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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20. 2019

"가나안 교회" 이야기

-손원영 교수가 그리는 종교 너머의 종교  

[이 글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지-2018.9.16-부터도 오래되었고, 개벽신문에 게재(2018년 11월호 (79호))로부터도 한참이 지났다. 그러나 그 내용과 정신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 '가나안 교회'는 지금도 매주 흥미로운 장소와 프로그램으로 하느님과 만난다.]


"다른 종교, 나아가 종교가 아닌 것과도 대화해야 합니다"

- 손원영 교수님/목사님을 만나다 


‘가나안교회’라는 교회가 있다. 

'가나안'은 기독교에서 '하느님'이 약속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이다. 전국적으로 이 이름을 가진 교회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가나안’은 ‘안나가’의 ‘거울언어’이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끈은 놓치지 않았으나, 지금 여기의 교회의 행태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교회에 발길을 끊은 신자를 “교회에 ‘안 나가’는” 신자라고 하고, 그들을 위한 교회를 꾸린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 가나안교회다. 


가나안-안나가 교회는 오늘 이 땅에서 교회를 거부한, 아니 실은 교회로부터 추방된 신도들을 위한 해방적 교회를 건설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와 무관한 이 시대의 민초들을 위한 ‘광야 가운데에 마련된’ 교회이다. 그러니, ‘가나안교회’는 교회이면서 교회가 아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서의 교회이지만, 세속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 시대의 평범한 주류 교회가 아니라는 점에서 교회가 아니다. 그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이면서, 또 목회자 아닌 분이 손원영 교수(목사)다.


2018년 8월 30일, 손원영 교수(목사)가 서울기독대를 상대로 한 파면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는 기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1심 판결 이후 많은 사람들의 일말의 기대―법의 결정에 순응―를 저버리고 학교는 항소를 결정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9월 16일, 손원영 교수(목사)를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뵈었다.



박길수(본지 주간, 이하 ‘기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손원영 교수(이하 ‘손’) : 학교에서 해직(2017.2) 당한 후 실업자가 되면서 덕분에 잘 쉬고 있고요,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재판도 진행하고, 얼마 전 1심 판결에서 승소했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이곳저곳 대학에 강의 나가고 있습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하하) 그리고 가나안교회를 매주 섬기고 있습니다.


훼불사건 - 모금 활동 - 해직 - 소송 


박 : 어려움이 많으실 텐데, 여전히 쾌활하시네요. 고맙습니다. 오늘 교수님을 뵙고자 한 건 사실 가나안교회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인데요, 그 배경이 되기도 하는 이야기라 지금 진행 중인 소송 이야기를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손 : 2016년 1월에, 경북 김천에 있는 개운사라는 절에 한 60대 기독교인이 들어가서 ‘불상(佛像)은 우상’이라면서, 불상과 여러 법구들을 훼손하였습니다. 그리고 비구니이신 주지스님께는 “당신, 하느님 안 믿어서 지옥 간다. 기독교로 개종을 해라.”라는 등의 막말과 함께 위협을 했어요. 그때 스님은 놀라서 치료까지 받았는데, 안정을 찾은 며칠 뒤에 주지스님이 그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저는 그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죠. 그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이건 공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내심 NCC, 한기총 같은 개신교 단체에서 유감표명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죠. 그런데 전혀 그런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독교 교육을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 ‘이건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페이스북에 ‘한 기독교인으로서,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죠. 또, 훼손된 불상과 법구를 복구하는 데 최소한의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공개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저 혼자 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종교평화에 관심 있는 교수님들과 같이 모금 활동을 했어요. 모금액은 많지 않았지만 스님이 마음만 받겠다고 하시고, 그 돈은 종교평화를 위한 일에 써 달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그것을 종교평화운동단체인 ‘레페스포럼’(대표 이찬수 교수/서울대)에 기부하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습니다[그 포럼의 성과를 모아 2017년 12월 말『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어』(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라는책으로 발간하였다]. 그 이후로 우여곡절이 좀 더 있습니다만, 결국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학교로부터 파면을 당했고,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취소소송을 제기 했지요.


