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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17. 2019

선업과 덕업을 쌓다

- 신성한 말 9 - 적선적덕(積善積德)

[이번 글은 부득이하게 길어졌다.]


적선합쇼!


어릴 적에 간간이 보던 ‘거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적선합쇼!”였다. 적선(積善)은 곧 적선적덕(積善積德)이니, 선을 베풀고 덕을 베푸는 일이 곧 선-업을 쌓고 덕-업을 쌓는 일이라는 뜻이다. 덕업(선업)을 쌓으면 다음 생에서 복락을 누리고 악업을 쌓으면 고해를 헤맨다는 교훈이 전제되었다고 보면, ‘불교적’ 세계관이 다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거지들 중에서 ‘내가 당신을 적선(積善)하게 한다’는 적반하장 식의 당당함(?)을 내비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거지가 구걸하는 것을 일컫는 ‘동냥’이 본디 스님들의 시주를 받으러 돌아다니며 동령(動鈴)을 울리던 일을 가리키는 말에서 온 것도 이런 맥락을 뒷받침한다.


적선적덕의 유래


적선적덕과 비슷한 말로 적덕누선(積德累善; 덕을 쌓고 선행을 거듭함), 활인적덕(活人積德; 사람을 살려서 덕을 쌓음) 같은 말이 있다. 또 <명심보감>에는 “작은 선이라 해서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작은 악이라 해서 행해서는 안 된다(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明心寶鑑 - 繼善篇, 漢소열황제)”는 교훈을 비롯하여 적선적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말들이 한둘이 아니다. <순자(筍子)> <권학편(勸學篇)>에는 적선성덕(積善成德)이라는 말이 나온다. ‘선을 쌓아 덕을 이룬다/얻는다.’는 말이다. <천자문>에도 화인악적 복연선경(禍因惡積 福緣善慶)이라 하여 “악을 쌓으면 재앙이 오고 복은 착한 일을 거듭한 나머지 오는 것이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대한 해설을 담은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 중 곤괘 해설에는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좋은 일이 넘치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미친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오래도록 누적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적선’과 대를 이루는 말이 ‘적악’이 아니라 ‘적불선’이라는 점이 무릎을 치게 한다. 기계적 중립이나 소극적 불간섭주의도 ‘적불선’에 해당할 소지가 매우 크다. 선과 악이 더욱 어지럽게 교차하고, 상호침투해서 넘나드는 오늘날에 적선은 고사하고 부적불선(不積不善; 불선을 쌓지 않음)하기조차 어렵고도 어렵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는 시군시부(弑君弑父弑夫弑婦弑師弑弟)는 오랜 적불선의 결과임을 돌이켜 보라는 갈(喝)이 아프다!


동학 - 적선적덕 덕분에 세상에 나다


적덕(積德)은 포덕(布德-덕을 베풂)의 유(有)의 방향을 지시한다면, 포덕(布德, 德分)은 적덕의 무(無)의 방향을 지시한다. 그런데 결국 둘은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0’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이치를 여기서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은 무위(無爲; 무를 지향함)가 곧 적불선(積不善)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동학(천도교)의 경전에도 적선적덕은 동학 창도의 근본 원인(遠因)이자 수양(修養)의 요체로 제시된다; “천운(天運)이 순환(循環)하사 무왕불복(無往不復) 하시나니, 그러나 이내 집은 적선적덕(積善積德) 하는 공(功)은 자전자시(自前自是) 고연(固然)이라 여경(餘慶)인들 없을소냐. 세세유전(世世遺傳) 착한 마음 잃지 말고 지켜내서 안빈낙도(安貧樂道) 하온 후에 수신제가(修身齊家) 하여 보세. 아무리 세상사람 비방(誹謗)하고 원망(怨望) 말을 청이불문(聽而不聞) 하여 두고 불의지사(不義之事) 흉(凶)한 빛을 시지불견視之不見 하여 두고, 어린 자식 효유(曉諭)해서 매매사사 교훈(敎訓)하여, 어진 일을 본을 받아 가정지업 지켜 내면 그 아니 낙(樂)일런가.” (용담유사, 교훈가)


여기서 수운 선생은 ‘순환-무왕불복하는 천운’을 받고 또 동학을 득도(得道) - 창도(唱道)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집안이 적선적덕’하였던 덕분이라고 고백한다. 이는 고오타마 싯달타가 석가모니불로 성불(成佛)할 수 있었던 것이 여러 생에 걸쳐 적덕(積德)하고 보시(普施)한 결과라고 하는 불교의 설화들과 유사하다.


