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창간호, 권두논문
[출전 : 개벽 창간호, 03쪽-13쪽]
[편집자 주 - 이 '세계를 알라'는 개벽 창간호 2쪽에 게재된 "개벽 창간사"의 내용을 부연하는 성격의 글로써, 3쪽부터 13쪽에 걸쳐 게재되어 있다. <개벽> 잡지는 1920년 6월 25일자 - 7월호로 창간되어, 72호까지를 발행하였으며, 현재 60여개 호가 전해지고 있다. 전해지지 않는 호수는 일제에 압수된 것들이다]
1.
사람은 천사도 아니며 짐승도 아니며 오직 사람일 뿐이로다. 이만치 진화된 체격, 이만치 진화한 지식, 이만치 진화한 도덕을 가진 동물일 뿐이로다. 따라서 세계는 천당도 아니며 지옥도 아니요, 오직 세계일 뿐이로다. 이만치 진화한 국가와 국가, 이만치 진화한 사회와 사회, 이만치 진화한 개인과 개인이 상호[互相] 연결 활동하는 무대일 뿐이로다. 사람과 세계는 결코 나누어볼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된 세계, 세계로 된 사람은 둘이 아니요 오직 하나일 뿐이다. 세계를 대표한 시대의 가치와 사람을 대표한 문화의 상징은 다만 이름[名]과 실제[實]의 부호일 뿐이니, 사람은 반드시 세계를 알아야 하리로다. 세계를 앎이 곧 사람을 앎이요 또한 자기를 앎이다. 사람으로써 세계를 앎이 자기로써 자기의 이름을 앎이로다.<3>
과거는 논할 것이 없다마는 금일과 같이 교통이 이마마하고 지식이 이마마하고 일체의 문물이 이마마한 오늘에 앉아서는 더욱 세계를 이해하여야 하겠다. 공자는 일찍이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다 하였나니 이것이 곧 천하를 이해하는 도량을 가졌음으로써라. 오늘날 사람은 다 같이 천하를 적다 할 이상을 가져야 하리로다. 천하를 작다 하고 달세계로의 여행을 계획하며 화성를 오고가겠다는 원대한 이상의 포부가 있어야만 하리로다.
세계가 얼마마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얼마마한 발전, 향상, 진화를 가지고 있는가, 따라서 세계와 한 국가, 세계와 우리 민족, 세계와 나는 얼마마한 관계, 이해(利害),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이를 이해하는 지력과 이를 비판할 만한 이성이 있어야 하겠다.
한 부분의 병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전 신체의 위생을 알아야 하고, 전 신체의 위생을 완전히 하려면 반듯이 부분 부분의 조화를 얻음이 필요함과 같이 세계와 한 국가, 세계와 한 종족, 세계와 한 개인의 관계도 또한 이와 같도다.
세계는 어느덧 봉쇄 시대의 세계가 아니다. 또한 과거의 세계도 아니며 어제의 세계도 아니다. 다만 오늘이라 하는 요마만치 된 세계이며, 다만 이 찰나라 하는 요마만치 된 세계이다. 세계의 폭원(幅圓)은 점차 그 범위가 줄어간다. 동쪽 끝과 서쪽 끝이 날로 가까워 오고 남쪽 끝과 북쪽 끝이 달마다 좁아 오도다. 부상(扶桑; 해가 뜨는 곳에 있는 나무) 약목(若木; 해가 지는 곳에 있는 나무)이 서로 가지를 이웃하게 되고 북두(北斗)와<4> 남극(南極)이 서로 꼬리를 접하게 되도다.
세계의 범위가 줄어듦에 따라 세계 전체와 우리 부분의 거리도 매우 접근하게 되었다. 전체의 파동은 직접 국부의 사실화가 되고 국부의 파동은 따라서 전체의 영향이 되어 가나니, 세계와 우리의 활동은 어느덧 피안(彼岸)의 불로 볼 수 없도다.
우리는 어느덧 처사국(處士國)의 인민이 아니다. 또한 과거의 우리도 아니며 어제의 우리도 아니다. 다만 오늘이라 하는 금일의 우리이다. 금일을 음미하고 금일을 등에 진 우리이다. 금일의 사회 금일의 세계를 등에 진 우리이다.
세계의 범위가 좁아 옴에 따라 우리의 활동은 늘어 가고 세계의 지도가 축소함에 따라 우리의 걸음은 넓어가는 금일이다. 우리와 세계는 자못 한 이웃이 되어 오고 한 가정이 되어 오도다. 우리는 이로부터 세계를 알아야 하고 세계적 지식을 가져야 하리로다.
2.
세계는 이로부터 향상이 되랴 퇴화가 되랴. 복이 오랴 화가 오랴. 이는 아직 우리의 지력으로 알릴 수 있을[訴] 바 못되도다. 아니 우리는 아직 이를 좌우할 실력이 업도다. 복이 오면 웃고 이를 받을 뿐이며 화가 오면 태연히 이를 이해할 뿐, 그리하여 되면 되어 가는 대로 우리의 노력을 더욱 충실히 할 뿐이며 우리의 정신을 더욱 건전히 할 뿐이다.<5>
우리는 들었노라.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고막을 두드리는 개조! 개조의 소리. 그 소리야 매우 흥취(興趣) 있고 의미 있고, 그리하여 힘있고 정신 있도다. 이 소리 가는 곳에 우리의 행복이 목전에 쏟아지는 듯하도다.
개조, 개조. 그 무엇을 의미함인가. 세계라 말하는 이 활동의 기계를 뜯어 고쳐야 하겠다 함이로다. 과거 여러 가지 모순이며 여러 가지 불합리, 불공평, 불철저, 부적당한 기계를 수선하여 원만한 활동을 얻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의 과거는 이성의 헤아림으로는 심히 불가사의의 가운데에 있어 왔다. 우수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의 행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행위,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행위, 강자와 약자의 행위, 물질과 저인의 행위 모두가 불공평이었고 모두가 불이상(不理想)이었다. 우수한 사람의 조처는 있었으나 열등한 사람[劣者]의 해석은 없었으며, 부자를 대우하는 흐름은 있었으나 가난한 자를 위한 제도(制度)는 없었으며 지혜로운자, 강자의 무대는 있었으나 어리식은자, 약자의 낙원은 없었나니 이것이 과거 사회의 병적 상태였으며 과거 세계의 비인도 불정의한 실험이었다.
3.
그러나 과거 5년의 대전(제1차 세계대전)은 여하튼지 우리에게 큰 교훈이었다. 온 인류는 이 교훈에 의하여 우수수하고 일어나기를 시작하였다. 옛 꿈을 깨고 새 정신을 차렸다. 그리하여<6> 과거 병적 기계를 수선하기로 착수하였다. 이미 수선한 자도 있으며 개선 중에 있는 자도 있고 아직 고안 중에 있는 자도 있다.
세계의 금일은 이렇듯 부산한 중에 있다. 과도하면서 있는 금일[과도기]이다. 개조하는 도정에 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향상진보하는 중에 있나니 우리는 이것을 보고 여명이라 하며 서광이라 하며 개벽이라 한다.
이를 추상적으로 말하면 정의 인도의 발현이요 평등 자유의 목표라 하겠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약공존주의(强弱共存主義), 병건상보주의(病健相保主義)라 하리로다. 강자의 곁에 약자가 있지만은 둘이 다 권리의 조화를 얻고자, 부자의 곁에 가난한 자가 있지만은 둘이 다 경제의 평균을 얻고자, 우수한 자 곁에 열등한 자가 있지만은 둘이 다 가치의 권형(權衡; 사물의 균형)을 얻고자, 사자가 노는 곳에 양도 놀고 독수리가 나는 곳에 참새도 나래를 펼 시대가 돌아오도다.
4.
생각건대 사람이면 다 같이 하나로만 표준하고, 하나 이상 혹은 하나 이하로 계급을 정치 아니한다 함은 원래 최대다수의 행복을 목적하는 법률이 영원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최고의 격언이 아니랴. 법률 앞에는 약자, 병자도 유일의 가치로 인식하며 강자 우자도 하나 이상의<7> 권리가 있다 인정치 아니하나니, 이 진리를 다만 개인과 개인 간에만 쓸 것이 아니요, 전 세계의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공통한 원칙으로 사유케 됨이 금일 전 인류의 신 각성인 듯하다.
