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신문] 제70호(2017년 12월호)
[해제]
여기에 실린 ‘한일 영성 새밝힘 정담’은 지난 2017년 2월 20일에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과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學) 명예교수,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이 세 명이 일본의 교토(京都) 시내에 있는 카페 <우에시마 커피>에서 나눈 영성(靈性)에 관한 철학 대화를 보완한 것이다. 당시의 대화 내용은 [미래공창신문] 제34호(2017년 7월 15일호)에 <동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성을 말한다>로 게재되었고, 그 후에 이 세 명이 2017년 8월 3-7일에 꽃동네영성원에서 개최된 국제영성포럼(동양일보 후원)에 참가한 성과를 바탕으로 가필·수정한 원고가 기타지마 기신 명예교수가 편집하는 사상철학잡지 [리라
līlā(遊)』 제10호(2017년 12월 간행 예정)에 게재될 예정이다. 이 글은 이 수정된 원고를 야규 마코토 박사가 한국어로 번역하고 조성환 박사가 약간의 표현과 오타를 수정한 것이다.
본 정담(鼎談)에서는 아프리카적 영성, 아시아적 영성, 러시아적 영성, 불교적 영성 그리고 일본적 영성 등 다양한 영성이 논의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적 영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타지마 교수에 의하면 ‘우분투’는 타자와의 관계성을 가리키는 말로, 투투 명예대주교는 우분투의 인간관을 “사람은 타자를 통해 인간이 된다.” “우리는 서로의 필요성을 알기 위해 서로 다른 것이다. 인간이란 의존관계에 있다.” 등으로 설명하면서 “우분투는 인간임의 본질이다”라고 설파했다. 이것은 서구근대를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나
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는 소위 ‘코기토(Cogito)’적 인간관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다. ‘우분투’ 혹은 그것과 공통된 개념은 아프리카 각지에 널리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아프리카의 토착 언어에 유래하지만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 혼혈인, 인도인 등에게도 흔히 알려지고 쓰이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아프리카 대륙은 영국·프랑스 등의 서구 열강에 의해 구석구석까지 식민지화되어 흑인들의 문화나 전통은 비문명적·야만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서구적 교육을 받은 흑인 지식층들도 서구 백인의 언어·문화를 높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적지 않게 내면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아프리카에서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프리카의 문학자·예술가·사상가들은 문학·춤·연극 등을 통해 민중들에게 주체의식을 각성할 것을 호소하였다.
남아프리카를 지배한 백인(영국계, 네덜란드계 보어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체제를 구축하고 소수파의 백인과 다수파의 흑인 및 기타 유색인종들을 격리·분리시키고 백인들이 사회의 모든 기득권을 독점했다. 백인들은 “너희들은 너희대로 살라. 우리들은 우리대로 산다”고 하면서 흑인들을 사회적·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 내버려두고 그것에 대한 항의·저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탄압했다. 그것에 대해 反아파르트헤이트의 사상가·운동가들은 흑인의 토착적인 개념·사상으로서의 ‘우분투’를 재발견하고 그 개념을 갈고닦아서 대중들로 하여금 아프리카 흑인에게 독자적이고 떳떳한 철학이 있다는 것, 흑인이 결코 열등한 인간이 아니라는 주체의식을 깨우쳤다. 이윽고 그것은 백인과 혼혈인, 그리고 그 밖의 유색인종에게도 전파되어 사람들이 인종격리정책의 모순을 깨닫게 만들고, 마침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자체를 해체시키게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 변혁의 원동력이 된 ‘우분투’를 보면 한국의 동학(東學)이 외친 ‘시천주(侍天主)’와 ‘후천개벽(後天開闢)’이 떠오른다. 귀천(貴賤)의 차별을 사회질서의 기초로 하는 선천(先天) 5만년이 막을 내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한울님(天主)을 모시는 존귀한 존재로 서로 존중받는 후천시대가 개벽되었다는 수운 최제우의 메시지가, 이후에 조선왕조의 압정과 서구 및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동학혁명의 큰 물결을 일으킨 것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새삼스럽게 영성을 논하는 것은 고도화하고 복잡화된 현대과학기술문명과 국제자본주의에 의한 빈부격차의 문제, 편협한 국수주의·민족주의·배타주의 등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도리어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인간적 가치가 상실되는 이 시기에, ‘영성’이라는 시각에서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거기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여는 길을 되찾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기타지마 기신 선생님은 [남아프리카의 지도자, 종교와 정치를 말하다―자유의 정신, 희망을 열다]1를 <정천사(正泉寺) 국제종교문화연구소 연구총서 1>로 2012년에 감역·출판하셨습니다. 인종격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붕괴되고 나서 1994년에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Nelson R. Mandela, 1918-2013)와 성공회의 중진(重鎭)인 데즈먼드 투투(Desmond M. Tutu, 1931- ) 대주교 등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철폐의 사상적 투사들 21명을 인터뷰한 기록입니다. 찰스 빌라 비센시오(Charles Villa Vicencio) 케이프타운대학 명예교수가 신생 남아프리카의 태동기(90년대 초기)에 그들을 실제로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귀중한 자료입니다.