박 : 개운사 사태 때 아마도 뜻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안타까움을 느꼈을 텐데, 실제로 필요한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지요. 앞에서 교수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의 양심으로 가만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 점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손 : 제 전공은 기독교 교육입니다. 기독교 교육을 저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독교적인 앎이 있고 또 기독교적인 삶이 있는데, 이 둘이 일치되기가 쉽지 않거든요. 기독교 교육은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그 점을 굉장히 강조해요. 기독교를 신앙한다면 당연히 기독교가 가르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걸 전문 용어로 ‘프락시스’(praxis)라고 합니다. 제 박사 논문의 주제도 프락시스였습니다. 종교 간 대화를 추구하는 분들도 프락시스의 관점에서 자주 이야기하죠. 평소 학생들에게 “네가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네가 지향해야 할 가장 기독교적인 모습이다.”라고 열심히 가르쳐 온 제가 막상 실천을 안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위선적인 잘못이니까, 힘닿는 한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자고 했던 게 그 일인 거죠.


박 : 앎과 삶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의 핵심이 아닐까 해요. 학교든 교회(종교)든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을 그 한마디로 귀결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단을 타의에 의해서 떠난 후에 현실 속에서 기독교의 실상에 훨씬 더 민감하고 직접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접하게 되셨잖아요.


손 : 그렇죠. 그 전에는 학교 내에서만 그런 얘기들을 하고 당위성만 강조했죠. 그 일을 겪으며, 어쩌면 광야로 내몰린 셈이죠. 그러나 그 광야는 텅 빈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불교 신자는 물론이고, 다양한 이웃 종교의 여러 분들하고 만났습니다. 그 자체로 큰 변화인데, 전에는 이론적이고추상적이었다 면, 이제는 실제적·구체적·체험적으로 저의 말 하나하나를 실증하고 실천해 나가게 되었지요.


박 : 교수님이 처한 실존적 사항은 단지 교수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계에 만연한 교회 세습이라든지 여러 가지 추문들에도 관계되고 나아가, 요즘 불교 조계종단도 큰 파문에 휩싸여 있는데, 종교계 전반에 걸친 문제를 대표하는 사건이라고 봅니다만….


손 : 네, 비슷한 일이 자꾸 벌어지니까 그런 종교계 전반의 문제에 대해 저한테 묻는 분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작년(2017)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점으로 해서 개혁의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역주행을 계속해서 과거로 회귀하고, 처음의 정신에서 많이 멀어져 가고 있어요. 500년 전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공격하던 가톨릭교회 이상으로 지금의 개신교는 윤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후퇴하거나 타락한 거죠.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건 저뿐만이 아니고 모든 종교(신)학자, 신앙에 고민이 있는 분들이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 : 저는 오늘날 종교계의 문제점들, 혹은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인데, 언론에서만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하면, 기독교회/인의 대다수가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것은 미디어의 속성에 의해 ‘과잉대표’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실현해야


손 : “한국 교회에 문제가 있다.” 이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명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죠. 오래전부터 가랑비에 옷 젖듯이 물들어 온 경우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건 아니고요.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미디어가 발전하다 보니까 부패의 정도나 심각성에 대한 소문이나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진 거죠. 과장됐다기보다는 더 피부로 많이, 빨리 와닿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실 기독교계 일부의 비윤리적이고, 반신학적이며, 탈(脫)하느님 신앙의 행태에 대해서는 거론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입장이고요, 저의 문제의식은 좀 더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나안교회’를 꾸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기독교가 한국 종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큰 종교들은 기독교(개신교, 천주교)는 물론이고 오래된 유교나 불교까지, 자생 종교가 아니고 다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입니다. 그런데 유교, 불교는 한 1,500년 역사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종교가 되었거든요. 그리스도교 역시 표면적으로는 이미 한국인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개신교가 130년, 천주교가 230년이 됐으니까요.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 종교인은 기독교인이 제일 많아요. 불교신자가 약 750만 명인데 기독교(개신교, 천주교)인은 약 1,400만 명이니까 거의 2배죠. 양적으로 보면 기독교가 한국의 대표 종교가 된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유교나 불교는 ‘한국 종교’라고 이해하는 데 반해, “기독교가 한국인의 종교냐, 한국의 종교가 됐느냐?”라고 질문할 때, “아직은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짧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이 기독교인이 된 배경에는 ‘한국인이 본래 갖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봐요. 말하자면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과 기독교의 하느님 신앙이 궁합이 맞았다는 거죠. 그래서 유교 중심 사회가 끝나면서 급속도로 기독교인이 늘어났다고 봅니다. 기독교가 ‘좋다, 나쁘다’ 말하기 이전에 한국인 고유의 하느님 신앙을 자연스럽게 기독교가 수용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늘어난 게 아닌가, 그래서 빨리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느님’이라는 말은 성경에는 없어요. 여호와, 야훼, 아도나이, 엘로힘 등이 기독교 신의 이름인데, 그 번역을 하느님이라고 했어요. 한국의 전통적인 하느님 신앙과 성경의 하느님 신앙이 서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거죠. 그런데 “한국인의 전통적인 하느님 신앙을 기독교가 얼마나 건강하게 품었느냐?”라고 할 때 좋은 답을 하기 어려운 거죠. 그 단적인 예가 하느님 신앙을 표현했던 전통적인 한국의 종교들을 다 우상이라고 해서 배척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고 훼손하고 비난한단 말이에요. 저는 이 간극을 극복하는 게 한국 교회의 미래라고 믿고 있습니다.


