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위한 질문 찾기 : 아픔이 길이 되기를 (7)
이 글은 2018년 12월 27일 천도교 용담수도원(경주)에서 진행한 ‘한울연대 동계수련 특강’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이 특강의 제목은 ‘ 아픔이 길이 되기를 - 다른 동학, 새로운 천도교를 위한 질문찾기’였다. 여기서는 주제(主題)와 부제(副題)의 자리를 바꾸었다. 이 중 '아픔이 길이 되기를'은 김승섭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8) 제목에서 ‘영감’을 얻었다. <필자 주>
1. 나는 지금, 누구이며 무슨 말을 하려 하는가? (1회)
2. 오늘의 동학-천도교인은 누구인가?
3. 지금, 어느 세상인가? (이상 2회)
4. 동학-천도교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3회)
5. 오늘의 동학-천도교에 던지는 질문 몇 개 (4회)
6. 동학-천도교의 시대구분(5-1)
6. 동학-천도교의 시대구분(5-2)
7. 전통적인 천도교의 시대구분(인식) (이상 5회)
8. 졸부귀불상의 시대구분
9. 시대과제 대응과 발전동력 양상의 시대구분 (이상 6회)
동학은 '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함'은 '음양'의 묘합으로 이루어진다. 음의 측면이 빠진 '동학하기'는 허깨비짓이고 공중에 집짓기다. 그 음의 측면은 '공부'하기이다. 그 양의 측면은 '실천궁행'이다. 그러나 음의 측면, 즉 공부하기도 결국은 궁행함으로서 이루어지고 실천궁행을 통해서도 공부하기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천도교인은 ‘천도교 공부’를 할 때이다. 천도교에서 공부의 본령은 ‘주문공부=마음공부’이기는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그리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천도교에서 소홀히 취급되어 온 ‘학문공부=마음공부’를 투철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심학으로서의 ‘학문공부’는 자기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마음(我執-에고)을 강화하고 재확인하거나 ‘내가 옳다, 내가 더 낫다’는 것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함(하는 것)을 깨닫고 확인’하며, 지금까지 내가 아는 것을 비워 내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현대사회의 ‘학문=공부’ 개념과는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수양으로서의 학문’이다. ‘수양’이라는 키워드에서 ‘주문공부’와 ‘학문공부’는 만난다.01 나는 (오늘의) 동학의 본령은 ‘수양학’이라고 믿는 중이다. 02
특히 앞서 각주에서 인용한 해월신사의 말씀 “무릇 사람이 일을 할 때에 한가해지기를 기다린 뒤에 책을 읽는다면 평생토록 책을 읽을 날이 없을 것이고”에서 제시하는 ‘책’은 수양과 수행과 학문이 만나는 플랫폼이다.03 지금 천도교인은, 책을 읽어야 한다. 천도교 공부하기로서의 책 읽기는 이리응사(以理應事) 정좌존심(靜坐存心)04 이래의 일용행사와 표리를 이루는 것이며, 원형이정(元亨利貞) 유일집중(唯一執中)05 이래 성인의 공부와 상통하는 것이다.06
백두산 천지를 온전히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수양을 할 수 있기 위해서도 누대에 걸친 적선적덕(積善積德)이 필요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수련에 참여하시는 분은 부모님이나 조상님, 아내-남편이나 미래의 후손의 적선적덕의 여경(餘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07 그래서 해월신사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양의 근본을 아는가 모르는가. (중략) 이 근본을 투철하게 안 뒤에라야 바로 한울을 안다고 이르리라. 무엇으로써 음양이 되었으며, 무엇으로써 귀신이 되었으며, 무엇으로써 조화가 되었으며, 무엇으로써 명이 되었으며, 무엇으로써 기운이 되었는가.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않는데 이르러야 가히 도를 이루었다 할 것이요,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음과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음을 확실히 투득해야 가히 덕을 세웠다 말할 것이니, 그렇지 못하면 탁명이나 하였다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해월신사법설>'심령지령')
왜 그런가. 한울님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오히려 이상해져서 수심정기하고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동경대전>'포덕문')
이것을 해월신사는 이렇게 부연하여 가르치셨다.
“없은 뒤에는 있는 것이요 있은 뒤에 없어지는 것이니, 무는 유를 낳고 유는 무를 낳느니라. 없는 데서 생기어 빈 데서 형상을 갖추나니, 없는 듯 비인 듯한지라, 보려 하나 보이지 아니하고 들으려 하나 들리지 아니하느니라.” (<해월신사법설>'허와실')
수양 공부의 핵심은 이러하다. 수양은
첫째,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지 않는 사람,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은 하는 사람이 되는 공부’이다.
둘째, ‘보이지 않는 데서 볼 줄 아는 사람, 보여도 보지 않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공부’이다.
셋째, ‘들리는 데서 듣지 않을 줄 아는 사람, 들리지 않는 데서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공부’이다. 이것이 오늘 동학-천도교인의 교양이 되어야 한다.
