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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8. 2018

해월문집 지상강독(5)

-  [해월문집]을 통해 본 최시형의 동학 재건 운동 (5)

기록/정리 : 조성환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개벽신문] 제69호 (2017.11)


(지난호에 이어 : 해월문집 지상강독 (4) https://brunch.co.kr/@sichunju/160


六任降筆 육임강필 

敎長, 以質實望厚人, 爲之. 교장은 진실하고 덕망있는 사람으로 삼는다. 

敎授, 以誠心修道, 可以傳授人, 爲之. 교수는 성심으로 도를 닦아서 다른 사람에 게 (도를) 전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삼는다. 

都執, 以有風力, 明紀綱, 知境界人, 爲之. 도집은 위엄이 있고 기강을 밝히며 경계 를 아는 사람으로 삼는다. 

執綱, 以明是非, 可執紀綱人, 爲之. 집강은 시비를 밝혀서 기강을 잡을 수 있는 사 람으로 삼는다. 

大正, 以持公平勤厚人, 爲之. 대정은 공평하고 근엄한 사람으로 삼는다. 

中正, 以能直言剛直人, 爲之. 중정은 직언하고 강직한 사람으로 삼는다. 


[뜻풀이] 望(망) : 덕망, 명망 |都執(도집), 執綱(집강) : 기강을 책임지는 직책으로, ‘도집’이 총책임자라면 ‘집강’ 은 그 밑에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 |風力(풍력) : 위엄 

[교감] 이 문장은 [해월문집] 이외에도 1910년대 이후에 동학 계열의 여러 종파에서 간행한 교단사에 실려 있다. 예를 들면, [본교역사] 포덕 25(1884)년 기사, [동학도종역사] 제8장 <유적간포 및 강서(遺蹟刊布及降書)>, [동학도종역사] 제17장 <장정규칙 제정 및 삼전론(章呈規則制定及三戰論)>, [천도교서] 제2편 <해월신사> 등이다. 

[동학도종역사]의 <유적간포 및 강서>에는 문장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데, 가령 “敎長, 以質實望厚人爲之”는 “擇其質實望厚人, 爲敎長”으로, “敎授, 以誠心修道可以傳授人爲之”는 “誠心修道可以傳授人, 爲敎授”로 되어 있다. 또한 이 판본에서만 ‘都執’이 ‘執都’로 되어 있다. 그리고 <육임강필>을 받은 날짜는 “1884년 12월 24일”이라고 나와 있다. 

또한 [동학도종역사]의 <장정규칙 제정 및 삼전론>에는 표현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가령 “敎長, 以質實望厚人爲之”는 “敎長, 質實望厚員”으로, “敎授, 以誠心修道可以傳授人爲之”는 “敎授, 誠心修道可以傳授員”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육임강필>을 받은 날짜가 “1903년 3월 15일”이라고 되어 있다. 

[천도교서] 제2편 <해월신사>에는 <연운결> 다음에 실려 있는데, 위의 본문에 한글토씨가 달려 있는 형태이다. 


박맹수 : 해월 최시형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동학사는 물론이고 한국근현대 정신사·사상사·종교사·문명사를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학계에서 해월에 대한 인식은 그리 깊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상사는 크게 두 흐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위로부터의 사상의 형성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사상의 형성 흐름인데, 후자의 효시가 바로 동학입니다. 이 동학을 오늘날 우리들이 전승하고 주목하고 더 나아가서 미래로 이어갈 수 있도록 토대를 닦은 분이 바로 최시형 선생입니다. 이 흐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벽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벽사상이란 기존의 문명의 틀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자는 사상입니다. 

개벽사상가들은 기존 문명의 특징을 상극의 문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가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상극 관계라는 것이지요. 이 상극의 문명을 상생의 문명으로 전환시키자는 것이 개벽사상의 특징입니다. 이것의 뿌리를 내리게 해 준 이가 해월 최시형입니다. 

최시형 선생의 출신은 아래로부터의 변혁이라는 것에 걸맞게 정규 학문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살아가는 속에서, 동학 수련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해월의 특징입니다. 해월은 교육이란 모름지기 정규 프로그램이 있어야 되고, 스승이 있어야 되고, 교재가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없어도 공부를 하고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신 분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학습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최시형은 스스로 동학의 주문수련을 통해서 밖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강(降)’입니다. 강령(降靈)·강화(降話)·강결(降訣)이라고 할 때의 ‘강’이지요. 이 ‘강’은 보통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깊이 생각해보면 내 안에서 뭔가가 솟구쳐서 외부의 응답을 얻어내는 측면이 있습니다. 절대 내가 노력을 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오는 ‘강’은 없습니다. 나에게서 뭔가가 쌓이고 축적되어서, 그것이 바깥의 것을 끌어오는 형태의 ‘강’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육임’(六任) 관련 내용도 해월이 공주 마곡사 가섭암에서 수련할 때 받은 ‘강’입니다. 1884-5년 무렵의 일이지요. 이 시기는 1870년대까지의 동학 이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비밀포교로 재건한 뒤에 평야지대로 나와서 공개적으로 대대적인 활동을 막 전개하던 때입니다. 그동안에 숨죽이고 있던 동학이 비로소 숨을 쉬면서 뻗어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신자들이 늘었겠죠. 그 신자들 중에는 상당한 교양과 학식, 재산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윤상오(尹相五), 손병희(孫秉熙), 손천민(孫天民), 황하일(黃河一), 서인주(徐仁周), 박인호(朴寅浩), 박덕칠(朴德七) 등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직이 확대되어 가니까 체계화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이 필요성에 대해 바깥에서 주어진 메시지가 바로 ‘육임’입니다. 육임은 교장·교수·도집·집강·대정·중정을 말하는데, 처음에는 보은에 설치되는 동학 본부의 직책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직이 커지기 시작하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쯤 되면 여러 접을 통괄하는 포가 생기는데, 이 포의 본부를 ‘포소’라고 합니다. 이 포소에도 육임이 설치됩니다. 그리고 1894~5년 동학혁명 때에는 농민군 조직으로도 육임이 활용됩니다. 그러니까 육임은 기본적으로 동학의 중앙조직으로 출발해서 지방조직으로 확산되고, 이것들이 다시 농민군 조직으로 활용되게 됩니다. 