박 : 참 바람직한 생각인 건 알겠는데, 그런 기독교 이해가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 볼 때 보편적이고 타당한 이해인지는 의문이 드는데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같은 국가체계나 민족의 문화 전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신앙 자체가 중요한 것으로 저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하느님은 제도종교나 서구에 갇혀 있지 않는 분

아시아종교평화학회 준비를 위한 “종교와 평화 구축”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손원영 교수(사진 오른쪽)


손 : 예, 신학적으로 토론할 만한 주제입니다. 지금 제 얘기를 일반인들이 들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게 생각할 거고, 기독교인이 들으면 마음이 좀 불편할 수가 있죠. 그런데 저는 하느님이 제도종교로서의 기독교 안에 갇혀 있는 분은 아니라고 믿어요. 서구 사람들에게 독점될 분도 아니고요. 하느님을 서구의 방식(제도)으로 섬겨야 하고, 서양에서 정립된 교리 체계로 이해해야만 하는 것처럼 여기는 건 신학적인 오리엔탈리즘입니다. 물론 성서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누구나 믿고 고백해야 하지만, 성서의 하느님과 우리 한국 사람들이 오천년 이상 이 땅에서 살아오며 믿었던 하느님은 근본에서는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라는 이름은 빌려 쓰지만, 성서에서 증언된 하느님과 우리 조상들이 믿어 온 하느님은 다르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저는 공부하면 할수록 그 둘은 같은 존재라고 생각이 돼요. 이건 제 이론은 아니고요, 신학적으로도 충분히 뒷받침이 됩니다. 한국의 많은 신학자들이 그런 입장을 견지를 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하느님의 선교’ 신학이라고, ‘미시오 데이(Missio Dei) 신학’이 있습니다. 그 신학에서는 선교를 교회가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하신다는 거죠. 그 외에도 한국의 토착화신학, 풍류신학, 혹은 민중신학 등도 앞서 제가 한 이야기들을 많이 얘기하죠.


박 : 예, 그 부분은 다음에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교수님을 찾아뵌 직접적인 계기는 교수님의 가나안교회 활동이 오늘날 ‘탈(脫)종교’ 현상이 가속화되는 사회 현실에서 종교의 미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교회를 어떻게 해서 시작하게 됐고, 어떤 신학적 근거가 있는지요.


손 : 가나안교회는 제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학교에서 쫓겨나서죠. (하하) 많은 사람들이 제도로서의 혹은 조직으로서의 교회만을 교회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나? 다시 말하면 특정 건물에 모이는 것만이 교회냐, 또는 특정한 교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만이 교회냐, 그런 질문들을 오래전부터 해 왔고, 마침 이런 일이 벌어져서, 여기에도 하느님의 뜻이 있지 않나, 이제야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목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거죠. 


가나안교회는 ‘교회를 안 나가는’ 분들도 하느님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소명입니다. 가나안이란 말이 ‘안나가’를 거꾸로 한 말이지만, 신학적으로 의미가 있어요. 구약성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찾아가는 이상향으로 가나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국토(佛國土), 그게 가나안입니다. 신약성서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안 나가는 분들, 제도로서의 교회는 안 나가더라도 기독교 신앙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그 이상향으로 안내하는 그 역할을 해야겠다, 그것이 가나안교회를 시작하게 된 목표였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열린 성만찬

가나안 교회는 서로 맞절하며 시작하고 맞절로서 마칩니다. 동학처럼. 