수운 선생이 일찍이 ‘지극한 이내 도는 3년 불성(不成) 되게 되면 그 아니 헛말인가’ 하신 3년 동안 이러한 수양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도성입덕의 천도교’의 출발점이다.
(1) 지금 천도교는 세상 사람을 가르치거나 구원하거나 보국(輔國)을 주업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배울 때다(용시용활/도성입덕) 수운대신사의 원형적인 교리는 물론이고, 해월 선생의 최초 법설인 만인평등의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한 사회적, 국가적, 민족적(남북) 과제이며, 적서차별 철폐(cf. 흙수저-금수저)08 철폐, 반상 구분(cf. 정규직-비정규직) 철폐 등도 여전한 과제이지만, 지금은 세상을 향하여 그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니다. 지금 천도교는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치성(熾盛)하는 가을-겨울에 접어들었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나무가 나뭇잎을 모두 떨구듯이, 지금은 무엇을 하려 하기보다,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쉬어야 할 때다. 어떻게 쉬고, 무엇을 배우고, 누구에게 배울 것인가?09
(2) 공부로서의 책 읽기가 필요하다. 주문공부(마음공부)라는 원질을 제외하고, <용담유사>와 <동경대전>을 외우고 그 해설을 익히는 공부의 전통은 19세기에 마련되었다. 20세기에는 서구식 학문이 도입되어 교인-세상 사람 교육에 적용되었다(1900년대 초 교리강습소 이래). 근대적 학교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천도교에는 다시 19세기 식 공부방법과 일부(종학대학원)의 20세기적 방법론이 인용되고 있다. 20세기에 천도교가 실험했던 공부 방법과 시행했던 공부 제도는 사회(국가)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는데도, 이제 그것들은 쳐다볼 수도 없는 규모와 높이로 멀어져 버렸다(ex. 보성전문 -> 고려대학교). 게다가 지금은 21세기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와 구글링이 양자의 속도로 작동하는 21세기! 그러나 다행히(!)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천도교 전통의 공부방법이기도 한 공부가 있다. 바로 독서다. 독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아니다. 다음 글을 보자.
“인문학을 공부해서 뭐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 제1장을, 겨우 19쪽까지만 읽고 나서 나는, 엄마와 싸우지 않게 되었다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다음 날 종일 술병에 시달리는 엄마를 웃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그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라고 말이다.”(출처 : https://goo.gl/qcxukw)
오직 주문과 경전으로서만 ‘마음공부’를 하던 시대의 인간은 한편의 진화와 다른 한편의 퇴화를 거듭하였다. 그 퇴화 항목 1순위가 ‘독서력’이다. 그러나 독서력은 마냥 퇴화해도 좋은, 대체 가능한 항목이 아니다. 독서는 이 ‘양자시대’에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cf.천도교중앙도서관)10
(3) 정말 큰일이 난 것은, 비혼/미혼의 증가, 저출산, 인구 고령화다. ‘결혼 장려’ ‘출산 장려’ ‘젊음 산업’이 그에 대한 해결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상론의 피력과 현실적인 정책 제안, 그에 앞선 질책은 할 수 있을지언정, 아직 감동적인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일찍이 의암성사는 권도문에서 “「도」란 것은 사람이 한갓 지켜서 사업만 할 뿐 아니라, 진리를 온전히 체득하여 어김이 없게 함이니, 어찌 삼가지 아니하리오. 사람이 세상에 남에 한울 성품으로 말미암지 아니함이 없건마는 능히 그 성품을 거느리는 이가 적고, 누구나 집에서 살지 않는 이가 없건마는 그 집을 잘 다스리는 이가 적으니, 어찌 민망치 아니하리오.”라고 하셨다. 우리 시대의 ‘도가완성(道家完成) 철학’이 나와야 한다.
(4) ‘뜻으로 보는 천도교사’11의 서술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12우리 시대의 삼재팔난은? (삼재: 화재, 수재, 풍재)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계층운동은 ‘어린이운동에서 노인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13 우리 시대의 보국안민운동은? 생명평화운동도 필요하지만 ‘내 코가 석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둘 사이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보국안민은 또하나의 허수/허상/허위이다. 자유주의의 인내천주의도 과제 중의 하나다. 예컨대, 결혼과 출산은 내(여성-권리) 문제인가? 일자리와 출산장려를 연계하는 것은 정의로운가, 행여나 공경스러운가?
