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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3. 2016

동학, 잊지 않음을 가르치다(3)

3. 어떻게 잊지 아니하는가? 심고(心告)와 식고(食告)

잊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심고(心告)하는 것이다. 심고는 어떻게 하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매매사사, 일거수일투족을 한울님께 아뢰는 것이다. 


“잘 때에 ‘잡니다’ 고하고, 일어날 때에 ‘일어납니다’ 고하고, 물 길러 갈 때에 ‘물 길러 갑니다’ 고하고, 방아 찧으러 갈 때에 ‘방아 찧으러 갑니다’ 고하고, 깨끗하게 다 찧은 후에 ‘몇 말 몇 되 찧었더니 쌀 몇 말 몇 되 났습니다’ 고하고, 쌀그릇에 넣을 때에 ‘쌀 몇 말 몇 되 넣습니다’ 고하옵소서. (중략) 일가집이나 남의집이나 무슨 볼 일 있어 가거든 ‘무슨 볼 일 있어 갑니다’ 고하고, 볼 일 보고 집에 올 때에 ‘무슨 볼 일 보고 집에 갑니다’ 고하고, 일가나 남이나 무엇이든지 줄 때에 ‘아무것 줍니다’ 고하고, 일가나 남이나 무엇이든지 주거든 ‘아무것 받습니다’ 고하옵소서(해월신사법설, <內修道文>).”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실제로 해 보면, 어렵지 않고(?) 그 감응(感應)은 대단히 크다.

이 심고는 지금도 동학(천도교) 하는 사람들의 기본 중의 기본 수양 덕목이다. 해 보면,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원불교에도 '심고'법이 있다. 


"(원불교의) 심고는 법회나 의식 등 격식을 갖추어 드리는 때 외에 언제 어디서나 홀로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각자의 소회를 고백하고 심축하는 원불교 특유의 신앙행위이다. 특히, 조석 심고를 의무화시키고 있다. 아울러 심고는 정신수양의 한 방법으로, 또 불공의 한 방법으로도 활용된다. 심고의 목적은, ① 자력과 타력이 함께 하고 천력(天力)과 인력(人力)이 합하는 데 있으며, ② 진리의 감응을 얻어 성공을 이루고 소원성취하는 데 있으며, ③ 확고한 심력(心力)을 얻어 천지와 그 덕(德)을 합하고 무궁한 천권(天權)을 잡아 천지 같은 위력을 발휘하자는 데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증산도에도 '(사배)심고'가 있다.


A.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가 나에게 기도할 때에는 심고(心告)로 하라. 사람마다 저의 속사정이 있어서 남에게는 말할 수 없고 남이 듣게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도 숨기거나 빼놓지 말고 심고하되 일심으로 하라.” 하시니라. (道典 9:79)

B. 조종리에 사는 강칠성(姜七星)이 아들이 없음을 늘 한탄하며 지내거늘 하루는 태모님께서 칠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고 정성껏 심고(心告)하라.” 하시고 사흘 밤을 칠성의 집에 왕래하시며 칠성경(七星經)을 읽어 주시니 그 뒤에 칠성의 아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태모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칠성 기운은 사람의 생명이니 자손은 칠성 기운으로 생기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1:57)


원불교와 증산도의 심고는 '기도'의 의미에 가깝다면 동학(천도교)의 심고는 그보다 더 '단순'하게 '한울님께 고하는 것'이다. 옛 예절에 '출필고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의 법이 있습니다. 동학의 심고법은 오히려 여기에 닿아 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심오하다. 


무릇 사람의 자식 된 자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행선지를) 말씀 드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의 얼굴을 뵙고 돌아왔음을 알려 드려야 한다. 노는 곳은 반드시 일정하여야 하고, 익히는 것은 반드시 과업이 있어야 하며, 항상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나이가 두 배 많은 사람을 대할 때는 부모처럼 섬기고, 10년 연장자를 대할 때는 형처럼 섬기고, 5년 연장자를 대할 때는 어깨를 나란히 하되 뒤를 따른다. 다섯 사람 이상이 한 자리에 있는 경우에 연장자의 좌석은 반드시 달리하여야 한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 所遊必有常, 所習必有業, 恒言不稱老. 年長以倍則父事之, 十年以長則兄事之, 五年以長則肩隨之. 群居五人, 則長者必異席.)」(<예기(禮記)> 곡례(曲禮))


심고 중에서도 한층 더 강조되는 것이 식고(食告)이다. 밥 먹을 때 드리는 심고라는 말이다. 

해월 선생께서 삼칠자 주문을 풀어서 말씀하신 데에서 식고의 이치를 가늠할 수 있다.

 

“주문 삼칠자는 대우주․대정신․대생명을 그려낸 천서이니 「시천주 조화정」은 만물 화생의 근본이요, 「영세불망 만사지」는 사람이 먹고 사는 녹의 원천이니라(呪文三七字 大宇宙 大精神 大生命 圖出之天書也 ‘侍天主造化定’ 萬物化生之根本也 ‘永世不忘萬事知’ 是人生食祿之源泉也(해월신사법설, <靈符呪文>)”


또 “만사지는 밥 한 그릇(萬事知 食一碗)”이라는 말이 동학의 지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밥 한 그릇’ 이치를 온전히 실현하는 것은 ‘식고’함으로써이다. 


“사람이 천지의 녹인 줄을 알면 반드시 식고(食告)하는 이치를 알 것이요, 어머님의 젖으로 자란 줄을 알면 반드시 효도로 봉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니라. 식고는 반포(까마귀 새끼가 어미를 봉양하는 것)의 이치요 은덕을 갚는 도리이니, 음식을 대하면 반드시 천지에 고하여 그 은덕을 잊지 않는 것이 근본이 되느니라. (人知天地之祿則 必知食告之理也 知母之乳而長之則 必生孝養之心也 食告反哺之理也 報恩之道也 對食必告于天地 不忘其恩爲本也, <天地父母>).”


다시 해월 선생의 말씀이다. 


“한울은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 안에 계시나니, 그러므로 만물의 정기는 한울이니라. 만물 중 가장 신령한 것은 사람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니라. 사람은 태어나는 것으로만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오곡백과의 영양을 받아서 사는 것이니라. 오곡은 천지의 젖이니 사람이 이 천지의 젖을 먹고 영력을 발휘케 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데 의지하니, 이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원리에 따라 사는 우리 사람은 심고로써 천지만물의 서로 화합하고 통함을 얻는 것이 어찌 옳지 아니하랴(<其他>). 


한울님(부모님)이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그저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가는지, 언제 오는지를 알려 주는 것, 그리고 받은 것(생명)에 대하여 고맙다고 말(마음) 한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하신다. 

그것이 동학이 가르치는 잊지 않음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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