생각하라. 만일 약자와 병자는 사회에 이익을 주기보다도 손해를 주는 편이 많다 하면 사회는 이처럼 유해무익한 자를 존속시키기보다 차라리 이것을 멸망에 빠뜨리는 방법을 강구함이 필요한 듯하다마는, 그러나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나니 왜 그런가. 대저 강하다고 하며 약하다고 함은 필경 비교적 명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 가령 여기에 을이 있어서 자기는 강자요, 갑은 약자라 하자. 그러고 보면 병은 을보다도 다시 강자의 강자인 까닭에 을은 병에 대한 약자가 되지 않을 수 없으니, 만일 정이 있어 병보다도 다시 강자이면 병은 또 정 앞에 약자됨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하여 세계는 이러한 강약우열의 자가 서로 협동의 생활을 경영하나니, 즉 사회는 무수무수의 관계상에 서로 신뢰하고 서로 보조하는 고로 강자도 약자에 빚질 바 있으며 우수한 자도 열등한 자에 의지할바 있다.
이 점에서 세계인류 전체를 유일의 도의 체계로 보는 것은 국가 사회 또는 개인의 행복상 극히 필요한 것이라. 아니 자연의 원칙이요 천연의 공도(公道)라 하리니, 이것이 인류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근본적 공준(公準)이라 이를 것이 아니냐. 세계는 이 근본적 공준을<8> 버리고 각 개인과 각 민족에 대한 존경의 태도를 서로다르게[別別] 한다 하면 각개 민족의 생명과 행복은 끊임없이 위태의 지경에 빠질 것이라. 왜 그런가. 가치의 고하는 거의 무한하여 위에는 그보다 위가 무한하고 아래에는 그 아래가 무한함으로써라. 만일 을은 갑보다 가치가 있는 까닭으로 갑을 학대한다 하면 당연의 보답으로 을은 또 병에게 학대를 받을 날이 있다 각오치 아니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인류는 어디까지든지 인류 전체에 한하야 이로써 유일의 도의 체계로 간주하고 차별을 철폐하며 불평을 제거하고 법률의 앞에는 다 못 하나요 하나 이상 또는 하나 이하가 없다고 상상함과 같이 인도정의의 앞에는 각 민족, 각 국가는 다 못 하나요 하나 이상 하나 이하가 없다 가정함에 이르면 세계는 그 거의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세계의 진보 과정은 필연으로 이에 도착하고 이에 립각할 날이 머지 않았으리라. 개조의 목표는 아마도 반드시 이를 바라고 나아가는 중이다.
5.
영국 로동당 영수 아서, 핸드슨 씨는 말하되 “세계 인민은 평화에 대한 자가(自家)의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평화가 완성되기 전에 난처한 곤란에만 유의하였으므로 정부의 평화가 자기 등의 이상과 부합지 아니하면 그 평화의 성립에는 하등 장애물이 있다든지 이를 관계치 않았나니, 인민은 욕심 많은 국가의 이익이나 야심에 대하여는 동정을 드러내지 않고 용기와 인내와<9>결심으로 압제와 고통의 전쟁을 감수함은 독일의 폭정과 세계통일주의를 타파할 뿐만 아니라 세계 개조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자유평등과 안전한 정치 하에서 함께 즐거워하기를 유망(愈望: 몹시 바람)함이라 저들은 안전한 세계가 없으면 안전한 국가가 없는 줄로 인식하며 한 국민의 안악이 세계 평온과 마찬가지 뜻으로 연쇄됨을 각지(覺知)하였다. 대 전쟁의 영향은 전 지구의 감수한바 되어 세계의 종말적 대결전의 고통과 희생을 분담함에 국가의 경계가 없었으니 실로 전 세계의 인류가 십자가형을 받았도다. 파열되고 유형(流刑)된 인류는 현재 대 액운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급속히 해결하기로 절규하는도다. 이러한 해결은 옛 고통을 제거하고 새 불의를 방어하여 대소를 물론하고 민족의 자결과 자유하는 원칙으로 세계 평화를 유지할 기초를 수립할 목적이라” 하엿도다.
과연하다. 금후 세계는 실로 안전한 세계가 없으면 안전한 국가, 안전한 민족이 없으리라. 즉 한 국가 한 민족과 전 세계의 관계는 신체의 한 부분과 전체의 관계와 같아서 적어도도 동일한 혈액, 동일한 자양으로 동일의 관계를 낳게 되리라. 이 점에서 세계의 어떤 민족, 어떤 국가를 물론하고 능히 자기 독전(獨專)의 야심과 수욕으로 세계의 공통한 정의를 대항키 불능할 것은 물론의 사일지라. 이른바 세계 대세의 순응이라 하며 세계사조의 영합이라 함은 금일 이후에 철저로 나타날 것이 아니랴.<10>
이와 같이 안전한 행복은 안전한 세계가 있은 연후에 처음으로 실현된다 하면 세계는 필연으로 유일의 도의 체계 하에 귀착할 것이요 따라서 각 민족의 안녕 행복은 이 도의 체계를 각각 실천 체현함에 잇도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각자 부담한 이 도의 체계를 각자 체현코자 하면 그 사이에는 반드시 상당한 노력과 고통을 맛보지 아니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나니 세계의 장래가 아무리 한 계통의 도의 하에서 한 계통의 행복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이른바 행복은 결코 천상에 있는 왕모(王母)의 복숭아가 그대로 떨어져 올 것이 아니요 지상에 매달인 지식의 열매를 손수 따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을 것이로다. 아니 지상에 있는 것도 아니요 직접 자기에게 갖추어진[伏在] 무진장의 보고임을 잊지 말지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발아래를 파면 달디 단 샘[甘泉]이 솟아나올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이것이 우리의 노력을 요하는 점이며 근기(根氣)를 요하는 점이니, 자기의 노력과 근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노력과 활동에 의지하여 침상(枕上)의 복을 구하고자 함은 결코 현대 행복주의의 원칙이라 할 수 없다.
벨기에의 문학자 ‘메델린꾸’는 일찍이 인생을 노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유한의 세계를 즐거워함보다도 차라리 무한의 세계에 소리내어 울[泣]기를 희망하노라” 하였나니 이는 실로 진보한 인류의 통절한 욕구를 말한 것이 아닐 것이냐. 인류는 실로 사상의 진보를 따라 욕구가 광대하며 욕구의<11> 광대에 따라서 비애와 번민의 정도가 증가하는 것이라. 저 남양인(南洋人; 야만인)과 같은 종족은 다만 그의 성욕과 식욕을 만족케 함이 그의 생활에 전체이다. 저들은 저들의 머리 위에 비치는 해와 달에 대하여도 하등 주의가 없다 하나니 그러므로 열등한 인류에 대하여는 불만은 있으나 번민은 없으며 고통은 있으나 비애는 없다. 그런데 진화한 인류의 사이에 있어서는 세계에 대한, ㄱ리고 우주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의하여 이에 번민 비애가 함게 일어나니 이러한 번민 비애를 정복하고 무궁 무극의 혼돈계를 타개하는 사이에서 처음으로 인류가 인류된 권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건대 오늘날 전세계를 통하여 우리가 노력하는 이른바 노동문제, 부인문제, 인종문제, 사회문제는 다 같이 전 인류의 번민과 비애를 근본적으로 해방코자 하는 인류의 신성한 위력적 표시가 아니랴. 우리가 세계적 번민과 비애로 더불어 한가지로 울며 한가지로 부르짖으며 한가지의 해방을 얻고자 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노력을 요할 것이며 자기의 근기를 필요로 할 것이 아니랴. 오색의 그림이야 좋다만은 눈먼 사람에게야 무엇이 필요하며 오음(五音)의 곡조[律]야 좋다마는 귀머거리에게야 무엇이 유익하랴. 진미를 먹고 그 맛을 앎은 자기의 위와 장기가 완전함이요, 운동을 하고 그 즐거움을 느낌은 자기의 신체가 건전한 까닭이 아닐 것이냐.<12>
세계는 날로 오색의 채도가 찬란하여 가고 오음의 률이 화창하여 간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보고 그를 들으며, 그리하여 그의 색채와 그의 울음을 자기 집에 장식코자 하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총명(聰明)을 길러야 하리라.
6.
프랑스 자연주의자 ‘조라’ 씨는 말하기를 “우리의 임무는 사회의 죄악 원인을 탐구함에 있다” 하였나니 만약 그의 말을 빌려서 우리의 금일 임무를 물을 것 같으면 우리는 실로 우리의 죄악의 원인을 탐구하여 이를 개혁하고 이를 수선하여 세계 진화와 한가지로 걸음을 옮김이 우리의 임무라 하리로다. 우리가 아직도 암흑에 헤매고 광란에 부침함은 그 무슨 원인인가, 이는 달리 타인을 탓할 것이 없고 다만 자기로 자기의 죄악을 제거할 만한 욕기가 없으며, 자기로 자기의 행위를 감시할 만한 총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 용기와 그 총명을 기르지 못하는 까닭은 베이컨 씨의 이른바 동굴우상과 같이 우리는 항상 자기의 주관되는 협착한 인습에 매이고, 야매한 습관에 출몰하면서 넓게 세계를 보지 못함에 있는 것이 아니랴.
