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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07. 2018

삼대개벽2 - 민족개벽

다시 읽는 신인철학 - 65

야뢰 이돈화 지음 | https://goo.gl/vKaRhD (이돈화) 


[제1편 우주관 / 제2편 인생관 / 제3편 사회관]

제4편 개벽사상 

        제1장 종교적 사상과 금불문고불문(今不聞古不聞) 

        제2장 개벽 방식과 삼대개벽

             1. 개벽 방식

             2. 삼대개벽1 - 정신개벽 (이상 지난호)


3. 민족개벽


민족이라는 것은 인류주의상으로 보든지 또는 사회주의의 의미로 본다면 근본에서 거론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왜 그러냐 하면 인류주의적 인도상 근거로 찾아본다면 같은 인류는 근본에서 동일한 인격과 동포애를 가진 것인데 거기에 네 민족이니 내 민족이니 하는 차별을 세워 가지고 인류와 인류 사이에 거리와 홍구(鴻溝)를 두는 것은 인도상 원리에 어그러진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사회주의적 견지로 본다고 할지라도 현재 또는 과거에 있어서 인류의 재해는 계급에 있는 것이요 민족에 있는 것이 아닌즉 한 민족일지라도 경제적 계급의 차별이 있고 보면 해악이 있고, 다른 민족일지라도 계급의 차별이 없고 이해가 일치하게 되면 인간의 행복은 이에서 생길 수 있다. 그리하여 추상적 의미로 말한다 할지라도 세계 각민족이 각각 자기의 민족만을 표준하고 타민족은 배제 또는 무시한다 하면 군국주의의 폐해는 그칠 날이 없고 세계의 평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론은 각각 그 방면의 주장으로서 진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수운주의에서 민족개벽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상에 말한 여러 가지의 이론을 진전 또는 실성(實成)케 하는 기초 위에서 민족의 문화와 생활 정도를 향상 발전코저 하는 개벽이니, 즉 민족개벽은 모든 이상주의의 과도기에 있어서 최대의 준비적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 몇 가지 예를 들면

  

첫째, 민족적 이론을 인류주의 및 사회주의적 견지로 보아 인류주의에서 세계일가의 해방을 얻고자 하면 먼저 이론적 보조를 민족에 표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민족은 인류라는 개념 아래서는 하등의 차별이 없으나 민족적 특수사정으로 본다면 문화 정도의 고하, 경제 정도의 우열. 정치 및 논리, 도덕, 습관의 차별이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 


이렇듯 현저한 차이가 있는 각 민족을 인류주의라 하여 덮어놓고 세계일가가 되어 달라든지, 사회주의적 견지에서 덮어놓고 민족적 차별을 없애고자 하면 그는 이상에 있어서는 적합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뿐 아니라, 갑 민족과 을 민족이 대립한 위에서 갑 민족의 고도와 을 민족의 저도를 동일시한다고 하면 그는 물리학상 원칙에 열(熱)이 냉(冷)으로 유입하는 것과 같이 강도가 약도를 침습하여 자연히 불공평한 사실을 표현케 될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각 민족은 그 민족적 단위에 있어서 우선 민족적 평등을 얻고 점차로 민족과 민족의 차별을 융화케 하여 서로[互相]의 행복을 도모케 하는 것이 세계일가주의의 순서라 할 것이다.

  

둘째, 금일의 민족문제란 것은 약소민족을 의미한 민족문제이다. 그리하여 민족주의라는 말도 약소민족을 의미한 민족주의이다. 그런데 약소민족을 의미한 민족주의는 그 성질상에서 민족과 민족 사이의 평등을 요구하는 민족주의요 자기민족만 표준하고 타 민족을 배제하는 민족주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으로 말할지라도 금일의 민족주의는 지난날[昔日]의 민족주의와 훨씬 의미가 달라진 민족주의로 볼 수 있다. 과거 민족주의는 인류 간의 차별과 배제를 의미한 민족주의요 금일의 민족주의는 인류의 평화를 요구하는 민족주의이다. 적어도 인도주의에 근거를 둔 민족주의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 민족주의의 고조는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내용을 척도로 음미해서는 안 된다. 


