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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3. 2019

말모이 이야기 (4) - 화동교당

- 신성한 말 14

[영화 말모이를 보았다. 중2, 초6인 두 딸[현서, 현빈]과 함께. '신성한 말'을 이야기하는 나로서는 꼭 보아야 할 영화였다. 감동하며 보았고, 할 이야기가 많다. 아무래도, 거듭해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중 네 번째


이번 회차 이야기는 매우 '위험'한 이야기일 수 있다. 

작가-감독의 의도나 바람과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1. 


영화의 막바지 - 조선말 사전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전국의 조선어 강사들을 모아서 '표준어 사정' 공청회를 개최해야 한다.

문제는 .. 일제 당국의 집요한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는 일..


전국 각지에서 부푼 가슴을 안고 공청회에 참석한 조선어 강사들.

공청회가 열리는 장소는 '화동교당'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붉은 벽돌 건물(실루엣).


그런데 그곳에 모인 조선어 강사들을 대상으로 류덕환(조선어학회 회장)은 뜻밖에도 

"우리 조선어 강사들이 모범적으로 당국-일제-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자!"고 웅변한다.

당연히 조선어 강사들은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한다. 

[천도교중앙대교당 장면은 실외 3~4초, 실내 30초 내외여서 - 내 기억에 의존

아는 사람이 아니면, 천도교중앙대교당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천도교중앙대교당 실내 장면은 거의 세트 설치 없이 촬영하였다.

이 대교당은 지은 지 97년이 되었다.]


2. 


화동교당!은 아마도, 작가-감독이 지어낸 용어일 터. 

그런데 이 용어에는 상징이 숨어 있다. 

'화동'은 실제 역사에서 '조선어학회 회관'이 있던 '화동'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 종로구 화동 129 - 감고당1길 13 = 윤보선가 맞은편 - 현재 표지석이 서 있다]

그다음 글자 '교당(敎堂)'은 적어도 영화상으로만 보면 천도교중앙대교당이다. 

실제 촬영장소도 천도교중앙대교당이다(종로구 경운동 88-삼일대로 457). 


천도교중앙대교당은 1921년 준공된 천도교의 중심 교당이다. 

이 중앙대교당 건축비 명목으로 모금된 비용의 대부분이 

3.1운동 비용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자금으로 쓰여졌으며

1919년 2월 27-28일 사이에 이 자리에서 '선언서'가 비밀리에 배포되었다. 

192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민족-문화 집회가 실제로 이곳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개최된다.

1920년대의 천도교중앙대교당 


그런데 작가-감독은 이 '민족적'인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류덕환이 '친일찬양 - 선동'을 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내보냈다. 

[실제로 일제 말기 '천도교'도 당시의 모든 종교-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어학회'와 마찬가지로 친일로 내몰리고, 

천도교의 지도자가 징병권유 연설을 하고, 비행기를 헌납하는 등의 친일 행위를 했다.]

이곳 천도교중앙대교당이 일제 말기 - 2차대전 막바지에 

일제에 징발되어 군수품 제작 공장으로 사용되기까지 했다는 걸 작가-감독은 알고 있었을까?


아무튼.. 


그 천도교중앙대교당 - 영화의 '화동교당' - 은 

류덕환이 일제의 감시망을 속이는 장소로 활용된다. 

나는 이 장면을 "역사의 아이러니"의 영화적 표현으로 읽었다.   


"3.1운동+각종민족운동집회"가 열린 민족의 성지(聖地)! 

그리고 "친일+징발"이 중첩된 공간 - 천도교중앙대교당!! 

그것은 어쩌면 당시 우리 민족이 겪는 고난의 상징은 아닌지...


3. 


그런데, 

'화동교당'을 박차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골목마다 쫓아가 비밀리에 '영화표'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판수의 친구들 - 영화에서는 동네 건달이나 그렇고 그런 잡역에 종사하는 

필부들 - 열 사람의 한 걸음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이다! 


그 영화표는 "대동아극장"에서 일본 군국주의(징용권장) 찬양 영화 관람표!

그런데, 표시된 입장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지막회)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口頭 통문'이 전달된다.


