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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6. 2016

동학, 잊지 않음을 가르치다(5.끝)

동학이야기 두 번째, 불망(不忘)

5. 망(忘)하면 망(亡)하리라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사람이 '현대인'이다. 수운 선생 당시에 세상이 혼돈에 처하고, 괴질과 외침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도 바로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조선 사람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를 빼앗아 자기의 도(서학)를 펼치고, 나기의 이익(제국주의)을 취하려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주역괘의 대정수를 살펴보고 삼대적 경천한 이치를 자세히 읽어 보니, 이에 오직 옛날 선비들이 천명에 순종한 것을 알겠으며 후학들이 잊어버린 것을 스스로 탄식할 뿐이로다(察其易卦大定之數 審誦三代敬天之理 於是乎 惟知先儒之從命 自歎後學之忘却, 동경대전, <수덕문>)


수운 선생은 자기의 본래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을 각자위심(各自爲心)이라 하였다. 각각의 사람들이 제 스스로 생겨나[爲]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마음[心]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이 이기심이다. 각자위심이 이면이라면, 이기심은 표면이다. 국가적 차원의 이기심이 제국주의이고, 계급적 차원의 이기주의자가 자본가들이다. 수운 선생은 이러한 각자위심, 망망(忘忘)한 마음을 보고 두려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此挽近以來 一世之人 各自爲心 不順天理 不顧天命 心常悚然 莫知所向矣, 동경대전, <포덕문>).

6. 망하지 않으면[不忘] 성인과 현인이 되리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본다. 잊지 아니하는 사람은 성인과 현인이 된다. 성인과 현인이란, 잊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나의 본래를 잊지 않는 사람이다. 나의 본래는 한울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너와 나는 모두'한 한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 깨달아 알며,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그것을 수운 선생은 동귀일체(同歸一體)라고 하였음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모든 존재는 똑같은 한몸(=한울님)으로부터 나온 존재이며, 우리는 모두 돌아가 한몸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것도 그것이다. 나의 처음 난 곳을 잊지 않는 마음, 기억해 내는 영감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회하고 반성하고, 다시 잊지 않기를 맹세하고, 마음공부하여 수련해야 한다. 


아직 참에 돌아가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해에 잠기어 마음에 잊고 잃음이 많더니, 이제 이 성세에 도를 선생께 깨달아 이전의 허물을 참회하고 일체의 선에 따르기를 원하여, 길이 모셔 잊지 아니하고 도를 마음공부에 두어 거의 수련하는 데 이르렀습니다(未曉歸眞之路 久沉苦海 心多忘失 今玆聖世 道覺先生 懺悔從前之過 願隨一切之善 永侍不忘 道有心學 幾至修煉, 동경대전, <축문>).


무엇으로 수련하는가? 그 핵심이면서 기초는 동학의 이십자(삼칠자) 주문이다. 그것은 잊지 않도록,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도록 고안된, 얻어낸, 내려주신 글이다.   


내 또한 거의 한 해를 닦고 헤아려 본즉, 또한 자연한 이치가 없지 아니하므로 한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강령의 법을 짓고 한편은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 절차와 도법이 오직 이십일 자로 될 따름이니라(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故 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一以作不忘之詞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동경대전, <논학문>).


강령주문과 본주문으로 구성된 21자 주문은 이러하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동경대전 <주문>)


그리고, 그중 잊지 아니하는 글의 의미가 드러나는 대목은 이러하다. 


“…'영세'라는 것은 사람의 평생이요, '불망'이라는 것은 생각을 보존한다는 뜻이요, '지'라는 것은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 덕을 밝고 밝게 하여 늘 생각하며 잊지 아니하면 지극히 지기에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느니라(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故 明明其德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동경대전, <논학문>).


먼먼 길을 돌아, 이렇듯 단순한 곳에 이르렀으나, 다시금 결론은, 잊지 아니하면 만사지에 이르러, 지극한 성인이 된다는 것이다. 성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잊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훗날 의암 손병희 선생도 이를 확인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현은 그렇지 아니하여 항상 나의 본래를 잊지 않고 굳건히 지키며 굳세어 빼앗기지 않으므로, 모든 이치의 근본을 보아 얻어 모든 이치가 체를 갖추게 하며…(聖賢不然 恒不忘我本來 固而守之 强而不奪故 觀得萬理根本 萬理具體 徘徊心頭 圓圓不絶 自遊遊不寂于慧光內 萬塵之念 自然如夢想 是謂解脫心解脫 卽見性法 見性在解脫 解脫在自天自覺, 의암성사법설, <무체법경> '진심불염').”


동학은, 동학의 스승님들은 이렇듯 간절히, 구구절절히 잊지 아니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잊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하리니... (끝) 


* 2016년 5월 셋째 주 동학공부 모임은 5월 18일 오후 6시, 수운회관 1207호에서 진행됩니다.

   [개벽신문]에 연재중인 "우리말로 된 최초의 철학(박소정)" 독회입니다. [참여문의 : sichunj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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