눈을 크게 뜨라. 귀를 크게 열라. 그리하여 세계를 보라. 세계를 들으라. 세계를 앎이 곧 자기의 죄악을 앎이요, 자기의 장래를 앎이요, 자기의 총명을 도움이요, 자기의 일체를 개벽함이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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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창간호, 02쪽]
소리가 있어 넓게 세계에 전하니,
온 세계 모든 인류가 이에 응하여 부르짖기를 시작하도다.
강자도 부르짖고 약자도 부르짖으며, 우등한 자도 부르짖고 열등한 자도 부르짖도다.
동서남북, 사해 팔방이 다같이 소리 중에 묻혀 있도다.
벽력이냐 지진이냐 신의 소리나 마귀의 곡성이냐.
우리는 아직 이 소리의 정사(正邪)를 판단할 수 없도다.
좌우간 다수가 갈망하고 다수가 요구하는 인민의 소리임은 명백하도다.
철인은 말하되 다수 인민의 소리는 곧 신의 소리라 하엿나니
신은 스스로 요구가 없는지라 인민의 소리에 응하여 그 요구를 발표하는 것이요,
신은 스스로 갈망이 없는지라 인민의 소리에 응하여 또한 그 갈망을 나타내는 것이라,
다수 인민이 갈망하고 또 요구하는 소리는 곧 신이 갈망하고 요구하는 소리니
이것이 곧 세계 개벽의 소리로다.
신은 있는 그대로의 일물(一物)로부터 진화를 시작하였도다.
있음과 없음을 갈라내고 태양계를 조직하고 만물을 내었나니 이것이 곧 우주의 개벽이며
사람은 신이 진화한 자로 만물을 대표하여 사냥을 시작하며 농업을 경영하며 상공업을 일으켜서
진화에 진화를 더하는 중 오늘날 이 세계 대 개조라 하는 혁신의 기운을 맛보게 되었나니
이것이 곧 개벽의 개벽이었다.
때가 개벽하고 일이 개벽하고 인물이 개벽하는 이때에
우리가 이 개벽사(開闢史)를 쓰게 됨은 실로 때에 맞고, 일에 맞고, 정신에 맞는 신의 요구라 아니할 수 없도다.
인민의 소리는 이 개벽에 말미암아 더욱 커지고 넓어지고, 철저하여지리라.
오호라.
인류의 출생 후 수십 만년이 되는 오늘날, 처음으로 이 개벽 잡지가 나게 됨이 어찌 우연이랴.
世界를 알라 (원문) - 00101-원
[개벽 제1호, 03쪽-13쪽]
一.
사람은 天使도 안이며 野獸도 안이오 오즉 사람일 뿐이로다. 이만치 進化된 體格, 이만치 進化한 知識, 이만치 進化한 道德을 가진 動物일 뿐이로다. 딸아서 世界는 天堂도 안이며 地獄도 안이오, 오즉 世界일 뿐이로다. 이만치 進化한 國家와 國家, 이만치 進化한 社會와 社會, 이만치 進化한 個人과 個人이 互相 聯結 活動하는 舞臺일 뿐이로다. 사람과 世界는 決코 논하볼 것이 안이엇다. 사람으로 된 世界, 世界로 된 사람 둘이 안이오 오즉 하나일 뿐이엇다. 世界를 代表한 時代의 價値와 사람을 代表한 文化의 象徵은 다만 名과 實의 符號일 뿐이니 사람은 반듯이 世界를 알어야 하리로다. 世界를 알미 곳 사람을 알미요 또한 自己를 알미엇다. 사람으로써 世界를 알미 自己로써 自己의 이름을 알미로다.<3>
過去는 論할 것이 업도다만은 今日과 가티 交通이 이마마하고 知識이 이마마하고 一切의 文物이 이마마한 오늘에 안자서는 더욱 世界를 理解하여야 하겟도다. 孔子는 일즉 泰山에 올라 天下를 적다 하엿나니 이것이 곳 天下를 理解하는 度量을 가졋슴으로써라. 오늘날 사람은 다 가티 天下를 적다 할 理想을 가져야 하리로다. 天下를 적다 하고 月世界의 旅行을 計劃하며 火星界의 交通을 求할 만한 遠大한 理想의 抱負가 잇서야만 하리로다.
世界가 얼마마한 文化를 가지고 잇스며 얼마마한 發展, 向上, 進化를 가지고 잇는가 딸아서 世界와 一國家, 世界와 우리民族, 世界와 나는 얼마마한 關係, 利害, 價値를 가지고 잇는가. 이를 理解하는 知力과 이를 批判할만한 理性이 잇서야 하겟도다.
一局部의 病을 治療하랴면 반듯이 全 身體의 衛生을 알어야 하고, 全 身體의 衛生을 完全히 하랴면 반듯이 局部局部의 調和를 어듬이 必要함과 가티 世界와 一國家, 世界와 一種族, 世界와 一個人의 關係도 또한 이와 갓도다.
世界는 어느덧 封鎖時代의 世界가 안이엇다. 또한 去年의 世界도 안이며 昨日의 世界도 안이엇다. 다만 오늘이라 하는 요마만치 된 世界이며 다만 이 刹那라 하는 요마만치 된 世界엇다. 世界의 幅圓은 漸次 其 範圍가 줄어가도다. 東한 끗과 西한 끗이 날로 近하야 오고 南한 끗과 北한 끗이 달마다 좁아 오도다. 扶桑若木이 서로 가지를 連하게 되고 北斗와<4> 南極이 서로 꼬리를 接하게 되도다.
世界의 範圍가 줄어옴에 조차 世界 全體와 우리 局部의 距離도 甚히 接近케 되엇도다. 全體의 波動은 直接 局部의 事實化가 되고 局部의 波動은 딸아서 全體의 影響이 되어가나니 世界와 우리의 活動은 어느덧 彼岸의 火로 불 수 업도다.
우리는 어느덧 處士國의 人民이 안이엇다. 또한 去年의 우리도 안이며 昨日의 우리도 안이엇다. 다만 오늘이라 하는 今日의 우리엇다. 今日을 吟味하고 今日을 등에 진 우리엇다. 今日의 社會 今日의 世界를 등에 진 우리엇다.
世界의 範圍가 좁아옴에조차 우리의 活動은 느러가고 世界의 地圖가 縮小함에 딸아 우리의 거름은 넓어가는 今日이엇다. 우리와 世界는 자못 한이웃이 되어오고 한 家庭이 되어 오도다. 우리는 이로부터 世界를 알어야 하고 世界的 知識을 가져야 하리로다.
二.
世界는 이로부터 向上이 되랴 退化가 되랴 福이 오랴 禍가 오랴 이는 아즉 우리의 知力으로 訴할바 못되도다. 안이 우리는 아즉 이를 左右할 實力이 업도다. 福이 오면 웃고 이를 바들 뿐이며 禍가 오면 泰然히 이를 理解할 뿐, 그리하야 되면 되어가는 대로 우리의 努力을 더욱 充實히 할 뿐이며 우리의 精神을 더욱 健全히 할 뿐이엇다.<5>
우리는 들엇노라.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耳膜을 打動하는 改造改造의 聲-그 소리야 매우 興趣잇고 意味잇고 그리하야 힘잇고 精神잇도다. 이 소리 가는 곳에 우리의 幸福이 目前에 쏘다지는 듯 하도다.
改造改造 그 무엇을 意味함인가. 世界라 云하는 이 活動의 機械를 뜨더 고쳐야 하겟다 함이로다. 過去 여러 가지 矛盾이며 여러 가지 不合理 不公平 不徹底 不適當한 機械를 修繕하야 圓滿한 活動을 엇고저 努力하는 中이엇다.
우리의 過去는 理性의 訴求로는 심히 不思議의 中에 잇서 왓도다. 優對劣者行爲 富對貧者行爲, 智對愚者行爲, 乃至 强對弱者行爲, 物質對精神行爲, 모도가 不公平이엇고 모도가 不理想이어섯다. 優者의 措處는 잇섯스나 劣者의 解釋은 업섯스며 富者의 待遇는 잇섯스나 貧者의 制度는 업섯스며 智, 强者의 舞臺는 잇섯스나 愚, 弱者의 樂園은 업섯나니 이것이 過去 社會의 病的 狀態이엇스며 過去 世界의 非人道不正義한 實驗이엇도다.
三.
抑 過去 五年의 大戰은 如何튼지 우리에게 큰 敎訓이엇도다. 온 人類는 이 敎訓에 依하야 우수수하고 일어나기를 始作하엿도다. 옛꿈을 깨고 새 精神을 차렷도다. 그리하야<6> 過去 病的 機械를 修繕하기로 着手하엿도다. 이미 修繕한 者도 잇스며 改繕 中에 잇는 者도 잇고 아즉 考案 中에 잇는 者도 잇도다.
