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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14. 2018

지상천국과 이상(理想)

다시 읽는 신인철학 - 67

야뢰 이돈화 지음 | https://goo.gl/vKaRhD (이돈화) 


[제1편 우주관 / 제2편 인생관 / 제3편 사회관]

제4편 개벽사상 

       제1장 종교적 사상과 금불문고불문(今不聞古不聞)   

        제2장 개벽 방식과 삼대개벽

              1. 개벽 방식

              2. 삼대개벽1 - 정신개벽 

              3. 삼대개벽2 - 민족개벽 

              4. 삼대개벽3 - 사회개벽 (이상 지난호)


5. 지상천국과 이상(理想)


만화귀일의 수운주의 


세상에서 수운주의에 대하여 이를 종교적이라 보는 것은 물론이요, 그것을 혹은 민족주의로 취급하는 이도 있고, 사회주의적 이상과 동일하다 생각하는 이도 있고, 또는 내용상 성질에서 자유주의 또는 이상주의로 관찰하는 이도 있다. 세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운학도(水雲學徒)까지도 여러 가지의 관념을 가지고 자유로 해석하는 폐가 있다. 


그러나 수운주의는 오직 수운주의일 뿐이요 어느 한쪽에 편협히 치우쳐 있는 주의는 아니다. 수운이 직접으로 "오도(吾道)는 금불문(今不聞) 고불문지법(古不聞之法)이요 금불비(今不比) 고불비지사(古不比之事)"라고 한 말과 같이 수운주의는 결코 과거의 종교 도덕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고 또는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특정한 어떤 사상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수운주의는 이상에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인간격 중심에 모든 사상 모든 주의를 귀납하여 그를 융화하며, 그를 통일케 하여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주의이다. 마치 비유하여 말하면 수운주의는 인간의 생명과 같아서 이목구비(耳目口鼻) 등 오관의 작용과 사지백체(四肢百體)의 운동을 조절하며 또는 통일하는 것과 같은 인간격 중심주의이다. 그러므로 수운주의는 부분이 아니오요 전체이며, 기관이 아니요 생명이다. 수운주의는 이 점에서 만화귀일(萬化歸一)을 도모하는 주의이다.

  

수운은 일찍이 창조시대에 있어 교도(敎徒)에게 명첩(名帖)이라 하여 간단한 목적 표시를 준 일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첫머리에 "용담연원(龍潭淵源) 검악포덕(劒岳布德)"의 여덟 자를 썼으니 용담은 수운을 말하는 것이요, 검악은 해월을 말하며 끝에 대자특서(大字特書)로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이라 썼으니 보국은 민족개벽을 의미한 것이요, 안민은 사회개벽을 의미하며, 포덕천하 광제창생은 지상천국을 의미한 것이다. 


그리하여 보국안민은 현실문제에 속한 것이요 지상천국은 이상에 속한 것이므로 이를 합하여 보면 현실이상주의(現實理想主義)라 볼 수 있고 삼단사상(三段思想)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삼단을 각각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는 점에서 세상이 수운주의에 대하여 이렇게도 평하고 저렇게도 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실 수운주의의 목적은 민족주의도 아니요 사회주의 이상도 아니다. 오직 지상천국에 있다. 지상천국이라는 영원한 이상을 달하기 위하여 과정과 단계에서 민족개벽, 사회개벽을 운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수운주의의 개벽운동과 타 주의의 현실운동 관계를 과정으로서 밝힌다면 현재의 모든 특수한 주의는 그 각계단에서 계단적 목적을 실현코자 함에 있으므로 그들은 그 입각한 단계를 기초로 하고 오직 종(從)으로만 움직이는 운동임에 반하여, 수운주의 운동은 어떤 특수 단계에 입각하여 그 특수단계의 목적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요 각각의 특수단계를 과정으로 하고 그를 포용하며 강화하며 통일하면서 무궁히 횡(橫)으로 동하는 운동이다. 


이를 한 비유로서 말하면 가령 어떠한 곳에서 서울을 목적하고 가는 한떼의 무리가 있다 가정하자. 이 무리는 다만 서울을 목적하고 가는 무리이므로 중간에서 어떠한 적은 성공으로서 자족할 적은 욕망을 가진 무리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목적지를 향하고 가는 도중에 어떤 험한 산을 넘지 않으면 안 되고 또는 길을 개척지 않으면 안 될 난관에 봉착하였다 하자. 그런 경우에 이 무리들은 목적지에 속히 도달할 수단으로 산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그를 개척하여 일단 성공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이상은 거기에 만족치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는 도중에는 산뿐 아니라 강도 있을 것이며 깊은 계곡[幽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강에 다리를 놓고 유협에 길을 닦는 것이 자기의 목적은 아니지만 목적을 달하는 수단으로 무엇보다도 그것을 먼저 착수치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과정에서 봉착하는 모든 단계적 목적에 성공하면서 또는 그 성공의 희열과 유쾌를 느끼면서 우리는 ‘성공자거(成功者居)’의 태도로 서울을 향하여 영원한 창조의 걸음을 옳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수운주의 운동을 표시하는 데 간단명료한 말이다. 무리[徒]라는 것은 수운학도를 말하고, 서울은 지상천국에 비유한 말이요, 산과 강과 계곡은 과정에서 봉착하는 각단계를 이름이니 이만하면 수운주의와 타주의의 운동 관계가 어떠한가를 거의 알 수 있다. 


여기서 최종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지상천국의 내용이니 이 문제에 이르러서는 현재 인간의 이상으로도 답변할 수 없는 동시에 또는 장래 인간의 이상으로도 답변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 그러냐 하면 지상천국은 영원의 이상이므로 우리가 답변한 지상천국은 발달된 장래 인간의 이상에 맞지 않을 것이요, 장래 인간이 답변한 지상천국은 또한 그보다도 발달된 장래인간의 이상에 맞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때문이다. 


요컨대 지상천국은 어떤 특정한 형식과 조건으로 답변할 것이 아니요 인간격의 무궁한 이상을 표준한 것이므로 지상천국은 인간격이 발달되면 발달됨에 따라 또한 그 내용이 무궁히 진전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만 추상적이나마 튼튼한 대답 하나는 지상천국이라 함은 그 시대 시대에서 각각 보다 좋은 신사회를 의미한 것으로 알아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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