(5) 동학의 자랑(?) 중 하나는 삼불입(권불입, 부불입, 사불입)의 전통(?)이다. 한때는 영광스러운 이름표였으나, 지금은 짐스러운 술어이다. 가난한 집에는 돌아가신 조상(제사/행사)이 돌아오고, 부유한 집에는 나그네(행운)가 찾아온다.(다만, 조상은 피붙이이고, 나그네는 머물다 떠나는 존재이다) 돈은 돈을 부르고, 행복은 행복을 부른다. 그러나 무엇으로 부자가 될 것인가? 죽어라-죽어라 하면 죽는다. 돈이 만능인 세계에 인내천은 무엇인가? 지금 천도교는 무엇으로서 부자가 될 수 있는가? ‘돈’은 아닌 듯하다.14 ‘정치적 권력(영향력)’도 아닌 듯하고, 학문적 역량(대학)도 (가면 좋으련만) 거리가 너무 멀다. 여전히 역사? 교리와 사상? 천도교에는 왜 “힘 있는” 지식인, 정치인, 문화예술인이 없는가(인물 가난)? 동학-천도교 160년사는 ‘인물상해’의 역사이기도 했다.15
(6) 우리 시대의 주유천하가 필요하다.16 수운대신사가 그러했고, 해월신사, 의암성사가 역시 그러했다.17 또 1900년간의 인재영입은 ‘주유천하’의 다원화였다.18 오늘의 세계를 주유천하한다면 ① 유물론(唯物論)의 세계와 유신론[唯天論]의 세계(⇒지구적 재앙/인류종말 위기)를 목격해야/할 것이며 ② 4차산업혁명으로 신인합일(神人合一=호모+데우스)이 전개되는 광경을 목격해야/할 것이며 ③ 무한통신(연결), 무한소비용(3D프린트, 무인자동차, AI)의 디스-유토피아가 전개되는 것을 목격해야/할 것이다. ④ 욕망의 극대화(– 생산력 극대화)의 결과로 직면한 기후변화의 반격을 목경해야/할 것이다. ⑤ 네비게이터가 길치를 낳고 스마트폰이 전화번호 기억을 앗아가듯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확장으로 점점 ‘알고리즘교의 신자(노예)’는 늘어가고, 인간의 많은 부분은 퇴화해 갈 것이다.19
(7) 이러한 모든 잡답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 ‘도성입덕으로서의 천도교’하기이다(개념의 내용을 채우는 일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종교가 존재할 가치나 이유가 없다면, 그것을 고집할 까닭은 없다. 그마저 놓아버리는 것이 ‘그분(한울님)이 보기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신과 인간이 지금만큼 가까워진 적이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호모데우스’,(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호모데우스 - 미래의 역사>>, 김영사, 2017.) 즉 ‘신이 되는․될 수 있는․된 인간’이라는 말이 ‘신은 죽었다’는 말보다 더 널리 회자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신 없는․사막의․황량한․절망의 세계․문명․우주’로 가는 길과 ‘신과 더불어․한 몸으로 사는 세계․문명․우주’로 가는 길의 갈림 길에 서 있다. 어느 세계․문명․우주가 우리의 실제 미래가 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다.20 이러한 종교적 상상력의 계발(啓發)을 촉구하면서, 그 출발점으로 기미 독립선언서를 종교적 상상력과 종교적 낭만성을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읽어 보자. 이러한 종교적 상상력의 부활이야말로, 미래의 종교를 재구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21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은 세계를 위한 갱신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격동이 20세기의 참신한 이데올로기를 낳은 것처럼, 다가오는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을 맞이해서도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10년은 치열한 자아성찰과 새로운 사회-정치 모델 구상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자유주의는 1930년대와 1960년대 위기 때처럼 다시 한 번 자기 혁신에 성공해서 이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전통적인 종교와 민족주의는 자유주의자가 주지 못하는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들은 아주 오랜 지혜를 활용해서 갱신된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오랜 신이나 민족뿐 아니라 근대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마저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가 된 것일까? 22
또, 새로운 이야기(콘텐츠) 발명(발명!이다, 창작보다 센 의미로)은 새로운 미디어 창조(발명)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해월신사 시대의 통(유)문이나 경전간행, 의암성사의 신문(만세보)이나 출판(보성사), 1920년대의 개벽사(개벽지 등 잡지)와 ‘청년당’(‘黨’이다), 우리 시대의 ‘개벽신문’ 등이 미디어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SNS에서 유투브까지 모두가 ‘미디어’다. 각각의 미디어는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한다. 이 시대 ‘도서관’도 하나의 ‘미디어-플랫폼’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이야기를 하되, “천도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와, “천도교로서 이야기하기”를 구분해야 한다. 지금껏 100여 년 동안 99% 이상, 우리는 ‘천도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세상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였다. ‘천도교로서 이야기하기’가 천도교 활동의 본령이다(cf. 동민회, 한울연대, 보국안민실천연대의 ‘성명서’). “천도교야말로 과학적인 종교?”(cf.불교와 양자역학)라는 식의 ‘제 논에 물대기’ 혹은 ‘제 무덤 지가 파기’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최근의 한 논문(앞의 <제4의 동학 정체성을 위한 조건들>)은 천도교의 정체성이 시대를 거치며 변천하였고, 특히 정량적(定量的)인 측면에서 동학(천도교)의 힘은 무의미한 수준(0.1%)에 그치고 있으므로, 정성적(定性的)인 측면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 “바로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나기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시민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일 것이기 때문이다.”(앞의 논문 37쪽)라고 하였다. 이를 현대적인 용어로 하자면, ‘소비자’ ‘독자’의 ‘니드(need)’에 부응하는 것이다.
