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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10. 2019

개벽하는 마음 : 개벽의 수양학을 준비하며

- 최근의 개벽파와 개벽학의 흐름들 속에서


<개벽신문>과 ‘개벽파’가 촉발한 “개벽+(다시개벽 부흥)”은 “개벽학, 개벽학당, 개벽포럼, 개벽종교, 개벽저널, 개벽뉴스레터, 개벽2.0, 개벽대학, 개벽마을, 개벽살림(살림개벽), 개벽문명론(문명개벽), 3.1개벽” 등으로 분화와 집산을 거듭하며 확대 재생산 일로를 걷고 있다. 한시가 다르게 새로운 생각이 보태지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담론이 생겨나고, 한 주가 다르게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1.


올해 초 닻을 올린 <개벽파선언>은 다른백년 사이트(http://thetomorrow.kr/)에 연재되기 시작하였는데, 조성환-이병한 개벽파의 쌍두마(雙頭馬)가 매주 1편씩 담론을 주고받으며 개벽파-개벽학(개벽+)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과제들을 구체화하며 그 구독자-애독자들을 중심으로 ‘개벽+’의 밑둥을 튼실하게 만들고 있다. 3월 말까지 전체 일정의 절반을 온 셈인데(6월 말 완결 예정) 그동안 개벽종교의 탄생과 동학혁명, 그리고 3.1혁명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온 담론은, 4월부터는 해방공간에서의 개벽파-개벽학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 골수에는 동학-개벽종교와 한국근대사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뼈대와 살집은 한반도를 넘어 동서 세계를 아우르고, 근대(시기)에 맴돌지 않고 고금을 넘나드는지라 흥미진진한 논의는 단연 개벽파-개벽학 기운을 북돋고 마음을 진동(振動)하는 북소리가 되고 있다.


2.


3월 21일(수)에는 서울 북촌 ‘원불교 은덕문화원’에서 개벽포럼 제1강이 도법 스님을 연사로 모시고 진행되었다(원불교사상연구원, 은덕문화원 주최). 개벽포럼은 담론과 이론, 사상과 철학 방면에서 일어나는 다시개벽 부흥의 기운을 실천의 영역에서 매진해온 분들과 공공(公共)함으로써 ‘개벽학’의 전체성이 고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개벽포럼을 주관하는 조성환 박사는 “개벽포럼에 초대된 전문가가 종래에 한국사회에 (다른 영역, 주제, 담론으로 - 편집자 주) 많이 소개된 분이 라고 할지라도 ‘개벽’이라는 새로운 틀로 대화를 이끌어 가면 다른 이야기(개벽학적인 담론 - 편집자 주)가 전개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포럼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도법 스님은 이날 ‘생명평화와 개벽’이라는 주제로, 개벽포럼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 주셨다.

3.


학술적으로는 이미 『한국 근대의 탄생 - 개화에서 개벽으로』(조성환 지음, 모시는사람들)라는, 개벽파의 부활을 확신하는 단행본도 나왔을뿐더러, 3월 1일을 전후로 여기저기서 진행된 학술발표회에서도 ‘개벽파, 개벽학, 다시개벽’의 역사성과 현재성과 미래성에 초점을 맞춘 발표들이 소개되어 적잖은 호응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도 3월 26일에 여의도의 광복회관 강당에서 열린 ‘의암 손병희선생 공훈 선양 학술회의’(2019년 3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기념)에서 <3.1혁명과 의암 손병희의 개벽사상>이라는 발표를 하였다. 필자는 수운 최제우 선생의 “다시개벽” 사상, 그를 계승한 해월 최시형 선생의 “후천개벽” 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의암 손병희 선생의 개벽사상을 “인물개벽(人物開闢)”으로 명명하고 그 내용으로 “정신개벽, 영성개벽, 문명개벽”의 세 측면을 제시하였다. 이로써, 현재 활활발발히 생생하는 “개벽+” 운동에도 오롯이 반영될 가치를 담아내려고 하였다(발표 이후 약간 수정을 가하여, 정신+영성을 하나로 묶고, ‘제도개벽’을 추가하여 영성개벽, 제도개벽, 문명개벽으로 재편하였다).

