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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14. 2018

흙 바지를 사랑하는 기쁜 우리

방정환한울학교 이야기 (7)

[개벽신문 제75호, 2018년 6월호] 한울 소리

최 경 미 | 방정환텃밭책놀이터 대표



이것저것 다 접어 두고 한바탕 흙구덩이를 파며, 물을 길어 넣으며, 지치도록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바지에 흙이 묻었다고 우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흙 묻히면 안된다고 했다면서….
사소한 일조차도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흙 바가지를 들고 맘껏 놀아라, 할 수 있을까요?

비좁은 생각 속에다 무궁한 아이들을 꽁꽁 가두어 두고 부모들은 날이 어둡도록 열심히 또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법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살리고 지탱하는 것이 하늘이고, 땅이고, 바람이 주는 감동인 것을 잊어버린 걸까요?

하늘아이, 땅아이, 바람아이, 물아이, 이슬아이, 풀아이…

스스로 얼음을 깨고 봄이 되는 어린 생명이시어, 흙 바가지 물바가지 메고서 둥개둥개~
한바탕 신명나게 놀진저!  

[2016 방정환이야기마당1 ‘모시는 글’(임우남 글)에서 부분 발췌]



2014년 한울연대는 그동안 해오던 환경대응운동을 교육운동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해서 ‘방정환 한울학교’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 해 9월에 그 첫 번째로 방정환 한울어린이집을 만들었고, 2016년에는 서울과 대구에서 방정환이야기마당을 열어서 우리가 하는 활동을 알리는 일을 했다. 위 글은 그때 당시 한울연대 상임대표로 있던 임우남님이 ‘ 모시는 글’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다시 읽어보니 방정환 한울학교를 시작하려고 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4년차 사업을 이어오는 가운데 2017년에는 방정환 텃밭책놀이터가 두 번째 배움터로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첫 마음을 되새겨 보게 된다.


토요일마다 방정환 텃밭책놀이터를 찾아오는 ‘들꽃팀’ 아이들이 있다. 가족 단위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아빠들의 참여도가 높다. 놀 줄 모르는 아빠가 놀 줄 아는 아이들과 놀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날씨가 무덥던 날, 텃밭에 물을 주고 아이들은 곧잘 개울로 몰려갔다. 개울에는 볼거리 놀 거리가 아주 많다. 다슬기, 작은 물고기들, 개구리, 도룡뇽 알, 알을 품은 가재 등은 아이들과 어른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날도 아이들은 개울로 내려가 물속에 발을 담그고 첨벙대며, 옷을 다 적시고 놀다가 개울가에서 산딸기와 오디도 따먹으며 기분 좋게 놀았다. 그러다 다시 텃밭으로 나온 아이들, 아직 물놀이의 흥이 다 가시기 전이다,이 흙집(방정환한울어린이집 아이들이 흙집 짓기를 특별활동으로 하고 있다.)을 짓고 있는 바닥에 물을 살짝 부어 주었다. 그 바닥은 진흙이 깔려 있어서 질퍽거리며 진흙탕놀이를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발을 구르며 물과 흙을 더 찰지게 만들어 놓더니 진흙탕에 아예 철퍼덕 주저앉는다. 한 아이는 배를 깔고 엎드려 발을 구르며 흙탕물을 튀겼다. 같이 들어간 오빠와 어린 동생도 주변에 있던 물통에 진흙을 담기도 하면서 흙 놀이 세계 속으로 쏘옥 빠져들고 있었다. 지켜보던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감동스러워 환호성을 질러댔다.



와~ 저렇게 자랐으면 좋겠어! 애들아 흙 바지가 너무 멋지다야.



놀 줄 아는 아이들을 보며 흥분해서 소리 질러대는 나와는 달리 부모는 또 어떨까 싶어서 슬쩍 부모들을 살펴보았다. 헌데 엄마가 한 술 더 뜬다.



애들아 진흙을 얼굴에 바르면 진흙 팩이 돼~, 피부도 고와져~히히.



아이들은 얼굴에 인디언처럼 진흙으로 그림을 그렸다.



진흙 맛은 어때? 무슨 맛이야?



막내 동생은 손에 잔뜩 묻은 흙을 입으로 가져가서 맛을 본다. 어느 새 엄마들도 신발을 벗고 진흙탕에 합류해서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흙의 보드라운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그날 진흙탕 속에서 우리는 ‘기쁜 우리’가 되었다. 방정환 선생님이 말씀하신 기쁜 어린이로 자라게 해야 한다는 말씀대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기쁜 우리가 되어 뒤엉켜 놀 수 있었다. 뭉클한 순간이었다. 이 기쁜 순간이 살아가는 동안 문득문득 떠올라서 기쁜 마음이 되살아나기를 소망해 본다.



물과 바람, 흙 등 자연환경에 낯선 아이들과 부모들이 처음부터 씩씩하게 접근하지는 못한다. 다칠까봐 걱정이 앞서고 더럽다는 생각에 주저한다. 올해 학기 초에 도룡뇽 알이 보이던 논에 맨발로 들어가 보자고 했더니 아빠도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아이도 다리를 들고서 논바닥에 발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 아이가 이제 놀 줄 아는 언니를 따라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옷이 젖는 게 싫어서 개울물을 첨벙거리지도 못하던 아이가 손으로 물을 튀기며 먼저 물싸움을 거는 아이로 변했다. ‘나는 물에 젖는 게 싫어!’라고 당차게 거부하던 아이도 결국 물놀이에 흠뻑 빠져들어서 옷을 다 적시며 놀고 있다.


작년 이맘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을 하던 ‘탐험하는 바람’ 아이들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흙마당으로 나가더니 그곳에 고인 물 웅덩이에 털썩 주저앉아 수건돌리기처럼 신발 돌리기 놀이를 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가끔 그 기억이 물기 빠진 마음이 될 때면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가 된다. 흙 바가지 물바가지를 들고 맘껏 놀 수 있는 아이들로, 그것을 넉넉히 마련해줄 수 있는 어른들로 서로 배우기를 소망하며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육운동은 보란 듯이 흔적을 남기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참 어렵다. 긴 시간을 두고 지켜 봐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방정환 선생님의 그 많은 활동이 당시에는 잔물결에 불과했을 테고 스스로도 잔물결이고자 했기에 별칭도 그렇게 지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다시 후학들에 의해 저마다의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는 작은 실천이 또 다른 실천을 일으키는 잔물결이 된다면 해 볼 만한 일이라고 다져보며 거저 뚜벅뚜벅 걸어가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수많은 파도들이 밀려오고 파문이 일어나는 일들을 거듭하기에 위와 같은 ‘기쁜 우리’의 기억들이 필요하다. 내일 또 아이들과 흙 바지를 만들 일을 상상해 본다.



난 옷 젖는 거 싫어!



당당하게 맞서는 아이들을 기꺼이 만날 용기를 챙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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