금일에 있어서 사실로서 본다 할지라도 한 민족의 불평등은 문득 세계평화에 대한 의혹을 가지게 된다. 민족적 평등의 요구는 약소민족 그 자신에만 행복이 되는 것이 아니요, 세계평화상에 또한 행복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세계 대중이 한창 자각하는 도중에 있다 볼 수 있다.

  

셋째는 민족 지위의 향상이다. 이제껏 세계평화를 도모하는 표준에 있어서는 국가가 표준의 단위가 되었고 민족은 표준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금일 이후의 세계평화의 표준은 국가표준에서 민족표준으로 옮겨지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극치(極致)로 말하면 개인적 표준에서 사회의 전적 표준으로 올라 가리라 믿는다. 


국가적 표준에서 민족적 표준으로 옮겨지는 예를 영국에서 들어 보면 영국은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본토, 아일랜드[愛蘭], 인도, 남아프리카 등은 순수한 타민족으로 상합된 것이요, 호주, 캐나다 같은 것도 본래 영국민족이 대부분이라 할지라도 이미 분립된 자치령으로 보아서 이해가 같지 않은 지위에 있는 이분자(異分子)의 규합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서로 다른[不同] 각 민족이 모인 영국을 추가적으로 영국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그를 통제하기도 곤란하려니와 더욱이 국제상 회합 같은 것으로 말하면 어떤 한 민족을 표준하고 그 대표를 선정하는 것은 각 민족의 이해상 소견이 불일치할 뿐 아니라 또한 이치에 맞지 않고 평형을 잃으므로 여기서 각 민족을 대표하는 대표를 각기 선출하게까지 되었다. 장래의 국제상 사회에서 이 사실이 더욱 진보되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세계 약소민족 회합 같은 것은 어느덧 국가를 초월하여 순 민족을 단위로 한 회합으로 볼 수 있는바 민족 지위의 향상을 촉진하는 사실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종교회합, 교육, 경제, 기타 일반문화의 회합은 급속한 진보로 민족을 표준한 회합으로 되었다. 이렇게 국가적 표준이 민족적 표준으로 옮기게 된 까닭은 각 민족은 우선 언어가 통일되고 역사가 동일하고 경제 이해가 동일하고 습관, 도덕이 동일한 점에서 국가보다 일층 표준 단위의 공평을 기하기 쉽고, 그리하여 세계평화상 인도적 표준을 얻기가 쉬우며, 각 민족의 이해를 평균히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민족을 단위로 하고 먼저 민족개벽을 시작함이 사실상 바른 길[正路]이 됨을 알 수 있다. 수운은 이 점에서 먼저 민족개벽을 말하고 다음 사회개벽을 말한 것이다. 수운주의가 조선에 있어서 민족적으로 얼마마한 효과를 주었으며 또한 얼마마한 가치를 실현케 될는지는 여기에 말할 수가 없으므로 다만 문화적 의미에 있어서 두어 말을 적어 보고자 한다.

  