김태창 선생님은 1990년부터 일본의 교토를 중심으로 세계적 규모의 ‘공공하는 철학대화 운동’을 26년 동안 꾸준히 계속하신 후에 지금은 충북 청주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지방간·세대간·남녀간 상생의 공공하는 인문학 대화활동을 2년째 전개하고 계십니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영성의 새밝힘을 다각도로 실행해 오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두 분 선생님은 작년에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조성환 박사의 추천으로 만나게 된 이후로 일본에서 여러 차례 ‘영성’에 관한 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 동안의 대화를 정리하고 한국·일본·러시아·아프리카에 관한 체험 학습을 연결지우면서 함께 공공하는 영성과 그것이 미래공창에 갖는 의의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태창([동양일보] 동양포럼 주간) : 먼저 좋은 책을 보내주셔서 그동안 충분히 관심을 갖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책에는 아프리카 문학과 사상을 오늘날 일본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알리고 싶다는 기타지만 선생의 배려와 성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스님이신 기타지마 선생이 특히 아프리카 사상과 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기타지마 기신(욧카이치대학 명예교수) : 저는 정토진종 혼간지파(本願寺派) 승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생가는 400년 동안 세습된 지방이었고 양가인 정토진종 다카다파(高田派) 쇼센지(正泉寺)는 600여 년 동안 ‘문도(門徒)’라고 불리는 민중들과의 유대관계를 계속 유지해왔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는 러시아나 이슬람권의 이란을 공부하고 싶어서 아버지와 상의했습니다만 허락을 받지 못했고, 결국 한자문화권이 아닌 인도 쪽에서 불교를 다시 보려고 1963년에 오사카외국어대학(大阪外國語大學)의 인도어 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들어가 보니까 수업 내용은 고전어가 아니라 현대어뿐이었습니다. 힌디어를 위주로 해서 우르두어도 배웠는데 거기에는 상당한 비율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단어도 들어 있었습니다. 인도에는 상당히 다양한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파업과 시위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일회담과 기숙사 문제가 쟁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도를 중심으로 연구하려는 의욕이 안 생겼고 젊었던 저는 장차 세계가 사회주의가 되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익히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 믿고 러시아어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외대를 졸업하고 오사카시립대학(大阪市立大學) 문학부 문학과 철학전공으로 다시 학사 입학했을 때의 지도교수가 다나베 하지메(田邊元)2의 제자이면서 다나베 하지메 비판의 졸업논문을 썼고, 정치활동을 하다가 3년 동안 형무소로 들어간 모리 노부시게(森信成, 1914-1971) 선생이었습니다. 모리 선생님으로부터 마르크스에
게 큰 영향을 준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 철학을 읽는 방법을 꼼꼼히 배웠습니다.