이 육임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서는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는데, 한번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부 6개의 직책인데, 2개씩 같은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교장(敎長)-교수(敎授),’ ‘도집(都執)-집강(執綱),’ ‘대정(大正)-중정(中正).’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과 총리가 외치와 내치를 나눠서 국정을 운영하는 ‘이원집정부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치기능을 두 개로 나누면서 동시에 양자를 아우르게 하는 형태의 통치제도이지요. 

이와 유사하게 육임도 두 직책이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교장과 교수가 한쌍이고, 도집과 집강이 한짝이며, 대정과 중정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하나로 묶으면 총 세 개로 구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동학이 이런 식으로 조직화를 시도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동학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형태의 사상·종교·철학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상 일찍이 유례없는 민중조직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지하조직으로부터 시작해서 밑에서 올라와서 동학혁명 때까지 2-300만 명을 조직화하는데 이 육임조직이 결정적으로 기여를 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한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사에서 동학의 접포 조직만큼 최고의 조직의 원리를 갖추고 있는 조직은 없다.” 동학의 접포 조직이 공산당의 세포 직보다 더 역동성이 있었다는 뜻이지요. 육임에 대해서 이런 평가도 있다는 것을 참고로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通文(통문)  戊子(무자. 1888년) 

阻懷不須提, 謹問. 此時, 侍中僉候, 衛道淸穆? 仰溸憧憧. 記下功服人, 弔昔大幸耳. 

그리운 마음은 제기하지 않고, 삼가 묻겠습니다. 요즘 하늘님 모시는 여러분께서는 도를 지키고 맑고 화목하신지요? 우러러 그리운 마음이 그립고 그립습니다. 제가 상복을 입고서 옛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크게 다행일 따름입니다. 


[뜻풀이] 戊子(무자) : 1888년. | 阻懷(조회) : ‘阻(조)’는 ‘떨어지다, 사이가 멀다, 막히다’는 뜻이고, ‘懷(회) ’는 ‘그리워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阻懷(조회)’라고 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侍中(시중) : 보통 유교문헌에서는 “부모님을 모시는 가운데”라는 뜻인데, 이것은 동학 관련 문헌이기 때문에 “자기 안의 하늘님을 모시는 가운데”라는 의미이다. 지금도 동학계 교인들끼리는 “모시고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다. |僉(첨) : 다, 많은 사람이 함께 말하다. |候(후) : 기후, 건강 |言+素(소) : 아마 ‘溸’(소)의 오자가 아닌가 싶다. ‘溸’는 물이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 으로 ‘그립다’는 뜻을 나타낸다. |憧憧(동동) : 간절히 그리운 모양. ‘憧’(동)은 ‘그리워하다’는 뜻. |記下(기하) : 자기를 낮추는 말. ‘記下生’(기하생)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는 통문을 보낸 해월 최시형 자신을 가리킨다. |功服(공복) : 상을 당했을 때 입는 오복(五服)의 일종으로, 大功服(대공복)과 小功服(소 공복)을 통칭하는 말. 대공복은 9개월간 입고, 소공복은 6개월간 입는다. 아마도 이 당시에 해월과 가까운 인물이 사망하여 해월이 상중에 있었던 것 같다. |功服人(공복인) : 상복을 입은 사람,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 |弔昔(조석) : 옛 사람을 조문하다. 


就控, 有所陳者, 玆以傳示, 一一俯覽, 俾無日後不聞之弊, 如何? 敢進諸說, 列之如左. 

다름이 아니라 아뢸 말이 있어서 여기에 전달하니, 일일이 살펴보셔서 나중에 알지 못하는 폐단이 없게 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감히 여러 말씀을 올리니, 아래와 같이 열거합니다. 


[뜻풀이] 控(공) : 고하다, 아뢰다 |就控(취공) : 직역하면 “나아가 아뢴다”는 뜻으로, 편지글에서 본론을 꺼내기 전에 쓰는 말이다. ‘다름이 아니라’ 정도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就白(취백), 就達(취 달), 就告(취고) ’라고도 한다. |玆(자) : 이, 여기 |有所陳者(유소진자) : 아뢸 말씀이 있다. |*俯覽(부람) : 굽어 살피다. ‘俯’(부)는 ‘구부리다,’ ‘覽’(람)은 ‘살펴보다’ |俾(비) : 시키다. “~로 하여금 ~하게 하다”는 사역을 나타내는 조동사. |日後(일후) : 훗날 |如何(여하) : 어떠한가? 어떻겠습니까? 


조성환 : 문체가 편지글 같은데, 통문은 대개 이런 형식인가요? 

박맹수 조선시대 때 민간단체(서원, 향교, 향청, 각 문중 등)나 개인이 같은 종류의 기관이나 관계있는 인물에게 보내는 것이 통문인데, 지금 이 통문은 일반적인 조선왕조 시대의 통문 형식과는 다릅니다. 형식은 통문 형식을 빌렸지만, 일반적인 통문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동학식으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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