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공부 43
학술대회의 발표 및 토론이 종료되고,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다. 종합 토론에 앞서 이 행사의 주최자인 “원불교사상연구원”의 박맹수 원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주제를 선정한 이유와 의의를 세 가지로 다시 정리해 주었다(아래 내용은 박맹수 교수님의 발언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임).
첫 번째는, 개벽종교/개벽파의 근대화 담론의 장이다. 지금 이 학술발표회는 “근대 한국종교 - 공공성”을 키워드로 6년간 진행되는 연구의 2년차 프로그램이다. 먼저 ‘개벽종교’라는 말을 쓰게 된 이유와 과정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조동일 교수는 한국에서의 근대는 종교, 그중에서도 동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가장 이른 시기에 공론화해 주었다. 동학은 동학에서 그치지 않고, 그 뒤를 이어 천도교/정역/증산교/원불교가 속속 등장하는데, 묘하게도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등장했던 동학~원불교 이후에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종교들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cf.통일교=기독교 맥락)
여기서 근대 한국종교는 동학-증산교-원불교까지이다. 그런데 이 근대 한국종교를 한 묶음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한결같이 개벽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프로젝트 연구팀)는 근대 한국종교를 ‘개벽종교’라고 명명한 바 있고,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감히 기존 한국학의 담론에 대해서 도전장을 제시하기 위해 이번 학술대회 개최하게 되었다. 19세기-20세기를 지나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촛불혁명이 끝난 시점에서, 개화파적/척사파적인 한국학으로는 답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개벽파적인 한국학으로서 오래된 근대의 새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개벽종교, 개벽파라는 용어를 새로이 제안하였다. 오늘은 우리 학술사에서 ‘개벽종교’라는 용어로서 첫 번째로 진행하는 본격적인 학술대회로 기록될 것이다.
두 번째는 토착적 근대라는 말이다. 기타지마 기신 선생이 풍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토착적 근대라는 발표를 해 주셨는데, 저(박맹수)의 개인적인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저는 1983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창렬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박사학위를 했다. 정창렬 교수님은 70년대 말–80년대 초에 걸쳐 자생적, 비서구적, 한국적 근대라는 것이 무엇이냐를 평생 고민하신 분이다. 그리고 1983년에 <고부민란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서 동학이 추구하려고 했던 근대, 동학농민군이 폐정개혁12개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근대는 자본주의적 근대,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근대였을 것이다, 라는 데까지 연구하시고, 그 숙제를 나에게 남겨 주셨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박맹수) 동학을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한 10년 전, <<녹색평론>>에 <비서구적 근대의 길을 찾아서>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고, 이번에는 동학-원불교로 이어지는 비서구적 근대의 길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저희들의 고민은 이처럼 8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가슴 아픈 일이지만, ‘동학’을 이야기하면서 해월 선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이야기, 해월의 입장에서 동학과 동학혁명을 이야기하면 80년대 내내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도대체 뭘 공부하는 놈이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급주의적’ ‘사회경제사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소위 ‘역사학계의 주류’에서는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조금 달라졌고, 최근에 학계 시민사회에서 동학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동안 체계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토착적 근대라는 말을 포함해서 이번에 본격적으로 ‘비서구적’ ‘토착적’ ‘영성적’ 근대로서의 동학과 동학 이후 개벽종교, 개벽파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참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그 토착적 근대를 실현해서 구현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원고들을 받고 보니, 묘하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키워드가 영성이라는 단어였다. “영성적 근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근대를 실현하는 것과 영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영성이 체현된 인간은 어떤 인간인지, 그런 영성이 체현된 인간이 실현/구현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공공적 세계, 천인공화의 세계, 동학군들이 꿈꾸었던 천국천민의 세상인지, 영성과 관련해서 그것과 관련해서 실천하는 세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가 오늘 충분히 이야기가 되었다. 여기서 충분히는 완결적인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학술연구의 주제로서 삼아서 천착해 갈 동력을 마련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 이 자리는 “개벽종교”라는 키워드 외에 “개벽파” “토착적 근대”(새로운, 비서구적 근대, 자주적 근대 등등을 포함하는) “영성의 의미와 새로운 세계(국가, 사회상)” 등의 핵심적인 키워들을 발견하고, 그 가치와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연령, 지역, 성별, 국가 등에서 다양한 참석자들이 1박 2일 동안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함께해 주셨다는 점이, 이번 학술대회에 걸고 있는 기대와 요구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더욱 더 강의실에서 머무는 공부가 아닌, 여러분과 함께 하는 공부, 시대와 함께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공부가 되도록 하겠다. 이런 일들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을 얻었기 때문이다. 조자룡, 장판교, 조자룡의 모습으로 개화파와 척사파의 한국학에 단기필마로 개벽파의 창을 들고 등장한, 조성환 박사, 그리고, 세계 100여 개 국가를 주유천하하고 그 결론으로 “개벽파”라는 화두를 들고 익산에 나타난 이병한 박사가 그들이다. 그 밖에도 오늘 발표자로, 토론자로, 그리고 객석을 메워 주신 청년들이 이 연구의 가능성과 미래를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감사하다. (문책: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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