저는 시립대의 학사입학시험을 영어와 러시아어로 쳤습니다. 그런 관계로 모리 선생님께서 “러시아어를 읽을 줄 아니까 읽어봐라”고 하면서 19세기 러시아문학과 정치철학 연구를 권유해 주셨습니다. 모리 선생님은 특히 19세기 중기 러시아의 체르니셉스키(Nikolai Gavrilovich Chernyshevskii)를 읽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러시아문학의 기본사상이나 행동원리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헌을 읽으면서 19세기 러시아의 사상과 문학이 지니는 힘, <백과전서> <생활의 교과서> 역할을 하는 문학의 힘에 매우 감동했습니다.
오사카시립대학 대학원 시절에 친구로부터 “아프리카 흑인문학은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영어로 쓰인 현대 아프리카문학도 읽었습니다. 거기에서 19세기 러시아문학의 재래를 보았습니다. 대학교의 교원이 되고 나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재로 아프리카문학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아프리카의 사상에 충격을 받고 그 문학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매력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식민지화(植民地化)되어서 엄청난 고초를 겪으면서도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점입니다. 작품을 읽으면 제가 용기를 얻고 자기를 돌이켜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자타의 관계성, 연대를 축으로 한 ‘우분투(ubuntu)’의 사상이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문학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아프리카의 공동체 안에 전통적으로 내재하고 저항문학 작품에 나타나 있는 사상이 ‘우분투’입니다. 인종차별의 철폐를 흑인 측으로부터 백인과 혼혈인들에게 호소하고 연대하는 사례가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많습니다. 아프리카에는 “함께 운동하는 문화적 전통”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아공의 인종격리정책은 엄청나게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문학작품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품게 해 줍니다.
김태창 : 아프리카 문학의 영어 번역판과 현지어의 원본 사이에는 독해상의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기타지마 기신 : 지적하신 대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는 민중의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와히리어는 체계화되어 있지만 그 외의 토착 언어가 문학에서 쓰이는 것은 별로 없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로 쓰여 왔습니다. 그런 문학들의 주류는 식민지주의 지배에 대한 저항을 그린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서양근대문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문학에는 점차 토착성이 기본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앞장서서 쓴 사람 중의 하나가 응구기 와 씨옹오(Ngũgĩ wa Thiong’o, 1938- )3라는 케냐 출신의 작가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영어로 썼는데, 작가 활동을 하는 가운데서 “문학은 민중을 떠나서는 안 된다. 민중의 말로 문화를 이어가자. 이것은 유럽에서 단테가 라틴어가 아니라 토착의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쓰고, 루터가 성경을 토착의 독일어로 옮긴 것과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식민지 지배는 정치·경제·문화가 일체가 된 지배였고,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문화 지배이다. 그 지배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토착적인 민족어에 의한 문학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입각해서, 1976년에 기쿠유어라는 민족어로 연극 작품 <좋을 때 결혼할거야(Ngaahika Mdeenda)>를 미셸 무고(Micere Githae Mugo, 1942- )와 공동으로 썼습니다. 이 작품은 케냐에 있어서 신식민지주의 지배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입니다.
야마모토 쿄시([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한반도에서 세종대왕이 지식인 계급 공용의 문어인 한문과 별도로 민중의 일상생활언어를 소중히 여겨서 한글을 창조하고 널리 보급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민족의 독립은 우선 언어적 독립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타지마 기신 : 기쿠유어로 쓰인 이 연극작품을 현지의 젊은이들이 상연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었던 ‘백수’나 심지어는 자살미수까지 한 젊은이가 연기를 하면서 힘을 내고, 리허설을 본 비평가가 “모두 프로가 연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연극 자체가 사회성을 지닌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토착문화이고 그 전통을 재현시킨 이 연극운동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케냐 정부는 구기를 체포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체제 전복의 기폭제가 되는 것을 우려한 권력자가 문학가의 활동의 싹을 잘라 버리려고 한 거군요.
