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에서...
(기독교, 종교, 세속이라는) 세 공간의 타자와 개신교의 관계를 계보학적 은유로 표현하면 천주교는 개신교의 ‘부모’이고 한국종교들은 개신교의 ‘이웃’이며 사회주의는 개신교의 ‘자식’이다.
천주교는 ‘종교개혁’의 와중에 개신교라는 자식을 낳은 부모이며, 한국종교들은 개신교가 선교지에서 대면하게 된 낯선 이웃이며, 사회주의는 ‘세속화’의 과정에서 개신교라는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식이다.
보수 개신교의 자리에서 보면 천주교는 ‘타락한’ 부모이고 한국종교들은 ‘오류에 빠진’ 이웃이며 사회주의는 부모를 ‘배반한’ 자식이다.
따라서 천주교는 ‘개혁’의 대상이고 한국종교는 ‘선교’의 대상이며 사회주의는 ‘복귀’의 대상이다.
- 본문 17쪽
개항 이후 내한한 각국의 다양한 교파가 선교 경쟁을 하게 되면서 선교부 간에 상호 마찰과 갈등이 나타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계예양(敎界禮讓, comity)’이라 불리는 지역분할 정책이 등장했는데, 이 협약에 참여한 교파는 장로교와 감리교였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북장로회와 남장로회, 미국 북감리회와 남감리회, 캐나다장로회와 호주장로회 등 총 6개 선교부가 참여하여 한반도를 분할점령하였다. 분할 결과를 거시적으로 보면 중부 지방과 서북 지방 일부는 감리교, 나머지 방대한 지역은 장로교의 ‘영토’가 되었다. (중략)
각 교파 선교부의 선교 활동은 현지인 중심의 교파교회 성립으로 귀결되었다. (중략)
이와 같은 전국 단위의 종교조직 결성은 근대종교의 중요한 특성으로서 근대국가에 의해 종교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건의 하나였다.
- 본문 36-37쪽
개신교는 천주교가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상실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회복의 수사학을 기치로 내걸었다. 특히 교황제도로 대변되는 로마주의, 일곱 성사로 대표되는 의식주의, 그리고 적응주의 선교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천주교가 ‘거짓 기독교’라고 공격하였다.
요컨대 천주교는 기독교 공간에서 척결되어야 할 (개신교 각 교파의) ‘공동의 적’이었다. 이처럼 개신교는 천주교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반천주교적 교파의식 즉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한 배타적 교파주의를 드러냈다.
- 본문 77쪽
언더우드는 신관의 여섯 측면(유일신 신앙의 엄격성, 계시의 명료성, 신의 네 속성[영성, 거룩성, 사랑, 삼위일체]),
존스는 기독교와 한국종교의 다섯 가지 접촉점(하느님, 도덕, 예배, 기도, 영혼불멸),
최병헌은 종교의 세 요소(유신론, 신앙론, 내세론),
박승명은 종교의 열세 가지 권형(종교의 내력, 목적, 주의, 경전, 교리, 교조, 정치 방법, 결과, 정신, 신학론, 죄악론, 인성론, 창조론 등),
박형룡은 종교의 여섯 가지 구성요소(신념, 예배, 도덕, 죄의식과 구원에 대한 희망, 내세관, 실용성),
한치진은 여섯 가지 비교 기준(자아관, 진리관, 삶의 목표, 도덕관, 세상에 대한 태도, 지상천국관)을 제시하였다. (중략)
이처럼 여섯 비교종교론은 타종교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 일정한 편차를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기독교를 종교의 모델로 설정하고 비교작업을 했기 때문에 ‘신학적 비교종교론’ 내지 ‘호교론적 비교종교론’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본문 180-181쪽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세속문화와 세속주의의 급격한 확산과 더불어 개신교는 세속의 타자인 과학, 진화론, 사회주의의 도전에 직면하였다. 과학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비쳤기 때문에 개신교 내부에서 과학 자체를 거부하거나 배척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중략)
진화론에 대해서는 개신교 내부에서 입장이 갈렸다. 성서비평을 수용하는 자유주의 신학 계열은 유신진화론의 입장에서 창조신앙과 진화이론의 접목을 시도한 반면, 성서비평을 거부하는 근본주의 신학 계열은 진화론을 무신론에 근거한 거짓 과학으로 간주하면서 배척하였다.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거시적으로 보면 진보 진영의 인사들은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공통점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접목에 근거한 기독교 사회주의를 모색한 반면, 보수 진영의 인사들은 사회주의를 무신론이나 유물론과 동일시하면서 기독교 반공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자기-타자의 모델을 적용해 보면 개신교 보수 진영은 세속 이데올로기로 비친 과학주의, 진화론, 사회주의를 기독교와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배척하는 이분법적 배타주의에 서 있었던 반면, 개신교 진보 진영은 세속의 타자인 과학, 진화론, 사회주의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포섭하는 위계적 포괄주의 혹은 대등한 차원에서 양자의 통합을 모색하는 혼합적 다원주의 입장에 서 있었다.
- 본문 251-252쪽
•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해방 이전 개신교는 기독교 공간, 종교 공간, 세속 공간의 타자들에 대해 다양한 인식의 논리를 보여주었다. 거시적으로 보면 보수 개신교 진영은 세 공간의 주요 타자인 천주교, 한국종교, 사회주의에 대해 배타주의적 인식을 보였다. 이때 보수 개신교가 활용한 무기는 진짜기독교-가짜기독교, 참종교-거짓종교, 참세계관-거짓세계관의 이분법이고 이를 통해 천주교, 한국종교, 사회주의를 각각의 공간에서 배제하고자 하였다. (중략) 보수 개신교는 자신의 부모인 천주교를 기독교 공간에서 퇴출시키고, 자신의 이웃인 한국종교를 종교 공간에서 정복하고, 자신의 자식인 사회주의를 세속 공간에서 퇴치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기독교 공간의 유일한 기독교, 종교 공간의 유일한 종교, 세속 공간의 유일한 세계관이 되고자 하였다.
- 본문 267-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