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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신인철학>>(이돈화 저) 강독 네 번째 공부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회차까지 <제1편 우주관>을 마치고 이번 달부터 2회차에 걸쳐 <제2편 인생관>을 읽게 됩니다. 제2편 제1장은 <인내천의 요지>, 제2장은<사람성 무궁(無窮)>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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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은 수운 사상의 핵심 명제인 ‘인내천’을 중심으로 인간의 존재 의미를 철학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돈화는 인내천의 의미를 종교적 선언이나 교리 차원을 넘어서 ‘인간격 중심주의’라는 철학적 언어로 재구성합니다. 인간격은 자연격, 동물격, 신격까지 아우르며 우주격의 가장 완성된 형태로 규정되며, 이 인간격이 실현되고 발전되는 것이 곧 ‘우주 대생명’의 자기실현이라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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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화는 인간을 중심에 둔 인내천 사상을 여타 철학 사조들과 비교하며 그 철학적 독자성을 강조합니다. 신본위 종교는 현실을 부정하며 내세를 추구하나, 인내천은 현실 개조의 실천적 가능성을 긍정합니다. 절대 유심론적 영본주의는 관념에 치중하여 현실을 도외시하며, 물질본위 사상은 인간의 정신성과 주체성을 간과한다고 봅니다. 이돈화는 개인주의, 사회주의, 자연주의, 주지주의(知力主義) 각각의 한계를 비판하면서도 그 장점을 인간격 중심의 철학 속에 통합하려 합니다. 즉 인내천주의는 하나의 독자적 주의가 아니라 기존 철학들의 통합적 극복을 지향하는 ‘종합적 인간(격) 중심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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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핵심은 “인간은 결코 자연의 노예도, 사고의 노예도 아니다. 인간은 인간 자신의 것이다.”라는 선언에 잘 드러납니다. 인간격은 단순한 개인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특정 시기의 인간 유형에도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과거 인간도, 현재 인간도 아닌 미래 인간, 곧 무한히 확장 가능하며 우주의 가능성을 구현하는 존재로 설정됩니다. 여기서 ‘인내천’은 개별 인간(個人格)이 곧 ‘한울(天主)’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격(人間格)’이라는 “이상적이며 전인적인[全的] 인간‘들’”의 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간’은 ‘인간격’을 경유함으로써만 ‘인내천’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만물은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萬物 莫非侍天主)는 시천주의 의미도 재해석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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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인간관은 ‘능동적 주관성’에 대한 고찰로 이어닙니다. 인간은 외계를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외계로부터 필요한 것을 선택·조절하여 자기화하는 존재입니다. 즉 인식은 객관의 반영이 아니라 선택과 가공의 산물이며, 진리란 절대적인 사실의 반영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 판단과 목적 지향적 활동 속에서 성립된다는 철저한 ‘인간(격) 중심주의’ 입장을 취합니다. 이 점에서 이돈화는 진·선·미의 구별을 해체하고 모두를 가치의 문제로 통합합니다. 진리란 결국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돈화의 철학, 혹은 <신인철학>의 사상이 오늘날 세계 문제를 낳은 ‘인간 중심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돈화가 당시 세계를 풍미하던 (사회)진화론에 깊이 경도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신인철학>은 거칠게 재단하면 ‘개조론’과 ‘진화론’을 양대 기둥으로 하여 지은 ‘동학 사상의 집’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야뢰 이돈화는 ‘인간격’ ‘사람성 무궁’ 등의 개념을 통해 서구의 개조론과 진화론, 그리고 그로부터 성형(成型)되는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질적 전환을 이룩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는 <신인철학> 전편을 염두에 두고 신인간에서의 ‘인간(격) 중심주의’를 이해해야 하는 것을 말해 줍니다. 저는 이돈화의 인간(격) 중심주의를 달리 “‘신인간’(=天)중심주의”라고 하여, 근대적/기독교적 인간 중심주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한울사람중심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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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됩니다. 이돈화는 자유의지의 문제에서, 전통적인 자유-필연 대립 구조를 넘어서 의지를 ‘한울’이라는 총체적 생명력, 즉 내적 본능(內有神靈)과 외적 환경이 교호하는 관계(外有氣化)의 장 속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봅니다. 인간의 의지란 고립된 자아로부터 나오지 않고, 우주의 힘이 내재한 ‘자기 안의 한울’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서 ‘절대아’, 즉 한울님(天主)와의 통일을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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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화는 수운의 ‘시(侍)’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 의식과 의지의 본질을 분석하며, 이를 통해 자아는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의 구조로 성립한다고 봅니다. 꿀벌이 본능을 통해 꿀을 만들되 외적 환경 없이는 실현할 수 없듯이, 인간의 자아 또한 내적 본능과 외적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이 상호작용의 총화로서 ‘의지’는 현실을 개조하고 새로운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창조력이며, 이는 생명력과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여기서 이돈화가 각지불이(各知不移)를 의지, 각(覺)으로 해석하는 점은 오늘의 우리가 다시 음미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라고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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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가지계, 가지계, 중간계를 아우르는 ‘총체적 인식 주체’이며, 철학과 과학, 종교의 영역을 모두 연결 짓는 존재입니다. 인간 의식은 이 세 영역을 종합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주체로 자리매김됩니다. 이돈화는 이러한 인간의 무한 가능성을 ‘세계는 미성품(未成品)이며 인간은 그것을 완성해 나갈 책임 주체’라는 명제로 수렴합니다. 따라서 인내천은 철저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실천적 사상으로, 종교적 순응이나 형이상학적 관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개벽적 주체’로서의 인간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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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화(李敦化, 1884~1950?)는 천도교 지도자이자 사상가이며, 아호는 야뢰(夜雷), 백두산인(白頭山人)입니다. <개벽>, <부인>, <신인간> 등 천도교 잡지의 창간 및 편집 활동을 주도하며 동학·천도교의 사상적 현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신인철학>(1931)은 그의 대표작으로, 우주관, 인간관, 사회관, 개벽사상, 도덕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후천개벽 사상을 ‘신사회 건설’로 해석하며, 인내천을 근대 철학의 언어로 재정립하였습니다. 특히 인간을 ‘우주의 완성자’로 설정하고, 종교·유심론·물질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며 인간 중심의 철학적 대안을 제시한 점에서 선구적 현대 사상가로 평가됩니다. 한알마을의 <신인철학> 강독은 매월 셋째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온라인 강의로 진행됩니다.
*네이버 모시는사람들 카페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