박 : 구체적으로 가나안교회가 어떻게 운영이 되는 건가요?


손 : 예. 지금 가나안교회가 다섯 개가 있는데, 말하자면 매 주일 새로운 가나안교회가 마련됩니다. 1부는 모두 똑같은데, 항상 리마예전을 기초로 해서 성찬예배를 드려요. 이 성찬예배가 왜 중요하냐 하면, 지금 세계의 기독교 각 계파가 같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건 말하자면 이 성만찬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입니다. 그래서 세계 교회가, 1980년대 초반에 페루의 리마에서 모여서, 당장의 교회 일치는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같이 예배드릴 것을 꿈꾸면서 공통의 예배 형식으로 만든 것이 리마예전이에요. 리마예전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앞부분은 설교를 중심으로 하는 말씀의 예전이고, 뒷부분은 떡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성만찬 예전입니다. 


저는 개신교니 가톨릭이니 정교회니,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안 해요. 하느님을 믿고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다 같이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해서 지금 실천하는 거예요. 가톨릭이나 정교회 성직자들, 심지어 보수적인 개신교 목회자들이 저를 보면, 이단이라고 할지도 모르고요.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세례를 안 받은 사람한텐 성만찬을 안 주거든요. 근데 가나안교회에서는 누구에게나 다 성체를 드려요. 그래야 누구든지 와서 예배드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게 성경의 정신, 곧 예수 정신에 맞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가나안교회의 1부의 순서에서 항상 실천합니다.


박 : 성만찬이란 게 떡과 포도주를 준비해서 나누는 일종의 의식인 거죠?


손 : 네 그렇죠. 그게 제1부이고요, 이 예배의 목적은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거죠. “하느님 안에서 서로 자녀 의식,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서 서로 사랑의 교제를 가지는 것이 진정한 예배의 모습이다. 교회를 다녔든, 안 다녔든, 지금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다 하느님이 보기에는 다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 다음 2부 순서에 매 주일 다른 형식의 가나안교회가 열려요. 지금은 5개의 서로 다른 2부 순서가 있습니다. 2부에서는 꼭 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한국의 일반적인 교회에서 안 하는 프로그램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프로그램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제도적인 교회에서는 안하는 것들이죠.


첫 번째는 ‘열두광주리가나안교회’입니다. 여기서는 영성춤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피정입니다. 자연 속에서 ‘Spiritual Dance’라고 부르는 영성춤을 함께 춰요. 두 번째는 ‘젠테라피가나안교회’입니다. 여기서는 명상을 주로 합니다. 이때 싱잉볼이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명상은 종교인으로써 당연히 해야 하는데, 지금 주류 교회에서는 명상은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죠. 세 번째는 ‘길위의가나안교회’입니다 골목길 순례를 해요. 최근에는 서울의 골목길을 돌며 길 위의 유적지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중요한 영성수련의 한 차원입니다. 네 번째는 ‘마지종교대화가나안교회’입니다. 이웃 종교와의 대화를 주로 하죠.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나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어떻게 화목하게 살아가는지 중요해요. 타자를 비난하고 배제하며 홀로 사는 것에만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 타자를 어떻게 환대하고 한 형제자매라는 의식을 갖고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를 공부하는 시간이에요. 저에게 적용된 종교재판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직접 필요하죠. 다섯 번째는 ‘아트가나안교회’입니다. 여기서는 예술 곧 갤러리를 중심으로 해서 예술과 신학을 어떻게 가까워지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진행을 해요. 최근에 예술신학에 대한 관심이 많기도 해서 호응이 좋습니다.


그런데 가나안교회는 계속 바뀝니다. 지금은 다섯 개지만 앞으로는 현대과학과 신앙과의 대화도 할 생각입니다. 현대는 과학을 빼놓고 하루도 살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 과학을 신앙의 이름으로 멀리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요. 신학대학에서는 다양한 공부를 하는데 교회 현장에서는 적용이 안 돼요. 그래서 저는 배운 대로 행하자는 거죠.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것들은 이미 신학대학에서 다 공부해요. 그것들을 일반 신자들도 다 알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말을 좀 쉽게 풀어서 진행하고 있어요.