기타지마 기신 : 영어 작품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지식층은 숫자도 많지 않고 케냐 정부로서는 무섭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다시 읽고 있는 응구기의 작품인 [악마를 책형(磔刑)시켜라](Devil on the Cross, 1982)는 기쿠유어로 쓰인 원작(Caitaani Mutharaba-ini, 1980)의 영어판입니다. 영어 내용이 알 수 없는 부분이나 가끔씩 나오는 아프리카 언어로 쓰인 노래의 뜻 등은 응구기와 친한 제 친구인 고돈 사이라스 므완기(Gordon C. Mwangi) 선생(시코쿠가쿠인대학四國學院大學 교수)에게 묻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실은 이것과 비슷한 작업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정유재란 때의 일본 수군과 조선 수군의 전투를 그린 영화 <명량(鳴梁)>에서 이순신이 아들에게 “이것(=큰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은 신의 은총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는 그 영어 자막의 의미를 이해가 잘 안 돼서 한국의 친구인 조성환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순신이 한 말은 서양 언어의 ‘신의 은총’과 의미가 전혀 다른 ‘천행(天幸)’으로 “민중과 신이 공동(共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김태창 : 결국 아프리카문학에 접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어 번역을 매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이군요. 아프리카문학 속에 살아 움직이는 핵심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분투’라고 강조하고 계시는데 선생께서는 그것이 어떤 사상이라고 생 각하고 계십니까?
기타지마 기신 : ‘우분투’란 타자와의 관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은 홀로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쁜 사람도 포함해서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화되어 간다는 생각이 아프리카에는 있습니다.
자기중심주의(egocentrism)가 아니라 타자가 자기를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반적인 통행자가 아닌 ‘타자’와 하나의 단위(공동체)를 만들어서 생활합니다. 작은 단위들 사이에서 교류가 있듯이 외국의 단위들과도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통해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 시작은 ‘자(自)’가 아니라 ‘타(他)’입니다. ‘타’에 의해 발현되어 가는 자기는 실체가 아니라 과도기로서의 자기로, 항상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불교로 말하면 ‘공(空)의 공화(空化)’이며 ‘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과 연결됩니다.
이 상호관계성의 사상은 ‘적’이라 할지라도 ‘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의사소통을 통해 함께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비폭력’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야마모토 쿄시 :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은 비소(卑小)한 자기의 체험을 성역화(聖域化)시키지 않고 지금의 자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출발한다는 것이군요. 저희가 발행하고 있는 [미래공창신문]도 매호(每號) 낼 때마다 처음부터 출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공창(未來共創)”이란 세상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얏!” 하고 기합을 내면서 실제로 한 걸음을 밟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당연히 장애나 어려움이 수반됩니다. 뜻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진심과 진심이 서로 메아리치는 것을 에너지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진하는 길 위에서 공명(共鳴)·공진(共振)·공동(共働)할 수 있는 ‘타자’가 나타나면 ‘타자’와의 영(靈)과 혼(魂)과 심(心)과 상관연동해서 미래를 개신(開新)합니다. ‘타자’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하여 대화·공동·개신의 연쇄가 나선형으로 상승해 나가면 국내외의 (특히 동아시아의) 동지(同志)들과 더불어 공복세계(共福世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를 들면 그전까지의 위로부터 아래로 베푸는 성현문명(聖賢文明; 정치권력·종교적 권위에 의한 지배·명령)에서 아래(민중)로부터 일어나는 ‘활사개공(活私開公)’ 문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타자와 함께 하기”이기 때문에 한 개인에 의한 ‘창조’나 ‘독창’이 아니라 ‘공창’인 것입니다. ‘공창’의 ‘창(創)’은 ‘창발(創發)’의 준말입니다. 뜻을 가진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창출·창신(創新)하는 것, 즉 ‘개신(開新)’을 말합니다. 개신이라는 사태는 근원적인 우주생명력(영성靈性)과 개체생명력과의 공진(共振)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공창이란 자력(自力)·공력(共力)·타력(他力)이 상관연동하는 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겠지요. 정토진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성입니다. 이것을 ‘타력(他力)’이라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아미타불의 무한한 자애로움=타력에 의해 구제되는 것이지 자력작선(=자기 힘으로 선을 행함)은 털끝만큼도 관여되지 않는다는 것과 우분투와는 접점이 있습니까?