발표하는 필자(오른쪽). 3.1혁명과 의암 손병희의 개벽사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4.


"개벽종교"라는 프레임을 발명하고 (문명사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처음으로 이 단어 학술 논문에서    2013 맹수 교수님이라고 한다) '학술적'인 뒷받침으로 오늘의 '개벽학' '개벽파' 흐름의 동력을 만들어내 준 것은 단연 원불교사상연구원(원장 박맹수)의 '콜로키움'과 연구 성과들이다. 이미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간)을 출간한 바 있으며, 현재 제2권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가제)를 편집중이다. 이러한 단행본은 단지 논문을 집필하고 모아서 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주 공부모임(올해 3 '개벽학연구회'라는 정규 연구단체로 체계화하였다)을 통해 토대를 다지고, 월 1회 전문가 발표(콜로키움)을 통해 그 성과를 검증받고, 연례적으로 국제학술발표를 통해 극내외적인 확장과 심화를 거듭해 온 성과라는 점에서 단순한 출판물이 아니라, 개벽학, 개벽파 운동의 든든한 중심축 역할을 해 준다고 할 수 있다.


5.


지난 4월 3일에는 개벽학당(開闢學堂; 堂長 이병한)이 네 번째 일정으로 오전에 조성 박사의 강의(‘이치를 따지는 선비’)를 하고, 점심 식사 후 오후 강의(이병한 진행)를 하기에 앞서서 ‘신농제(神農祭)’를 진행하였다. 스스로를 벽청(闢靑=開闢靑年)으로 부르는 개벽학당 당원(堂員)들이 주최-주관한 ‘신농제’는 개벽학당 인근에 ‘텃밭’을 마련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것을 하늘과 땅(속의 벌레들에게까지)에 아뢰는 행사로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개벽학당의 공부 과목은 철학강좌, 영성수련(요가), 춤수련에 이어 하늘-땅과 더불어 생생(生生)하는 농사에까지 확장되었다. ‘확장’이라는 말이 풍기는 폭력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이론과 실천, 마음과 몸을 아우르는 개벽학당의 공부는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불어오가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신농제의 전반부는 먼저 천지신명께 고하는 축문을 낭독하고 축시를 낭독한 후, 모든 참례자들이 각각 농사에 임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천지신명께 바치고, 제삿술을 바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기해년 정묘월 스물여드레 날에 서울 백사실 계곡 텃밭에서 개벽학당 벽청들이 하늘과 땅을 일으키고 바람과 비를 다스리며 온 우주가 공유하는 햇빛과 달빛 별빛을 내려 주시는 자연 앞에서 삼가 아뢰옵나이다.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든다’는 마음으로 비록 비옥한 농토가 없지만 도시 한복판 백사실 계곡 가 자투리 텃밭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땅을 살리고 씨앗을 지키는 농사를 시작하나이다.


올해 농사를 시작하는 개벽학당 청년들이 순환을 원칙으로 하는 텃밭 농사를 통해 풀, 벌레, 멧돼지, 미생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또 하나의 우주를 경험하게 하소서. 씨앗부터 밥상까지 직접 농사지어 먹을거리로 연계해 봄으로써 먹을거리의 소중함과 농사, 농부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게 하소서.


여러 생명체들이 공생하며 사라져 가는 자연의 순리를 통해 지속 가능하고, 단순소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노력과 배움의 농사가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척박한 도시에서 끊어진 순화의 고리를 이어 보고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농사 과정이 자본이 만들어낸 경쟁과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자급하는 삶의 경험이 되게 하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모진 비바람과 강렬한 태양, 미세먼지 속에서도 우리의 결심이 흩어지지 않게 하옵시고, 건강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올해 농사를 통해 개벽학당이 더욱 신명나고 재미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2019년 4월 3일, 개벽학당 농부들 올림.



