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공부 30
1.
한때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때 어디선가 줏어 들은 이야기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금언 중의 하나가
"낯설게 하기"
2.
지금 막 읽은 페친 장은수 님의 글에서 다음
대목이 눈에 띈다.
“훌륭한 과학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보되,
누구도 말한 적 없는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아모스 트버스키)
3.
며칠 전 타개하신 평론가 황현산 선생님의
글쓰기 강좌 요약 내용 중에
세 번째 덕목은
"상투어구, 상투문을 피해서 쓴다"는 것이다.
4.
동학 공부에서도
지금은 중요한 것은 바로,
(1)낯 설게 하기,
(2)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것을 생각해 내기
(3)상투어구, 상투문을 피하기
5.
위 세 가지를 관통하는 정신은
실제로는 남의 생각, 관점, 언행에 나를 맞춰가면서,
내가 생각하고, 보고, 말한다고 착각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
지금의 동학(특히 천도교인)은
상투성에 젖어 들어 있다.
천도교 밖의 동학을 하는 분들
(즉 '동학농민혁명/동학운동 계승을 자처하는 분)
의 생각도 또 다른 '상투성'에 빠져 있기는 매한가지.
6.
지금 나에게도 요구되는 것은
낯섦을 익히고, 새롭게 생각하고, 상투성을 벗어나는 일
..
예컨대, 어제 논학문을 읽으면서는
(동학-도를 배반하고 돌아가는 자가
복을 누릴 수도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수운 선생이 대답하시기를)
"이런 사람이 복을 누리리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듣게 해서는 안 되니,
그대가 물을 바도 아니요
내가 관여할 바도 아니니라."
라고 대답하시 대목을 '새롭게' 읽었다.
斯人享福 不可使聞於他人非君之所問也 非我之所關也
특히 "다른 사람에게 듣게 해서는 안 되니"라는 말씀.
지금의 말로 하자면, '나쁜 소문'은 퍼뜨리지 말라는 말씀.
오늘날 소위 '민주주의' 그리고 그중에 핵심인
언론의 자유와 언로(言路)의 자유를 생각하면
입을 꾹 다물라!는 말로도 들리는 저 말씀이
나에게는 고리타분하고, 전 근대적이며
반 민주적인 말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선취된 미래, 즉 오래된 미래의 말씀으로
들려 왔다.
"항심을 가지고 ... 매일매일 수덕수양하면서 의식을 향상하고 있으면, 세상은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 의식의 결과물입니다. 결과물에 집중하지 말고 결과를 낳는 의식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고 봅니다."(페친 '유택주' 님의 글 중에서)
여기서 핵심은 "세상은 우리 의식의 결과물"이라는 대목이다.
'말/글'은 '의식'에 선행하는 것 - 의식의 어머니자 그릇이다.
7.
지금 우리의 말(SNS/댓글/가짜뉴스/목불인견)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괴롭고, 허망하고, 피해로운가...
[cf. 말로써 말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8.
어떻게 말하고 / 말 안 하고
어떻게 글쓰고 / 글 안 쓰고
어떻게 읽고 / 안 읽고
어떻게 듣고 / 안 듣고 해야 할까?
[cf. 초등교육의 목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9.
답은 이미, 최소 2500년 전에 나와 있었다.
<팔정도>
① 정견(正見):올바로 보는 것.
② 정사(正思:正思惟):올바로 생각하는 것.
③ 정어(正語):올바로 말하는 것.
④ 정업(正業):올바로 행동하는 것.
⑤ 정명(正命):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⑥ 정근(正勤:正精進):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⑦ 정념(正念):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⑧ 정정(正定):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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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지금의 '글쓰기(준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생각만 많고, 독서가 부족(다양성, 양, 질)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읽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