대순진리회, 포덕과 적선을 말하다


동학(천도교)과 더불어 개벽파의 일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증산교 계열의 ‘대순진리회’에서도 포덕과 적선을 일이관지하는 해석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좀 길지만 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기에 인용한다.


“포덕이란 덕을 베푸는 행위를 말하며 적선행(積善行) 혹은 적덕(積德)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선의 모체는 배고픈 이웃에게 동전 한 닢, 밥 한 그릇을 나누어 주는 행위가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사회사업을 통해 고아원・양로원 또는 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 등에게 물질을 회사하는 자선행위 등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종교 사업을 통해 메마르고 갈급한 영혼들을 구제하는 행위로 확대될 수 있다. 때문에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의 덕을 세상에 펴는, 다시 말해서 가장 큰 덕을 베푸는 행위를 포덕이라 하며, 기독교에서의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소승불교의 최고경지인 아라한이 부처가 되려면 필히 육바라밀을 통해 대승보살도를 행해야 하는데 6바라밀의 첫째가 보시바라밀이며 보시바라밀 중 으뜸이 법보시, 즉 전법(傳法)인 포교인 것이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에서의 포덕의 의미는 개인적이고 부분적인 영혼의 구제가 아니고 천지공사와 해원상생의 법리를 통해 나를 구하고 이웃을 구하고 인류를 구하고 신명계를 구하고 전 우주를 성공시키는 사랑과 자비행의 완성이며 전도와 전법의 완성이다. 상제님은 조화주이시며 개벽장이시며 삼계의 주재자이시며 우주생명의 본체인 생명의 시현자이시다. 생명의 본체는 자(慈)이며 사랑이다. 그래서 미륵을 자씨(慈氏)보살이라 칭한다. 상제께서 풀 한포기, 미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존귀케 하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을 가지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호생의 덕 즉, 살리기를 좋아하는 품성을 기르는 것이 상제님을 닮아가는 것이며 도통에 가까워지는 행위인 것이다. 때문에 포덕의 행위는 자기의 절대주체인 생명의 본질을 시현하는 것이며 상제님과 하나 되는 첩경이며 자기의 생명을 완성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상제님과 하나 된다는 의미는 본인의 심신이 그대로 진리의 시현체. 생명의 시현체, 나아가서 상제님의 시현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본인의 심신이 그대로 호생지덕의 시현자, 자비의 실천자,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행위야말로 포덕의 완성인 것이다.”(인용자 주- 남광우(교감, 강남방면)의 <포덕(布德)의 의미에 대한 일고찰(一考察)>(≪대순회보(大巡回報)≫ 제21호, 1991년 1월호; http://webzine.daesoon.org/m/index.asp?webzine=103)이라는 소논문(小論文)의 결론부 전문이다. ≪대순회보≫는 2019년 1월 현재 214호가 간행되었다.)


