가능한 사유 자원입니다”라고 정리하였습니다. 이어 “해월의 식사상은 죽음을 통해 다른 생명을 살리는 희생과 반포(反哺)의 이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죽음의 분해’ 또한 생명의 기화이자 순환의 일환으로 보아야 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그는 “죽은 자의 입에 밥을 떠넣어도 먹지 못하는 것은 하늘님이 그 몸을 떠났기 때문이며, 살아 있다는 것은 곧 하늘님이 감응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밥을 먹고자 하는 생각과 기운, 맛있게 먹는 행위는 모두 하늘님이 감응하고 계신 징표입니다”라며, 먹는 행위가 곧 ‘살아 있는 하늘님의 감응 작용’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해월의 설법 중 “사람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한울님이 감응하시지 않는 이치”라는 구절에 기초한 해석입니다.
강의가 끝난 뒤 이어진 짧은 질의응답 시간에는 ‘현대 식문화를 해월의 식사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감응의 철학이 일상에서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조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가 먹는 음식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과정 전반에 감응과 책임의 철학이 깃들어야 하며,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자기중심적 인간상을 넘어서 타자적 존재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처럼 이날 강의는 해월의 언어를 빌려 삶과 죽음, 먹음과 분해의 생태적·종교적 의미를 사유하며, 인간 존재를 만물과 감응하는 살아 있는 ‘하늘의 현현’으로 다시 인식하는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강의는 ‘사상으로 보는 해월’ 제4강에 해당하며, 전체 강좌는 해월 최시형의 철학과 실천 사상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고 동시대 문제에 접속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제1강은 해월 사상의 전체 구조를 다루었고, 제2강은 수운에서 해월로의 사상 전환을 조명하였습니다. 제3강에서는 해월의 경제사상과 지구적 민주주의, 산림주의에 대한 해석이 이어졌으며, 제4강에서는 ‘이천식천’을 중심으로 한 해월의 생태 사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동학학당’은 단순한 강좌를 넘어, 동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시민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강좌의 목적은 동학을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학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글을 쓰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함께 키워가는 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동학-개벽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글쓰기와 출판, 운동적 기획으로까지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 강좌는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이 운영하는 ‘개벽시민아카데미’의 교실 중 하나입니다. 제1강좌는 「사상으로 읽는 동학」, 제2강좌는 「호모 쿠란스 – 돌보는 인간이 온다」, 제3강좌는 이번 「사상으로 보는 해월」이며, 오는 4월 26일부터는 제4강좌로 「동학 원전 강독 – 도원기서 읽기」가 시작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