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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16. 2018

생어동 수어동[生於東 受於東]

-동학공부 36

생어동 수어동[生於東 受於東]
...
저는 엊그제 '지역성' '장소성'을 이야기했고,
어제, 원불교사상연구원 주최의 학술대회 1일차를 마치고
박맹수, 조성환, 기타지마 기신 선생님과 그 성과를 중간 결산해 보는
자리에 동석하였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주로 출판과 관련되는) 중에
동학의 '東'의 의미를 한 차원 성숙시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오랫동안 '동학'의 동은 '서학'에 대한 반대로서 이야기되었지만
(아직도, 이런 이해가 교과서의 '동학' 이해의 골간을 이루고
일반인들의 상식 수준에서는 이러한 이해가 대세를 이루지만)
최근 들어 '동학'의 '동'은 '서에 대한/반대하는 ' 동이 아니라
"우리나라[cf.東國, 東醫]"를 의미하는 동이며
"살림의 방위"로서의 동이라는 해석이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어제의 이야기 속에서는
'동'은 수운 선생이 나고 자란 땅, 동학의 이치를 수득/체득/각득한 땅이며
그 땅은 '우리나라(朝鮮)'만이 아니라, 동학의 이치를 깨닫고/체득하는
각자가 딛고 선 땅을 가리키는 보편적인 용어로서의 동(東, 장소의 구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어제 진행된 이야기 그대로는 아니고,
제 나름대로 재해석, 확장, 심화, 전유한 것입니다.]


동학 창도 직후 용담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수운 선생에게 "선생께서 펼치려는 '도'가 
서학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늘의 도[天道]'와 같다[道則同]고 
한다면, 도의 이름을 '서학'이라고 부릅니까?"라고 묻자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내가 '동'에서 나서 '동'에서 (도를) 받았으며[生於東 受於東]
땅이 동서로 나뉜 것을 서를 어찌 동이라 하며, 동을 어찌 서라 하겠는가
[地分東西 西何謂東 東何謂西]
라는 말의 보편적 의미를 재음미할 수 있습니다.


서(西)로 하여금 동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동학이 아니요
서는 서로서 자아 완성하며, 동은 동으로서 자아완성하여
천도를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 동학의 이치입니다[道雖天道 學則東學]


이러한 이치를 세계 속에 설파해 나가는 것이
"토착적 근대화" 담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어제, 중간 결산의 자리에서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 - "근대 한국종교의 토착적 근대화 운동"의 의미/의의/의리[義利]는 바로
이렇게, 미래를 향하여 열린 주제와 마음[목표의식]을 확인하는 자리라는 데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토착적 근대'는 100년 전 이야기, 
해묵은 과거를 헤집어 보는 일이 아니라,
다가오는 100년, 미래를 예측/예언/예비하는 이야기입니다.


훗날, 오늘의 학술발표가우리나라의 새로운 100년, 
토착적 근대, 즉 '탈 근대'나 '비-서구적 근대'가 아니라 
"탈-서구적 근대" "지구적 근대" (-ft. 이병한)로서의 담론을
본격화한 첫 '장소'로 평가되기를 바라고, 빕니다.


ㅡ학술대회 둘째날..아직도 원광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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