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이야기
1. 지금 세상에 종교(인)가 필요해?
최근 세계적인 규모의 한 교회가 오랜 진통 끝에 “세습”을 공인한 것을 두고 사회적으로 지탄과 비난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종교계는 물론이고, 공식적으로는 ‘세습’을 승인한 그 교회 내부에서도 비판과 원상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비단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 불교계의 최대 종단 수장을 ‘선출’하는 대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후보자를 둘러싼 갖가지 추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올바르게’ 만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수많은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서 세상 사람들은 묻는다. 지금 이 시대에도 종교가 필요해? 그리고 그 답은 명약관화한 것 같다. 특히 오늘날 종교인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시나브로 줄어가는 종교 인구는 그 답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행태(교회 세습)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그것은 종교(인)이기를 포기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첫 번째는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나아가 ‘소금의 은혜’(부패의 방지)를 입기를 거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 ‘빛’이 되기를 포기한 것은 물론 ‘빛(지혜)’으로 스스로를 밝게 하는 것조차 거절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신앙/종교수행/종교지혜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라면, 그것은 종교가 ‘초월적인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초월적인 시각이란 ‘지금 내가 하는 생각 자체를 들여다보고,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그 진위와 가부를 판단하는 시각’ 다시 말해 ‘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을 말한다. 다시 말해 ‘메타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정농단의 주범/종범으로 전락한 최순실, 박근혜 등은 자신(들)의 행위, 그 행위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반성적으로 재인식하는 시각, 즉 ‘초월적 시각’이 부족하거나 전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초월적인 시각이라는 건 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이라는 거죠. 현실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최순실도 그렇고 박근혜도 그렇고,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아무것도 문제가 없다, 그 태블릿 PC 내 거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인식을 하는 거잖아요. 정말 내면에서 그렇게 인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러한 인식, 이기적인 인식, 자기의 인식을 왜곡할 수도 있는 뻔뻔함, 그런 인식을 초월해서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지요. 좀 더 원시적인 인식이라는 건 이기적인 인식에서 못 벗어나고, 현실에 문제가 하나도 없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식한테 다 물려주고, 편법 상속하고 이러는 게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생각하는 거죠. 근데 그게 부끄러운 거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인식에 진화가 일어난다는 거죠.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너머, 234-235쪽]
그러나 사실 이러한 '초월적인 시각'은 위에서 든 '부정적인 측면 사례'에서가 아니라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이라거나 '인공지능시대' 등의, 격변의 시대에 인간의 위치, 인생의 의미를 재음미하고, 재조명하며, 재정립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지혜이다.
이처럼 종교 자체의 정체성, 나아가 존폐 여부를 묻는 상황의 한편에서 인류 역사와 더불어 그 천국과 같은 영광과 지옥에 버금가는 질곡을 함께해온 종교는 어떤 '행태(行態)'로든 지속될 것이다. 설령 그것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종교'라고 불러온 것과 판이하게 다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일수록, 종교란 무엇인지, 그리고 나와 종교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로 존재하는 종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새삼스럽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다음에 계속)
* 이 글은 새 책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를 찾아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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