둘째, “바로 종교적·비종교적 배타성에서 벗어나기이다. 위의 양적 조건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동학이 종교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아니라 시민의 안녕을 위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가 핵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동학은 종교적 정체성을 가져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동학하는 사람이 모두의 안녕을 위한 가치를 탐색하고 실현해가는 개인이라면, 동학 공동체란, 다름 아닌, 그런 사람들이 모인 가치 중심의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앞의 논문 38-39쪽)라고 하였다. 요컨대, 이 시대에 동학은 기존의 정체성을 넘어서는/비껴서는 제4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성입덕으로서의 천도교’하기에 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도성입덕이 단순히 자기(수련)으로 침잠하고 내폐(內閉)하는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다음으로 ‘공동체-연대’를 제시하고, 끝으로 다른(초월하는) 동학-천도교를 제안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제 마지막에 도달했다. 최근 ‘개벽파’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조성환, 이병환, 박맹수, 박길수 등은 ‘개벽파’를 자처․자임․자신하며 ‘개벽종교’ 담론(박맹수-원광대학교)23이나 ‘개화에서 개벽으로’ ‘영성적 근대화’ 담론,24 ‘지구적 개화’ 담론(이병한25) 등을 개벽신문이나 단행본, 학술대회 등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개벽파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개벽종교로서의 동학(동학, 증산교, 원불교, 대종교)은 곧 자생적․토착적․비서구적․영성적․지구적 근대화로서 전지구적 차원의 ‘비서구적’ 근대화와 다른 ‘영성적 근대화’를 모색하였고, 그것이 지금 이후의 지구-인류-세계에 다시금 요구되고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인용문이 그 비전을 잘 대변한다.
서세동점의 끝물이다. 서구적 근대의 말세이다. 동과 서는 비로소 재균형을 찾아가고, 구대륙과 신대륙의 위상 또한 전변한다. 이웃나라는 '신시대'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는 '(다시) 개벽'이다. 만인과 만국과 만물이 연결되는 개벽의 새벽을 예감한다. 모심과 섬김과 살림의 원리를 깊이 긴히 천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백년, 개화파가 주류였다. 민주화 세대 또한 진보/보수, 좌/우로 갈리었으되, 개화파의 후예이기는 매한가지였다. 20세기, ‘구시대의 막내’였던 것이다. 21세기, 다른 백년으로 진입했건만 여태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철지난 길항이 지루하다. 적체이자 적폐이다. 백년간 고독했던 ‘개벽파’를 다시 호출해야 할 시점이다. 3.1 운동 일백주년, 2019년이 적기이다.26
우리가 그 길로 가는 길의 입구는 어디인가?
우리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던 처음에 이미 준비해 두었던,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비로소 던지는 질문을 다시 해 보자. “천도교(동학)란 무엇인가?”28
나는 지금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 시대구분론을 통하여 끊임없이 ‘천도교 그랜드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 ‘지금은 천도교에 그랜드 디자인’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그랜드 디자인은 이 시대 천도교의 ‘틈새 전략’일 수 있다. 이미 이 세계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 스케일의 담론들은 충분히 많이 나와 있지만, 애초에 이 세계에 대한 가장 원대한 스케일의 디자인을 제시한 동학-천도교는, 최근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불편한 몸[물적 토대]에도 불구하고 오직 ‘정신력’으로 세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가 되어 유언으로 ‘신은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우주 속으로 당당히 소멸해 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물망처럼 얽히고설킨 가운데, 현실적인 제약 조건 하에서는 활로가 보이지 않는(필자 입장에서) 이럴 때일수록 오직 정신(마음)과 정성과 정도(正道)로서 상대적 비교우위를 가진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쩌면 ‘개벽파’일 수도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성배(聖杯)와도 같은 ‘사유(私有, 制)의 아성이 흔들리면서, 공유(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현실을 연장하면, 자본주의 이후 세계체제 가운데 천도교의 동귀일체, 유무상자 경제체제의 자리를 마련하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자는 신인간(2018.11)에 쓴 ‘고비원주’의 메시지처럼, 지금은 그런 ‘그랜드 디자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지난 세월의 천도교와 과감히 결별하고 누에고치가 고치 속으로 들어가 동면을 취하듯이, 지금은 동면[冬眠/고비원주]할 때라고 말한다.
