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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2. 2019

동학농민혁명 기념사

최초의 국가기념일 / 이낙연  

[편집자 주] 2019년 5월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은 "국가기념일"로 치러진 첫번째 기념식 행사였다. 이날 기념사는 '정부를 대표'해서 국무총리 이낙연 님이 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이낙연 국무총리님의 현장에서 보고, 총리님의 기념사를 직접 들은 소감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에는 힘(기운)이 들어 있었고, 그 내용 하나하나를 확신에 차서 강조하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기념사였다. 역사를 위하여 기록해 둔다.(동영상에서 녹취함) 


기자가 보는 기념사의 의의는 다음 두 장면에서 구현되었다. 

첫째,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민족운동사의 원천임을, 그 이후의 모든 민족민주운동이 '동학정신'의 발로임을 천명하였다. "동학 민초들의 염원과 분노는 25년 동안 응축됐다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폭발했습니다. 그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동학을 이은 천도교 대표가 15인이었고, 그중 9명은 동학농민군 출신이었습니다. 전봉준 장군과 함께 우금티 전투 등에 참여하셨던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 선생은 33인의 맨앞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그렇게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은 10년 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계승됐습니다. 해방 이후의 4.19혁명도, 5.18민주화운동도, 6월 항쟁도 동학 정신에 뿌리를 두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둘째, 동학농민혁명이 '전봉준' 등의 '반봉건, 반외세'를 위한 혁명전쟁이 아니라, '동학정신'의 구현을 위한 혁명이었음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은 촛불혁명으로 성립한 문재인 정부의 철학이기도 하다는 점을 공식 천명하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은 민주주의의 근본 철학입니다. 문재인 정부도 ‘사람이 먼저’라는 믿음으로 모든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평화를 누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정의국가’를 구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러한 천명을 통해, 이낙연 총리의 기념사는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개벽 선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전문


국가기념일로서는 처음인 제125회 동학농민혁명 기념식

다시 피는 녹두꽃, 새 희망의 시작 


기 념 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은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입니다. 


먼저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목숨을 걸고 일어나셨던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농민 선열들의 명복을 빕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과 유적 복원에 애써 오신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최효섭 이사장님, 천도교 송범도 교령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형규 이사장님, 역사학자 이이화 님 및 유관단체의 지도자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뜻을 같이 해주신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님과 송하진 전북지사님, 정동영 대표님, 유성엽, 김두관, 박주현 의원님을 비롯한 내빈 여러분 고맙습니다. 


우리는 오늘 처음으로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로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받는 넷상을 만들고자 했던 의로운 혁명이 125년 만에 합당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강점기에 비적이나 폭도의 반란이었던 것처럼 매도 됐습니다. 4.19혁명 이후에도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혁명’ 등으로 평가가 뒤섞였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 국회의 특별법 제정으로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정명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유족과 관련 단체와 유관 지역들의 합의를 얻어 황토현 승전일인 오늘 5월 11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고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의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민중항쟁이었습니다. 그것은 내용에서도, 규모에서도 서유럽의 근대혁명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첫째,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들은 부패한 지배 세력과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를 없애고 양반과 상민, 상전과 노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 했습니다. 


둘째,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청상과부의 재혼을 인정하며 토지를 균등하게 분작하도록 했습니다. 


셋째,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경복궁을 무단 점거한 채 국정을 농단하고 이권을 차지하는 일본울 몰아내려 했습니다. 그때 불붙은 민족의식은 일제강점기로 이어졌습니다. 


동학 민초들의 염원과 분노는 25년 동안 응축됐다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폭발했습니다. 그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동학을 이은 천도교 대표가 15인이었고, 그중 9명은 동학농민군 출신이었습니다.


전봉준 장군과 함께 우금티 전투 등에 참여하셨던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 선생은 33인의 맨앞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그렇게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은 10년 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계승됐습니다. 해방 이후의 4.19혁명도, 5.18민주화운동도, 6월 항쟁도 동학 정신에 뿌리를 두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된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었습니다. 우리의 민주민족 의식과 역량을 일깨우고 길러준 동학농민혁명은 정당하게 평가되고 영구히 기억돼야 합니다. 


민간과 지자체와 정부는 동학혁명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과 유적 복원에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정부는 이미 3천6백여 명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찾았고, 1만여 명의 유족을 등록했습니다. 지난해 4월에는 뜻있는 분들과 지자체가 국민 성금을 모아 동학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의 처형 장소인 종로 전옥서 터에 장군이 동상을 세웠습니다. 동학농민군 승전지 정읍 황토현 일대에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사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은 민주주의의 근본 철학입니다. 문재인 정부도 ‘사람이 먼저’라는 믿음으로 모든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평화를 누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정의국가’를 구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학농민혁명 이후 계속된 국민의 투쟁과 희생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도전받고 새로운 과제에 직면합니다. 민주주의는 그러한 도전을 이겨내고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나긴 과정입니다.


정부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러나 정부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각계각층의 국민께서 동참해 주셔야 민주주의가 진전할 수 있습니다. 


그 길로 우리 모두 함께 가십시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동학농민혁명 선조들 앞에 함께 다짐하십시다. 


2019년 5월 11일

국무총리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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