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2회에 이어 3/4회에서도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가 등장한다. 고부관아를 들이친 동학군들이 아전 관속들을 ‘작살’내는 현장에서, 그 권속(가족)들이 가장을 살리기 위해 절규하듯 외치는 주문이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그들은 정말로 동학에 입도한 사람일 수도 있고, 풍편에 들은 주문(呪文)을 본능적으로 외어서 삶을 도모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2. 세상은 바뀔 것인가?
세상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읽는 장사꾼(보부상-전주여각 객주와 행수)의 도소격인 임방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간다.
“세상이 바뀌겠는가?”
“임오년에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도 안 되는데,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2+1.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3. 만석보 혁파와 사대강 보 해체
봉기의 성공은 세 개의 장면으로 상징된다.
하나는 폐정의 선봉에 서서 백성들을 착취하던 관리들을 처단하는 일
둘은 곳간을 열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는 일
셋은 만석보 혁파.
3+1. 만석보 혁파는 오늘 사대강을 막아섰던 보를 해체하여 자연의 흐름을 살리는 일에 이어진다. 이런 일을 보아도, 동학혁명은 125년째 지속중이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두고두고 계속될 터이니, 간략히만 언급한다.)
3+2.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얼마나 오래 걸리는 일인가?
4. 갈등의 시작
고부봉기 성공 직후 전봉준과 황석주(양반, 유생) 사이에 입장 차이가 부각된다.
전봉준은 사발통문에서 표명한 대로 고부성을 혁파하고, 전주성을 점령하고 한양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쪽이고, 황석주는 ‘그건 봉기를 위한 명분’일 뿐이고, 지경(地境)을 넘는 순간 단순한 민란이 아니라 ‘반란’이 된다며 반대하고 나선다.
[이 장면은 사실, 매우 복잡하고, 동학군 내부에서 일어난 입장 차이를 드러내는 장면인데, 전봉준과 황석주 = 동학혁명군과 우호세력(양반)과의 갈등으로 치환하여 보여준다. 극의 크기와 길이 등의 환경 조건에서 최선의 연출력을 발휘한 셈이다.]
전봉준은 말한다.
“임금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을 어찌 반역이라고 하냐. 백성이 원하는 진정한 개혁은 전하의 성은이 아니라 백성의 힘을 보여줄 때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어서 말한다.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 가보지 않았을 뿐, 갈 수 없는 길은 아니니...”
3/4회의 핵심 장면 첫 번째는 이것!
녹두꽃 포스터 중에서...
5. 이름 = 본성 = 한울님을 찾아라!!
3/4회의 핵심 장면 두 번째는 이것이다!
백 이방의 얼자( )인 거시기(백이강, 조정석粉)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보부상의 임방으로 숨어들었다가 아버지를 피신시키는 데는 성공하지만, 전라 관찰사의 밀명으로 장두(전봉준)를 죽이기 위해 장두청으로 숨어들었다가 동학군들에게 붙잡힌다.
객주(송자인)는 그를 살리기 위해 전봉준에게 간청하지만 전봉준은 “그는 이미 내 손을 떠났다”고 말한다. 그에게 원한을 품은 백성들이 “이놈(거시기-백이강)은 우리 몫이요. 이놈을 살리려 나서면 장두라고 해도 가만 두지 않겠소.”라며 기세등등하다.
다시 그(거시기-백이강)를 살리기 위해 그의 어머니(유월이, 서영희粉)까지 나선다. 유월이 “이강아!”라고 절규하는 것을 보고 ‘거시기’에게 ‘이름’이 있음을 알게 된 전봉준은 거시기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칼을 꽂아 응징하고는 이렇게 외친다.
“이강! 저것이 너의 이름이다. 이제 네 이름으로 살아라!”
그리고 성난 백성들에게도 말한다.
“거시기는 죽었소!”
녹두꽃의 꽃말은 ‘개벽의 꿈’이라고 했다. (cf. 녹두꽃통신-001참조)
녹두꽃의 BG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노래하며 애타게 부르듯이
녹두꽃 이야기의 대강은 '이름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5+1. 1/2회에서, 백이강의 동생 백이현(윤시윤 분)은 자신을 위해 악역을 도맡아야 하는 백이강에게 “미안하다!”고 울면서 고백한다. 서울로 ‘과거’를 보려고 떠나는 길에서! 그리고는 말한다. “백이강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자기 이름으로, 자기 이름값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개벽 세상이다.
