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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12. 2018

"덜-문명" "마을문명" "지역문명"-論

-동학공부 32

"덜-문명" "마을문명" "지역문명"-論


1.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자본회회 밀이불루(資本恢恢 密以不漏)

노자(老子)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그물은 얼핏 보기에 허술[feat. 저 망망한 가을하늘!]해서 

모두 다 빠져나갈 것 같지만 빠져나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시대는 하늘의 자리에 자본이 들어서 있는 것 아닌가. 

[cf1. 김동연-이재용 / cf2. 미국-중국,EU]

그 자본이 인간과 생명에 우호적이면 다행이련만,

반달곰의 쓸개에 빨대를 꽂고 즙을 빨아 먹는 족속들처럼 

인간과 생명(생태계)에 빨대를 꽂아 흡혈하는 속성을 가진지라

인간과 생명(생태계)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채로, 아니, 죽을 때까지 죽어가면서 

자본의 그 에너지원으로 존재하는 매트릭스의 세계 아닌가?  


2.

이 세계[지구]에서 자본의 그 밀이불루한 그물을 우회하는

그리하여, 먼 훗날 마침내, 그것을 파쇄하는 

유일한 길목은 '지역'이 아닐까?


3-1

어떠한 사업/행사라도 

'지역'과 결합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사업/행사가 안 된다.

씨앗은 땅에 뿌리 내려야 싹이 돋고, 자라나 꽃피우고 

마침내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지역과 결합하지 못한 사업/행사는 

예컨대, 인공 개천인 청계천처럼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자원-에너지'이 투입되어야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게 투입되는 '에너지'가 오늘, 우리에게 폭염으로 돌아오고 있다.

[cf.생태발자국 지수 / 로컬푸드]


3-2.

전통시대에 지역은 '마을'과 '고장'이라면, 

오늘날은 '마을'과 더불어 '장소성'이라는 말을 

추가/부가/확장할 수 있을 듯하다.

'마을만들기'처럼 최근들어 '마을'을 살리고, 

그 이름에 걸맞는 지역사회공동체운동도 전개되고 있기는 하다.

거기에는 관심과 기대와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마을을 '지역과 직접 결합된 마을'에 한정하지 말고, 

최대한 그 '마을성'을 담보하되 좀더 다양한 접근의 차원에서

'장소성' 개념의 가능성을 연구하자고 스스로에게 제안해 본다.

[cf. 천도교중앙도서관 / 경전강독 / 독서공방]


3-3.

이때 장소성이란 예컨대, '도서관'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

'00동 문화마당'(상설 프로그램) 같은 프로그램의 운영 등이다. 

중요한 것은 그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작동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근대(현대)문명이 '도시'를 기반으로 한다고 할 때

도시의 특성을 바로 '익명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때 익명성이란 바로 '지역/장소성'으로부터 이탈

다시 말해, '붕 뜬 상태'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시의 형성이(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농촌(지역)으로부터의 이탈을 기반으로 

진행되어 온 역사적 현실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3-4.

그런 점에서, '지역'의 확장으로서의 '장소'란 

바로 '공동체'가 작동하는 '마당'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때 공동체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공동체(가족/취미집단/학습모임 등)를 지칭하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범위에서, 내가 생각하는바 

공동체를 공동체이게 하는 핵심 기제는, 

요즘 말로 하면 '멤버십'이다. 익명성을 벗어나서, 

'동료/동무/동덕'으로 상호 호칭/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이 '장소'이다. 

결국, '지역의 다른 이름'은 '사람'이다. 

지역이든 장소든, 

그것은 결국 '인문학적인 공간'이라는 말이다. 

[cf.시천주-사인여천-이천식천-인내천]


4-1.

지역성/장소성으로부터 벗어난 문화들은 

당장에는 재미있고, 보고좋고, 듣기좋고, 감동적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소비적이고/소모적이고/갈증유발(cf.청량음료)의 

문화가 되고 마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해, 자본의 빨대에 피 빨리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때, '지역성/장소성으로부터 벗어난 문화들'에는

이른바 '지역축제' 중의 많은 부분들도 포함된다.

지역축제를 계기로 '지역농산물' 등을 판매하고자 하는 

절실한 농심, 그리고 지역경제/문화 활성화를 염원하며

절절한 심정으로 실무에 임하는 지역민들의 마음, 

어떻게든 그 마음이 받아들여져야 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식으로, 그 소위 '지역축제'가 빚어내는

목불인견의 '삼류 문화 쇼'들이나 난장이 얼마나 많은가...는

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cf.재벌구조를 타파하여 민중을 위한 경제를 꾸리기 위하여

재벌과 악수하고, 재벌의 편의를 봐주어야 하는 역설!!!!!!]

... 이 이야기를 하는 뜻은, 여기서 '지역축제'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지역성' '장소성'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cf. 반!자본주의]


4-2.

'탈지역/탈장소의 문화들의 집합

바로 오늘의 '자본주의 문명'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

이 폭염 속에서도 여전히 '더' '더'를 외치는 모든 주장들

(설령 환경보존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모두 결국은 자본주의 문명의 동반자/동지/동조자/협력자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덜'이 아닌가. 

'덜'이 가능한 토대는 유일하게 '지역'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덜-문명', 즉 '마을문명' '지역문명'이

이 자본주의-신자유주의-근대문명의 대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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