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으로 보는 해월」 강좌의 다섯 번째 시간은 ‘해월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4월 29일 진행되었습니다. 조성환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해월 최시형의 여성관을 중심으로, 동학과 천도교의 여성사상과 현대적 페미니즘 담론과의 접점을 탐구하였습니다. 이번 주제를 선정한 배경에 대해 조 교수는 “지난 강좌에서 특히 여성 참여자들의 요청과 질문이 많았던 주제”라며 “그러나 해월 텍스트 안에 여성 관련 언설이 많지 않아 연구자들에게도 어려운 분야”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지난 50년간 축적된 선행 연구들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날의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의에 앞서, 지난 시간 질문으로 나온 ‘천인합일’(天人合一) 개념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하였습니다. 조 교수는 천도교 청우당 강령(당지) 속 ‘천인합일’이 단순한 자연·인간 일치가 아니라 개인적 자아를 우주적 자아로 확장하는 운동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중국 철학에서의 천 개념(주재천·도덕천 등)과 비교하며, 동학은 생명과 평등을 포함한 ‘평등천’, ‘생명천’ 등의 새로운 천 개념을 발전시켰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같은 천 사유는 이후 해월의 여성·생명·평등 철학으로 이어지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본 강의에서 조성환 교수는 해월이 여성을 단순히 보호·양육의 대상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을 넘어, 도덕의 주체로 인정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해월은 부인(주부)을 “집안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음식 마련과 자녀 교육 같은 가정의 살림살이가 하늘과 감응하는 우주적 행위임을 강조했습니다. “부인 수도는 우리 도(道)의 대본(大本)”이라는 언급은 여성의 영적·윤리적 주체성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부부의 화합을 천지(天地)의 화합에 비유하며,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도덕적·영적 지위를 선언하였습니다. 조 교수는 “해월의 성평등 사상은 현대 페미니즘과 다르지만, 당시 시대적 한계를 넘으려 한 혁신적 사유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해월은 단순한 청결을 넘어서, 위생과 위계질서를 천지부모에 대한 공경의 실천으로 규정했다. 『내수도문』에서는 음식과 생활 위생 규칙을 통해 하늘과 땅에 감응하는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태아를 남녀 구별 없이 신성한 존재로 존중하는 태교관은 당시 조선사회의 남아선호 사상과 확연히 구별된다. 이는 생명존중과 생태적 윤리를 담은 해월의 태교 사상으로, 현대에도 유효한 가치임을 시사했습니다.
해월 사후 천도교로 이어진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도 소개되었습니다. 1906년 부인전도회가 결성되어 여성 포교사가 등장하고, 여성 계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3·1운동 시기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부인』, 『신여성』 등의 잡지가 간행되는 등 여성 담론이 본격화되었다. 조 교수는 “천도교 시기의 변화는 해월 사상과 시대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 평가했습니다.
강의 말미, 조 교수는 이날의 주제를 ‘여성도덕’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는 억압적 윤리 개념이 아닌, "천지의 도와 덕(道德)을 실천"하는 주체로서 여성의 지위를 선언하는 개념입니다. 조 교수는 “현대적 시각으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지만, 해월이 여성과 남성을 도덕적 존재로 동등하게 인정하고자 했던 철학적 의도는 오늘날에도 재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의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청중들의 깊이 있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한 참가자는 해월이 사용한 표현 중 ‘부인’, ‘여자’가 기혼 여성을 지칭하는지, 그리고 ‘여자는 편성이다’라는 구절의 의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에 조성환 교수는 “문맥상 결혼하고 자녀를 둔 여성을 가리킨다”며, “편성(偏性)은 치우친 본성을 뜻하나, 이는 생물학적 변화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여성 일반이 아닌 특정 상황의 여성들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질문에서는 여성도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선언의 의미가 논의되었습니다. 조 교수는 “여기서 말하는 도덕은 일반적인 윤리 규범이 아니라 천지(天地)의 운행과 감응하는 우주적 도덕을 의미하며, 이 도덕적 주체성은 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구 철학의 이성과 도덕(특히 칸트의 도덕 철학)과 동아시아적 도덕 개념의 차이에 대한 설명도 함께 이어졌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부부 화합을 도통의 관건으로 본 해월의 입장이 현대적 페미니즘과 조응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제기되었습니다. 조 교수는 “해월 사상은 가족 중심적 모델에 머물렀지만, 당대 여성의 사회적 한계를 넘으려는 실천적 고민이 담겨 있었다”며, “이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단순 평가하기보다는 당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한 참가자는 해월 법설의 원문을 직접 읽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에 박길수 동학학당 당장(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대표)은 “이번 강의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해월 최시형 법설 강독』 강좌가 개설될 예정”이라며,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권유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해월 사상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토론하며 이날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날 강의는 「사상으로 보는 해월」 제5강에 해당하며, 전체 강좌는 해월 최시형의 철학과 실천 사상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고 동시대 문제에 접속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제1강에서는 해월 사상의 전체 구조, 제2강에서는 수운에서 해월로의 사상 전환, 제3강은 경제·민주주의·산림주의, 제4강은 생태사상을 다루었습니다.
‘동학학당’은 단순한 강좌를 넘어, 동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시민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학습은 사유와 토론, 글쓰기로 이어지며, 동학-개벽 사상의 사회적 확산과 실천적 기획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이 운영하는 ‘동학학당’의 교실 중 하나로, 제1강좌 「사상으로 읽는 동학」, 제2강좌 「호모 쿠란스 – 돌보는 인간이 온다」에 이은 제3강좌이며, 현재 제4강좌 「동학 원전 강독 – 도원기서 읽기」도 진행중입니다.
* 이 글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카페(네이버)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