박 : 종교와 과학의 대화까지도 시도한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이른바 탈종교시대라고 합니다. 수천 년 동안 종교가 해 오던 역할을 대부분 각각의 분과 과학이 담당하고, 정신적인 것도 명상 단체 등이 더 성행하죠. 무엇보다 유사 이래 항상 종교가 세상과 생명세계를 걱정하고 위로하였는데, 요즘엔 오히려 세속으로부터 종교가 걱정거리가 되고 지탄거리가 되면서 종교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할 필요가 있는지, 또는 탈종교시대에 새로운 종교의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손 : 이는 종교학적으로 성-속의 관계 문제인데, 지금은 성-속의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라고 봅니다. 이해 편의상 일시적으로 구분할 수는 있어도, 본질에서는 거룩한 영역과 속의 영역을 절대적으로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거죠. 그 둘은 서로 교섭하고 교차합니다. 성(종교)의 영역에 서서 속세(세계, 사회)를 무조건 비판적으로 취급-언급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가 몸담은 곳이 종교(성) 영역이기 때문에, 속(사회)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종교성은 끊임없이 계발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가나안 교회 - 장소를 달리하고, 프로그램을 달리하며, 정해진 신자 명부 없이 무위이화로 모이고 예배드린다. 


박 : 기독교가 한국인의 최대 다수가 믿는 종교이지만 한국화되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자생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완전한 한국화를 이야기하시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손 : 그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하느님과, 우리 민족에게 끊임없는 희망과 삶의 에너지를 줬던 하느님이 다른 분이 아니라는 제 생각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는 거죠. 제 은사님인 유동식 교수님은 그걸 풍류신학이라고 풀었습니다. 최치원의 풍류도, <<삼국사기>> <난랑비서>의 기록에 근거해서 풍류신학이라고 푸셨는데, 저도 기본적으로 동의해요. 다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저는 제1풍류도가 최치원의 화랑 풍류도라면 제2풍류도는 동학이라고 생각해요. 최제우 선생의 체험은 같은 하느님에 대한 다른 체험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동학도 158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통일을 앞두고 제3풍류도가 나와야 하지 않느냐, 동학만도 아니고 서학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기독교만도 아닌, 전통적인 기독교와 제2풍류도인 동학을 넘어서는 제3의 풍류도가 나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이걸 혼자 ‘하늘[天] 신학’이라고 얘기를 해요. 다시 말해 하느님을믿는 신앙을, 기독교 입장에서 체계화하는 게 제 과제인 것이죠. 하느님은 기독교가 독점할 것도 아니고 동학이 독점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온 인류가 하느님을 함께 추구하고 형제애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서적 전통 위에 서 있으니까 교회라는 이름으로 그 생각을 체계화하는 거죠.


박 : 오늘 인터뷰 제목을 ‘손원영 목사에게 한국 종교/종교인/종교계의 길을 묻다’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기독교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계시지만, 사실 ‘문제’는 종교계와 전체에 만연해 있거든요. ‘탈종교’가 가속화되어 ‘앞으로 종교가 소멸될 거다’, ‘의미가 없다’며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많고 통계학적으로도 종교인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런 현실과 종교적 진실 ‘사이-너머’를 찾아낼 수는 있을까요?


손 : 탈종교라는 말은, 실은 제도나 교리로 정형화된 종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본래의 의미인 영성, 즉 종교성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계시는 한 종교 자체의 소멸은 있을 수 없다는 거죠. 지금은 그동안 종교라는 이름으로, 제도라는 이름으로, 교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들을 뜯어서 그 속살을 새 그릇에 담을 때입니다. 태초의 하느님이나 단군 하느님이나 예수 시대의 하느님이나 지금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다 같은 하느님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나 그걸 체험하는 인간은 늘 바뀝니다. 그럼 그에 맞게 하느님에 대한 고백과 표현은 바뀔 수밖에 없는데, 몇백 년 전 것을 절대화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탈종교라는 건 지금 그 작업을 하는 거죠. 오늘의 종교가 자기 나름대로의 영성을 끊임없이 다시 회복하면서 그걸 많은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는 성실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 : 지난 8월 말에 교수님이 1심 승소하셨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인터넷 기사에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어요. 절대다수가 손원영 교수님에게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낸 내용이었습니다. 그 댓글은 주로 “오늘과 같은 ‘개독교 천국’인 한국 사회에, 양심 있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열광하였지요. 그런데, 그 현상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좀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 : 네, 잘 보았어요. 그 댓글들을 표면적으로 보면 네티즌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기독교계(대학)의 부당한 행태에 분노하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판결의 정의로움(당위성)과, 그 판결의 주인공인 한 기독교인 손원영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호응을 접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어쩌면 그 기사에 열광하는 시민들(네티즌)은 역설적으로(!) “종교(기독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갈급함이 있어요. 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기를 많은 분들이 목마르게, 애타게 기다린다는 거죠. 그 댓글은 1차적으로는 “(손원영 교수가 법의 정의의 힘을 빌려) 기독교에 한 방 먹였다”고 열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시각은 허망함만 남길 뿐이죠. 저의 소송의 본질이 그런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 현상에서 오히려 “기독교-교단/교계학교/교인들이여! 나아가 종교인들이여! 제발 정신 좀 차려서 이 사

