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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01. 2018

윤리를 밝게 하라![明倫]

-동학공부 21

동학이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를 외치며 나온 동학이, 또한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비정상적으로 고착화되고 나아가 왜곡되기까지 한  '양반갑질'의 절정판이던 조선후기사회에서, '을 이하'의 계층들의 환영을 받으며, 그들의 호응 속에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윤리를 밝게 하라!"라는 말에 대하여, 자칫 "다시 유교사회로 돌아가자는 말이냐"고 반문/반박/반감할 수 있습니다.

...

단편적으로는, 도인들 사이에 예의를 지키고

'나쁜 언행'을 삼가라는 '도덕적 훈계'일 수 있습니다. 

해월 선생께서는 1890년대 초에 전라도 순회를 마치고

"도에 드는 사람은 많은데, 도를 알려고 하는 사람이 적다"고 걱정한 후 

"통유십조"(通喩十條)라는 실천강령을 내놓습니다.

이 시기에 전라도 지역에서는 동학도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cf. '마른 들판에 불 붙듯이']

...

그 전후에도 동학도인들이 실천하고/삼가야 할 사항을 적은 

통유문(通諭文)들을 여러 차례 내보내지만, 

이때의 '통유십조'는 간결하면서도 

비교적 많은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 개의 조항'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합의식적'이라는 점도 유념할 점입니다. 

...

통유십조는 1880년대 후반부터 특히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도인들이 갑작스럽게 늘어나면서, 도인들의 동학공부가 충분히 익기도 전에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생기게 마련인 여러 가지 문제"가 "자정작용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데 따른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서민생활에 악영향을 끼치듯, 도인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하면서, 문제가 없을 수 없었겠지요.

...

그런데, 

그중 첫 번째 조항이 '명륜(明倫)'입니다. 

"윤리를 밝게 하라!" 

...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를 외치며 나온 동학이, 또한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비정상적으로 고착화되고 나아가 왜곡되기까지 한  '양반갑질'의 절정판이던 조선후기사회에서, '을 이하'의 계층들의 환영을 받으며, 그들의 호응 속에서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윤리를 밝게 하라!"라는 말에 대하여, 자칫 "다시 유교사회로 돌아가자는 말이냐"고 반문/반박/반감할 수 있습니다.

...

단편적으로는, 도인들 사이에 예의를 지키고

'나쁜 언행'을 삼가라는 '도덕적 훈계'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한 번 더 돌이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동학은 양반 / 천민의 신분 구별이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만큼

"윤리를 밝게 하라!"라는 말은 양반/상놈 할 것 없이 

당시 동학도인들/세상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표현한 말입니다.

...

무엇보다, 무엇보다,  

'명륜'을 강조하는 해월의 당부는 혁명적이기까지 합니다.

왜 그런가? "동학도인들이여, 윤리를 밝게 하라!"라는 말에는 

'양반' '유생' '지식인(선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윤리를 민중들이 앞장서서 바로잡고, 지켜나가(자)는

전복(顚覆/뒤바꿈/뒤집어엎음=개벽)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오랫동안 양반의 전유물이던 "보국안민"의 가치를

수운 선생이 '동학 도인(민중)들의 핵심 가치'로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양반들의 심기를 자극하여

동학을 '좌파(左道)'로 몰아붙이는 계기가 됩니다.

...

"명륜", "보국안민"이라는 말이 '시대의 맥락'에서 보아

직접적인 "혁명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동학도인들 중에는 '양반, 지식인, 부자'도 많았습니다.)

...

...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는 '양승태 대법원' 문제, 다시 말해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사유화하여, 사익을 편취하기 위한

'거래물'로 취급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정황을 보며

'윤리를 밝게 하라'는 통유십조의 조항이 더욱 소중해 보입니다.

...

'양승태 대법원'의 사태를 보며

『孟子』「공손추 상(公孫丑 上)에 나오는 글,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人皆有不忍人之心) (중략)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으로

(以不忍人之心)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정치를 하게 되면,

(行不忍人之政)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손바닥에서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治天下可運於掌上) 

라고 하신 말씀이, 성인과 성군의 덕목일 뿐만 아니라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덕목이기도 한 오늘[民主]의 관점에서 보면

'양승태'로 대표되는 '그분'들은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셈입니다.

그 '불인(不人)'스러움을 봅니다.  

...

윤리를 밝게 하는 것은 단지 '도덕'을 강요하는 훈장질이 아니라

수기치인[修己治人] 공부를 가르치는 것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수기치인이 '고원난행(高遠難行)'한 '별천지/별유인'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 자신의 일동일정(一動一靜)에서 윤리을 밝히는 데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듦이 옳습니다. 

...

앞서 말한 통유십조의 두 번째 조항은

수업(守業)입니다.

생업에 충실하라는 말도 되지만,  

내 직분을 지켜라, 말하자면, 직업윤리에 충실하라는 말입니다.

'그분'들은 최소한의 '상도덕'조차 지키지 못하여

'장사꾼/건달'은커녕 

'장사치/양아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

항산(恒産)이라야 항심(恒心)이지만,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항산'은 불가능하므로..

항심(恒心)이어야 항산(恒産)입니다. 

...

그러므로, 수업은 '염치'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의 '몰염치(歿(沒)廉恥)'를 보며, 

나의 '몰지각(歿(沒)知覺)'을 돌아봅니다.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오늘입니다. 

...

더없이 두려워지는 오늘입니다. 

...

다시, 윤리를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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