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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30. 2016

어린이도 한울님

-동학 경전에 나타난 어린이 이야기

[* 이 글은 2015년 쓴 글입니다.] 


들어가며 


이제 '어린이날'을 방정환 선생이 앞장서서 만들었다는 것은 거의 주목하는 사람이 없고,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방정환이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종단이었던 '천도교'의 교주 손병희 선생의 사위이자, "천도교청년회"의 핵심 멤버로서 어린이 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게 된 심연에는 동학/천도교의 기본 교리와 사상(시천주, 사인여천)이 자리매김하고 있고, 특히 해월 선생이 '어린이도 한울님'이라고 하시며,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 어린아이를 때리면 그 아이가 죽는다'고 하신 말씀으로부터 비롯됨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의 '어린이의 처지'는 방정환 선생이 처음 어린이 운동을 하던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른 부분도 있고, 어떤 점에서는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부분(아동학대, 과중한 학업부담 등)도 있다. 이 5월에, 다시금 동학/천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어린이 이야기를 돌아보기로 한다. [이 글은 <개벽신문> 43호(2015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수정, 증보한 것으로, 앞으로 몇회에 걸쳐 나눠 소개합니다.]


아리를 때리지 말라, 그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니...(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 중에서)

1. 동학의 스승들의 어린시절 


수운 최제우의 어린시절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은 당신의 나이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열여섯 살 때 아버님을 여의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의 기억에 대한 회고는 없는데, 아버님 돌아가신 후 그때의 자신이 “어린아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했다. 


“세월의 흘러감을 막을 길이 없어 하루아침에 신선되는 슬픔(=부친의 환원)을 당하니, 외로운 나의 한 목숨이 나이 겨우 열여섯에 무엇을 알았으리오. 어린아이(童子)나 다름이 없었더라(수덕문).”


아버님의 학문 세계(수운 최제우 선생의 아버님 근암공 최옥은 영남 일대에서 이름이 높은 학자였다)를 온전히 다 익히지 못하였는데, 자신의 학문을 독려하고 후원하던 (아마도) 거의 유일한 지지자가 사라졌으니,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감당하기에는 자신의 주체적인 역량이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고백일까. 


그러나 또 다른 대목에서는 수운 선생이 어린아이 시절부터 비범했음이 드러난다. 


“그러그러 지내나니 오륙세 되었더라 팔세에 입학해서 허다한 만권시서 무불통지(통하여 알지 못함이 없음) 하여 내니 생이지지(태어나면서부터 앎) 방불하다. 십세를 지내나니 총명은 사광이오 지국(智局, 지혜의 크기)이 비범(보통을 넘음)하고 재기(재주) 과인(過人,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하니….” 


동학의 역사에서는 수운 선생이 어린 시절 아버님(최옥)이 양반과 하인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양반(선비)이라도 상대방에 따라서 태도와 범절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어찌하여 같은 사람인데도 차별이 있습니까?” 대놓고 물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또 동네 아이들이 “네 눈은 역적이 될 눈이다.”라고 놀리자 “나는 역적이 되어도 좋으니, 너희들은 선량한 백성이 되어라.”라고 대범히 대꾸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해월 최시형의 어린시절

한편,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78, 교주재임 1863.8.14-1897.12.24) 선생도 열다섯 살 즈음에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먼 친척 집을 전전하며 머슴살이를 하면서 자랐다. 


부모님을 여의기 전에 해월 선생이 서당을 다녔는가, 즉 문맹을 면하였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경주 최씨 집안에서는 해월 선생이 서당을 다녔다는 말이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아무튼 부모님을 여읜 이후에는 해월은 매우 어렵게 보냈음은 분명하다. 


훗날 해월 선생은 “어렸을 적에 ‘머슴놈 머슴놈’ 하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다.”면서, 사람을 대하기를 평등하게 대하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의암 손병희의 어린시절

동학 천도교의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1862-1922, 교주재임: 1897.12.24-1907.1.18) 선생의 어린 시절 일화는 주로 그의 ‘의로움’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손병희 선생은 어렸을 적(이름 ‘응구’)에 욕심쟁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러나 사실, 손병희 선생은 서자로 태어나 일가친척들로부터 질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자랐고, 거기에 대한 반항심이 ‘욕심 차리기’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러한 반항심은 결국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다. 


