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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02.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16)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4. 진리의 표준과 자아의 인식


자아의 존재가 진리의 표준이 된다 하면 자아의 존재를 인식하는 인식 그 자체도 따라서 진리의 표준이 된다고 단안하지 아니하지 못할 것이다. 


원래 우리가 '자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어떤 타인이 '자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가 자기의 '자아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말인즉 인식과 자아의 존재는 필경 동일한 가치가 되고 말 것이다. 인식함에 의하여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므로 자아의 존재는 곧 인식 그 자체가 되지 아니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아의 존재'는 인식을 떠나 따로 독립한 것이 아니요 인식 자체가 곧 자아의 존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인식된 개념 전체가 진리의 표준이 된다는 말로 듣기 쉬우나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진리의 표준이란 것은 개념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요 개념의 원인되는 직각적(直覺的) 인식을 가리켜 하는 말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리를 직각하라!

원래 개념이라는 것은 잡다한 단일관념을 구성하여 얻은 것인고로 개념 그 자체는 우리가 참[眞]인지 거짓[僞]인지를 판단하기 심히 어려운 까닭에 그것은 도저히 진리의 표준으로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사탕이라고 하는 개념은 희다 달다 바삭바삭하다 하는 세 가지 단일개념이 모여 구성된 것이며 그 세 가지 단일개념은 각각의 신체 기관에 의하여 얻은 것이다. 예를 들면 흰 것은 시각으로, 단 것은 미각으로, 바삭바삭한 것은 촉각으로 얻은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기관으로 얻은 단일관념이 우리의 뇌속에 들어가서는 이것으로 사탕이라는 개념을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형성된 사탕의 개념과 객관적으로 존재한 사탕 그 자체가 전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개념으로 얻은 사탕 가운데는 주관의 힘이 착색(着色) 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객관적 사탕과 일치된 동일물이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념기자는 진리의 표준이 되지 못한다. 


개념 그 자체로 진리의 표준이 되지 못한다 하여 우리는 바로 인식 그 자체를 부인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그렇지 않으니 인식은 개념을 구성하게 하는 원인적 충동(衝動)이므로 인식의 주체가 되는 것은 개념이 아니요 직각(直覺)이다. 


즉 인식은 직각을 근인(根因)으로 하고 나아가 모든 개념을 구성하여 놓은 것이므로 직각은 곧 주관의 비조(鼻祖)이며 인식의 발원(發源)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직각은 어떤 단일관념을 집합하여 얻은 것이 아니요 인간성의 본래의 발동이므로 우리는 인식의 원체(元體)가 되는 직각으로써 진리의 표준을 삼는 것이다. 


즉 자아의 직각이 곧 진리의 표준이 된다는 말이다.



5. 직각과 무궁의 관념


이상에 말한 바와 같이 진리의 표준이 인식의 원천인 직각에 있다 하면 우리의 인식 가운데서 가장 명확한 직각의 관념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잡아낼 필요가 있다. 


원래 직각이라는 것은 개념과 같이 잡다의 단일관념으로서 구성된 것이 아니요 인간성의 혼돈(混沌)한 전적 충동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직각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고자 하면 먼저 개념으로 구성되지 아니한 어떤 전적 관념(全的觀念)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념을 가장 명백히 표시한 것은 이를 시간 공간에서 볼 수 있다. 즉 무궁의 관념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시간 공간상으로 본 무궁의 관념이 어찌하여 직각의 본능이냐 하면 그는 개념으로써 얻은 것이 아니요 인간성의 전적 충동으로 직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간과 시간은 어떤 단일관념의 집합이 아니다. 왜 그러냐하면 공간과 시간의 무궁은 무한한 연속체인 고로 그것은 무한으로 유일한 절대체(絶對體)요 어떤 한계가 있는 단일관념을 집합하여 구성한 연장(延長)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념 중에 무궁의 관념과 같은 것은 인간성의 본유(本有)한 충동이며 본래부터 소유(所有)한 직각의 면목(面目)이다.


(다음 "6. 무궁과 한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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