어느 것이 더 적합한지 정해진 답은 없다. 답이 있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계산적으로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을 찾아가는 도정(道程)이 곧 동학-천도교를 하는 일이다. 비관적인 전망 속에 그래도 ‘그랜드 디자인’을 한다면, 그것은 ‘스몰 디자인’과 병행해서, 융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지금의 동학-천도교에 필요한 것은 그랜드 디자인을 품은 스몰디자인이다. 그랜드 디자인을 추구하기에 동학은 아직 작고-낮은 자리에 있다. 그러나 '스몰'로 감당하기에 동학의 꿈은 너무도 원대하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를 담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의 동학-천도교의 스몰디자인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① 꿈(상상)을 꾸자! - 잠을 자야 꿈을 꾸지! ② 공부하자! 공부해야 남 준다. ③ 비우고, 버리자! 비워야(상실, 실패, 좌절을 인정해야) 채워갈 수 있다. ④ 전략을 재편하라. 전략이란 자원 분배의 원칙(우선순위)29이다. ⑤ 천도교도서관은 이 시대 최고의 그랜드 디자인이다(내 머릿속의 도서관).30 그리고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도성입덕으로 천도교하기’이다.
01 ‘수양학’으로서의 ‘학문’, 그중에서도 ‘동학-천도교’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내는 것은 내 오랜 학문적 과제이다. 그리고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에서는 세계사상(종교)사를 ‘수양학’이라고 하는 틀로 재구성하는 문명사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서양(학문)의 눈으로 서양과 동양을 보아오는 데서, 동아시아학=동학=수양학의 눈으로 세계(사상)사를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02 그 밖에도 동학(천도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1) 무극대도 (2) 다시개벽지도 (3) 보국안민지도 (4) 한울님에 이르는 길[시천주, 인내천] (5) 전통 사회에서 누구나 부모 되는 교육 없이 부모가 되고 효자/효녀가 되었다. (6) 서당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지금은 ‘부모학교’ ‘신부학교’ ‘육아교실’ ‘요리학교’ ‘노인학교(대학)’ 등 수십 가지의 학교가 있다. 뿐만 아니다. 고등학교만 해도 <특수목적고등학교>에 ‘국제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마이스터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체육고등학교’가 있고 <특성화고등학교>에 ‘상업고등학교’ ‘공업고등학교’가 있고 그 밖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여자고등학교> <남자고등학교>가 있다. 대학, 중학은 물론 대안학교, 심지어 “각종학교”도 있고 “혁신학교”도 있다. 임상욱은 지금 천도교에 필요한 것이 수운의 제1정체성, 해월의 제2정체성, 의암의 제3정체성이 이은 “제4의 정체성”이라고 하였다. 임상욱, 앞의 글.
03 “앞으로 세상은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계층 사회가 된다!!”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고정아 옮김,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비즈니스북스, 2016.4.15. 표지 참조.
04 <해월신사법설>'대인접물', “일이 있으면 사리를 가리어 일에 응하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공부를 하라.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심술에 가장 해로우니라(有事則以理應事 無事則靜坐存心 多言多慮 最害心術也).”
05 <동경대전>'수덕문', “원형이정은 천도의 떳떳한 것이요, 오직 한결같이 중도를 잡는 것은 인사의 살핌이니라. 그러므로 나면서부터 아는 것은 공부자의 성인 바탕이요, 배워서 아는 것은 옛 선비들의 서로 전한 것이니라. 비록 애써서 얻은 천견박식이라도 다 우리 스승의 성덕으로 된 것이요 선왕의 옛 예의를 잃지 아니한 것이니라(元亨利貞 天道之常 惟一執中 人事之察 故 生而知之 夫子之聖質 學而知之先儒之相傳 雖有困而得之 淺見薄識 皆由於吾師之盛德 不失於先王之古禮 ).”
06 필자가 욕심임을 무릅쓰고 ‘천도교중앙도서관’을 추진한 까닭이다. 오늘에 "천도교단"의 살길을 굳이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천도교중앙도서관’이다. “독서는 일종의 ‘침묵 수련’이다. 나의 말을 하지 않고 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배철현)
07 <용담유사>'교훈가', “그러나 이내 집은 적선적덕(積善積德) 하는 공(功)은 자전자시(自前自是) 고연(固然)이라 여경(餘慶)인들 없을소냐. 세세유전(世世遺傳) 착한 마음 잃지 말고 지켜내서 안빈낙도(安貧樂道) 하온 후에 수신제가(修身齊家) 하여 보세. 아무리 세상사람 비방(誹謗)하고 원망(怨望) 말을 청이불문(聽而不聞) 하여 두고 불의지사(不義之事) 흉(凶)한 빛을 시지불견(視之不見) 하여 두고 어린 자식 효유(曉諭)해서 매매사사 교훈(敎訓) 하여 어진 일을 본을 받아 가정지업(家庭之業) 지켜 내면 그 아니 낙(樂)일런가.