서자와 적자를 차별하는 집안 풍속을 혁파하지 않으면 결코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홍길동? 손길동?), 결국 아버님이 환원하시는 자리에서조차 그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 굳센 품성이 동학을 만나 다듬어진 후에는 바로 ‘의(義)’로서 빛나게 되는 것이다. 


춘암 박인호의 어린시절

동학 천도교으 4세 대도주 춘암 박인호 선생(春菴 朴寅浩, 교주재임 1907.1.18-1940)은 어려서부터 아버님의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특히 훗날 춘암 선생이 가장 강조한 ‘정직’한 품성은 춘암 선생 당신이 어려서 아버님으로부터 가르침 받은 덕목이기도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린아이’나 다름없던 수운 선생은 자신이 예감한 대로 부모님 사후에 집안의 멸시나 사업 실패 등으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성장했다. 


물론 그러한 결과는 본인이 자초한 면도 없지 않았다(求道行脚). 그러나 그러한 고초가 있었기에 마침내 동학을 창도할 수 있었고, 당신이 어린 아이 시절 아버님(근암 최옥)으로부터 가르침 받은 대로, 동학의 가르침으로 집안의 자손들을 엄격히 훈육하였다. 


“왈이자질 아이들아 경수차서 하여스라. 너희도 이 세상에 오행으로 생겨나서 삼강을 법을 삼고  오륜에 참예해서 이십 살 자라나니 성문고족 이내 집안 병수 없는 너의 거동 보고 나니 경사로다(교훈가).”


2. 아이를 때리지 말라, 그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니


동학의 경전과 초기 역사에는 어린이와 관련되는 대목이 많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해월 최시형 선생의 말씀이다.


“도가(道家=동학을 신앙하는 집안)의 부인은 경솔히 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하느니라. 도인 집 부인이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경솔히 아이를 때리면, 그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니 일체 아이를 때리지 말라.(대인접물)”


요즘, 어린이집의 아동 학대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해월 선생의 이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이 말씀의 맥락을 좀더 실감나게 이해하자면,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은 ‘아이들’이 너무도 흔하고,--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아이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래서 오히려--그만큼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던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전통적인 훈육법은 우리가 민화(民畵)에서도 보듯이 ‘회초리’로 대변되는, ‘때려서라도 가르치는 것’을 ‘좋게 보는 것’이었다. 해월 선생의 ‘경솔하게 아이를 때리지 말라(輕勿打兒)’는 설법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해월 선생은 간절하고 간곡하게 어린이 사랑할 것을 당부하였다. 


“부모님께 효를 극진히 하오며, (중략)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이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오니, 천리를 모르고 일행 아이를 치면 그 아이가 곧 죽을 것이니 부디 집안에 큰 소리를 내지 말고 화순하기만 힘쓰옵소서. 이같이 한울님을 공경하고 효성하오면 한울님이 좋아하시고 복을 주시나니, 부디 한울님을 극진히 공경하옵소서(내수도문).”


훗날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 1899-1931, 그는 천도교 교주 손병희 선생의 사위이자, 천도교청년회의 핵심 간부 중 한사람이었다.) 선생이 앞장선 ‘근대적 어린이운동’의 근본정신이 바로 해월 선생의 이 어린이 존중 정신에서 직접 연원한다는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한편, 여기서 다시 한 번 짚고 갈 문제가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중고생)을 가르칠 때에 ‘매’를 드는 것은 유효한 수단일까, 구시대의 유습일 뿐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들어 ‘어떤 경우든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목소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의견이 완전히 통일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지금의 3, 40대가 학교에 다닐 때 겪었던 구타나 오늘날에도 종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대학교 (동아리) 신입생의 집단 구타나 일부 신입생 길들이기용 학대행위는 결코 전통이 아니라 단지 일제 강점 이즈음에 생겨난 일제 잔재 폐풍(弊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자지교(易子之敎, 친구나 선후배끼리 서로의 자식을 바꾸어 가르침=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아니함)이라는 맹자의 가르침도 결국, 부자지간에 선을 가르치다가 성을 내거나 매를 들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유교적 사회였다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에도 원론적으로 때려서 가르치는 것은(학업이든 일상생활에서든) 정상적인, 더욱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3. 동학 경전에서 ‘어린이-아이’는 한울님의 표상

동학 경전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대체로 한울님의 본성을 그대로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우선 동학의 교리, 사상, 철학, 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21자 주문, 그중에서도 동학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하는 모심(侍)의 해설에서 나타난다. 즉 해월 선생은 모실 시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진다.  


