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 이야기들이 역시 "쏟아져 나왔는데" 그가운데 제 귀를 붙잡은 것은 '치유로서의 수양'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퇴계의 '수기(修己)'가 치유로부터 시작된다는 개념, 그리고 수양의 출발점도 치유라는 일이 여러 측면에서, 생각들을 자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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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저의 지금 공부/글쓰기 목표는 수양하자는 것이고, 그러나 그것은 우선 '내일'의 일이고, 지금 당장에는 치유라는 자각(새삼스런?)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치유에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참회가 개재(介在)합니다.(이것은 또한 지금 제가 써야 하는/쓰고 싶은 "동학의 수양론"의 내용을 한층 풍부하고/의미있고/성과있게 만들어 주는 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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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로서의 수양'이라는 말이 제 귀를 붙잡고, 또 마음에 울림을 준 까닭은,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동학의 목표인 제인질병에서 질병을 치유[濟]한다는 것의 의미가 재음미되었고, 이때 질병은 '개인적(=신체적)' 질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질병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재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개인의 마음의 질병'을 '각자위심'이라고 하여, 본체(한울)의 전일성[同歸一體]을 잊고/잃고/떠남만을 생각하였는데, 오늘은 그 각자위심이 실향/실망/실성의 마음으로 다가와, 개개인의 아픔/앓음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발견/'발명(허경 교수님 말씀) '/발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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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누구나 '정신병을 앓고 있다'(이에 관련된 이야기도 허경 교수님이 해 주셨지만)는 관점에서 볼 때, (동학의) 치유로서의 수양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공부이고, 그것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공부이기도 하다는, 행복한 '학/각/득(學/覺/得)이 있는 오늘이었습니다. (사진은 '한국학포럼'을 한 천도교중앙도서관에서 바라본 풍경(북촌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