동학-천도교, 적선에 살고 적불선에 죽다


며칠 전 여러 종교의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일을 도모하는 자리에 참석하였다.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한 일인지라, 3.1운동 당시 최대 규모의 교단이면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가 오늘날 왜 이렇게 쇠락해졌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를 아울러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동학-천도교가 기미년 이래 100년 동안 지속된 ‘서세동점’과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서세동점이라는 말은 여러 겹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은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본의 제국주의는 서세동점이 일본에 의해 대행(代行)된 것이다. 다음으로 광복 이후의 분단 역시 서세[미-소로 대표된]의 동점의 결과였고, 6.25전쟁 이후 한국사회는 서구화(미국화) 일변도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안에서 우리 민족(민중)은 4.19혁명과 87년 민주화 그리고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쉬지 않는 혁명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촛불혁명정부’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서구적 학문 풍토(사상=정신)이 만연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서구에 경도된[이것은 ‘세계화’라는 전 세계적 규모의 경제체제에 편입된 결과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주적(?)으로 이를 내면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운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을 받아 안고 어쩔 줄을 모르는 사회 체제에 놓여 있다. 전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6개가 인구 5천만의 한반도 남쪽에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서세동점의 현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촛불혁명정부’라고는 하지만, (자주적 근대화=개벽화의 관점에서 볼 때) 문재인정부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태극기부대는 그런 점에서 순수하고/순진한 편이다(그 현상이 가시적이라는 점에서). 그 배후에 도사린 수십(근 백년)의 적폐세력은 때로 은밀하게 때로 노골적으로 여전히 이 나라의 운명을 자기들이 쥐고 있음을 굳게 믿고 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이 그러하다. 그러기는 싫지만, 현 문재인 정부가 ‘자주적 근대화=개벽파’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自覺)과 역량(力量)이 있는지, 최소한 의지(意志)라도 있는지 의심해 볼 수도 있다. 이것은 현 정부의 선의(善意)를 의심하는 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난 70년, 혹은 기미년 이래 100년, 아니 1894년 동학혁명의 좌절 이후 오늘까지 일본-미국(기독교)으로 이어져 온 서세동점의 그림자와 더깨가 너무도 짙고 두터움을 돌아보자는 말이다. 그러니, 이중-삼중-사중-오중의 서세에 치인 동학(천도교)가 오늘날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별고를 기약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 만세 / 투쟁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으나, 대부분의 언행들이 ‘동학(천도교)’를 중심으로 한 자주적 근대화=개벽파의 신문명 비전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태이다.


동학-천도교의 적불선


여기까지는 그날의 질문 – 왜 오늘날 천도교가 이처럼 쇠락하게 되었는가 – 에 대한 대답의 1절에 불과하다.(그날 그 자리에서는 이 1절조차 1/10 정도로 요약해서 말했으니(1분 남짓) 그 뜻이 얼마나 전해졌을지 걱정스럽다.) 다시 말해 그날 대답한(그리고 오늘 부연한) 1절은 ‘천도교 쇠락의 외적 요인’을 말한 것일 뿐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내적 요인’이다. 내적 요인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에 따라 외적 요인은 종속변수로서 현실화/현재화/현상화 된다.


동학(천도교)이 오늘날 쇠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내적 요인 중에 하나가 ‘포덕’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있다. 포덕이란 곧 ‘덕을 나누는 일’이고 그것이 다른 말로 적선적덕이라고 할 때, 포덕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말은 제대로 ‘적선적덕’하지 못하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학혁명 당시의 희생, 갑진개화운동에서의 희생은 차치하고, 기미년 3.1운동 당시 천도교의 희생(인적, 물적) 그리고 그 이후 천도교청년당을 중심으로 한 7대 부문운동을 통해 어린이, 여성, 청년, 농민, 노동자, 상민(商民) 등을 향한 계몽 및 권익 옹호 활동, 개벽사를 진지(陣地)로 한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 등은 보국안민의 적선적덕(積善積德)의 사례로써 결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과연 그렇다. 오늘날 천도교가 일찌감치 소멸하지 않고 현재의 위상(位相, 僞相)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배들의 적선적덕의 결과이다. (그러나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시기 동학(천도교) 활동가들의 적선적덕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오류가 개재(介在)하였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보론’ 참조).


그나마 그 적선적덕의 전통은 분단과 전쟁 이후로 급격히 소멸하고 적불선(積不善)의 풍조가 교단의 대세로 자리 잡는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지경에 처한 것 자체가 분단으로 인한 교세의 단절[斷切=生命力 萎縮]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경시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지만, 주체 역량과 환경 조건을 헤아려 난관을 슬기롭게 돌파하는 것이 동학 초기의 전통이었음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었음이 분명하다.


지속적인 ‘적불선’의 결과로 천도교는 해방과 분단 이후, 몇 차례의 반등 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대폭적인 교세 쇠락을 면치 못하였다. 분단(1953) 이후 천도교의 신앙 행태에서 대외적인 적선적덕(積善積德)의 사례는 지극히 한정된 형태로만 나타나고, 그나마도 시나브로 거세되어 갔다. 물론, 물질적인 측면의 행위만이 적선적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 지혜의 영역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적선적덕이 가능하다. 그러나 물질계와 정신-사상-지혜의 영역을 통틀어 1960년 이후 동학(천도교)는 적선적덕과 거리가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의 천도교로 귀결되었다.