회를 정의롭고 맑고 밝게 하는 데 앞장서 주시오! 그래야만 내가, 우리가 행복하게 살 길을 찾을 수 있어요!”라는 바람을 읽었습니다. “제발 교회가 교회답게, 빛과 소금이 되어 우리를 ‘살 길’로 인도해 달라!”라는 절규를 보았습니다.


가나안교회 부탄 행복 특강

박물관에서 진행된 길위의 가나안교회를 마치고 


박 : 그에 대한 답으로 마련된 것이 가나안교회라고 한다면, 가나안교회는 기존 교회와 무엇이 다를까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해, 저는 종교의 본질은 무(無)와 허(虛)와 공(空) 속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가나안교회에는 무엇이 없을까요?


손 : 네, 좋은 질문입니다. 저희는 기존 교회가 강조하는 것을 다 무화(無化)하려고해요. (하하) 먼저, 교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헌금입니다. 저희는 헌금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헌금을 많이 하라고 얘기는 하는데 모인 헌금은 본인에게 100% 다 돌려줍니다. 초기에 교회가 부흥했던 배경에는, 유무상자 정신이 있었어요. 그걸 재현하는 거죠. 돌려받은 헌금이 본인에게 필요하면 본인을 위해 쓰고, 나아가 가족을 위해서 써도 되고, 또는 공동체를 위해서 기부하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목사의 설교가 없습니다. 교회는 사실 일반적으로 목사설교를 들으러 가는 거잖아요. 목사의 설교권 독점이 오늘날 교회의 폐해의 출발점이 된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가나안교회는 공동체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만 설교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성경 본문을 같이 읽고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그 말씀을 통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예배 중에 나눠요.


이게 좀 낯설죠. 저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3분 정도의 설교 준비를 해요. 그러나 여러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제 얘기를 할 뿐입니다. 그 다음에 건물. 저희는 건물(교회)이 없어요. 그래서 돈이 들어갈 곳도 없어요. 고정화된 전용 공간으로서의 교회(당)은 없지만 여건에 맞춰서 카페에서 하기도 하고, 길 위에서 하기도 하고, 갤러리나 식당에서도 하죠. 공간의 자유가 있어요. 다음으로 목사 사례비가 없어요. 자비량입니다. 저는 제 먹거리는 제가 제 일을 해서 벌고, 목회는 봉사 활동으로 해요. 또 교적부가 없어요. 매주 오는 사람이 달라요. 그분들 중에 어떤 사람은 한 달에 두어 번 와요. 나머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시는 분들이고 한 달에 한 번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매주일 모일 때마다 기대 반 걱정 반인 거죠. 오늘은 몇 명이 올까? (하하) 왜냐하면 정해진 게 없으니까. 장로니 집사니 하는 직분도 없어요.


박 : 네, 없는 게 많은 만큼 ‘없이 계신 하느님’에 가까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나안교회에 있는 건 뭘까요?


손 : 있는 것? 흠, 뭘까요? 우선 사랑이 있어요. (하하) 그리고, 중요한 건 하느님과의 관계잖아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로서의 기도 시간이 있어요. 그리고 예배가 있고, 또 오신 분들끼리 떡과 포도주 함께 나누고 친교하는 시간이 있어요. 또 진리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과 공간이 있어요. 종교의 알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면 다 가지려고 하죠.


박 : 네, 말하자면, 미래에 커지고 잘 되는 것보다 오늘 매주 그 시간과 그 장소에 충실한 거네요.


