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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9. 2018

나는 동물이다

철학하는 농부가 보는 세상 -1

 김예린 | 청년 농부 ([개벽신문] 제70호, 2017년 12월) 


[편집자주] 김예린은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명원을 수료했으며 동양포럼과 청년포럼에서 활동 중이다. 내년 3월부터는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에 다니면서 농사일을 배울 예정이다.


  나는 동물이다  

모기가 물었나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은 팔, 그 다음날에는 배, 그 다음 날은 다리까지 -. 모기 한 방 물린 듯이 올라왔던 피부병이 며칠 새 온 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보기에도 징그러울 뿐만 아니라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지러웠고, 긁으면 올라온 것이 더 빨갛게 크게 부어올랐다.


처음에는 뭘 잘못 먹었나 했지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난생 처음으로 피부과에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았지만 명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은 그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고 모호하게 진단할 뿐이었다. 병원에서 맞은 주사와 처방받은 약에 든 스테로이드 성분은 혈관을 수축시켜 신진대사를 느리게 만들어서 우둘투둘했던 것이 쏙 들어가는 효과는 있었지만 혈관뿐만 아니라 내 몸 전체와 마음까지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나는 죽은 동물의 가죽처럼 축 늘어지고 시들해져 버렸다. 피부과 약은 독해서 몸에 안 좋다는 말을 듣고 한의원에도 가서 비싼 한약도 써보았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여름이 오면서 해는 점점 뜨거워지고 옷들은 점점 얇아져 가는데 나는 몸에 난 것들을 가리기 위해 긴 팔을 벗을 수 없었다. 


이때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두어 달 정도 병원에 다니다가 차도가 없자 자포 자기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치료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은 아주 심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았는데 아마 음식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먹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려서는 밥을 너무 안 먹어서 엄마가 쫓아다니면서 한 숟갈씩 입에 넣으시느라 고생하셨다 던데 어려서 못 먹은 밥을 보충하려고 그랬나보다. 게다가 우리 집만의 유별난 규칙도 한몫 했을 것이다. 


엄마는 밥 먹는 것을 무척이나 강조하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는 마치 의식과도 같아서 그 전날 어쩌다 늦게 잤더라도 아침에는 반드시 식탁 앞에 앉아야만 했다. 어쨌든 나는 하루 세 끼에다가 간식까지 규칙적인 식사를 하곤 했다. 전라도가 고향인 엄마는 항상 음식을 맛깔스럽게 하셔서, 밥 먹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는데 몸이 말썽을 일으켰으니 하나씩 돌이켜봐야만 했다. 


음식 재료를 사러 혼자 마트에 갔다. 엄마 따라 장보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단지 구경하는 것뿐이었지 막상 직접 사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고르기 가장 난처했던 품목은 계란이었다. 초특가 계란부터 무항생제 계란, 유정란, 싼 것과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동물복지농장 방사 유정란까지. 겉보기에는 다 똑같이 생겼는데 종류가 족히 열 가지는 넘었고 가격도 너무 천차만별인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높이 쌓아올린 수많은 계란판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지만 관심없이 지나쳐 버렸던 양계장의 닭들, 아주 좁은 칸막이에 갇혀있는 닭들, 조류독감 때문에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묻히는 닭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또 시선이 동물복지농장 계란으로 향할 때에는 초록빛 풀밭에서 암탉과 수탉이 정답게 뛰어 노는 장면이 생각났는데 거기 있는 계란들이 저마다 그들이 자란 배경을 텔레파시로 보내주는 느낌이었다. 겉보기에는 똑같이 보이는 계란의 본질은 이 공간에 쌓이기 전까지 거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조리가 끝난 요리, 가공 처리가 된 음식만 먹어서 밥을 먹으면서도 닭을 떠올려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분명 나는 잘못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계란과 나는 상품과 소비자의 관계이기 이전에 동물과 동물의 관계인데 말이다. 어릴 적 시골 이모댁에 놀러갔을 때 아침에 닭이 낳은 알을 뺏어오며 느꼈던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손에 느껴졌던 따뜻한 온기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나를 채우고 둘러싸는 전부를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머무르는 공간, 그리고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 심지어는 인간관계까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이 모든 것은 시스템으로 구축되었고 우리 삶은 자동화된 절차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 전부여도 되는 걸까?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요양을 한답시고 산골짜기에 있는 친척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나는 젖은 흙과 나뭇잎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새벽녘 산새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한 여름에 볕이 뜨거운데도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바람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산 속에서는 훨씬 더 많은 생물들이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왔고 나는 분명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생 죽어있었던 몸의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나는 생물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몸에 난 것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를 낫게 한 것은 병원의 약이 아니라 인식과 생활의 전환이었다. 


이런 내가 대학원 연구실 책상보다 흙 위를 더 좋아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귀농

해서 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주변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만류했다. 서울토박이가 시골에 몇 번 갔던 것이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라서 좋았던 것이지, 막상 시골에서 살다보면 다 뻔해지고 힘들 거라면서 .


그런데 피부병이 나은 후로도 도시에서 몇 개월 지내다보니 자꾸 병이 생겼다. 나는 자연 속에 사는 것이 체질에 맞는, 아마도 다른 인간들보다 진화가 조금 덜 된 상태로 태어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시골에서의 삶은 단조롭고 지루해질 수도 있다. 피부도 까맣게 그을리고 허리도 굽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덕을 올라갈 때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듣고 싶고 일이 없는 겨울밤에는 밤 새 별을 바라보면서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처럼 살고 싶다. 무표정으로 절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땀 냄새도 나고 흙이 묻어 더러워진 몸뚱아리가 되기를 원한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또한 나를 채우고 둘러싸는 아주 작은 것이 있기 위해서, 온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독립된 존재란 없고 모든 것이 미묘한 그물처럼 짜여져 상생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었고, 비로소 나를 우주로 확장하여 주변의 것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농대에 진학하여 농사를 지으며 매일매일 나무를 볼 것이다. 나무를 볼 때, 나뭇 가지에 앉아 열매를 먹는 새,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나무를 흔드는 바람, 양분을 공급하고 나무를 지탱해주는 토양,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을 함께 볼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나무를 이루도록 돕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돕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와 함께 마무리하고 싶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개

저 안에 벼락 몇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 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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