근래 보기 드문 봄 햇살 속, 선경(仙境)임이 분명한 백사실(부암동) 계곡에 낭랑 한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여러 번 되읽어도 물리지 않는 글발-마음발이 아직 부화하지 않은 계곡물 속 도롱뇽 알들에게는 태교가 되고, 흙속에 진작 와서 기다리던 벌레와 미생물들에게도 듣기 좋은 음악이 되어 신농제에 천지신명, 한울님이 감응하심이 몸과 마음으로 역력히 체험되었다. 한 구절 한 단락도 허투루 하지 않고 ‘개벽하는 마음’을 담아낸 글이 천지인(天地人) 간의 ‘모신 한울님[侍天主]’에게 오롯이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이렇게, ‘개벽 농사’라는 새 장[場, 章, 帳]이 열리[開闢]고 있었다.


6.


필자는 현재 ‘개벽 미학’이라는 이름을 염두에 두고 글 한 편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미학’이라는 이름에 값하기보다는 단지 ‘개벽파의 눈으로 문학 예술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단계에 도전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이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개벽미학’이 축성되고 개화하리라 믿는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연말, 동학혁명을 소재로 하는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을 읽으면서, 토착적 근대 혹은 영성적 근대에 관한 상상력과 시적 선언을 발견한 내용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마침, 4월 5일에는 신동엽 50주기 학술대회가 열리는바, 그중에 “신동엽과 영성적 근대”(김형수)라는 글이 발표된다고 하여, 그 내용을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2016년에 ‘여성동학다큐소설’을 표방하며 모두 13명의 여성작가들이 여성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동학혁명’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창작하여 시리즈(총 13권)로 발간한바 있고, 그 2차분에 해당하는 소설들이 3명에 의해 집필중이다. 또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파란만장한 휴먼스토리”를 골간으로 하는 대하역사드라마 ‘녹두꽃’이 48부작으로 제작되어 오는 4월 26일부터 방영을 시작한다. 그 속에 “개벽으로서의 동학”의 마음과 사상과 역사가 얼마나 형상화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또 없는 대로 ‘동학과 개벽’의 담론을 대중화 일상화해 나가는 데 큰 보탬이 되도록 하는 일은 개벽파의 몫이다.


7.


지금 필자의 손에는 두꺼운(688쪽) 소설『 100년의 촛불』(손석춘 장편소설, 다섯수레) 한 권이 들려 있다. 이 책의 제목 ‘100년의 촛불’은 1919년 1월 5일부터 2월 22일까지 천도교인들이 3.1혁명을 앞두고, 촛불을 켠 채 49일간 기도를 하던 일부터 2016년의 촛불혁명을 거쳐, 올해 2019년 3.1혁명 100주년에 이르는 시간을 포괄한다. 이야기는 3.1혁명 촛불을 처음 켠 의암 손병희와 그 부인(비서) 주옥경, 그리고 그들과 켜켜이 교류하던 신채호 선생과 부인 박자혜 여사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시작하여 2016년의 광화문 촛불 현장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는 가족사와 한국 근현대사를 그려 보이고 있다. ‘심미주의 미학’과 대비되는 ‘인지주의 미학’을 떠올리는 저자의 말(나가는 말)에서 짐작되는바, 이 소설은 앞서의 대하드라마 ‘녹두꽃’과 더불어 지난 100년의 역사를 개벽파의 관점으로 다시 서술해 나가는 데 좋은 마중물이 되리라 믿는다(이 소설은 ‘독서공방’을 거쳐 다음 호에 좀더 상세히 재론한다).


8.


며칠 전에는 ‘동학학회’의 한 임원과 ‘동학 연구’의 현황과 장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최근의 개벽파-학의 움직임에 대해 소개하고, 동학 연구에 관한 오랜 전통과 수백 편의 연구 논문, 그리고 핵심 전문가들을 망라한 동학학회가 새로운 동학 연구 - 개벽학의 움직임을 간과하지 말고 봄기운을 타고 떨쳐 일어나는 새 생명과도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기독교나 역사학계에서는 갖가지 ‘연구 성과물’이나 ‘3.1운동’에 관한 조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작 ‘3.1운동을 주도했다’고 자타가 공인해 온 동학(천도교) 안팎에서는 그 성과가 미미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깊은 탄식을 주고받았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는 나름의 연구, 발표 조명들이 진행되었을 수 있으나, 오랫동안 ‘3.1운동’에 관한 자랑을 입이 아프도록 되뇌어 온 것치고는 그 결과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것은 1차적으로는 주체적인 역량의 문제(동학-천도교단의 책임)라고 해야 할 테지만, 2차 3차적으로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사상적, 철학적 지형의 불균등함의 결과라는 점에서 단지 동학-천도교단 내부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개벽파-학의 자연스러움과 당위성과 필연성이 재확인된다.