世界의 今日은 이러틋 浮散한 中에 잇도다. 過渡하면서 잇는 今日이엇다. 改造하는 道程에 잇스며 步一步向上進步하는 中에 잇나니 우리는 이것을 보고 黎明이라 하며 曙光이라 하며 開闢이라 하도다.
이를 抽象的으로 말하면 正義人道의 發現이오 平等 自由의 目標라 하겟고 具體的으로 말하면 强弱共存主義, , 病健相保主義라 하리로다.
强者의 겻헤 弱者가 잇지만은 둘이다 權利의 調和를 엇고저 富者의 겻헤 貧者가 잇지만은 둘이다 經濟의 平均을 엇고저 優者의 겻헤 劣者가 잇지만은 두리다 價値의 權衡을 엇고저 獅子의 노는 곳에 小羊도 놀고 猛鷲가 나는 곳에 小雀도 나래를 펼 時代가 돌아오도다.
四.
생각컨대 人이면 다가티 一로만 標準하고, 一 以上 혹은 一 以下로 階級을 定치 안이한다 함은 元來-最大多數의 幸福을 目的하는 法律이 永遠의 經驗으로부터 得來한 無上의 格言이 안이랴. 法律의 前에는 弱者 病者도 唯一의 價値로 認하며 强者 優者도 一 以上의<7> 權利가 有하다 認定치 안이하나니 이 眞理를 다만 個人과 個人間에 뿐 用할 자-안이오, 全世界의 國家와 國家, 民族과 民族의 共通한 原則으로 思惟케 됨이 今日 全 人類의 新覺性인 듯 하도다.
思하라. 萬一 弱者와 病者는 社會에 利益을 與함보다도 損害를 與하는 便이 多하다 하면 社會는 如斯히 有害無益한 者를 存續시키니보다도 寧히 此로 滅亡에 歸케 하는 方法을 講求함이 必要한 듯하다만은 그러나 事實은 決코 不然하나니 何이뇨. 大抵 强이라 하며 弱이라 함은 畢竟컨대 比較的 名辭에 不過한 것이 안이냐. 假令 玆에 乙이 有하야 自己는 强者요, 甲은 弱者라 하고보자. 그리고 보면 丙은 乙보다도 更히 强者의 强者인 까닭에 乙은 丙에 대한 弱者가 되지 안이치 못할지니 만일 丁이 有하야 丙보다도 更히 强者이면 丙은 又 丁의 前에 弱者됨을 免치 못하리라. 그리하야 世界는 是等 强弱優劣의 者가 互相 協同의 生活을 營하나니 卽 社會는 無數無數의 關係上에 互相 信賴하고 互相 保助하는 故로 强者도 弱者에 負할바 잇스며 優者도 劣者에 賴할바 잇도다.
이 點에서 世界人類 全體를 唯一의 道義體系로 見做하는 것은 國家 社會 又는 個人의 幸福上―極히 必要한 것이라. 안이 自然의 原則이오 天然의 公道라 하리니 이것이 人類가 社會生活을 營하는 上의 根本的 公準이라 이를 것이 안이냐. 世界는 이 根本的 公準을<8> 바리고 各 個人 及 各 民族에 對한 尊敬의 態度를 別別히 한다하면 各個 民族의 生命과 幸福은 不絶히 危殆의 境에 陷할 것이라. 何故오. 價値의 高下는 殆히 無限하야 上에는 上이 無限하고 下에는 下가 無限함으로써라. 萬一 乙은 甲보다 가치가 有한 故로 甲을 虐待한다 하면 當然의 報酬로 乙은 又 丙에게 虐待를 受할 日이 有하다 覺悟치 안이함이 不可하니 그럼으로 人類는 어대까지든지 人類 全體에 限하야 此로써 唯一의 道義 體系로 見做하고 差別을 撤廢하며 不平을 除去하고 法律의 前에는 다 못 一이오 一 以上 또는 一 以下가 업다 想像함과 가티 人道正義의 前에는 各 民族 各 國家는 다 못 一이오 一 以上 一 以下가 업다 假定함에 至하면 世界는 其 庶幾인뎌.
世界의 進步 過程은 必然으로 이에 到着하고 이에 立脚할 日이 不遠하엿스리라. 改造의 目標는 究竟컨대 이를 見樣하고 나아가는 中이엇다.
五.
英國 勞働黨 領首 「아―서, 핸드서」氏는 일럿스되 「世界人民은 平和에 對한 自家의 理想이 有하야 其 平和가 完成되기 前에 難處한 困難에만 留意하엿슴으로 政府의 平和가 自己 等의 理想과 符合지 안이하면 其 平和의 成立에는 下等 障礙物이 有하든지 이를 勿關하엿나니 人民은 多慾한 國家의 利益이나 野心에 對하야는 同情을 表치 안코 勇氣와 忍耐와<9>決心으로 壓制와 苦痛의 戰爭을 甘受함은 獨逸의 暴政과 世界統一主義를 打破할 뿐만 안이라 世界 改造로 由하야 天下 萬民이 自由平等과 安全한 政治下에서 同樂키를 愈望함이라 彼等은 安全한 世界가 無하면 安全한 國家가 無한줄로 認하며 一國民의 安樂이 世界平穩과 好意로 連鎖됨을 覺知하엿도다. 大戰爭의 影響은 全 地球의 感受한바 되어 世界의 終末的 大決戰의 苦痛과 犧牲을 分擔함에 國家의 境界가 無하엿나니 實로 全世界의 人類가 十字架刑을 受하엿도다. 破裂되고 流刑된 人類는 現在 大 厄運의 原因을 根本的으로 急速히 解決하기로 絶呌하는도다. 如此한 解決은 녯 苦痛을 除去하고 새 不義를 防禦하야 大小를 勿論하고 民族의 自決과 自由하는 原則으로 世界 平和를 維持할 基礎를 樹立할 目的이라」 하엿도다.
果然하다. 今後 世界는 實로 安全한 世界가 無하면 安全한 國家, 安全한 民族이 업스리라. 即 一國家 一民族과 全世界과의 對한 關係는 身體의 一局部와 全體에 對한 關係와 가타야 少하야도 同一한 血液, 同一한 滋養으로 同一의 關係를 生케 되리라. 이 點에서 世界의 엇던 民族, 엇던 國家를 勿論하고 能히 自己 獨專의 野心과 獸慾으로 世界의 共通한 正義를 對抗키 不能할 것은 勿論의 事일지라. 이른바 世界大勢의 順應이라 하며 世界思潮의 迎合이라 함은 今日 以後에 徹底로 나타날 것이 안이랴.<10>
如斯히 安全한 幸福은 安全한 世界가 有한 然後에 처음으로 實現된다 하면 世界는 必然으로 唯一의 道義體系 下에 歸着할 것이오 딸아서 各 民族의 安寧 幸福은 此 道義體系를 各各 實踐體現함에 잇도다.
그리하야 吾人으로 吾人의 各自 負擔한 此 道義體系를 各自 體現코저 하면 這間에는 반듯이 相當한 努力과 苦痛을 맛보지 안이하면 到底 不能하나니 世界의 將來가 아모리 一 系統의 道義 下에서 一 系統의 幸福을 受한다 할지라도 그 이른바 幸福은 決코 天上에 잇는 王母桃가 그대로 落來할 것이 안이오 地上에 纍纍한 知識의 열매를 손수 摘取함에 不過한 資임을 깨다를 것이로다. 안이 地上에 잇는 것도 안이오 直接 自家에 伏在한 無盡藏의 寶庫임을 忘치 말지어다. 우리는 누구나 自己의 脚下를 掘하면 甘泉이 湧出할 것을 忘치 말아야 할것이라. 이것이 우리의 努力을 要하는 點이며 根氣를 要하는 點이니 自己의 努力과 根氣를 바리고 他人의 努力과 活動에 의지하야 枕上의 福을 求코저 함은 決코 現代 幸福主義의 原則이라 할 수 업도다.
白耳義의 文學者 「메―델린꾸」는 일즉 人生을 論하야 曰 「吾等은 有限의 世界에 樂함보다도 寧히 無限의 世界에 泣할 事를 希望하노라」 하엿나니 此는 實로 進步한 人類의 痛切한 慾求를 말한 것이 안일것이냐. 人類는 實로 思想의 進步를 딸아 慾求가 廣大하며 慾求의<11> 廣大에 딸아서 悲哀와 煩悶의 程度가 增加하는 것이라. 彼―南洋人과 如함은 다못 그의 性慾과 食慾을 滿足케 함이 그의 生活에 全體이엇다. 彼等은 彼等의 頭上에 光臨하는 日月에 對하야도 何等 注意가 업다 하나니 故로 劣等 人類에 對하야는 不滿은 잇스나 煩悶은 업스며 苦痛은 잇스나 悲哀는 업도다. 然한대 進化한 人類의 間에 在하야는 世界에 對하며 宇宙에 對한 强烈한 慾求에 依하야 玆에 煩悶 悲哀가 幷起하나니 是等의 煩悶 悲哀를 征服하고 無窮無極의 混沌界를 打開하는 間에서 처음으로 人類의 人類된 權威가 나타나는 것이로다.