내 이름, 곧 나 자신, 한울로서의 나의 정체(正體), 나의 본성(本性), 나의 본체(本體), 나의 본래 이름 – 한울님으로서의 백이강!을 찾아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5+2. 3/4회 마지막 장면에서 백이현은 ‘귀환’하는 백이방을 수행하여 고부로 돌아온다. 마침 자신을 마중 나온 백이방은 ‘어르신’이라고 호칭하는 백이강에게 “누가 네 어르신이냐... 아버지라고 불러라!”라고 말한다.
5+3. 나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라는 대목을 보면서 전율했다. 아마도 5/6회에서 등장할 장면으로 백산에서 ‘격문(格文)’을 발할 때, “양반과 부호밑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 방백수령(方伯守令)밑에서 굴욕당하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라는 대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5+4. 백이현의 회상 장면에서 백이방이 “나는 가난한 아전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정승의 아버지로 죽고 싶다!”라고 하는 장면에서, 그 처연한(?) 표정도 오버랩 되면서! 한을 품지 않은 악인이 어디 있으랴!
5+5. “거시기”라는 이름은 일찍이 ‘황산벌’ 영화에서 발굴된 이름이다. 거시기에 죽고 거시기에 사는 민초들의 삶이 ‘거시기’라는 이름으로 대변되고 있다. ‘잡초’라는 말과도 통한다. 이 세상에 잡초가 어디 있으랴! 다만 자기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풀들일 뿐!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고 존재이유(가치!)가 모두 있다! 이름 없는, ‘거시기1’ ‘거시기2’ ‘거시기3’으로 살아가던 삶에서 나의 나 됨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동학이고, 그것이 개벽이다.
“모시는 사람들은 이 땅 온갖 답지 못한 사물들의 본래 이름을 찾아 한울님처럼 모시는 사람들입니다.”(극단/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강령의 한 대목)
6. 해월과 전봉준
3/4회에서 백미는 해월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전봉준은 봉기의 확대를 반대하는 황석주와 결별하고, 다른 지역의 동학 대접주들과 연대하여 혁명을 전개할 계획을 진행시켜가는데, 그 핵심 세력이 될 손화중과 김개남이 방문한다.
전봉준은 함께 봉기하여 합류할 것을 기대하지만, 뜻밖에도 “선생(주인?-기억이 불명확)께서 오셨네!”라는 말에 이어, 해월이 등장한다.
해월은 ‘북접주인(北接主人)’으로도 불리는 당시 동학의 교주(敎主)
해월은 전봉준에게 묻는다.
"그대가 생각하는 '동학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어쩌면, 이 '녹두꽃'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물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 '녹두꽃통신'이 주목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물음이다.
이 물음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 속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 물음을 전후로 한 답은 개벽파, 개벽학이다.
tip1. 전봉준은 ‘남접(南接)’이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그것은 북접에 대한 대립 항으로서가 아니라, 지역적 분포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전봉준은 해월에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해월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전봉준은 해월을 깎듯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해월이 전봉준의 논리에 대해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라고 하여, 전봉준이 단순한 분노나 복수를 위해 봉기한 것이 아니라, 동학의 본성에 따라, 믿음을 믿음답게, 인즉천(人卽天)이라는 진리에 따라 살기 위해 봉기하였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한편으로 “교주로서의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라고 함으로써, 동학을 수호하고, 나아가 동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개벽의 성공을 위한 바른 길은 “성급한(!)” 봉기는 아니라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피력하는 선에서 이날의 만남은 일단락된다.
6+1. 녹두꽃 3/4회에 그려 보이는 것처럼 해월이 고부봉기 당시 고부에 갔다는 말은 없지만, 고부봉기 당시에 이미 전봉준과 소통하고 있었다는 사료는 적지 않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고부봉기는 해월과 무관하게 전봉준이 단독으로 전개한 것으로 그려낸다. 주로 통문을 통해 오고갔을 해월과 전봉준 사이의 소통을 녹두꽃에서는 해월을 직접 등장시킴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더하는 효과를 발했다.
