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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8. 2018

종교적 사상과 금불문 고불문(2)

다시 읽는 신인철학 60

제4편 개벽사상

                                                                                                                                                                            

제1장 종교적 사상과 금불문고불문(今不聞古不聞)

1. 종교의 영지(領地) (이상 지난 호)


2. 종교와 생활혁신

  

다음에 종교에 대한 고찰로서 우리가 잊지 못할 일대조건은 종교도 원시적 의미에서는 역시 생활 혁명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종교는 일종의 허위와 같이 생각할 수도 있고,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겨우 종교는 인간 본래의 모순을 조화케 하는 위안으로서 반드시 없지 못할 피난소라고 이름하고 만다. 또는 권력계급의 생각으로는 종교의 가치는 법률은 물론이요 도덕보다도 앞서 인심의 안정을 주는데 큰 효과가 있다 하여 그를 보호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중에 오늘날 종교로 가장 명맥을 달고 있는 점은 위안이라 볼 수 있다. 첫째 견해는 종교를 근본으로 부인하는 것이므로 종교 자체로 보아서는 무서운 대적이 될 것이요, 둘째 조건은 종교를 보호하여 주는 점으로는 고마운 일이라 할 수 있으나 남의 이용물이 되었다는 수치(羞恥)로서 그것을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요, 셋째로 오직 위안이라 하는 데 있어서는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이 종교적 위안을 말할 뿐 아니라 사람은 그 자성상(自性上)으로 보아 스스로 그 모순(자연율과 자유의지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 이상 즉 생존욕(生存慾)의 부조화가 있는 이상 종교의 명맥이 거기에 의존하였다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종교를 다른 한 과목과 같이 한 과목의 자리를 쳐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정치, 경제, 교육, 법률 등과 마찬가지로 종교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도 다른 과목과 같이 일개의 과목을 차지한 것이 오늘날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현상이요, 원시종교에 있어서는 결단코 그렇지 아니 하였다. 


원시종교에서는 종교생활이 인간 전체 생활을 대표한 것인 동시에 생활 전체의 총섭자가 되었었다. 원시종교 생활에서는 종교를 오늘날과 같이 다른 한 과목에 섞어 놓는다 하면 그는 마치 상전(上典)이 노복(奴僕)과 같이 자리를 함께하였다는 체면손상보다 더하게 생각되었다. 


원시생활에서는 종교는 상전격이 되고 모든 다른 과목은 그의 종복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승려제도 시대라 불러왔다. 칼 마르크스의 말에 의하면 인류의 생활은 어느 때에든지 경제가 그의 기초가 되고 기타의 제문화는 상부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기초적 문제요 지배적 문제는 아니다. 원시형태에 있어 지배권은 종교에 있고 경제에 있지 아니하였다. 


자본주의의 오늘에 있어서는 기초문제와 지배권 문제가 한가지로 경제에 있게 되었으나 원시시대에는 경제 즉 지배권이라고 혼합시할 수 없었다. 물론 그 당시라 할지라도 인류가 의식주를 떠나지 못하고 사는 이상 의식주 그것이 먼저 서고 다른 필요한 것이 뒤에 따라 갈 것은 필연의 세(勢)였으나 지배권의 주종관계로 보아서는 오늘날 순수 자본주의와 같이 자본이 주가 되고 종교가 그에 따라 간 것은 아니다. 원시종교에서는 종교가 주가 되어서 기타의 문화를 생산케 되었던 것이다. 


유물론자의 말에 의하여 볼지라도 적어도 상부구조에 있어서는 종교가 주격(主格)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의 고대문명을 보든지 유태 중국 등의 고대문명을 볼지라도 그 문명의 연원이 종교에서 생긴 것을 보아서 당시의 도덕 정치, 예술, 법률 등의 모든 것이 종교 속에 묻혔던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예술과 같은 것은 종교를 도와주는 한 역군(役軍)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요, 도덕은 종교의 수행(修行)을 도와주는 도구였으며, 정치까지도 종교권 구성을 호위하는 수단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과학 같은 것은 실제 이용에 쓰는 조그마한 물건으로 그나마 천대를 받아 왔다. 


돈 많은 사람은 천당에 가지 못하는 욕심쟁이의 죄악이라 한 성경의 기록을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원시종교에서는 종교가 그 당시의 생활 전체였다. 종교개혁은 곧 생활 전체의 개혁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위인이라면 거의 다 직접간접으로 종교개혁가가 아님이 없었다. 종교개혁은 곧 생활 전체의 개혁이므로 당시에 위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종교에 의하여 인민을 구제코자 하였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예수나 공자나 불타나 마호메트 같은 이는 그의 대표적 인물로서 그들은 곧 종교개혁가인 동시에 생활혁명가였다. 종교에 의하지 않고는 동포를 구제할 타 방법이 없는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서 그들의 길은 스스로 종교개혁에 착수치 아니치 못할 운명을 가졌었다. 만일 그들이 오늘날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들이 곧 인습의 종교가가 될는지 큰 의문이다. 종교보다는 어떤 다른 ‘도’에 의하여 현대를 구제코저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예수나 불타가 일부러 종교를 창조하기 위하여 종교를 창조한 것이 아니요 당시의 쇠퇴한 생활 전체를 혁신하기 위한 한 운동이 곧 종교로 된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상에 말한 것과 같이 그 당시의 생활은 모두가 종교적이었으므로 생활을 가장 잘 개선하려면 가장 잘 종교를 창조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혁명은 곧 생활혁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와서는 종교 속에 묻혀 있던 제 문화가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 개성이 발달되고 그 요소가 완숙(完熟)해지면서 각각 일가의 독립생활로 나서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과학의 발달을 이름이다. 이미 종교가 그 자체에서 모든 문화를 출가시킨 후의 상태에 있고본즉 종교생활은 금일의 현상과 같은 위안이라는 한 과목을 맡아가지고 지난날[昔日]의 권위를 보존치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종교의 운명이 쇠잔케 된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와서는 일개의 종교혁명은 전 생활의 혁명이 아니요 한 개의 위안개선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상에 말한 요지는 종교도 그 원시적 의미에서는 순전한 생활개혁운동으로 생겼다는 것을 일언한 것인데 오늘날 생활의 전적 혁신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요 타 문화 전반을 포용할 만한 금불문(今不聞) 고불문(古不聞)의 대도(大道)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이에 전제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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