생각컨대 今日 全世界를 通하야 우리의 努力을 주는 이른바 勞働問題, 婦人問題, 人種問題, 社會問題는 다가티 全人類의 煩悶과 悲哀를 根本的으로 解放코저 하는 人類의 神聖한 偉力的 表示가 안이랴. 우리가 世界的 煩悶과 悲哀로 더불어 한가지로 울며 한가지로 부르지즈며 한가지의 解放을 엇고저 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自己의 努力을 要할것이며 自己의 根氣를 要할것이 안이랴. 五色의 圖畵야 조타만은 盲者에게야 무엇이 必要하며 五音의 律이야 조타마는 聾者에게야 무엇이 유익하랴. 珍味를 먹고 其 味를 앎은 自己의 膓胃가 完全함이오 運動을 하고 其 快를 感함은 自己의 身體가 健全한 까닭이 안일 것이냐.<12>
世界는 날로 五色의 彩圖가 燦爛하야 가고 五音의 律이 和暢하야 가도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보고 그를 들으며 그리하야 그의 色彩와 그의 律音을 自家에 粧飾코저 하면 무엇보다 먼저 自己의 聰明을 養하여야 하리라.
六.
佛國 自然主義者 「쬬―라」 氏는 말하되 「我等의 任務는 社會의 罪惡原因을 探求함에 잇다」 하엿나니 萬若 氏의 言을 借하야 우리의 今日 任務를 물을 것 가트면 우리는 實로 우리의 罪惡의 原因을 探求하야 이를 改革하고 이를 修繕하야 世界의 進化와 한가지로 거름을 옴김이 우리의 任務라 하리로다. 우리가 아즉도 暗黑에 헤매고 狂瀾에 浮沉함은 그 무삼 原因이뇨, 이는 別로 他人을 責할 것이 업고 다만 自己로 自己의 罪惡을 拔除할만한 勇力이 업스며 自己로 自己의 行爲를 鑑視할 만한 聰明이 업슴으로써일 것이다. 그리하야 其 勇力과 其 聰明을 養치 못하는 所以는 「뼈-곤」 氏의 이른바 巖窟偶像과 가티 우리는 恒常 自己의 主觀되는 狹窄한 因襲에 깨기고, 野味한 習慣에 出沒하면서 넓히 世界를 보지 못함에 잇는 것이 안이랴.
눈을 크게 뜨라. 귀를 크게 열라. 그리하야 世界를 보라. 世界를 들으라. 世界를 알미 곳 自己의 罪惡을 알미요, 自己의 將來를 알미요, 自己의 聰明을 도움이요, 自己의 一切를 開闢함이로다.<13>
세계를 알라 (해석) - 00101-번
[개벽 제1호, 03쪽-13쪽]
1.
사람은 천사도 아니며 짐승도 아니며 오직 사람일 뿐이로다. 이만치 진화된 체격, 이만치 진화한 지식, 이만치 진화한 도덕을 가진 동물일 뿐이로다. 따라서 세계는 천당도 아니며 지옥도 아니요, 오직 세계일 뿐이로다. 이만치 진화한 국가와 국가, 이만치 진화한 사회와 사회, 이만치 진화한 개인과 개인이 상호[互相] 연결 활동하는 무대일 뿐이로다. 사람과 세계는 결코 나누어볼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된 세계, 세계로 된 사람은 둘이 아니요 오직 하나일 뿐이다. 세계를 대표한 시대의 가치와 사람을 대표한 문화의 상징은 다만 이름[名]과 실제[實]의 부호일 뿐이니, 사람은 반드시 세계를 알아야 하리로다. 세계를 앎이 곧 사람을 앎이요 또한 자기를 앎이다. 사람으로써 세계를 앎이 자기로써 자기의 이름을 앎이로다.<3>
과거는 논할 것이 없다마는 금일과 같이 교통이 이마마하고 지식이 이마마하고 일체의 문물이 이마마한 오늘에 앉아서는 더욱 세계를 이해하여야 하겠다. 공자는 일찍이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다 하였나니 이것이 곧 천하를 이해하는 도량을 가졌음으로써라. 오늘날 사람은 다 같이 천하를 적다 할 이상을 가져야 하리로다. 천하를 작다 하고 달세계로의 여행을 계획하며 화성를 오고가겠다는 원대한 이상의 포부가 있어야만 하리로다.
세계가 얼마마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얼마마한 발전, 향상, 진화를 가지고 있는가, 따라서 세계와 한 국가, 세계와 우리 민족, 세계와 나는 얼마마한 관계, 이해(利害),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이를 이해하는 지력과 이를 비판할 만한 이성이 있어야 하겠다.
한 부분의 병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전 신체의 위생을 알아야 하고, 전 신체의 위생을 완전히 하려면 반듯이 부분 부분의 조화를 얻음이 필요함과 같이 세계와 한 국가, 세계와 한 종족, 세계와 한 개인의 관계도 또한 이와 같도다.
세계는 어느덧 봉쇄 시대의 세계가 아니다. 또한 과거의 세계도 아니며 어제의 세계도 아니다. 다만 오늘이라 하는 요마만치 된 세계이며, 다만 이 찰나라 하는 요마만치 된 세계이다. 세계의 폭원(幅圓)은 점차 그 범위가 줄어간다. 동쪽 끝과 서쪽 끝이 날로 가까워 오고 남쪽 끝과 북쪽 끝이 달마다 좁아 오도다. 부상(扶桑; 해가 뜨는 곳에 있는 나무) 약목(若木; 해가 지는 곳에 있는 나무)이 서로 가지를 이웃하게 되고 북두(北斗)와<4> 남극(南極)이 서로 꼬리를 접하게 되도다.
세계의 범위가 줄어듦에 따라 세계 전체와 우리 부분의 거리도 매우 접근하게 되었다. 전체의 파동은 직접 국부의 사실화가 되고 국부의 파동은 따라서 전체의 영향이 되어 가나니, 세계와 우리의 활동은 어느덧 피안(彼岸)의 불로 볼 수 없도다.
우리는 어느덧 처사국(處士國)의 인민이 아니다. 또한 과거의 우리도 아니며 어제의 우리도 아니다. 다만 오늘이라 하는 금일의 우리이다. 금일을 음미하고 금일을 등에 진 우리이다. 금일의 사회 금일의 세계를 등에 진 우리이다.
세계의 범위가 좁아 옴에 따라 우리의 활동은 늘어 가고 세계의 지도가 축소함에 따라 우리의 걸음은 넓어가는 금일이다. 우리와 세계는 자못 한 이웃이 되어 오고 한 가정이 되어 오도다. 우리는 이로부터 세계를 알아야 하고 세계적 지식을 가져야 하리로다.
2.
세계는 이로부터 향상이 되랴 퇴화가 되랴. 복이 오랴 화가 오랴. 이는 아직 우리의 지력으로 알릴 수 있을[訴] 바 못되도다. 아니 우리는 아직 이를 좌우할 실력이 업도다. 복이 오면 웃고 이를 받을 뿐이며 화가 오면 태연히 이를 이해할 뿐, 그리하여 되면 되어 가는 대로 우리의 노력을 더욱 충실히 할 뿐이며 우리의 정신을 더욱 건전히 할 뿐이다.<5>
우리는 들었노라.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고막을 두드리는 개조! 개조의 소리. 그 소리야 매우 흥취(興趣) 있고 의미 있고, 그리하여 힘있고 정신 있도다. 이 소리 가는 곳에 우리의 행복이 목전에 쏟아지는 듯하도다.
개조, 개조. 그 무엇을 의미함인가. 세계라 말하는 이 활동의 기계를 뜯어 고쳐야 하겠다 함이로다. 과거 여러 가지 모순이며 여러 가지 불합리, 불공평, 불철저, 부적당한 기계를 수선하여 원만한 활동을 얻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의 과거는 이성의 헤아림으로는 심히 불가사의의 가운데에 있어 왔다. 우수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의 행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행위,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행위, 강자와 약자의 행위, 물질과 저인의 행위 모두가 불공평이었고 모두가 불이상(不理想)이었다. 우수한 사람의 조처는 있었으나 열등한 사람[劣者]의 해석은 없었으며, 부자를 대우하는 흐름은 있었으나 가난한 자를 위한 제도(制度)는 없었으며 지혜로운자, 강자의 무대는 있었으나 어리식은자, 약자의 낙원은 없었나니 이것이 과거 사회의 병적 상태였으며 과거 세계의 비인도 불정의한 실험이었다.