08 인(人)이 내천(乃天)이라. 고로 인(人)이 평등(平等)하여 차별(差別)이 없나니 인(人)이 인위(人爲)로써 귀천(貴賤)을 분(分)함은 한울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니라. 우리 도인(道人)들은 일체 귀천의 차별을 철폐토록 하여 스승님의 본뜻을 따르라. 양반과 상놈의 차별을 차별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게 하는 일이오, 적자와 서자를 구별하는 것은 집안을 망치는 일이니 우린 도인들은 앞으로 적서의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도문에서는 일체 차별을 없애라. -->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게 하는 일이요, 인서울대와 지잡대를 차별하는 것은 교육을 망치게 하는 일이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은 인륜을 망치게 하는 일이요, 정보 격차를 방치하는 것은 인간성을 망치게 하는 일. -> 의료서비스 차별 / 초인(超人, DNA조작/호모데우스)과 범인(凡人) -> 주거 불평등/교육 불평등
09 ‘한울님은 쉬지 않는다’나 ‘일하는 한울님’ 스토리는 재편되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해석에 앞서 질문이 존재한다. 그 말이 맞나? 첫째, 지금은 워라밸이 대세인 시대이다. 둘째, 지금은 일자리 부족 시대(미래-디스토피아 예감의 핵심 관건)이다. 쉬지 않고 일하기, 일하는 한울님은 이 문제의 대답으로 대체(용시용활)되어야 한다. 해월신사는 일이 없으면, 꼬았던 노끈을 풀어서 다시 꼬았다고 한다. 청년의 관점으로 보면 최악인 에피소드다. ‘쓸데없는 일을 만드는 것’이다. 재정의/재진술이 필요하다. 의문이 필요하다. "일하는 한울님"은 시대착오 아닌가? 질문이 필요하다. "일하지 않는 한울님"으로 전환한 것 아닌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헤치고 살아 나갈 길이 거기에 있다. 천도교인이 먼저 찾는다는 보장이 없다. 먼저 찾는다 해도, 그걸 사업화(철학화, 사상화, 생활화 + 자산화, 자본화)한다는 보장이 없다.
10 그러나, ‘천도교중앙도서관’은 플랫폼이다. 그 독서마저 도서관 기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도서관이야말로 ‘지상천국’ 또는 ‘지상천국’으로 가는 입구이다.
11 cf. ‘뜻으로 보는 한국사’(함석헌)
12 신앙공동체 : “신화공유” - “공유하는 이야기를 형성할 수 없으면, 하나의 사회는 일관성 있게 나갈 수 없다. 이 이야기가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 및 우선순위, 우리가 묻는 질문, 고려하는 선택권을 결정한다. 또한 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논쟁과 제도 그리고 우리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도 결정한다.”
13 앞의 <고령화 사회, 지상천국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다 —고령화시대에 4050세대의 역할에 관한 소론—> 참조.
14 천도교인이 가난한 건,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돈을 안/못 쓰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님 1명인 암자의 한 스님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매년 1만 포기 김장을 해서 이웃을 봉양하고 있다는 미담이 소개되었다.
15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시도하고 있는 것이 동학-천도교 지식인지도 만들기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아직은 ‘試論’에 불과하다. 함께 수정보완해 나가야 한다.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이 이 그림을 채워나갈 수 있기를!)
1860-1864 ... 원처근처 어진선비, 최시형, 최자원
1865-1880 ... 강수 이필제
1881-1890 ... 전성문, 유은상(시헌)
1891-1900 ... 전봉준 박인호 김연국, 손천민, 남계천, 김낙철, 김낙봉
1901-1910 ... 양한묵, 권병덕, 오상준, 이관, 이종일, 이종린
1911-1920 ... 이돈화, 김기전
1921-1930 ... 이돈화, 김기전, 방정환, 박달성, 기타 개벽사 필진
1931-1940 ... 김기전, 이돈화 등 1920년대 연장 – 와해
1941-1950 ... 김병제?
1951-1960 ... 신용구
1961-1970 ... 신숙 신용구 최동희 / 최덕신
1971-1980 ... 김용문, 이광순, 표영삼 / 김용천
1981-1990 ... 표영삼 이광순 정운채
1991-2000 ... 표영삼, 김응조 / 김승복 임운길 / 김철
2001-2010 ... 오문환 / 김용휘 / 표영삼, 윤석산 / 임운길, 김승복 / 성주현
16 주유천하와 고비원주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졸고, <수운대신사와 고비원주>, �신인간� 816호(2018년 11월) 참조. 최근에 '이병한' (원광대학교 연구교수)은 세계 100개국 1000개의 도시를 3년 동안 '주유천하'하고 귀국하여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을 출간하였다(서해문집). 그 책 전체의 결론은 "다시 개벽!"이다. 이병한 선생과 조성환(<한국 근대의 탄생 -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저자)과 필자를 포함한 일군의 동지들이 '개벽파' '개벽학' '개벽학당' '개벽포럼' '개벽대학' '개벽공부모임' 등을 진전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호 2019년, 3.1혁명 100주년은 개벽학의 원년, 개벽파의 원점이 될 것이다.(2019.3.5 - "개벽학당 개강식" 날에 추가함)
17 춘암 박인호 선생(천도교 4세 대도주, 1859-1940)의 주유천하는 ‘팔로워십’으로 완성된다. 팔로워십은 해월신사-수운대신사, 의암성사-해월신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춘암상사-의암성사의 관계에 있어서 그 시대(1900-1920)의 약 20년간에 있어서 춘암상사의 팔로워십의 의미는 더욱 남다른 바 있다. 그리고 이 팔로워십이야말로, 오늘 이 시대 천도교에서 절대 요구되는 덕목이다. 오래된 미래의 덕목이다.