기타지마 기신 :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흔히 자력(自力) 구원의 선구자로 알려진 도겐(道元)4도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생사장(生死章)>에서 생사를 떠난 ‘구원’은 저편에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이 점에서는 신란(親鸞)5도 도겐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종교적 구원, 인간적 성장은 ‘자’가 아니라 외부성(外部性)으로서의‘타’의 작동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우분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타’의 비분리성, 외부성으로서의 ‘타’(부처)에서 “자기중심주의가 너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나에게 맡겨라”라는 아미타불의 부름을 듣고 그것에 의해 자아에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타력의 가르침’은 우분투의 사상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아프리카 문학에는 ‘자력본원(自力本願)’ 같은 생각은 없습니까?
기타지마 기신 : 아프리카의 문학작품에 처음에는 데카르트 이래의 ‘자아’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작가들이 서양에 유학하거나 서양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격투하는 가운데 그런 ‘자력적 자아’는 모두 파괴되고 아프리카적인 사고방식으로 회귀하게 되었습니다.
“단편화된 아프리카를 하나로 만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응구기를 비롯해 여러 작가들이 말합니다. 다시 말해 상실·분단·소외된 상태로부터 인간을 되찾는 사상으로서 ‘우분투’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각국이 차례차례로 독립한 1960년대는 서양식의 발상과도 겹치는 리얼리즘 문학작품이 많이 나타나서 서양인도 일본 지식인도 그것을 읽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아프리카의 현실이 해결될까?”라는 의문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에 의해 지난날 백인이 흑인을 직접 지배하는 ‘식민지주의’는 끝났지만 경제적·문화적 자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실은 글로벌 지배의 신식민지주의로 이행했을 뿐이 아닌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 않은가? 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을 아프리카 토착사상·문화의 현대화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시도가 1970년대의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48년에 시작된 남아프리카 백인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표면상 “너희들(흑인)은 너희 생각대로 하라. 우리들(백인)은 우리 생각대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실은 다릅니다. 근본 전제에는 흑인과 백인의 평등성은 없습니다. 실제로는 “흑인은 백인과 따로 ‘원주민답게’ 살면 된다. 너희들은 백인으로 대표되는 문명인이 될 리 없으니까 우리들의 지도 아래 사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들 백인은 너희들과 다른 문명인으로서 생활한다”는 것으로 ‘분리발전’의 미명 아래 흑인, 칼라드(혼혈인), 아시아인 억압을 강화했습니다.
당시 인구의 약 80%를 차지한 아프리카 흑인은 이에 대해 철저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열등한 인간이 아니다. 원래 아프리카에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 도와주면서 인간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온 체험이 있지 않은가?” 이러한 입장에서 흑인이 아프리카문화를 파헤치고 이론화시키는 과정에서 아프리카에는 상호관계성을 의미하는 ‘우분투’라는 대단한 사상·문화가 있다는 것이 의식화되었습니다. 이것이 흑인의 단결과 저항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인 스티브 비코(Steve Biko, 1946-1977, 30세로 고문사)는 말합니다. “우리는 결코 백인들의 말처럼 ‘열등한 인간’이 아니다. 서양인과 팽팽하게 맞서 싸운 줄루인(Zulu)의 영웅 샤카(Shaka)6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상호관계성을 통해 인간이 되어간다고 하는 우분투 사상이 있다. 이것은 실은 기독교에 상통하고 있다. 이것을 축으로 한 연대투쟁이 필요하다.”