3.
그러나 과거 5년의 대전(제1차 세계대전)은 여하튼지 우리에게 큰 교훈이었다. 온 인류는 이 교훈에 의하여 우수수하고 일어나기를 시작하였다. 옛 꿈을 깨고 새 정신을 차렸다. 그리하여<6> 과거 병적 기계를 수선하기로 착수하였다. 이미 수선한 자도 있으며 개선 중에 있는 자도 있고 아직 고안 중에 있는 자도 있다.
세계의 금일은 이렇듯 부산한 중에 있다. 과도하면서 있는 금일[과도기]이다. 개조하는 도정에 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향상진보하는 중에 있나니 우리는 이것을 보고 여명이라 하며 서광이라 하며 개벽이라 한다.
이를 추상적으로 말하면 정의 인도의 발현이요 평등 자유의 목표라 하겠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약공존주의(强弱共存主義), 병건상보주의(病健相保主義)라 하리로다. 강자의 곁에 약자가 있지만은 둘이 다 권리의 조화를 얻고자, 부자의 곁에 가난한 자가 있지만은 둘이 다 경제의 평균을 얻고자, 우수한 자 곁에 열등한 자가 있지만은 둘이 다 가치의 권형(權衡; 사물의 균형)을 얻고자, 사자가 노는 곳에 양도 놀고 독수리가 나는 곳에 참새도 나래를 펼 시대가 돌아오도다.
4.
생각건대 사람이면 다 같이 하나로만 표준하고, 하나 이상 혹은 하나 이하로 계급을 정치 아니한다 함은 원래 최대다수의 행복을 목적하는 법률이 영원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최고의 격언이 아니랴. 법률 앞에는 약자, 병자도 유일의 가치로 인식하며 강자 우자도 하나 이상의<7> 권리가 있다 인정치 아니하나니, 이 진리를 다만 개인과 개인 간에만 쓸 것이 아니요, 전 세계의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공통한 원칙으로 사유케 됨이 금일 전 인류의 신 각성인 듯하다.
생각하라. 만일 약자와 병자는 사회에 이익을 주기보다도 손해를 주는 편이 많다 하면 사회는 이처럼 유해무익한 자를 존속시키기보다 차라리 이것을 멸망에 빠뜨리는 방법을 강구함이 필요한 듯하다마는, 그러나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나니 왜 그런가. 대저 강하다고 하며 약하다고 함은 필경 비교적 명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 가령 여기에 을이 있어서 자기는 강자요, 갑은 약자라 하자. 그러고 보면 병은 을보다도 다시 강자의 강자인 까닭에 을은 병에 대한 약자가 되지 않을 수 없으니, 만일 정이 있어 병보다도 다시 강자이면 병은 또 정 앞에 약자됨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하여 세계는 이러한 강약우열의 자가 서로 협동의 생활을 경영하나니, 즉 사회는 무수무수의 관계상에 서로 신뢰하고 서로 보조하는 고로 강자도 약자에 빚질 바 있으며 우수한 자도 열등한 자에 의지할바 있다.
이 점에서 세계인류 전체를 유일의 도의 체계로 보는 것은 국가 사회 또는 개인의 행복상 극히 필요한 것이라. 아니 자연의 원칙이요 천연의 공도(公道)라 하리니, 이것이 인류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근본적 공준(公準)이라 이를 것이 아니냐. 세계는 이 근본적 공준을<8> 버리고 각 개인과 각 민족에 대한 존경의 태도를 서로다르게[別別] 한다 하면 각개 민족의 생명과 행복은 끊임없이 위태의 지경에 빠질 것이라. 왜 그런가. 가치의 고하는 거의 무한하여 위에는 그보다 위가 무한하고 아래에는 그 아래가 무한함으로써라. 만일 을은 갑보다 가치가 있는 까닭으로 갑을 학대한다 하면 당연의 보답으로 을은 또 병에게 학대를 받을 날이 있다 각오치 아니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인류는 어디까지든지 인류 전체에 한하야 이로써 유일의 도의 체계로 간주하고 차별을 철폐하며 불평을 제거하고 법률의 앞에는 다 못 하나요 하나 이상 또는 하나 이하가 없다고 상상함과 같이 인도정의의 앞에는 각 민족, 각 국가는 다 못 하나요 하나 이상 하나 이하가 없다 가정함에 이르면 세계는 그 거의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세계의 진보 과정은 필연으로 이에 도착하고 이에 립각할 날이 머지 않았으리라. 개조의 목표는 아마도 반드시 이를 바라고 나아가는 중이다.
5.
영국 로동당 영수 아서, 핸드슨 씨는 말하되 “세계 인민은 평화에 대한 자가(自家)의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평화가 완성되기 전에 난처한 곤란에만 유의하였으므로 정부의 평화가 자기 등의 이상과 부합지 아니하면 그 평화의 성립에는 하등 장애물이 있다든지 이를 관계치 않았나니, 인민은 욕심 많은 국가의 이익이나 야심에 대하여는 동정을 드러내지 않고 용기와 인내와<9>결심으로 압제와 고통의 전쟁을 감수함은 독일의 폭정과 세계통일주의를 타파할 뿐만 아니라 세계 개조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자유평등과 안전한 정치 하에서 함께 즐거워하기를 유망(愈望: 몹시 바람)함이라 저들은 안전한 세계가 없으면 안전한 국가가 없는 줄로 인식하며 한 국민의 안악이 세계 평온과 마찬가지 뜻으로 연쇄됨을 각지(覺知)하였다. 대 전쟁의 영향은 전 지구의 감수한바 되어 세계의 종말적 대결전의 고통과 희생을 분담함에 국가의 경계가 없었으니 실로 전 세계의 인류가 십자가형을 받았도다. 파열되고 유형(流刑)된 인류는 현재 대 액운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급속히 해결하기로 절규하는도다. 이러한 해결은 옛 고통을 제거하고 새 불의를 방어하여 대소를 물론하고 민족의 자결과 자유하는 원칙으로 세계 평화를 유지할 기초를 수립할 목적이라” 하엿도다.
과연하다. 금후 세계는 실로 안전한 세계가 없으면 안전한 국가, 안전한 민족이 없으리라. 즉 한 국가 한 민족과 전 세계의 관계는 신체의 한 부분과 전체의 관계와 같아서 적어도도 동일한 혈액, 동일한 자양으로 동일의 관계를 낳게 되리라. 이 점에서 세계의 어떤 민족, 어떤 국가를 물론하고 능히 자기 독전(獨專)의 야심과 수욕으로 세계의 공통한 정의를 대항키 불능할 것은 물론의 사일지라. 이른바 세계 대세의 순응이라 하며 세계사조의 영합이라 함은 금일 이후에 철저로 나타날 것이 아니랴.<10>
이와 같이 안전한 행복은 안전한 세계가 있은 연후에 처음으로 실현된다 하면 세계는 필연으로 유일의 도의 체계 하에 귀착할 것이요 따라서 각 민족의 안녕 행복은 이 도의 체계를 각각 실천 체현함에 잇도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각자 부담한 이 도의 체계를 각자 체현코자 하면 그 사이에는 반드시 상당한 노력과 고통을 맛보지 아니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나니 세계의 장래가 아무리 한 계통의 도의 하에서 한 계통의 행복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이른바 행복은 결코 천상에 있는 왕모도(王母) 복숭아가 그대로 떨어져 올 것이 아니요 지상에 매달인 지식의 열매를 손수 따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깨달을 것이로다. 아니 지상에 있는 것도 아니요 직접 자기에게 갖추어진[伏在] 무진장의 보고임을 잊지 말지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발아래를 파면 달디 단 샘[甘泉]이 솟아나올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이것이 우리의 노력을 요하는 점이며 근기(根氣)를 요하는 점이니, 자기의 노력과 근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노력과 활동에 의지하여 침상(枕上)의 복을 구하고자 함은 결코 현대 행복주의의 원칙이라 할 수 없다.
