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공부 20
1891년 해월 선생은 전라도 지역을 순회합니다. 그 지역 도인들의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전라도 지역에는 1888년 전후로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마당포덕’의 기운이 넘치던 때였습니다.
해월 선생은 전라도 각지를 순회하고 과연 도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바야흐로, 해월 선생이 노고근면(勞苦勤勉)으로 포덕해 온 결실이 강원도와 충청도를 넘어 전라도에서 폭발하는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도고일척(道高一尺)에 마고일장(魔高一丈)이라.
동학에 입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묵은 인습(因習)을 깎아내 버리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여 새로운 도덕을 내것으로 만들고 나아가 사회공동체에 그 덕을 미치게 하기에 소홀한 채, ‘세(勢)’에 편승하여 도와 덕을 이루고자 하며,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이렇게 짐작하는 이유는 다음에.)
해월 선생은 호남 순회를 마무리하면서 “도를 알려고 하는 사람이 적다(知道者鮮矣)”고 하시었습니다. 일종의 비관적인 총평(總評)을 하신 셈입니다. (바로 이어 부안에서, '부안에서 꽃피어 부안에서 열매 맺으리라'는 말씀을 남기셨으니, '비관'으로 일관한 것은 아닙니다.. 이 얘기는 다음에..)
이어서, 다음과 같은 척시(隻詩) 한 구를 부르시고, 대척시(對隻詩)를 기다렸습니다. 한동안 아무도 대구하지 못하다가, 수제자 중 한분인 김연국 선생이 그 대척시를 내놓았습니다(그 시는 다음에 소개).
촛불혁명 이후 한편으로는 심급(心急)한 성화에, 다른 한편으로는 전철(前轍)로 향하는 조짐에 불편한 요즘입니다.
동학 천도교는 125년 전과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이 세계에서 존재감마저 없어지고 있는 지경이어서 슬픈 시절입니다.
그날 그때, 해월 선생의 마음으로 이 척시(隻詩)에 대척시(對隻詩)를 기다립니다.
“만물의 이치를 넓고 깊게 궁리해 보니 바로 마음에 있도다.”
貫觀一氣正心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