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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5. 2019

말모이 이야기 (5) - 순이

- 신성한 말 15

[영화 말모이를 보았다. 중2, 초6인 두 딸[현서, 현빈]과 함께. '신성한 말'을 이야기하는 나로서는 꼭 보아야 할 영화였다. 감동하며 보았고, 할 이야기가 많다. 아무래도, 거듭해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중 다섯 번째


1. 


순이!


4.3문학의 백미인 현기영의 소설 제목은 '순이 삼촌'이다.


에레나가 된 순이도 있다.(한복남 작곡 손로원 작사 안다성 노래)

"그날 밤 극장앞에서 / 그 역전 카바레에서 / 보았다는 그소문이 들리는 순이
석유불 등잔밑에 밤을 새면서 / 실패감던 순이가 다홍치마 순이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라." 


순이는 고향을 지키는 누이, 애인이기도 하다. 


순이생각 (물레방아 - 백영규 / 이춘근)


시냇물 흘러흘러 내곁을 스치네
물가에 마주앉아 사랑을 그리며 속삭였네 우리꿈을
내일이면 만날 그날이 돌아오건만
얼마나 변했을까나 우리 순이야
설레움에 내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네 순이 생각에
모두가 반겨주네 정다운 순이도
새소리 물소리 내 사랑 순이도 아름다운 우리 고향


순이는 그렇게 '민족 누이(여동생, 누나)'의 이름이다. 


2.

순이는, 말모이의 가장 '중심 인물'이다. 포스터 한가운데 서 있는 아이가 순이!

말모이에서 '순이'(박예나 분)는 김판수의 딸이다.

그가 소매치기(?)로 감옥 생활을 할 때 태어난 딸!

엄마의 바람 - 순하게 자라라 - 대로, 정말 순하게 커 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순이는 말모이의 '중심인물'이다. 

(포스터를 보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도, 순이가 나온다. 

우리는 모두 순이이거나, 순이의 아들 딸이다!


3. 


필자의 어머니는 1934년 생이다. 

아마도 영화속 순이와 한두살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듯하다.

나이만이 아니라 그 심성도 거의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본 가장 젊은 어머니 사진은 18세 전후 처녀 시절 사진.

(그것도, 어머니 장례식장에, 외가집 식구들이 가져온 사진이었다.

그 전에는, 아버지와 찍은 결혼 사진-사진관에서 둘이-이 제일 젊었을 적 사진이었다)



영화속 순이를 보며, 나는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일본말을 띄엄띄엄 말하곤 했다.

단어나, 간혹 TV에서 일본 말, 아는 것이 나오면 그 뜻을 내게 설명해 주곤 하셨다.


어머니는, 한글을 잘 쓰지 못하였다.

글자를 모두 쓰기는 하지만, 맞춤법이 엉망이고, 글씨도 비뚤배뚤.

훗날 내 생각에, 어머니는 초등학교에서 ㄱ, ㄴ, ㄷ, ㄹ이나 ㅏ, ㅑ, ㅓ, ㅕ 따위를

체계적으로 익히지 못하고, 글자를 모양째 익혀서 그리듯이 써 나간 듯하다.

그러다 보니, 초-중-종성을 차례로 구분해서 써야만 예쁘게 써지는 우리 글을

반듯하게 쓰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비뚤배뚤 글씨로 어머니는, 바닷길을 오가며 고생하시는 아버지께
'사.랑.하.는. 당.신.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곤 하셨다.


영화속 순이는 한글을 막 배우려다 말고, 

한글 수업이 폐지된 학교에 들어갈 처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온다.

아마, 순이는 입학 직후에는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지 못하였을 터

(다행히, 해방 이후, 번듯한 여학생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우수한 학생이었던 오라버니, 그리고 해방 후에는 교사가 된 오라버니 덕분으로 

열심 한글 공부를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맑은 순이!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해맑았으리!!

4. 


순이에게는 또 '내'가 보인다.


나도 어렸을 적 '조기교육'을 받았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훗날 "누나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바"로

초등학교(그때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누나로부터 ㄱ, ㄴ, ㄷ, ㄹ과

ㅏ, ㅑ, ㅓ, ㅕ 등을 공부하곤 했던 듯하다.


내가 좀더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누나가 아버님에게 쓴 편지글의 내용이다. 

(그때 내 아버님은 동해 - 제주 - 서해를 두루 다니는 

화물선 기관장으로 일하고 계셔서, 집에는 일년에 한두 번 오기가 어려웠다.) 


"요즘 길수는 국민학교에 가려고

글씨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 내가 기억하는 편지 내용이다.


방바닥에 엎드려 오라버니로부터 지청구를 들어가며

(그것은 물론 한글 대신 히라가나를 더 익히라는 말이었으나

그때 순이의 오빠 덕진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글씨 공부를 하는 순이의 모습에서

나는 그 나이 무렵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순이는 해맑게, 히라가나도 읊었다.


그 해맑음에서, 그 나이 무렵의 내 모습을 보았다. (^^)


[내가 어렸을 적에는 '너무도 예쁘장했다'고 

지금은 창원에 사시는 우리 누이는 증언해 주시곤 했다!]


5. 

해맑은 순이! 저 나이 때의 나도 저랬다! 해맑았다!!!! 내가 봤다!


사실, 영화 말모이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나'를 모델로 해서, 창조해 낸 인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격권(료)를 청구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생각만 ^^)


[기회가 되면, 그 근거를 밝히는 글을 쓰겠지만, 어디쯤에선가 이 이야기를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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