벨기에의 문학자 ‘메델린꾸’는 일찍이 인생을 노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유한의 세계를 즐거워함보다도 차라리 무한의 세계에 소리내어 울[泣]기를 희망하노라” 하였나니 이는 실로 진보한 인류의 통절한 욕구를 말한 것이 아닐 것이냐. 인류는 실로 사상의 진보를 따라 욕구가 광대하며 욕구의<11> 광대에 따라서 비애와 번민의 정도가 증가하는 것이라. 저 남양인(南洋人; 야만인)과 같은 종족은 다만 그의 성욕과 식욕을 만족케 함이 그의 생활에 전체이다. 저들은 저들의 머리 위에 비치는 해와 달에 대하여도 하등 주의가 없다 하나니 그러므로 열등한 인류에 대하여는 불만은 있으나 번민은 없으며 고통은 있으나 비애는 없다. 그런데 진화한 인류의 사이에 있어서는 세계에 대한, ㄱ리고 우주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의하여 이에 번민 비애가 함게 일어나니 이러한 번민 비애를 정복하고 무궁 무극의 혼돈계를 타개하는 사이에서 처음으로 인류가 인류된 권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건대 오늘날 전세계를 통하여 우리가 노력하는 이른바 노동문제, 부인문제, 인종문제, 사회문제는 다 같이 전 인류의 번민과 비애를 근본적으로 해방코자 하는 인류의 신성한 위력적 표시가 아니랴. 우리가 세계적 번민과 비애로 더불어 한가지로 울며 한가지로 부르짖으며 한가지의 해방을 얻고자 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노력을 요할 것이며 자기의 근기를 필요로 할 것이 아니랴. 오색의 그림이야 좋다만은 눈먼 사람에게야 무엇이 필요하며 오음(五音)의 곡조[律]야 좋다마는 귀머거리에게야 무엇이 유익하랴. 진미를 먹고 그 맛을 앎은 자기의 위와 장기가 완전함이요, 운동을 하고 그 즐거움을 느낌은 자기의 신체가 건전한 까닭이 아닐 것이냐.<12>
세계는 날로 오색의 채도가 찬란하여 가고 오음의 률이 화창하여 간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보고 그를 들으며, 그리하여 그의 색채와 그의 율음을 자기 집에 장식코자 하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총명(聰明)을 길러야 하리라.
6.
프랑스 자연주의자 ‘조라’ 씨는 말하기를 “우리의 임무는 사회의 죄악 원인을 탐구함에 있다” 하였나니 만약 그의 말을 빌려서 우리의 금일 임무를 물을 것 같으면 우리는 실로 우리의 죄악의 원인을 탐구하여 이를 개혁하고 이를 수선하여 세계 진화와 한가지로 걸음을 옮김이 우리의 임무라 하리로다. 우리가 아직도 암흑에 헤매고 광란에 부침함은 그 무슨 원인인가, 이는 달리 타인을 탓할 것이 없고 다만 자기로 자기의 죄악을 제거할 만한 욕기가 없으며, 자기로 자기의 행위를 감시할 만한 총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 용기와 그 총명을 기르지 못하는 까닭은 베이컨 씨의 이른바 동굴우상과 같이 우리는 항상 자기의 주관되는 협착한 인습에 매이고, 야매한 습관에 출몰하면서 넓게 세계를 보지 못함에 있는 것이 아니랴.
눈을 크게 뜨라. 귀를 크게 열라. 그리하여 세계를 보라. 세계를 들으라. 세계를 앎이 곧 자기의 죄악을 앎이요, 자기의 장래를 앎이요, 자기의 총명을 도움이요, 자기의 일체를 개벽함이로다.<13>
최근 朝鮮에서 起하는 各種의 新現象
[개벽 제1호, 14쪽-13쪽]
李敦化
改造의 소리가 널리 世界에 宣布한 以來- 處士의 名號를 엇고 잇든 우리 朝鮮社會에서도, 「으아」 소리를 치고 活動하기를 始作하엿다. 되든지 못되든지 成하든지 敗하든지 左右間- 무엇이든지 하여 보려는 新現象이야말로 興味잇는 일이라 하겟다. 勿論 各種의 新現象 中에는 正大光明한 者도 잇스며 또는 虛僞妄想의 것도 업지 안이하리라. 成就의 前望이 多大한 者도 잇스며 失敗의 預期를 미리 斟酌할 者도 업지 안이하리라. 그러나 오래동안 退屈에 困疲하엿든 이 朝鮮의 民衆으로 무엇이든지 活動한다 하는 말이 左右間- 고맙고 感謝한 일이라 안이할 수 업다. 그런데 내가 이 問題를 쓰고저 함에 當하야 홀로 生覺한 바는 그들의 新現象을 問題로 잡아가지고 그에다 批評을 加하며 是非曲直을 判斷코저 함은 안이엇다. 勿論 批評도 업서는 안이 될 것이오, 判斷도 업서는 안이 될 일이지만은 그러나 우리 朝鮮의 新現象으로써는 批評에 아즉 그 時期가 일르고 判斷에 아즉 其 機會가<14> 되지 못하엿다. 그럼으로 나는 그들의 新現象을 事實로 또는 抽象的으로 槪括的으로 하나하나 그의 이름이나 나타내이고 게다가 나의 希望을 두어 마대 式 添付하려 함에 不過함이엇다.
新宗敎의 勃興은 朝鮮의 일대 新現象
由來 朝鮮에는 儒佛 二敎가 朝鮮 宗敎的 思想의 二大 潮流가 되어 왓다. 그럼으로 儒佛 二敎는 歷代로 互相交遞하야 가면서 朝鮮 思想界를 支配하얏섯다. 그러나 朝鮮에는 이제것 完全한 信敎自由가 업서 왓는 故로 朝鮮人民의 大部分은 實로 徹底한 信仰力에 依하야 宗敎를 미덧다 할 수 업다. 勿論- 儒에는 儒의 碩學博士가 업는 바 안이오 佛에는 佛의 大悟徹底의 高德이 업는 바 안이겟지만은 그는 支配者되는 一部의 徹底 信仰됨에 不過하고 人民의 大部分은 大槪가 權勢의 推移에 말미암어 自己의 信仰態度를 左右하엿나니, 卽 政治的 勢力에 由하야 信仰의 形式을 巧妙히 改節하는 因習에 잇섯다. 政治的 勢力이 佛에 移할 時는 人民은 此에 崇拜心을 옴기엇고 又 그가 儒에 移할 時는 또 此에 追勢하엿섯다. 高麗의 政治는 佛을 助한 故로 人民은 佛에 推移하엿고 李朝의 政治는 儒를 崇한 故로 人民은 또한 此에 名利의 信仰을 부터 왓다.
如斯히 朝鮮에는 堅固不拔할 信仰力이 薄弱한 故로 그의 信仰中心을 容易히 他에 移植할 수 잇섯다.
李末에 基督敎가 西洋으로 輸入된 以來- 朝令으로써 此를 嚴禁함에 不拘하고 多數 民衆은 此에 趨向하야 多數의 信徒를 得하얏슬 뿐 안이라 其 敎勢는 寧히 在來의 儒佛 二敎를 壓倒케 되엇나니, 이 實로 最近 儒佛의 宗敎的 信仰力이 根本으로부터 薄弱한 所以를 證明할 것이 안이냐. 안이 其 活動力의 衰退를 尺度할 者- 안이냐. 더구나 朝鮮 新宗敎의 建設者로 有名한 東學 先生 崔水雲이 한 번 新信仰을 부르지즘에 八域의 民衆은 淊淊의 大勢로 此에 加入케 되엇나니 이것이 果然 朝鮮人으로 儒의 政治的 壓迫과 佛의 退化的 信仰에 오래동안 退屈되엇든 結果가 안일 것이냐. 안이, 多數의 民衆은 萬幣- 陳陳하고 餘脉이 奄奄한 儒佛의 信仰下에서 到底圓滿한 慰安을 得키 不能함으로써 新信仰에 向하야 慰安的 光明의 途를 開拓코저 함일진뎌.<15>
蓋 新信仰의 渴望은 特히 朝鮮뿐이 안이오 世界를 通하야 共有한 現象이라 할지며 그리하야 此 新現象은 朝鮮社會에서 더욱 그가 事實로 表顯케 되엇다.
最近 當局으로부터 類似宗敎 卽 準宗敎에 對한 自由布敎權이 幾許間- 寬容케 된 以來- 오래동안 秘密한 속에서 呻吟하든 各種의 信仰團體가 雨後의 竹筍과 가티 勃興하기 始作하엿다.
朝鮮의 新宗敎로 가장 勢力을 잇고 基礎가 堅固한 天道敎로 말하면 特히 最近 宗敎的 新現象의 中에 들어 論할 바가 업다. 그는 이미 過去 風霜 數十年에 스스로 奮鬪하고 스스로 努力하야 이미 其門戶를 나타내인 지 오래며 이미 그 旗幟를 表明한 지 오래엇다. 그는 이미 成家한 者이오 形成한 者이엇다. 그리하야 侍天敎, 檀君敎, 大宗敎와 如함도 其 信徒의 多少는 論할 것 업시 歷史上 基礎上 幾許의 風霜을 지내 와섯다.