“여러분은 모실 시 자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사람이 포태의 때에 이때를 곧 모실 시 자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으냐,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 처음으로 모실 시 자의 뜻이 생기는 것일까, 또 대신사 포덕 강령의 날에 모실 시 자의 뜻이 생겼을까, 여러분은 이 뜻을 연구하여 보라. (중략) 경(=동경대전, 논학문)에 말씀하시기를 ‘모신다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內有神靈) 밖에 기화가 있어(外有氣化)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一世之人 各知不移)이라’ 하셨으니, 안에 신령이 있다는 것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기의 마음이요, 밖에 기화가 있다는 것은 포태할 때에 이치와 기운이 바탕에 응하여 체를 이룬 것이니라(영부주문).”


한마디로 어린아이의 마음은 바로 한울님의 마음 그 자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언명이 가능해진다. 


“아이가 난 그 처음에 누가 성인이 아니며, 누가 대인이 아니리오마는 뭇 사람은 어리석고 어리석어 마음을 잊고 잃음이 많으나, 성인은 밝고 밝아 한울님 성품을 잃지 아니하고, 언제나 성품을 거느리며 한울님과 더불어 덕을 같이 하고, 한울님과 더불어 같이 크고, 한울님과 더불어 같이 화하나니, 천지가 하는 바를 성인도 할 수 있느니라.(성인의 덕화)”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과제로 다가온다.


해월 선생은 대부분의(뭇) 사람은 어리석게도 성인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기에 지혜로부터 멀어졌고, 성인은 그 본성을 잃지 않았기에 성인으로 성장하였다고 말한다. 오늘 우리의 교육은 ‘인성교육’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로지 ‘사회(=기업)’가 필요로 하는 ‘인재(=노동자)’ 양산에 편향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두 명의 최정예 특수요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수십 단계의 선발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인 경쟁을 통해 100⇒50⇒30⇒10⇒5⇒3의 무한경쟁과 배제(퇴출)를 실행해 나가듯이 초⇒중⇒고⇒대⇒입사(취업)의 과정이 꼭 그러한 절차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의 현실은 그 과정에서 도태(?)된, 97~8%의 사람들이 루저(loser)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을 일찍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두고두고 생각할 문제이다.


4. 동학의 어린아이 수양론-최고의 자기계발서

수운 최제우 선생이 하신 다음 말씀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교육 이론의 전거로 삼을 만하다.


“나의 심주(心柱; 무궁이라는 관념을 공간상으로 생각할 때는 양적으로 표시되고 시간상으로 생각할 때는 질적으로 표시되는 것이다. 전자는 차별상의 총체를 포괄할 때의 생각이요 후자는 보편상의 내적 연속을 생각함이니 이것이 우주라는 개념으로 성립하게 된다. )를 굳건히 해야 이에 도의 맛을 알고, 한 생각이 이에 있어야 만사가 뜻과 같이 되리라. 흐린 기운을 쓸어버리고(消除濁氣) 맑은 기운을 어린 아기 기르듯 하라(兒養淑氣). 한갓 마음이 지극할 뿐 아니라, 오직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있느니라(탄도유심급).”


이 말씀은 동학의 수양론의 핵심이라고 이야기되는 수심정기(守心正氣)로써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이며, 바르게 하고자 하는 기운이 어떤 기운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해월 선생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부연하여 그 뜻을 분명히 하였다.


“수심정기 하는 법은 효제온공(孝悌溫恭)이니 이 마음 보호하기를 갓난아이 보호하는 것같이 하며, 늘 조용하여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늘 깨어 혼미한 마음이 없게 함이 옳으니라(수심정기).”


마침내 해월 선생은 어린 아이의 말 속에서 한울님의 말씀을 찾아 듣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은 경로가 예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어른이 아니며 누가 나에게 스승이 아니리오. 나는 비록 부인과 어린 아이의 말이라도 배울 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 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대인접물).”


