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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17. 2018

빈천문명, 덜-문명, 미래문명

-동학공부 37

빈천문명, 덜-문명, 미래문명


1.

가난한 삶은 피치 못할 일이거나 떨쳐 버려야 할 상황인 것이 20세기까지의 원칙이었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며, 현대의 인간이 성취한 이 지구문명이 한편으로 온갖 문제에 맞닥뜨려 있지만, 인류가 수천/수만 년 동안 시달려 온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나아간 지금의 문명은 인간의 이성이 성취한 괄목할 만한 성취라고 이야기되어 왔다.  

이제 그 말을 수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가난한 삶'을 표준으로 '부유한 삶'을 '가난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미래적'이며 '진보적'인 원칙이다. 간혹 대안적인 삶과 정치를 이야기하면,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라거나 "전근대 사회로 돌아가자는 말이냐"라고 이야기하면, 그게 아니라고, 변명 모드로 돌아서곤 했다. 그러나 이젠 정직하게, 당당하게, 간절하게 "그렇다!"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가난한 문명이라고 해서, 굶주리거나 먹고살기에 급급한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게다가 지금 여기에서도 한계상황에 내몰리는 자영업자나,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나 아르바이트생, 그나마 일자리를 얻지 못해 전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런 상황도, 우리가 가난한 문명으로 돌아감으로써(만)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현대믄명의 온갖 이기들이  실은 우리 스스로를 죽이는 무기이며 맹독임을 자각하고 자인하는 데서부터 빈천문명의 시대는 시작된다. 그 자각과, 그 자각에 값하는 삶의 변화 없이 공멸의 날을 면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과 요행수를 떨쳐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수운 선생은 “부유[富]하고 고귀[貴]한 사람은 오는 시절에는 빈천[貧賤]해지고, 가난[貧]하고 천대받는 사람[賤]은 오는 시절에는 부귀(富貴)로워진다”고 하셨다. 이 말이, 계급이나 소유구조의 역전으로써 ‘보복’의 삶과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현재의 지구적 차원의 물질적인 부는 모든 사람이 ‘충분히(?)’ 가난을 면하고, 궁핍과 질병을 모면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부귀는 깎아 내고, 한계수준 이하의 빈천은 보비(補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교양/교시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cf.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1) / 貧而樂 富而好禮]

[cf. 도서명 :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이정배 지음, 모시는사람들)


이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가능해진다. 가난한 문명의 또 다른 이름은 ‘덜-문명’인 까닭이 이것이다. 빈천(가난한)문명-덜 문명은 단순히 제도나 정치혁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혁명/개벽의 문제요, 그야말로 문명사적 전환인 까닭도 이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엄청나게 어렵고" "이상적인 과제"인 것은 아니다. 충분히 현실가능하고/해야만 하며/여기저기서 이미 추구/추진되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좀더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다.


2.

어제 원불교사상연구원 주최의 "한일공동학술대회 - 근대 한국종교의 토착적 근대화 운동"에서 이병철 선생님은 본발표 시간에 잠시 언급한 "신령한 짐승" 사상/철학/신앙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시금 언급해 주셨습니다. 종합토론 시간이어서, 그 용어를 쓰게 된 배경만을 짧게 설명하였는데(본 발표 시간에는 듣지 못하였음-논문 글을 읽으며 공부해야 함), 그 말씀을 저는 이렇게 이해하였습니다. 


'하늘-땅'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것이 '짐승'이라면, 우리(인간)의 삶이 지금보다 더 본래적인 모습인 '짐승스러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안에 '하늘-땅'의 거룩하고 고귀한 영성(한울)을 모시고 있는 존재임을 각성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영세불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차원이면서 공동체/전지구적 차원이기도 한, 전면적인 차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내가 생각하는 '빈천(가난한) 문명'-'덜 문명'의 인간적 차원의 접근이라고 읽혀져, 전율이 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자료집으로라도 찬찬히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어제 받아온 자료집 속에 공부할 내용이, 한 가득, 열 가득입니다. ㅠㅠ


3.

동학의 역사에서도, 참으로, 역사적인 학술발표였습니다. 무엇보다, 제 입장에서 볼 때는, 빈천(가난한)문명-덜 문명에 관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또 되먹임으로써 길러지고, 공유되는 자리였습니다. 당분간 그 이야기들을 좀더 해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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