손 : 예, 오늘 오신 분은 다음 주일에 안 올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그날의 프로그램은 다시는 없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의도적으로 6개월에 한 번씩 평가를 해요. 이 교회(각각의 가나안교회 프로그램)을 계속할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로 변형할지. 그 평가에 따라 바뀌어서 지금 5개로 운

영하고 있는 거에요.


박 : 하나의 틀에 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손 : 예, 그렇죠. 무엇보다 교단에 소속된 것도 아니니까, 자유롭게 운영해요,


박 : 그래도, 지금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계시는데, 조금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손 : 그 부분이 전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죠. 저는 법적으로는 이길 것으로 보지만, 종교는 법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학교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있죠. 그런데 본질은 제가 신앙적으로 옳은 길을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학교를 설득하는 게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봅니다. 저와 학교 공동체가 내세우는 신학적 입장이 서로 달라서 학교는 제가 설립 이념을 훼손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저의 해직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는 게 법의 판단입니다. 저와 학교 사이에는 법의 판결과는 무관하게 평행선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좁혀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게 현실적으로는 제게 어려움을 주겠지만, 제가 짊어져야 할 제 몫의 짐이라고 생각해요.


박 : 교수님, 또 목사님의 삶은 어쨌든 그 사건을 전후로 갈라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죠.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갈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손 : 이번 일을 겪으면서, 종교, 특히 기독교가 이전에는 굉장히 푸근했다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본주의의 물이 너무 노골적으로 들어서 물신숭배의 양상을 띠게 되고, 경쟁적이 되었어요. 사람들을 품어 주고 여유 있게 해 주고, 각박한 세상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던, 그리고 등대 역할을 해 주던 교회의 모습은 어느덧 희미해졌어요. 신학을 공부하는 데에서도, 조금은 자유롭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마음, 잠시 멈춰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여지가 과거보다 눈에 띄게 없어졌어요. 조금만 생각이 다르면 이단시하고 마귀, 지옥행의 낙인을 함부로 찍죠. 타자를 배제하는 거에 너무 익숙한 문화, 그게 가장 큰 장애가 아닌가 해요. 예컨대 제 경우만 하더라도 1980년대 선생님들은 지금 제가하는 신학적 주장을 다 하셨거든요. 그때는 뭐라고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파면을 해요. 그러니 교수들이 몸을 사리지요. 각박해지고 좁아지죠.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이번 일을 통해 개인적인 보람도 있어요. 본의 아니게 학교 밖으로 나와서 보니까, 이 세상이 참 재미난 곳이에요. 학교 안에 있으면 조용히 선생으로 살다가 갔을 텐데, 광야처럼 막막한 이 세상에 나와서 보니까 뜻밖에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요, 또 그분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제 생각을 그분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보람이에요. 그분들이 제 이야기에 공감하고 말씀해 주시죠. 기독교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라, 본래 기독교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종교라는 것을 제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이 확인하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죠.


궁극적으로 이런 과정에서 제 신학을 정교하게 체계화해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질문하고 고민해 왔지만 그게 지금은 저의 신학으로 만들어져 가는 걸 어렴풋이 느껴요. 하늘신학! 요즘은 그걸 여기저기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해요. “하느님을 기독교만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개신교만 하느님 믿는 거 아니다! 하느님이라고 하는 믿음 하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배워야 한다.” 이게 하늘신학인데, 이번 계기를 통해서 체계화해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이걸 책으로 낸다면, 부제는 제3의 풍류도신학이 될 거예요. 다른 데서는 ‘예수한국풍류도’라고 한 적도 있어요. 하늘신학을 다른 말로 변하면 예수한국풍류도신학이다. 제1풍류도는 화랑풍류도, 제2풍류도는 동학풍류도인데, 저는 제3풍류도로서 예수한국풍류도를 했으면 좋겠다. 그게 제 하늘신학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박 : 예, 아주 기대가 됩니다. 그렇게 하늘신학이 자리매김해 가는 세상이 기독교뿐이 아니라 이 땅의 종교, 종교인, 종교계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세상이요,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성취되는 바로 그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끝으로, 개벽신문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손 : 동학이나 기독교는 모두가 다 하느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천도교와 기독교는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함께 형제애를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잘 살펴서 이 땅에 평화를 일구는 일, 특히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꿈을 이루어가는 일에 더욱 협력하여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박 : 오늘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는 ‘가나안교회’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 손원영 목사님(교수님)의 부당해고와 복직 투쟁 과정을 담아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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