9.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송도에서 열린 ‘확대 국가관광전략회의’에 설민석 역사강사(?)가 참석하여 내뱉은 말은 새삼 부아가 치밀게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베를린 장벽 방문 경험과 지난달 한 방송프로그램 출연 중 군사분계선 100미터 앞까지 갔다 온 경험을 들먹이며 “종전선언이 되는 그날”이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위기가 고난으로 가득차고 힘들수록 전 세계는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이상, <미디어 오늘> 2019년 04월 02일 인터넷판 기사 참조) 설 씨의 논리가 이른바 박근혜의 ‘통일대박론’과 무엇이 다르며, ‘지금의 위기와 고난이 힘들수록’에 ‘전 세계가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식의 발상은 말문마저 막히게 한다(그런 논리라면 우리나라에 최루탄이 난무하던 때나 핵실험과 미사일이 빈번한 일마저 ‘기회’인 셈이 된다). 무엇보다 그가 몇 년 전 민족 대표 33인을 폄훼하고 명예를 훼손한 죄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자라는 점에서, 3.1혁명 100주년인 올해에 그를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자리에 앉힌 사람들의 머릿속이 궁금하기 그지없다. 이야말로 ‘인사 참사!’의 결정판이며, 이명박근혜 정권을 대체한 문재인 정부의 역사의식이 어디쯤에 맴돌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문재인 정부가 3.1혁명 100주년 맞이하고 보내는 모습과 결과들을 보며 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지금 개벽파-학의 싹이 불승감당(不勝堪當)의 기세로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한국 사회의 99%(이상)는 “어디만큼 왔나? 아직 아직 멀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10.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상황이 마침, 4.3항쟁 71주년을 맞이하면서 불거지고 있다. 4.3제주항쟁에 대해서는 ‘진보정권’(김대중-노무현-문재인) 하에서 꾸준히 역사적, 법률적 재평가와 명예회복 등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그 속도와 깊이와 넓이가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올해는 유독 그 당시 ‘토벌’의 선봉에 기독교 기반의 ‘서북청년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이 두드러지게 조명되고 있다. 그 대개의 내용은 서북청년단의 잔학성, 그 희생자가 된 제주 4.3민중들의 무고함과 역사적 정당성(단정반대, 3.1혁명 기념)을 재조명하고 복권하기 위한 논설들이지만, 또 다른 의의도 주목을 요한다.


즉 ‘서북청년단’ 등장과 성장과 소 멸(?)은 월남한 ‘서북청년’(이북 출신) 중 기독교 청년들이 주축을 이룬다는 것이 이 사태의 출발점이다. 그들의 위세에 기대를 걸고 모여든 이북 출신 청년들의 참여, 또는 민중의 지지를 얻고 있는 좌파에 대항하는 우익 세력을 조성하려는 미군정 등의 후원에 힘입어, 수많은 부랑 청년들이 가입을 이끌어 내면서 서북청년단은 순식간에 수십만 회원을 거느린 단체로 급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4.3항쟁을 진압하면서 위력을 과시하고, 6.25전쟁 이후에는 거의가 ‘기독교’라는 지붕 아래에 스며들어 오늘날 한국사회의 ‘거대 기독교 세력’의 원점을 이룬다는 점이 이야기 제1부의 종점이다.


