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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24. 2018

출산율 저하와 인구 노령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동학공부 41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과 출산 


출산율 저하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소비시장의 규모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인구가 ‘적정규모’ 이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2명이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사회 여러 방면에서 인구 감소로 인한 부작용(?)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정말 절박한 ‘국가적/사회적’ 과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국가적/사회적’ 과제 해결을 위해 ‘출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았던 장면으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경제(기업)’라고 하는 거대한 컴퓨터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인체)이 그 동력공급원으로서 사육되고 있는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더 이상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데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출산율 저하와 진화론/적자생존


젊은이들은 현재의 사회 환경 속에서 결혼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결혼하고 싶지만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 출산은 그보다 더 높은 비율로 기피하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이것을 나는 “‘헬조선’에 아이를 낳아서 ‘아이도 힘들고’ ‘(그 아이를 기르느라) 나도 힘든’ 일은 하지 않겠다, 하지 않는 편이 아이를 위해서도/나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각자(개인)의 선택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현상적으로/표면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은 각 개인이지만(하여, 기성세대 일각에서는 이기적인 세대라고 지탄하기도 하지만), 그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하여 강요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비자발적인/내몰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찍이 아담 스미스 등이 제출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자유방임의 시장원리를 옹호하는 논리였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천명과 천리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데 더 적합한 용어일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결혼-출산 기피’ 현상은, 일찍이 다윈 등의 ‘진화론자들’이 설명한 바 있는 생물학적 수준의 대응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환경(지구, 한국사회)이 척박해질 때 식물의 경우 (꽃)씨를 더 많이 퍼뜨려 적합한 환경으로 이전해 종 보전에 나서고, 동물의 경우도 새끼들을 적게 출산하여 생존률을 높이거나, 반대로 아예 새끼를 더 많이 출산하여 중간에 도태되더라도 종족 보전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등의 ‘자율적인 생존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바, 오늘날의 ‘출산율 저하’는 그러한 생물학적 수준의 자동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생물학적 종 보존’보다 더 높은 가치로서 적합한 성장 환경과 ‘불행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현재의 국가/사회에서는 ‘생물학적 자살(‘후대’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개체)종을 멸종시킴-필자가 만들어 본 말)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출산율 저하 경향이라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오늘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식물-동물 수준의 DNA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신령한 짐승 

문제는 오늘 인간이 직면한 생존 환경은 (지구온난화와 같은 생태학적 환경과 국가/사회와 같은 사회적 환경을 모두 포함하여)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서, 이 환경이 새끼를 더 많이 낳아서 기르기 좋은 곳으로 바뀌는 것은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고, 결국은 인간이, 지금까지 저질러 온 잘못을 참회하고 이전으로 돌아가야만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되고 지금까지 싸질러 놓은 똥(문명의 찌꺼기)을 모두 치워 놓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꼭 필요한 이유(해야만 하는)와 그것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저는 지난 ‘토착적 근대화 학술대회(15-16,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이병철 선생님이 제안하신 “신령한 짐승”의 개념입니다. 이 말은 본디 이병철 선생님의 시집 제목인데, 이날 ‘영성적 근대화’ 담론과 관련하여 종합토론 시간에 청중의 질문이 있어서, 이병철 선생님이 잠깐 언급한 내용입니다. 그때의 짧은 답변 내용으로만 보아도 ‘신령한 짐승’은 “(우리 인간이) 땅에 바탕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 ‘짐승’이면서, 우리 밖[안팍]에 있는 신령함(환경, 신성)과 이어지고/주고받고/함께있음을 아는 존재”[cf. 內有神靈 外有氣化]라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이 말에서, 현재의 인간 자신(현대인, 현대 한국인)과 인간들이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은 ‘땅’으로부터 이탈/분리/추방된 존재이자 문명이라는 점을 발견하게/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아스팔트, 자동차, 아파트, 빌딩숲 속의 사무실, 인터넷(눈) 등의 모든 이기(利器)들은 우리가 자수성가/자만하는, 오늘날 인간의 승리를 증거하는 성취이지만 결국 그러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비용(스트레스, ‘개인적 욕망(-이것도 결국은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유래된 변형된 형태의 환경병이라고 봅니다-各自爲心)’ 등) 때문에 자연적으로/필연적으로/불가항력적으로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근 10년간 130조원이 투입되었다는 ‘출산율 저감에 대한 대책 예산’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한편으로는 ‘새발에 피’ 정도에 불과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즉자즉 대응’ ‘피상적/미봉적/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한 대책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출산율 저하의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가는 길은 ‘신령한 짐승’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그 본성에 따른 삶을 회복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이 ‘폭염지옥’에서 (우리 인류 전체가 하나도) 살아남을 수 없고, ‘신령한 짐승’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최상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도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신령한 짐승’이 살아가는 곳/살아갈 수 있는 곳/살아가야 하는 곳이 마을/지역/장소이고 ‘공동체’입니다(이 이야기는 앞에서도 했지요)


신령한 짐승의 세계 – 지상천국 

<신사와 선비>(백승종, 서우)라는 책에서 서구 사회가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세계를 제패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인구동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특히 중세사회의 귀족 계층이 많은 자녀를 출산하여 사회구성원의 다수를 점유하게 되면서, 귀족들의 품성과 덕목(근면성/도덕성/창조성 등)이 서구(유럽)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조선사회는 선비/양반들의 자손이 대체로 영락(零落)하여 (양반 계층/계급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 재산을 상속받는 사람의 숫자를 최소한으로 유지할 필요에 의해서) 특히 선비들의 고결한 품성이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중국의 경우도 유사).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출산율 저하와 인구 고령화가 10년 후, 30년 후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깊이 연구하고, 지금의 이 질문(출산율 저하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에 대한 해답으로서 ‘신령한 짐승’의 본성을 회복하는 답을 찾고/만들고/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추신 : 마침 조현(한겨레신문 기자) 님의 최근작(“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에 대한 저자의 소개글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저는 이런 외적인 것보다 자본주의 급성장에 눈이 휘둥그래져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 수백만년 지속되어온 포유류성(새끼에게 본능적으로 집중해 돌보는) 상실로 인한 트라우마가 심리적으로는 전쟁 못지않는 내적 균열을 일으켜, ‘혼자서는 외롭게 함께도 자신이 없는’ -그런 상태를 어떻게 가져왔는지를 풀어냈는데요. 너무도 짧은 시기에 급성장하면서 그런 트라우마가 가장 극심하게 나타난 한국사회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한 영향은 인류의 보편적인 것입니다.” 


읽고-듣고/말하고-써야 할 일(=공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시 보따리만 꾸려서 더 깊은 길 위에 서야 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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