18 천도교청년회가 ‘천도교청년당’으로 전환하는 변곡점은 ‘주유천하’였다. 천도교청년회는 1923년 3월 31일 오후 7시에 “천도교청년회 시국강연회” ‘현하(지금의)동양대세’라는 주제로 개최하였다. <조선일보>1923.04.02.석3/연래초유의 시국강연, 천도교청년회 주최, 현하의 조선, 일본, 중국의 현상을 열렬한 웅변으로 그 진상을 폭로. <동아일보>1923.03. 31.(3)/현하의 일본/최원순, 현하의 극동/금찬, 현하의 조선/최린 <조선일보>1923.04.02.석간3면
19 주유천하가 중요한 까닭은 “이쑤시개로 코끼리를 죽이는 세 가지 방법”과 관계가 있다. 즉 ① 죽기 직전에 찌르기 ② 죽을 때까지 찌르기 ③ 찌르고 죽기를 기다리기
20 데이비드 코튼 지음, 김경식 옮김,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지영사, 2018. 12쪽. “지금이야말로 살아 있는 우주로부터 출현한 살아 있는 지구의, 살아 있는 존재로서 인간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과 가능성에 따라 살 수 있는 전례가 없는 순간이다. 신성한 삶과 살아 있는 지구의 진정한 이야기가 떠오르고 있다. (중략)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 종교의 ‘신’은 결국 ‘살아 있음’을 신화(神化)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종교는 존속될 것임을 주장하는 말이 아니라, ‘종교’ 역시 ‘차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가능성, 인간의 살아 있음을 ‘신격화’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무신론자와 종교인이 갈라진다. 즉, 무신론자의 반대는 유신론자가 아니라 ‘종교인’이다.
21 이 단락(각주 포함)은 앞의 졸고, <3.1운동과 다시개벽의 꿈 - 3.1운동과 독립선언서의 새로운 이해를 중심으로>를 그대로 옮겨왔다.
22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김영사, 2018. 40-41쪽.
23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 모시는사람들, 2017. 2권이 곧 출간된다.
24 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개화에서 개벽으로>>, 모시는사람들, 2018.
25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Ⅰ, 서해문집, 2016; <<유라시아 견문>>Ⅱ, 서해문집, 2018; <<유라시아 견문>>Ⅲ, 서해문집(근간).
26 이병한, <추천사>, 조성환, 앞의 책. 표4. 2019년 1월 4일, 개벽파의 가시화를 위한 준비 모임이 개최된다.
27 “우리 시대의 과제는 살아 있는 지구의 구조 및 과정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이는 권력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우리의 신성한 이야기와 제도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 데이비드 코튼 지음, 김경식 옮김, 앞의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91쪽.
28 최근 김재형 씨는 ‘주역’의 눈으로 해월신사법설을 새로 읽은 책을 펴내면서 ‘동학’을 ‘동아시아학’으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재형, <<동학의 천지마음-동아시아의 눈으로 읽은 해월 최시형>>, 모시는사람들, 2018. 참조.
-이 질문의 의미를 찾아가며, 되풀이해서 질문을 거듭하는 공부모임이 천도교중앙도서관에서 올해 베타버전으로 시행한 “독서공방” = ‘읽고(讀), 쓰고(書/冊), 공부(工/功, 심학+형학)하고, 방(放)송하는’ 프로그램이다.
- 이 질문은 그 속에 “천도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포함한다.
29 cf. 후원회 - 방탄소년단 키우기(전희식? 김용휘?). ‘방탄소년단’도 하나의 상징이고,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도통군자를 기르자는 말이다. cf. 스타강사 설민석과 방탄소년단은 자체 콘텐츠를 기본으로 하되 결국 매니지먼트 (SM, JYP)에 의해 발명된 것들이다. 후원회란 ‘지원팀’이 아니라, 매니지먼트 그룹을 형성하는 일이다. 천도교중앙도서관 / cf. 방정환한울학교 / 대학생단-한울학교 / ‘제8회 한울스피치 대회(2018)-청년회 주최 제1회 웅변대회가 1968년, 지금부터 50년 전에 있었다. / 신인간(사) / 개벽신문 / 천도교 교수회 // 100주년 – 3.1운동, 청년회, 개벽, 어린이날
30 이에 대해서는 천도교중앙대교당 설교 원고, <천도교의 미래, 미래의 천도교-대도 중흥을 위한 새로운 모색>(박길수, 2017) 참조. 천도교도서관은 요양원과 더불어 “미래의 기관”으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도서관은 말하자면, 인간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일치시키는 플랫폼이다. 자아완성이며, 만사여의며, 놀고 보고 먹고 보세다!