한동안 천도교여성회에서 복지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최근에 해월 선생이 감옥에서 떡을 사서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그 사실에 착안하여, '해월떡'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던 일이 있으나, 지속성이나 질적 심화 또는 자기완성도를 갖는 적선적덕으로 나아가거나 계승되지 못하였다. 몇 년 전 출범한 '시천주복지재단'은 현대사회의 제도의 틀 속에서 본격적으로 적선적덕의 길을 열어 보자는 움직임으로, 오랫동안 목말랐던 적선적덕의 귀중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호사(好事)가 채 하나도 이루어지기 전에 다마(多魔)가 휘몰아쳐, 되려 교단의 추락을 가속화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그나마 희망은, 이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그날도 가능한 미래의 하나라는 점이다. 정녕, 고난을 거치지 않는 성공은 없는 법이다).


최근 발표된 '2018년 한국의 종교현황'(문체부 주관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사)은 참조할 만한 지표를 제공한다. 이에 따르면,

첫째, 종교단체가 설립운영하는 고등교육 종립학교는 개신교 109개, 천주교 15개, 불교 10개 등 순이다(총 154개). 그중 일반대학은 개신교가 61개, 천주교 14개, 불교 5개다. 초·중등 및 대안학교는 개신교 631개, 천주교 81개, 불교 30개 등의 순이다(총 851개).

둘째, 종교단체의 요양·의료기관은 천주교 186개, 개신교 102개, 불교 72개, 원불교 34개 등 총 399개다.호스피스 기관 및 단체는 개신교 94개, 천주교 38개, 불교 23개 순이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복지원, 복지재단 등 사회복지사업 단체는 개신교 259개, 불교 152개, 천주교 97개, 원불교 14개 순이다.

셋째, 해외 선교·포교사는 기독교가 170개국 2만7436명, 불교 30개국 593명, 천주교 62개국 171명, 원불교 23개국 125명이다.

넷째, 장병들의 종교활동을 지원하는 군종장교는 개신교가 258명, 불교 134명, 천주교 97명, 원불교 3명의 순이다.

그 밖에도 여러 지표들이 있으나, 이것만 보아도 동학-천도교 적선적덕의 실상을 가늠할 수 있다(이는 사실 빙산의 일각이다. 동학-천도교의 현실적 적선적덕의 위상은 위의 지표와 비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개신교+천주교)의 적선적덕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기독교(개신교+천주교)의 대대적인 성장을 재고(再考)할 수 있다. 즉, 현재까지 기독교세 성장의 요인은 첫째, 해방과 분단 이후 이승만 정권이 취한 서구 편향, 그중에서도 기독교 편향의 정책(이승만은 기독교를 ‘國敎’로 옹립하려고 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둘재, 그 연장선상에서 적산(敵産)을 편파적으로 불하받음으로 해서 기독교 선교의 물적 토대를 구축했다는 점, 셋째, 60년대 이후 고도 성장기에 ‘도시화’에 따른 정신적 공백을 채워 나간 기독교의 선교-교화 정책의 성공을 꼽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적선적덕’의 차원에서 기독교의 성장은 적선적덕(積善積德)의 결실이라고 본다. 첫째, 기독교가 일찍이 190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에 근대교육을 선진적으로 책임짐으로 해서 쌓은 덕(德) - 이 속에는 특히 여학교 부문이 두드러진다 – 둘째, 그 성과로 축적인 인적 토대(학생) 위에 3.1운동 당시 혁혁한 지도력과 기여를 함으로써 외래종교라는 혐의로부터 크게 자유로워지고 그 덕분에 민족의 최중심에 다가설 수 있었던 점과 그 중심점에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애쓴 적덕(積德), 셋째, 의료부문에서의 적덕(積德)의 결과로 해방과 6.25 이후 남한 사회에서 기독교의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 초기의 적선적덕과 그것을 순수(順守)한 성실무망(誠實無妄)한 기독교인들이 한국에서 기독교의 기적적인 성장을 일궈냈다는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기독교계에도 적선보다 적불선이, 나아가 적악(積惡)이 더 두드러졌다. 그 과보(果報)는 지금 당장 가시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번 가시화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기독교 성장기에 그 성장세를 누구도 저지할 수 없었던 것처럼. 불난리에는 살아도 물난리에는 못 산다는 말을 실감할 날이 머지않았을 수도 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는 그 자체로 지금 여기의 기독교를 위한 묵시록이다.