동학(천도교)의 수련을 조금이라도 해 본 분이라면, 이러한 말씀들이 그저 듣기 그럴싸한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실제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경이적인 경험들임을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음의 말씀은 현대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자기계발’의 핵심을 꿰뚫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사람을 대할 때에 언제나 어린아이 같이(如少兒樣) 하라.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가히 사람을 융화하고 덕을 이루는 데 들어가리라.”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또한 자기계발의 최종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그것을 좋게, 보아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 성공이고, 그것을 잘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자기계발이라고 한다면, 여소아양(如少兒樣)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기술’이 된다. 다만 이것은 ‘마치’ 그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 관건이다.


한편, 때 묻은 이 세상의 현실에서, 어린아이를 곱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오늘의 세태라고 한다면, 그런 아이들이 맘껏 뛰놀고 노래하고 춤추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라는 점도 또한 분명해진다. ‘세태’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 세태의 주체는 ‘사람’이다. 따라서 세태를 바로 잡는 것도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다. 얼핏 각박한 거래 원칙이나 손익 관계를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악용/남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학의 이천식천, 향아설위의 진리를 알고 보면, 그 말은 오히려, 덕을 베풀면 반드시 그 갚음이 돌아온다는 뜻이라고 믿고 행하는 것이 옳다. 덕을 베푸는 사람이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로되 “죄는 죄대로 가고, 덕은 베푼 대로 간다.”고 하신 우리 어머니 대인당(大仁堂) 하옥엽(河玉葉) 님의 말씀이, 바로 한울님 말씀이요, 진리이다.


5. 어린아이의 어림이여, 불택선악이로다!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은 본명이 제선(濟宣)이었으나 동학 창도에 임박하여 제우(濟愚)라고 이름을 고쳤다. ‘어리석음에서 건지겠다’는 뜻이다. 누구의 어리석음일까? 동학 창도 이후의 결과를 놓고 보면 ‘세상사람들의 어리석음’이라 하겠으나, 도통을 하기 전이라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자기 자신(=수운)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겠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동학의 경전이나 교사에 등장하는 ‘어린아이’가 모두 지혜롭고, 덕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한울님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한울님 본성이 ‘불택선악(不擇善惡)’하시는 무한무구(無限無垢)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해월 선생이 마루에 앉아 있는데, 한 아이(그 아이가 해월 선생의 어린 아들-덕기-이었다는 설도 있다)가 땅을 함부로 디디며 지나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해월 선생은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우주에 가득 찬 것은 도시 혼원한 한 기운이니, 한 걸음이라도 감히 경솔하게 걷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한가히 있을 때에 한 어린이가 나막신을 신고 빠르게 앞을 지나니, 그 소리 땅을 울리어 놀라서 일어나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 어린이의 나막신 소리에 내 가슴이 아프더라’고 말했었노라(성경신).” 


이 말씀은 물물천사사천이나 경물사상을 이야기하는 전거(典據)로 인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나, 아무튼 여기서 ‘어린 아이’는 ‘어머니(한울님)의 살(肉)’인 땅을 함부로 디디며 지나갔고, 그것이 한울님(=해월)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는 말씀이다. 여기에 보이는 어린이의 모습 역시 우리가 가장 흔히 보는 꾸러기스러운, 그렇기 때문에 가장 ‘어린이다운’ 어린이의 모습이다. 이 또한 한울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한울님 관점에서 보면,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미워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둘 모두가 ‘물정심(物情心)’에 불과하다. 


“나에게 두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하는 마음이라 이르고, 하나는 미워하는 마음이라 이르느니라. 사랑하고 미워하는 두 마음이 마음을 가리운 것이 티끌과 같으니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 모든 물건이 마음에 들면 스스로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생기나니,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물건의 반동심이라. 비유하면 젖먹이가 눈으로 물건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어 기뻐하며 웃다가 물건을 빼앗으면 성내어 싫어하나니, 이것을 물정심이라 이르느니라. 물정심은 곧 제2 천심이니 억만 사람이 다 여기에 얽매어 벗어나지 못하느니라.(무체법경)” 


물정심은 ‘제2 천심’이긴 하지만, 본래의 한울마음은 아니다.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기 마련이니, 물정심인 ‘어린아이의 마음’은 물론이려니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기’의 마음과 같아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진리의 행동’으로부터 벗어나는 종교적 독선이 아니겠는가? 