그들은 ‘빨갱이!’를 20세기 한국 산(産)의 성경 삼아 학살과 친일 세력(잔재가 아니라 몸통이다!)의 부흥의 선봉장이 되었고, 이후 한국 사회를 친미, 반공, 친기독교 일색으로 조성하는 주축이 되었다. 19세기에 ‘황사영 류’의 서학(천주교-개신교)이 서세동점의 선봉장이 되었다면, 20세기 중엽에는 ‘서북청년단’ 류의 서학(개신교)이 서세동점의 선봉장이 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 한국사회의 건강성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고 현실을 왜곡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러한 사태는 이야기 제2부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태극기부대’와, 그들과 쌍생아적인 모습을 점점 노골화해 나가는 정치 집단의 행태의 전후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관속에 넣어 무덤 속에 파묻었다고 생각했던 적폐세력이 기세등등하게 부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이 또한 개벽학-파가 극복(배제, 배타, 배척이 아니라 包越로써!)해야 할 우리의 이면(裏面)임이 분명하다.



11.

 

개벽 미학과 더불어 필자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은 ‘개벽 수양학’을 정초하는 일이다. 필자는 ‘수양으로서의 동학’ ‘동학 수양론’에 관한 글을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수양론’이란 동아시아학 전체에 공통되는 특성으로서, 동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자칫 ‘동학 수양론’을 강조할 경우 동학을 ‘유학-성리학’의 맥락에 자리매김해 버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몇년 동안 고민을 거듭해 오고 있다. ‘수양론’에 관한 성리학의 입김과 저력이 워낙 깊고, 두텁고, 넓어서 ‘동학 수양론’이 유학 또는 삼교(유불선)와 다른 차원에서 마련되었다는 점을 논증하고 그 실상을 제시하는 방법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길이 마땅치 않았다. 그동안의 ‘동학 수양론(수행론)’은 ‘수심정기론’이나 ‘주문수행론’이라는 점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유학적 수양론’의 ‘대중화’(평등화, 보편화, 일상화)라는 점을 구명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 듯하지만, 필자는 왠지 2%(이상)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개벽파-학의 성장에 힘입어 동학의 수양론을 ‘개벽의 수양론 혹은 수양론의 개벽’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함으로써 동학의 개벽적 성격, 다시 개벽을 향한 동학의 활로를 수양론에서 찾을 수 있다는 데 착안하게 되었다. 앞서 제시한 다시개벽, 후천개벽, 정신개벽, 제도개벽, 문명개벽 등의 가치들을 아우르면서 수심정기나 삼경, 팔절, 수도법 등의 수양론 원전들을 재조명하는 길이 열리는 듯하다. 개벽의 수양론은 개벽파-학이 개화학과 사상이 ‘연구’와 ‘실천’ 사이를 왕래하며 동어반복을 되풀이하는 데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한다.


12.


이러한 개벽파-학의 흐름에 중심을 잡아줄 매체로서 ‘개벽저널(가칭)’을 준비하는 모임도 회를 거듭하며 그 깊이와 갈래를 심화-확장해 나가고 있다. 아직은 더 많은 가능성과 다양성을 향한 문들을 열어 놓은 채, 주체(인적 토대)를 형성하고 대상을 파악하며 특히 새로운 세대와 시대, 새로운 과학과 기술,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을 학이시습(學而時習)하는 단계이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떨림은 주체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빅뱅은 폭발이지만, 그 폭발을 낳은 것은 ‘떨림’이었다. 지금 ‘개벽저널’을 준비하며 경험하는 떨림이야말로 ‘다시개벽 2.0’으로 폭발(개화)을 준비하는 태동(胎動)에 다름 아니다.


13.


다시 개벽운동의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닻을 올리다!!


1860년의 동학 창도와 1894년이 동학혁명이 개벽파의 제1기라면 1900년 이후 개화(자주적)운동과 3.1혁명, 1920년대 개조(신문화)운동과 해방공간에서의 신국가건설 운동까지가 제2기, 6.25 이후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0, 70, 80년대의 산업화 87년의 민주화(정치, 경제)운동(시작)와 2000년대 이후 잇따른 촛불운동과 촛불혁명이 제3기 운동이다. 이제 제4기이자 다시개벽운동의 새로운 2기(100년 만의 부흥으로서)는 개벽 수양학을 밑바탕에 두고 제반 개벽학이 다양하고 다변하고 다채로운 꽃과 열매를 피우고 맺으며 다시 그 씨앗을 퍼뜨리는 시기로 전개되어 갈 것이다. 다시, 다시 개벽의 날들이 화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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