원래 수운의 우리 민족에 대한 소망은 수운 당시의 조선 현상으로는 너무도 절망적이어서 수운 자신이 선언한 바와 같이 군(君), 신(臣), 부(父), 자(子), 부(夫), 부(婦), 종교, 도덕, 정치, 경제 등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운의 눈에 비친 당시 조선이라는 것은 한 거인의 시체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백두산에 머리를 대고 한라산에 다리를 걸친 한 거인의 시체였다. 수운은 이 시체를 대할 때마다 몸서리가 나고 구역이 솟았다. 수운은 스스로 이 죽은 시체에게 권력도 소용없고, 금전, 명예, 지식 모든 것이 필요가 없다, 우선 급한 것은 혼이다, 혼이 있은 뒤의 일이라 생각하였다. 만사가 다 필요가 없고 오직 혼이 생긴 뒤의 일이다. 그리하여 수운은 인내천주의로 조선이라는 큰 시체에 혼을 환기하기로 작정한 것이 수운주의의 시초이다.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으니, 고로 동방을 우선한다[生於東 受於東 故以爲先東方]"이라 하여 동방의 한국인에게 생혼(生魂)을 불러 일으켰다. 과연 수운을 신봉하는 도제(徒弟)들은 언론에서 문자에서 금력과 권력에서는 남과 같지 못하다 할지라도 혼에 있어서는 산 사람이었다. 그들은 날고 뛰고 새로운 희열에 묻히게 되었다. 동학군(東學軍)은 조화를 부린다는 말이 한국(韓國) 천지를 움직인 것은 모두가 이 생혼의 약동에 놀랜 부르짖음이다. 송장의 눈으로 산 사람의 행동을 볼 때에 조화라 이르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아가 조선의 민족성이 무엇으로서 이루어졌는가를 한번 고찰해 본다면 삼국시대는 그만두고라도 고려로부터 이조말까지 약천년을 한정하고 보면, 불교의 교화와 유교의 교화로 이루어진 결정으로 볼 수 있다. 고려에서 이루어 놓은 불교문화, 이조에서 이루어 놓은 유교문화는 우리의 민족성으로 화(化)하였다. 


그러면 유교에서 얻은 민족성은 무엇이냐 하면 첫째, 숭고사상(崇古思想), 둘째, 의타사상(依他思想), 숭문배무사상(崇文排武思想), 숭체계급적사상(崇體階級的思想) 등이다. 만사를 선왕의 도로 표준한 유교는 우리 민족을 장래가 없는 민족이 되게 하였으며, 자력이 없는 민족이 되게 하였다. 


수운은 우선 이러한 근성을 파괴하기 위하여 자기가 각도(覺道)한 날인 경신 사월오일을 선천 후천의 분기점이라 단정하고 "우리 도[吾道]는 후천개벽의 운을 받고난 것"이라 선언하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위에서 말한 모든 근성을 끊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수운의 선천-후천설은 세계적으로 신사회의 출현을 의미한 것이지만 이 말이 조선인의 숭고적 근성을 타파하는 데는 종교적 의미에서 무서운 효력을 얻었다. 그리하여 의타주의를 배척하되 '생어동 수어동 고이위선동방'이라 하여 동방혼(東方魂), 즉 한국혼(韓國魂)을 부식(扶植)함에 노력하였고, 나아가 숭문배무의 타약적(惰弱的) 원기(元氣)를 회복코저 하여 강령법(降靈法)으로 영가무도(咏歌舞蹈)를 실행하되 수운 자신이 우선 목검(木劒)을 들고 검가(劍歌)를 부르며 무도를 하였다. 이것은 순전히 조선인의 위축한 원기 타약한 심성을 구제코저 함이었다. 


다시 숭체계급적 사상을 없애는 데는 교리에서 사인여천이라는 표준으로써 반상의 구별을 타파하여 버렸다. 이것이 당시 하층민중에게 열화같은 환영을 받은 점이다. 


다음 불교에서 생긴 것은 퇴보사상은 출세간사상(出世間思想)이었는데 조선인의 퇴보자한(退步自閑)의 관습, 출세간적(出世間的) 선인행위(仙人行爲)는 모두가 불교에서 온 것이다. 수운은 이것을 체증(切憎)하여 "너희라 무슨 팔자 불로자득(不勞自得)하단 말가. 함지사지 출생들아 보국안민 어찌할고"라고 하여 동적 도덕을 고조하였다. 


이렇듯이 그는 민족개벽에 노력하였다. 그 결과가 동시 권력계급의 증오한 바 되어 필경 단두대 위의 영로(靈露)로 화(化)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를 신봉하는 제자들이 이래 칠십년간 그의 주의에 충실한 공헌을 하여 왔다. 


그러나 민족개벽은 수운주의로 보아서는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수운주의의 목적은 본래 지상천국이다. 그러나 그 이상에 까지 나가려면 세부득이 여러 단계를 밟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민족개벽이며 사회개벽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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