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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0. 2018

동학의 공부법 (번외)

 - 후일담 혹은 시즌2 예고편

동학의 공부법은 약간의 변형을 거쳐 두세 차례 '울궈 먹은' 글이다. 새로운 통찰이라기보다는 경전 여기저기, 혹은 초기 교서 속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공부' 관련 언행들을 나열한 것이다. 필자가 애착, 집착을 가지고 주착스럽게 '동학 공부'라는 화두에 매달리는 까닭이 있다.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돌이켜보는 가운데 분명해지는 것은 '동학'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하며, 동학의 미래를 새롭게 상상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다른 말로 기존의 동학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동학의 공부법'을 쓸 때의 / 쓰고 난 후의 바람이다. '동학 해체' '동학의 재구성'이 동학에 대한 '사문난적'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동학 해체'는 원래의 동학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학에 대한 해묵은 기성관념'을 해체하겠다는 것이며, '동학의 재구성'은 이전에 없던 '신흥 동학계 교단'을 별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퇴화된 동학의 가능성, 잠재된 동학의 진면목을 발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다만, 이 말이 '동학'을 고정된 선험적 실체로 상정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치 역사의 진실은 '단 하나'로 주어져 있고, 인간은 끊임없이 한 점(유일한 진실)에 수렴되어 간다고 생각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이다. '동학'의 '실체'와 '진실'은 '주체'와의 상호 교섭하면서 무궁히 생성되어 가는 것, 다른 말로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것이라고 본다. 열린 동학. 수운의 동학은 해월에게서 공진화하였고, 의암에게서 다시 공진화하였으며, 혹은 양한묵, 이돈화, 김기전 그리고 그 이후 김지하, 표영삼, 박맹수 등등에서 끊임없이 공진화한 결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나는 본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 미래의 동학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지, 미래의 동학으로 미리 그어진 금을 따라 우리가 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필자는 오래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의 핵심 출판 과제로 '동학출판'을 선정하고, 그 의미를 "동학 밖의 동학"을 찾는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다시 '동학 밖의 동학'의 의미를 부연하자면, 첫째, 앞의 '동학'은 '(과거-혁명(전쟁)-서구적 개념의 종교에) 박제된 관념 속의 동학'이라면, 뒤의 '동학'은 '본래의 동학'이면서 '오래된 미래의 동학'으로서의 동학을 의미한다.


'동학 밖의 동학'의 두 번째 함의는 앞의 동학은 '제도종교로서의 천도교'를 의미하는 것이며, 뒤의 동학은 역시 본래의 동학, 가능성으로서의 동학, 최초에 천명된 의미로서의 동학을 의미한다. 또한 여기서 '제도종교로서의 천도교'란 역사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휘둘리는 과정에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왜소화한(교단/교인의 규모가 아니라 그 사상적/종교적/영성적 상상력의 측면에서) 천도교를 의미한다.


"동학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고 할 때 '해체되는 동학'은 '안으로 왜소화된 동학'이고, '재구성되는 동학'은 '열린동학' '오래된 미래의 동학'이 된다. 이때 동학(천도교) 밖에서 동학을 찾겠다는 말은, 지금의 천도교가 내적인 자기혁신을 통해서 쇠퇴일로의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 '성운'을 스스로 준비하고, 그 길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밖으로 나가 살 길을 도모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출판의 관점에서 '동학 밖의 동학' 찾기는 '동학의 교리, 역사, 사상'에 대한 새로운 저작들을 끊임없이 추동하고, 그 창조와 창작의 동기를 부여하여 확산시키며, 동학/천도교를 지속적으로 타자화함으로써 확장하는 작업, 타 종교/사상과 현실 속의 테제들과 연관 지어서 경계를 파괴하는 작업들로 실험되고/실천되고/실현되는 중이다.


그것은 줄탁동시(啐啄同時)의 힘겨운, 줄(안에서 껍질 깨기)이었다.

오늘 마침내, 탁(밖에서 껍질 깨기)의 기미와 기운과 기적을 만났다.

오늘, 원광대에서의 학술모임을 끝내고, 박맹수 교수님, 조성환 교수님, 박달한 동사(同事)와 더불어 "미래로 열린 동학"에 관한 중요한 논의와 합의와 결의를 하였다.


큰 그림 속에, 깨알 같은 과실(果實) 하나.

그 줄탁동시의 흐름 속에, 막연하던 나의 과제 '동학 공부 - 2'가 새롭게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솟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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