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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08. 2019

개벽의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전망한다

- <개벽포럼>에서 <개벽학>까지

조성환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글은 <개벽신문>제82호(2019.2/3합병)의 '개벽의 창'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과 >원불교 은덕문화원>이

장차 21세기 한국학을 이끌어갈 '개벽학'을 정립하고자 기획하였다.

이 포럼에서는 한국 사회의 각 분야에서 개벽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오신 분들을 모셔서

현장에서의 실천 경험을 듣고, 촛불혁명 이후에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1년 동안 총 10차례에 걸쳐 진행될 개벽포럼을 통해서

한국적 ‘공공성’과 ‘개벽학’의 기본적인 틀이 잡히리라 기대한다."


개벽학의 구상


‘개벽학’을 구상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걸리는 문제가 ‘실천’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개벽학은 엄밀한 형이상학적 체계라기보다는 현실변혁적인 실천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분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벽포럼>의 구체적인 기획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다행히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공감을 해주었고, 은덕문화원에서 장소와 광고를 약속해 주었다.


<개벽포럼>의 발상은 일본의 저명한 <교토포럼>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런데 교토포럼은 매달 3천만 원 정도의 경비가 들었다고 한다. 10여 명이 넘는 한중일 학자들에게 3박 4일 동안 숙식을 제공하고, 거기에다 항공료와 발표비까지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식의 포럼을 20년 넘게 한 곳이 교토포럼이다. 재정적 지원은 야자키 카츠히코를 비롯한 오사카 지역의 경영인들이 맡았고, 포럼 기획은 김태창이라는 한국학자가 담당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한일합작’인 셈이다.


반면에 개벽포럼은 3천만 원의 100분의 1의 경비로 시작한다. 그것도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학술토론 형식이 아니라 매달 한명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얘기를 나누는 대화 형식이다. 규모 면에서는 교토포럼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교토포럼이 ‘공공’이라는 동아시아적 개념에서 시작했다면, 개벽포럼은 ‘개벽’이라는 한국적 개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세미나나 학술대회가 아닌 ‘포럼’ 형식을 취한 것은 개벽학은 이론가와 실천가들이 ‘공공하여’(=모두 함께하여) 만들어 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론과 실천을 병행해 온 분들과 공공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좋다. 설령 개벽포럼에 초대된 전문가가 종래에 한국사회에 많이 소개된 분이라고 할지라도, ‘개벽’이라는 새로운 틀로 대화를 이끌어 가면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표적인 분이 도법스님이다.


생명평화와 살림


내가 조사한 바로는 우리나라에 ‘생명평화’ 담론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킨 장본인은 도법스님이다. 2001년에 시작된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1000일 기도>가 그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는 기독교 진영에서도 ‘생명평화’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생명평화’가 한국인에게 거의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사상사를 연구해 온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경험이 있어서 ‘평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에 중국은 예로부터 도교 전통이 있어서 그런지 ‘생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생명평화’라는 말을 붙여서 쓰는 예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이 말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조건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을 짐작케 해주는 말이 ‘살림’이다. ‘생명’이 하나의 생물학적 또는 우주적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면 ‘살림’은 인간의 행위를 동반하는 가치개념이다. 그리고 살림이 잘 되려면 기본적으로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생명평화는 한국어의 ‘살림’에 내포된 의미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벽과 살림


19세기 중엽에 동학을 필두로 일어난 개벽운동의 핵심키워드도 ‘생명평화’였다. 동학에서 말하는 ‘하늘님’은 흔히 ‘우주생명’ 또는 ‘우주적 생명력’으로 해석되고, 동학농민군의 슬로건인 “제폭구민”의 제폭(除暴)은 “폭력을 없앤다”는 평화사상을 담고 있다. 해월 최시형은 보다 직접적으로 ‘대생명’(大生命)과 ‘활인’(活人=사람을 살린다)을 말하였고, 이것을 추구하는 문명을 ‘도덕문명’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동학에서 시작된 개벽운동은 지금으로 말하면 생명평화운동에 다름 아니다.


1894년 전반에 일어난 제1차 봉기는 관리의 폭정에 항의하는 생명평화운동이었고, 후반에 일어난 2차 봉기는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생명평화운동이었다. 동학의 생명평화운동은 이후에 삼일만세운동으로 이어졌고, 80년대의 한살림운동을 거쳐 21세기에 ‘생명평화운동’으로 부활된 것이다. 다만 동학농민혁명과 삼일만세운동이 주로 인간과 국가의 살림에 초점이 맞춰진 정치운동의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면, 한살림운동과 생명평화운동은 그 대상이 자연과 환경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동학 식으로 말하면 전자가 인내천(人乃天)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실현을 지향했다면, 후자는 경물(敬物) 또는 물내천(物乃天)까지 확장된 것이다.

지난 촛불혁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멀게는 동학에서 시작된


살림운동에 연원하고, 가깝게는 2000년대부터 시작된 생명평화운동이 시민사회에 무르익은 결과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가 놀란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보다도 평화주의였기 때문이다. 이 평화주의는 동학 이래로 지난 150년 간 끊임없이 시도되어 온 “개벽의 꿈”(박맹수)으로 <삼일독립선언서>에서는 그것을 ‘도의’라고 하였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온다”는 <삼일독립선언서>의 의미는 동학 식으로 말하면 “폭력의 선천시대가 가고 도덕의 후천시대가 온다”는 ‘다시 개벽’의 선언에 다름 아니다.


개화에서 개벽으로


이번 개벽포럼에 모시게 될 또 한분의 운동가인 이남곡 선생님은 1984년에 어느 절에서 <혁명에서 개벽으로>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나온 직후의 일이다. 혁명이 계급적 투쟁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개화좌파”(이병한)적 개념이라고 한다면, 개벽에는 생명평화를 지향하는 살림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분이 쓰신 <<논어 : 삶에서 실천하는 고전의 지혜>>는 척사파의 <<논어>>도 아니고 개화파의 <<논어>>도 아닌, 말 그대로 개벽파의 <<개벽논어>>이자 “개벽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개벽포럼도 이 시대를 ‘개화’가 아닌 ‘개벽’의 눈으로 새롭게 읽고자 하는 시도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종교, 교육, 학문, 실천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전환운동이다. 동시에 이론과 실천, 연구와 현장, 대학과 사회를 매개하는 협동운동이기도 하다.


이 대화와 협동운동을 통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그 세계들을 ‘개벽학’의 형태로 정립하여, 한국사회를 향해 발신해 나가고자 한다. 부디 올 한해에 그치지 않고 20년, 30년 지속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포럼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인터넷상에서 공유하고, 총서의 형태로도 간행되기를 바란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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