남아프리카의 흑인은 80%가 기독교인입니다. 스티브 비코는 1970년대에 토착문화의 현대화를 축으로 하여 해방운동과 기독교를 결부시켜 흑인들을 단결시켰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흑인의식운동’입니다. 그 기본사상은 백인 배제가 아닙니다. 먼저 흑인이 자립하고 주체화하자는 것입니다. 흑인을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무시한 백인의 지도하에서 연대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니까 백인과 대등하고 평등하게 연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발전해서 80년대에는 ‘전인종(全人種) 평등주의’의 운동이념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백인도 흑인도 컬러드(혼혈인)도 가리지 않는 종교인·사회주의자·노동조합의 연대에 의한 무혈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김태창 : 제가 남아프리카에 갔던 1990년대에는 백인만이 분리해서 사는 스텔렌보슈(Stellenbosch)에 스텔렌보슈대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레토리아(Pretoria)에 있는 흑인 대학에서는 흑인 엘리트가 양성되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타지마 선생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너는 네 생각대로 해라. 나는 내 생각대로 한다”는 식의 공생사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에 있는 케이프타운대학에 가보니까 중국인도 인도인도 백인이나 흑인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 그랬군요.
김태창 : 2000년에 들어서면서 만델라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매개해줘서 제가 추진하던 교토포럼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국제회의의 주제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함께 연다”는 것으로 정하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참석한다는 약속도 받아냈습니다. 장래세대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고, 거기서 모든 인종이 공복(共福)의 세계를 실현한다는 주지의 가사를 제가 쓰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곡가가 작곡해서 대학의 합창단이 그것을 부른다는 합의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정치적 불상사 때문에 만델라 대통령이 퇴진하는 바람에 그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남아공의 국민과 만델라 대통령, 현재세대와 장래세대가 함께 열기를 바랐던 미래는 ‘무지개’(Rainbow) 공동체였습니다. 서로 다른 종족들이 함께 사는 공생사회(共生社會; symbiotic society)이기보다는 서로 개성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고 살리는 가운데서 서로가 행복해지는 상생사회(相生社會; convivial community)를 지향한다는 강력한 소망과 소신이 있었습니다.
야먀모토 교시 : 김태창 선생님도 아프리카와는 그전부터 깊은 인연이 있으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무언가 인상에 남는 일은 있으신지요?
김태창 : 예. 1980년대 초기의 일이니까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저도 한국정부와 UNDP(유엔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근교에서 농촌개발을 위한 국제봉사활동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다언어(多言語) 상황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불통(不通) 문제였습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모인 여러 종족들 앞에서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즉석에서 여덟 개의 언어로 통역되었는데 과연 이렇게 해서 상호이해가 가능한지 의심스럽고 아주 불편하고 이상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서 우물을 파게 되었는데, 저는 우물을 잘 팔 수 있도록 “모두 함께 기도를 올립시다”라고 제안했습니다. 예배라는 딱딱한 형식은 취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루에 세 번,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신에게 기도를 올리면 어떨까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손을 들고 “왜 하루에 세 번 신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야 됩니까?”라는 뜻밖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통역에 의하면 그 부족에는 ‘기도’에 해당되는 어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키우는 동물이 인간에게 아양 떨 때 꼬리를 흔드는 비유를 들어서 ‘신에게 기도하다’라는 뜻을 표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언어 소통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마을 근처에 우물이 없어서 여성들이 매일 몇 킬로나 걸어서 물을 뜨러 가서, 물병을 머리에 이고서 나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질학자가 아니지만,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간절한 소원이 있었는데 “왠지 이곳을 파면 물이 나올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20미터 정도 파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물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감동했습니다.
그때 어느 아프리카 사람이 저에게 “선생님은 어느 우주에서 오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외계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와 제 우주가 다르다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일본 신화에 하늘에서 강림한 신이 야마토정권(大和政權)을 만들었다는 천손족(天孫族)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저를 자기들과 다른 우주에서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복수 우주설’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로 우리는 그 우주 안에서 서로 맺어져 있다고 말하지만 기실 우주는 여러 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타지마 기신 : 그랬군요. “당신은 어느 우주에서 왔습니까?”라는 말은 매우 아프리카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제 친구가 아프리카를 위해서 여러 가지 도와주었는데 고맙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그 친구가 “적어도 감사하다는 말만큼은 해 주시면 어떤가요?” 라고 조심조심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상대방 노인이 빙긋 웃으면서 “당신은 젊군요. 그렇다면 당신이 해준 일은 어떤 보답을 받기 위해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당신이 해준 일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떤 보답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백년 후, 천년 후에는 보답을 받게 될 것이오. 그게 세상 이치니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시오”라고 타일러 깨우쳐 주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아무래도 자기 안의 사고의 테두리에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투투 씨는 “하느님은 크리스챤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김태창 : 신이 크리스챤이라면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들의 신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원인이 되어 종교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지 않습니까? 일부 사람들이 신을 독점하는 것은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요?