- <교단중흥백서>, 천도교개혁추진위원회(1997)
- <<천도교경전>>(동경대전, 용담유사, 해월신사법설, 의암성사법설)
김민형 지음, 편집부 옮김, <<수학이 필요한 순간>>(인간은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 인플루엔셜, 2018.
김병준(金秉濬), 「대신사의 일생」, <<천도교회월보>> 169호(대신사출세100주년기념호), 1924.10,
김상욱, <<떨림과 울림-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동아시아, 2018.11.-참고.
김재형, <<동학의 천지마음-동아시아의 눈으로 읽은 해월 최시형>>, 모시는사람들, 2018.
데이비드 코튼, 김경식 옮김, <<이야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지영사, 2018.
심국보, <<어리숙한 한울님-동학의 비결2>>,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9.1.10.
박길수, <동학을 묻다, 물음으로 동학하다>, <<개벽신문>> 68호(2017년 10월) 2쪽.
--------, <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개벽신문>> 69호(2017년 11월).
--------, <도를 물음이 어찌 이와 같이 밝고 밝은가-논학문 속의 문답(1)>, <<개벽신문>> 70호(2017년 12월).
--------, <그 도를 알아 그 지혜를 받음-논학문 속의 문답(2)>, <<개벽신문>> 71호(2018년 1.2월합병).
--------, <한반도 운전자론의 개벽사적인 의미를 생각한다>, <<개벽신문>> 72호(2018년 3월).
--------,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에 서서>, <<개벽신문>> 73호(2018년 4월).
--------, <혁명에서 개벽으로>, <<개벽신문>> 74호(2018년 5월).
--------, <고비원주, 고비원주, 고비원주>, <<개벽신문>> 75호(2018년 6월).
--------, <동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개벽신문>> 75호(2018년 6월).
--------, <유무상자 경제학과 모심의 혁명(1)>, <<개벽신문>> 76호(2018년 7월).
--------, <유무상자 경제학과 모심의 혁명(2): 모심의 혁명에서 동귀일체 혁명까지>, <<개벽신문>> 77호(2018년 8월).
--------, <금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 <<개벽신문>> 77호(2018년 8월).
--------, <고령화 사회, 지상천국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다 —고령화시대에 4050세대의 역할에 관한 소론—>, 동양포럼(67)-고령화 시대에 고령자를 생각한다, <<동양일보>>(2018.08.22.).
--------, <유무상자의 경제학과 우주 궁극의 이론-‘세상에 공짜는 없다’와 ‘덜 문명’의 상관관계>, <<개벽신문>> 78호(2018년 9.10월합병).
--------, <동학과 지상신선 그리고 지상천국(1)-새로운 동학하기를 위한 사발통문>, <<개벽신문>> 78호(2018년 9.10월합병).
--------, <보국안민 운동의 맥>, <<개벽신문>> 79호(2018년 11월).
--------, <동학과 지상신선 그리고 지상천국(2)>, <<개벽신문>> 79호(2018년 11월).
--------, <3.1운동과 다시개벽의 꿈- 3.1운동과 독립선언서의 새로운 이해를 중심으로>,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3.1운동백주년성찰과 과제-천도교편>> 2018년 11월 22일,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자료집-프린트본/근간)
--------, <수운대신사와 고비원주>, <<신인간>> 816호(2018년 11월).
--------, <천도교의 미래, 미래의 천도교-대도 중흥을 위한 새로운 모색>(박길수, 2017.11 대교당설교, 미간행)
오구라 기조, 조성환 옮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모시는사람들, 2018.
유발 하라리, 전병근 옮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김영사, 2018.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데우스 - 미래의 역사>>, 김영사, 2017.
오문환, <<봄-본래의 나를 찾는 마음공부>>, 모시는사람들, 2009.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 모시는사람들, 2017.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Ⅰ, 서해문집, 2016.
-------, <<유라시아 견문>> Ⅱ, 서해문집, 2018.
-------, <<유라시아 견문>> Ⅲ, 서해문집, 2018.
임상욱, <제4의 동학 정체성을 위한 조건들>, <<동학학보>> 제46호, 2018.3.
임형진, <<동학의 정치사상>>, 모시는사람들, 2004.
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개화에서 개벽으로>>, 모시는사람들, 2018.
조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휴(休), 2018.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고정아 옮김,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비즈니스북스, 2016.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