길은 있다. 어려운 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어려운 길이기에 또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명덕명도(明德命道) 네 글자는 한울과 사람이 형상을 이룬 근본이요, 성경외심( 誠敬畏心) 네 글자는 물체(몸)를 이룬 뒤에 다시 갓난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는 노정 절차니, 자세히 팔절을 살피는 것이 어떠할꼬(수도법).” 


본래 ‘명덕명도성경외심’은 수운 선생이 ‘전팔절, 후팔절’이라는 글을 통해서 가르친 바, 동학의 공부 방법이자 주제어(불교식으로 하면 話頭)이다. 그것이 ‘다시 갓난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는 절차’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을 따라 공부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삶)의 결심과 실행(人事)에 달린 일이고, 그 성패는 하늘에 달린 일이다.


6. 어린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기를 것인가


한국 사회의 최대 난제가 교육(敎育) 문제라고 한다. 최근의 ‘어린이집 아동 학대’ 문제도 결국은 넓은 의미의 교육(보육)과 관련된 시스템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아가 본래의 교육이란 ‘학교교육’만의 문제도 아니고, 입시교육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현대 사회가 점점 발달하고, 교육 여건이 고도로 발달할수록, 현행의 제도교육의 한계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기존의 주류 교육 체계를 자발적으로 이탈하는 ‘대안교육’의 흐름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수운 선생이 제시하는 동학 공부의 성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름답도다, 우리 도의 행함이여. 붓을 들어 글을 쓰니 사람들이 왕희지의 필적인가 의심하고, 입을 열어 운을 부르니 누가 나무꾼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겠는가. 허물을 뉘우친 사람은 욕심이 석숭의 재물도 탐내지 아니하고, 정성이 지극한 아이는 다시 사광의 총명도 부러워하지 않더라. 용모가 환태된 것은 마치 선풍이 불어온 듯하고, 오랜 병이 저절로 낫는 것은 편작의 어진 이름도 잊어버릴 만하더라(수덕문).” 


왕희지만큼 글씨를 잘 쓰고, 두보나 이태백만큼 시를 잘 지으며, 도덕적으로 뛰어난 품성을 갖추고, 어린아이라도 뛰어난 지혜를 갖추게 되고, 육체적으로 또한 뛰어난 체력과 체질과 체형을 갖추게 되어 무병장수하게 되니 그야말로 심신겸비한 전인교육의 이상형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오늘날은 자녀 교육의 지상 목표인 ‘명문대 입학’의 필수조건이 “조부모의 재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라고 한다든가? 동학 시대에 최소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까지는 ‘부인’의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한울을 공경하는 것과 제사를 받드는 것과 손님을 접대하는 것과 옷을 만드는 것과 음식을 만드는 것과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과 베를 짜는 것이 다 반드시 부인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부화부순).” 


여기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경위야 어쨌든,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으로서 중요성과 권한을 가진 존재임을 명시하는 데 이 대목의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해월 선생은 아이 교육을 위해서는 ‘부인 수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오늘날, 자녀들에게 공부하기를 강요하지 말고, 부모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 책읽는 부모가 되는 것이 최선의 자녀교육법이라는 말은 그래서 만고불변의 진리라 할 만하다.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음식을 만들고, 의복을 짓고, 아이를 기르고, 손님을 대접하고, 제사를 받드는 일을 부인이 감당하니, 주부가 만일 정성 없이 음식을 갖추면 한울이 반드시 감응치 아니하는 것이요, 정성 없이 아이를 기르면 아이가 반드시 충실치 못하나니, 부인 수도는 우리 도의 근본이니라(부인수도).”


7. 2015년의 아이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해월 선생이 ‘집안 일’을 부인의 의무로서 부과한 것이 아니라, 한 집안을 살리고(그 안에는 가장=남편도 포함된다), 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적어도 최선의 길이라고 가르치고 계신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살림’꾼을 지칭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후천개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여성’은 생물학적인 성(性)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고, ‘부인’의 의미도 ‘남편의 아내’만이 아니라, ‘살림’을 담당한 사람들은 모두가 ‘부인’이요 ‘어머니’라는 말이다.

2015년 4월의 어머니(=아버지, 형님/오빠, 누나/언니, 동생, 삼촌,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지금 광화문과 팽목항 사이에서 그 최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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