6+2. 녹두꽃 3/4회에서 해월과 함께 처음 등장하는 손화중과 김개남은 전봉준의 친구로서 설정되어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손화중, 김개남은 해월 선생과 교류도 훨씬 더 긴밀하였고, 동학 내에서의 위상과 영향력(지역적 분포와 관할 범위)이 큰 ‘대접주’ 들이었다.
7. 절하다
1/2회차 이야기(녹두꽃, 피다)에서 빠진 대목 하나.
전봉준의 봉기를 결정하고, 동학군들을 대숲에 모아 결의를 다지는 장면에서 황석주를 비롯한 양반들이 등장한다. 황석주는 전봉준과 동문수학한 사이이지만, 잔반=훈장, 儒醫인 전봉준과는 달리 유학자로서 재정적 안정과 명망을 두루 갖춘 인물. 한때 한양에서 벼슬살이도 했지만, 부패한 조정을 뒤로하고 낙향하여 살아가는 인물.
그는 전봉준의 봉기(민란, 부패관리인 조병갑을 쫓아내는 데까지)에 동참하기로 의기투합하고, 결의 장소인 대숲에 나타난 것! 그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양반들과 함께 나타나 스스로 소개하기를 “도계서원의 황석주요. 고부의 양반들을 대표하여 기꺼이 함께하겠소이다.”라고 존대하는 말투로 말한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그 장면은 본디, 큰절(맞절)로 해야 할 것을, 황석주는 동학도인이 아닌 관계로 절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사실, 양반이 평민이나 노비들이 모인 집단을 향해 허리 숙여 절을 한다는 설정은,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최대의 관심사이자 구원이라면, 당시 천대받고 핍박받는 백성들(동학도)에게, 양반이 존대하고, 맞절한다는 것은, 그런 세상이라면, 죽어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죽어도 살아볼 만한 세상!, 그것이 개벽세상이다!!!"
8. 박원명, 이용태
조병갑을 대신해서, 새로운 군수로 박원명이 부임해 오고
그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는 수습책을 시행한다.
상징적으로, 백성들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것!
[신임군수 박원명이 봉기 세력, 즉 전봉준 및 동학도인들에게 유화책을 실시한 것은 대체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해월의 명령(동학도인에 대한 탄압의 빌미를 더 이상 주지 않도록, 봉기를 이쯤에서 멈출 것)과 그에 따른 손화중, 김개남의 소극적 태도, 그리고 도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 즉 민란을 넘어 반란으로 나아가는 데에 반대한 황석주 등 양반 세력의 철수(박원명의 민심 수습책에 만족한 채) 등으로 더이상의 확전 동력을 상실한 전봉준은 깊은 고뇌에 잠기는데, 백이방이 돌아오면서, 백이강에게 이방 자리를 물려주고, 수그러든 민란의 뒤를 쫓아 보복적 탄압이 자행되면서(예고편)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을 암시하면서 3/4회는 끝이 난다.
9. 아쉬움과 기대...
녹두꽃이 감당해야 하는 이야기의 분량, 상상력의 범위, 꿈의 크기에 비하여 등장인물이나 세트 등이 빈약한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만석보 훼파 장면.’ 우리가 상상하는 실제 역사 장면은 수백명(?)의 농민들이 노도같이 달려가 아마도 곡괭이 같은 것으로 훼파하였을 터인데, 녹두꽃 장면에서는 겨우 몇십 명(?)이 그나마 폭약을 이용해 폭파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4대강’ 보 해체와 관련하여 훨씬 더 역사적 / 극적 효과를 그려 낼 수 있었을 터인데. 딱 보아도 예산상의 문제가 커 보인다. (그러길래, 내가, 진작 돈을 벌었어야 되는데...)
이런 식으로, 예산 규모가 한눈에 보이는 장면이 제법 여러 군데다. 최경선이 너무 자주 칼을 빼드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그 말투가 동학 접주의 말투라고 하기에도 적절치 않다. 최경선의 인물분석이 잘못되었다.
그나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들의 눈빛과 호흡, 그리고 워낙에 장중한 역사의 무게를 감당해 나가는 ‘녹두꽃’의 장정은 1/2회에 이어 3/4회에서도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