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공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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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도교회월보를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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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동학을 천도교(종교)로 전환하였기에
이 시대, '천도교'의 쇠운을 맞이한 것인가
[즉 본래, 무극대도 또는 학이었던 것을
서구적인 제도종교(RELIGION로 틀짓고자 한 시도 때문에
오늘의 결과-쇠운-를 맞이했는가]
둘째, 천도교가 종교성을 충분히 성취해 내지 못하였기에
오늘날의 쇠운을 맞이한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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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현장(교단 내)에도
전자의 입장과 후자의 입장은 묘한 의견 대립 상태에 있다.
천도교의 정책 담당자들도
종교(이웃)의 자리에서는 종교의 일원으로 자처하고
그 밖의 자리에서는 천도교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그러므로 천도교는 "뛰어난 종교"라는 논리를 견지한다.
[cf.무극대도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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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천도교가 '종교'임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동학에 본래 '천도교'가 내재한다(도수천도 학즉동학)면서
그렇기에, '천도교'는 의암(시대)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천도교'였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이 많다.
한편에서는 동학은 '자임한 명칭'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서학'이라고 오해하므로
굳이 말한다면, '동학'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한 과정에서 나온 방편적 이름이라는 말도
그래서 자주 이야기된다.
2.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던 당시 (1905),
'종교'는 미래사회를 선취한 필연적인 형식으로 보였고
또 동학-진보회로 이어져 오는 동안 '비합법/반합법' 상태에서
핍박받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종교'로 공표/공인 받는 것인 현실적인 과제였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보다
[종교(인)의 실제 사회적/개인적 기여 여부(비중)에 관계없이]
종교는 "정의롭지도, 청명하지도 못한" 전근대적인
(비과학적인) 집단으로 각인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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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1905년 당시에는 동학의 '천도교성'을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공인 받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면
오늘날은 그 반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3.
이 문제는 오늘날 '동학(천도교)'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계되기에 고민거리가 된다.
대부분의 '동학인'들에게는 종교로서의 천도교는
동학의 변형태/전체의 일부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천도교에 포함되지 않는 동학의 본질이 있다고 보고
그것은 각자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해석하고,
적용(실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여, '동학'을 내세운 사회실천운동
(민주운동/평등운동/통일운동/환경운동)이 본질이고
동학-천도교라는 이름은 껍질(이름)에 불과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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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도교인들은, 오늘의 천도교로 제도화된
여러 가지 실천방법(ex-오관)의 중요성..
나아가, 지난 114년 동안 쌓아온 천도교의
전통(신문화운동/통일은동? 등)을 인정하고
나아가, 존중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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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현재 천도교에서 제도화하고 있는 수련 방법(주문수련)은
간과하거나 건너뛸 수 없을뿐더러,
본질적이며 최우선적인 동학(천도교) 수행법이라고 본다.
따라서, 동학의 취지(교리)와 역사에(만) 동의하여
동학의 이름으로 사회적 실천을 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하지도, 지지하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예 관심도 없고, 존재조차 무지/부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동학-천도교 역사의 과정에서 형성된 경험칙이다.
동학은 폭발적 성장과 급격한 축소(이탈)을 번갈아 경험하였다.
어제까지 목숨을 내놓고 천도교 활동을 하던 사람이
오늘은 천도교를 비방하며 교단을 떠나거나,
교단과 대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4.
동학-천도교에 형성된 이러한 정체성 담론은
오늘날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그 활동의 성장과도 관련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동학학회'를 위시한 '학술적 영역'에서
동학이 더 많이 자주 언급되는 상황과도 관련된다.(이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