동학 - 개벽파의 시대, 다시 개벽을 부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서구화로서의 근대화에 대한 반성으로서 토착적 근대화, 자생적 근대화, 영성적 근대화로서의 개벽파(開闢派)를 재조명하는 움지임임 가시화하고, 개벽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 사회 부적응자처럼 여겨져 왔던, 우리 철학(사상=정신=영성=마음)을 하는 사람들이 제목소리를 찾고, 만들고,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노랫말은 참요(讖謠)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개벽파는, 이 시대 동학-개벽종교가 적선적덕(積善積德)하는 길을 찾아, 포덕하고 덕분하고 사랑하며, 자비하고,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하기를 바라고 믿는다


보론 : 천도교 민족운동(개벽운동)의 적선적덕과 과유불급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관점에서 보면 내 한 몸[동학-천도교단의 安慰/安位를 고려하지 않고 전심전력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으나, 적을 죽이지 못할 줄 알았다면, 훗날을 충분히 도모함이 옳다. 실제로 의암 손병희 선생은 3.1운동 전날 천도교 대도주인 춘암 박인호 선생에게 비밀리에 ‘유시문’을 내려 교단을 잘 이끌도록 하였다. 그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 독립의 전선에 투신하지만, 당신은 교단을 잘 이끌어 오만년 무궁토록 이어지도록 하십시오”라는 말이다. 유시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유시문(諭示文)>

불녕(不侫)이 오교(吾敎)의 교무(敎務)를 좌하(座下)에게 전위(傳委)함은 기위(己爲) 10년(1908.1.18.-인용자주)이라 갱설(更說)할 필요(必要)가 없거니와 금일(今日) 세계(世界) 종족(種族) 평등(平等)의 대기운하(大機運下)에서 아 동양종족(東洋種族)의 공동행복(共同幸福)과 평화(平和)를 위하여 종시일언(終始一言)을 묵(黙)키 불능(不能)하므로 자(玆)에 정치방면(政治方面)에 일시(一時) 진참(進參)케 되었기 여시일언(如是一言)을 신탁(信託)하노니 유(惟) 좌하(座下)는 간부(幹部) 제인(諸人)과 공(共)히 교무(敎務)에 대하여 익익면정(益益勉精)하여 소물망동(小勿妄動)하고 아(我) 오만년(五萬年) 대종교(大宗敎)의 중책(重責)을 선호진행(善護進行)할지어다.

1919년(大正八年) 기미(己未) 이월 이십팔일(二月二十八日)

대도주(大道主) 좌하(座下)


이 유시문에 따라 춘암 박인호는 교단 내에서의 위상(大道主=天道敎의 최고법인 大憲上 敎團 最高의 地位)에도 불구하고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로 물러선 곳도 최전선과 별반 다르지 않아, 박인호는 민족대표 48인[33인 중 31인과 지원업무 등 17인] 중 한 사람으로 일제 당국에 체포 구금되어 1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최종무죄).


3.1만세 이후의 천도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외 활동을 전개한다. 본문에서 말한 7대 부문운동을 진행하는 그룹(천도교청년당)이 있었는가 하면, 좌우익을 넘나들며 신간회를 주도하는 중요한 축을 이루기도 하였으며, 만주 지역에서의 무장 항쟁의 주요한 지지(支持) 세력이기도 하였다.


현 시점에서 볼 때 ‘과유불급’이라 함은 초창기 내적 역량을 다지는 데 주력한 시기(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가 지나치게 짧았다는 점, 그 이후(청년회-청년당-청우당)에도 역량을 슬기로운 배분 [내부 역량 강화와 토대(학교 등) 구축 對 외적 활동(신문화운동-유일당운동)] 함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교세(280만 명)의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수용-활용하지 못하였다는 점 등을 일컫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좀더 심도 있는 논구(論究)가 필요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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