기타지마 기신 : 맞는 말씀입니다. 정토진종의 승려인 저는 타종교의 사람들, 나아가서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도 사귀고 교류해야만 풍요로워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종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기본 정신이자 공(空)·연기(緣起) 사상입니다. 제가 어딘가에 머물러 버리면 독선주의가 될 뿐이니까요.
야먀모토 교시 : ‘독선주의’라고 하면 현실의 종교 신자들이 갖는 일종의 선민의식에 대해 싫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종파가 최고의 가르침이다”라는 고정관념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공(空)’이라는 자기가 앉아 있는 대지에 뿌리를 내려 버리고 자기와 자기 주변의 나무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공의 대지화(大地化)’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방금 말씀하신 ‘공의 공화(空化)’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기는 순간 ‘오만’이라는 악마(魔)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깨달음(불법)과 오만(마성) 사이의 거리는 근소하면서도 무한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란이 ‘지옥일정(地獄一定)’이라고 말했듯이 아주 심각한 자기응시·자기비판·자기부정·자기반성이 모든 종교 신자들에게 늘 요구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종교나 국수주의에게 혼이 영토화 되어 버리면 간단하게는 혼이 자유로워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도쿄의 지하철 독가스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 신자가 악몽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피부 색깔(백색·흑색·황색)이나 민족에 의한 차별은 불화와 폭력의 원인이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주석
1. 원저의 제목은 Charles Villa-Vicencio, Spirit of freedom : South African leaders on religion and politic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6)이고, 일본어 번역서의 제목은 [南アフリカの指導者、宗教と政治を語る―自由の精神、希望をひらく](東京: 本の泉社, 2012)이다.
2. 다나베 하지메(田邊元, 1885-1962)는 일본의 철학자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와 더불어 교토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니시다의 제자였으나 뒤에 스승을 비판하고 ‘절대변증법’과 ‘종(種)의 입장’을 주장했다.
3. 응구기 와 씨옹오의 저작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응구기 와 씨옹오 저, 이석호 역, [정신의 탈식민지화], 아프리카, 2013. 원제는 Ngugi wa Thiong’o, Decolonising the mind: the politics of language in African literature, James Currey, 1986이다.
4. 도겐(道元, 1200-1253)은 일본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초기의 선승으로,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 조사(祖師)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창시자이다. 조동종은 ‘수증일여(修證一如)’에 입각하여 ‘지관타좌(只管打坐)’를 강조한다. 즉 오로지 좌선에만 집중하는 묵조선(黙照禪)을 강조하는 것이 조동종의 특징이다.
5. 신란(親鸞, 1173-1263)은 일본 가마쿠라 전기~중기의 승려로, 이른바 ‘가마쿠라 신불교’ 조사(祖師)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창시자이다. 전수염불(專修念佛), 정토신앙을 강조한 정토종(淨土宗)의 창시자인 호넨(法然)을 스승으로 섬겼다. 뒤에 신란은 아미타불의 절대적인 원력(願力)에 매달려 구원
받는 절대타력의 신앙을 강조했다.
6. 샤카(Shaka, 1787-1816)는 줄루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본래 약소 부족이었던 줄루족의 왕이었는데 새로운 장비와 전략전술을 고안하고 주변 국가와 부족들을 병합·흡수하면서 남부 아프리카에 커다란 줄루왕국을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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