이윽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 출입문이 문을 닫히고..

극장 관람석에는 전국에서 모였던 조선어 강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판수(유해진)은 단상에 올라가 오늘부터 10일동안 이곳에서 '공청회'가 개최될 터인데

절대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는 걸 신신당부한다.


다시, 이윽고..

영화관 뒷문으로 류덕환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입장한다.

"대동아극장"으로 입장하는 류덕환과 조선어학회 회원들!!


이날 낮, '화동교당'에서 있었던 '친일 강연'은 일제의 감시망을 따돌리기 위한 쑈였던 것이다.


4.


"대동아(大東亞-이 자체로 '친일'적인 용어이다)극장"에서 

밤을 새워 '표준어 사정(査定)'을 위한 공청회가 진행된다.

민족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 - 화동교당"을 

친일의 현장으로 둔갑시켜버리고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의 화신(化身)이자 선전장인 

"대동아극장"을 비밀리에 민족적 거사가 치러지는 현장으로 그려내는

작가 - 감독의 마음 / 심장은 어떤 것일까?

[당연히 이것은 민족의 성지를 폄하하고, 친일의 현장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역사의 비극'과 '역설'을 드러내는 작가 - 감독의 상징 장치라고 본다]


나는 "천도교중앙대교당 - 화동교당"에서

"대동아극장"까지의 장면을 보면서

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뜬금없다'고 하겠지만,

천도교의 현대사를 알고 있는 내가 볼 때 그 장면은

너무도, 너무도 슬프고, 아프고, 처절한 장면이었다. 


영화의 그 장면 -- 천도교중앙대교당(화동교당)에서 '친일 강연'을 하는 그 시기에 

일제의 '분열책동'의 결과로, 민족의 희망(希望)이자 동량(棟梁)이던 천도교는 피폐화되어 갔다.

[천도교는 광복 이후에도, 남북 분단과 좌우분열 그리고 전쟁 이후 미국(서구-기독교)화로 치달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상황 속에서 급전직하로 쇠락해 갔다]


영화에서 '조선어학회'는 치욕(국민정신총동맹 가입)을 감내하면서도 

민족적 거사를 전개하는 단체로 그려지고 있었지만,

똑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던 오늘날의 쇠락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천도교가 '명백하게' 주도적이고 헌신적인 역할을 하였던

3.1운동 100주년에, 천도교의 추락과 쇠락과 영락의 모습은 더욱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것이 어찌, '천도교단'만의 문제랴! 

그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자,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말하지 말라!]


아무튼...

화동 조선어학회 터(좌상단 ●표), 천도교중앙대교당 (우하단 ●표) - 다음지도 인용


5. 


어쩌면, 작가 - 감독은 참으로 위험한 도박, 상상의 속내를 그 장면에 심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이 글 '서두'에 이번 회차 이야기가 '위험할 수 있다'고 한 대목이다]


그것은 친일과 민족운동(조선어 사전간행)이 뒤섞여 있는 장면이다. 

자칫 '친일'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않았을까?


나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쪽에다 내기를 걸겠다!

작가 - 감독이 친일 행위를 옹호하거나 최소한 '변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장치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실제의 역사는 그날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단하다. ... 는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뭐?

그에 대해서 작가 - 감독 - 영화가 스스로 답을 내놓거나

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는 역사의 질문이다!


나는 이 대목을 작가 - 감독이 

관객에게 열어 둔, 관객에게 맡겨 둔 장면으로 읽었다.

그리고, 그 어떤 장면보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장면'이라고 읽었다. 


그래서, 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듯 온갖 상상을 하며, 

제풀에 눈.물.이.났.다.


일어서도 죽고, 구부려도 죽는 그때 그곳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친일 발언' 속에 숨겨서까지 '조선어 사전'을 이루고자 했던 

절절함을 바라보며... 눈물이 났다.


어디, '조선어 사전'뿐이랴!


어디, '조선어 사전' 뿐이랴!



나는 이 사진을 보며, 눈물이 난다!

다시 개벽! 다시 개벽!

현재의 천도교중앙대교당


* 혹시 여기까지 읽으신 분, 꼭 영화를 보시기를 바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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