그리고 最近으로 勃興하는 여러 新信仰은 各種의 方式과 各種의 方便으로 各各 門戶를 別立케 되엇는대 最近 某 新聞紙上에 顯한 바로써 其數를 計할지라도 十數餘種에 多數한 宗派가 나타낫다. 이른바 靑林, 濟愚, 濟世, 敬天, 三聖無極, 統天, 太乙, 天人, 人天, 中心, 무엇무엇하는 等 여러 宗派이엇다. 그들의 中에는 이미 門戶를 세우고 天下에 廣告한 者도 잇스며 아즉 暗中飛躍으로 잇는 者도 만흔 모양이엇다. 如何튼지 新宗派의 勃興은 朝鮮에 한 時勢거리라 하겟다.
생각컨대 그들의 新宗敎의 中에는 各其 多少의 信徒를 有하엿슬 것이며 多少의 新眞理로써 現代를 支配코저 하는 自信도 업지 안이하리라. 그리하야 그들은 아즉 年齡에 幼稚한 까닭에 其 外形上 나타나는 여러 가지 組織과 設備가 不完全하다 할지라도 그의 內容에 伏在한 理想과 抱負는 實로 神聖한 宗敎的 意識을 가진 下에서 現代民衆을 宗敎的 新感化로 指導하리라는 自信이 업지 안이하리니 이 點에서 吾人은 是等의 宗敎 勃興에 對하야 은근이 賛賀하는 바이로라. 然이나 吾人으로 스스로 그들에 對하야 多少의 杞憂가 업지 안이하며 또한 多少의 要望이 不無하니 其所以는 그들과 우리가 다 가티 朝鮮의 民衆됨으로써요 朝鮮의 發展을 다가티 圖謀하는 公共한 義務心이 잇슴으로써이다.
첫재 吾人이 그들에 對하야 多少의 杞憂라 할 것은 무엇일가.<16> 吾人은 처음부터 新宗敎 勃興에 對하야 一驚을 喫치 안이치 못한 所以는 전에 업든 新宗敎가 一時에 雨後春草와 가티 나타남에 對하야 神聖한 宗敎의 創建이 너무도 수월하고 너무도 多數한 까닭이엇다. 歷史가 有한 半萬年의 長久한 歲月의 間에도 世界를 通하야 不過 數十種의 宗敎가 남아 잇을 뿐이며 그리하야 其 數十種의 宗敎는 다가티 幾多의 風霜苦楚를 經한 後에야 처음으로 今日의 現象에 이르럿거든 하물며 不過 數朔의 內와 不過 三千里의 半島에서 猝然히 十餘數의 新宗敎가 出함을 듯고 보니 玆에서 처음으로 吾人의 杞憂가 생기게 된 動機이엇섯다.
元來 - 宗敎라 함은 一時의 浮氣와 一時의 感情으로 그가 成立되며 又는 宣布되는者-안이오. 少하야도 敬虔深邃한 神秘的 啓示下에서 그가 發源치 안이하면 到底히 그 根底가 錯節치 못하는 것이오 그리하야 其 神秘的 啓示가 信徒의 熱烈한 信仰으로 化하며 그 信仰이 化하야 特殊의 道德的 倫理的 行爲를 나타내는 點에서 完全한 宗敎團體라 認定할 것이라. 萬一 不然하고 一時의 手段과 或은 一時의 浮虛한 感情으로부터 이른바 「남이 하니 나도 하리라」는 好奇心으로 事에 臨하면 이는 實로 人爲的 强因을 宗敎에 利用하는 者로 世를 誤하며 民을 惑함이 甚할진뎌. 더구나 違時代의 信仰과 後時代의 迷信으로 人民을 導하야 反文明的 窠窟에 指導함에 이르러는 이 實로 神明의 罪人이라 할지로다.<17>
이것은 大槪-한가지로 同抱를 愛慕하는 心에서 出한바 過度過敏한 吾人의 偏見的 杞憂라 할지라도 多少 新宗敎의 中에는 幾許間 此 杞憂의 中에 무텨 잇는 者-업지 안이할는지도 알 수 업다. 이 點에서 吾人의 切望하는 바는 그들의 新宗敎가된 者-正大한 信仰과 堅固한 根氣로써 適時代의 敎理를 宣布하며 合眞理의 信仰을 宣傳함을 要求하는 바로다.
終에 吾人으로 더욱이 驚異하는 一事가 有하니 무엇이뇨. 此等 新宗敎의 中에는 其 敎祖를 大槪-東學의 元祖되는 崔水雲 先生으로 삼지 안이한 者 幾希하니 卽 半數以上은 한가지로 崔水雲 先生을 그의 元祖로 삼앗도다. 이에서 吾人이 스스로 考慮한 바는 水雲先生의 新宗敎布敎가 僅히 六十一年이 되는 間에 何故로 是登의 宗派가 多出하엿슬가함이니 吾人의 冷靜한 思考에 依하면 水雲先生의 布敎年代가 그다지 오래지 안이하엿스며 또한 其 宗旨가 單純한지라 此-短한 時日 又는 單純한 宗旨로 무엇이 그리 四分五裂의 境에 至할 理가 업지 안이한가. 思컨대 其故는 必然 先生의 殉道後-여러 徒弟의 間에 或은 過去 壓迫의 政治에 恐縮하야 姑히 解放의 時機를 待하고 和平의 他日을 期하는 中에서 어느덧 今日에 至한 所以라 할는지. 如何튼지 그들이 한가지로 同一한 元祖 同一한 理想을 抱負하엿슨 즉 各各 偏見固執을 버리고 圓滿한 調和를 圖하야 唯一의 宗敎되기를 望하는 바이다. 現今世界 宗敎를 統一코저 하는 此時에 際하야 同根同本의 生으로 東峙西缺함은 決코 現代 理想이라 稱키 不能하다..
各種 靑年會의 勃興은 朝鮮에 一大新現象
엇더한 時代 엇더한 種族을 勿論하고 그 興廢隆衰의 前兆를 오로지 靑年의 元氣如何로 占치는 것이다. 그는 靑年은 恒常 將來를 代表한 者임으로써라. 이 點에서 朝鮮의 將來는 靑年에 잇고 딸아서 朝鮮靑年의 勃興은 朝鮮의 幸福으로 보지 안이할 수 업다. 朝鮮靑年이야말로 過去에 抑鬱한 感情을 참고 잇섯다. 因襲의 壓迫 時勢의 拘碍로 그들의 健步는 거의 麻痺할 地境에 이르러섯다. 그들은 土中에 蟄伏한 冬虫과 가티 陽春의 來復를 切實히 期待한지 오랫섯다. 昨今 新氣運이 輪回함에조차 靑年의<18> 元氣는 快히 回復되엇다. 中央은 京城으로부터 各地方을 通하야 靑年會라 稱하는 相當한 組織的 名詞下에서 그들은 活步를 옴기려 하엿다. 그들은 아즉 지나온 經驗이 적고 또한 그에 對한 實力, 學識等 여러 가지의 缺乏이 업지 안이하리라. 달리 말하면 그들의 活動은 아즉 浮氣的이며 煽動的이며 潮流的이엇다. 明確한 目標가 잇서 나아감도 안이오 適切한 系統이 잇서 나아감도 안이엇다. 그들은 아즉 彷徨的이며 徘徊的이엇다. 이는 黎明의 曉頭에 立한 必然의 일이오 過渡의 초기에 在한 當然의 經驗이엇다. 吾人은 그로써 決코 憂慮하는 바는 안이다. 다못 그들의 根氣와 忍耐를 要할 바이며 實踐과 理想의 並行을 要할 뿐이엇다. 그들이 根氣잇게 活動하고 忍耐잇게 끄러나아가며 方式잇게 實踐하고 系統잇는 理想을 품고 나아가는 間에는 將來에 相當한 效果가 나타날줄로 吾人은 기피 밋는 바이다. 그리하야 그들의 實踐活動의 上-업지못할 두어가지 條件이 잇스니 그는 무엇이뇨.
第一은 一致行動을 要할 것이라. 元來-吾人의 短所는 有始無終 有名無實하니만치 大한 者-업스며 그리하야 그 原因은 大槪가 一致行動에 缺乏한 內部의 破綻으로써 生하는 者이라 하리로다.
대개 各 個人이 集合하야 一致的 行動을 要코저 함에는 各 個人의 團體的 卽 社會的 活動에 要할 만한 個性啓發을 要할 것이며 그리하야 各 個體를 一貫할 만한 正大한 理想의 前途를 傳示할 것이며 딸아서 其理想과 一致될 만한 目的이 鮮明하여야 할 것이라. 然이나 그는 一朝一夕에 容易한 者-안이니 吾人의 思考한 바로 말하면 一致行動에 且急 且容易한 方法은 첫재 物質的 即 肉體的 엇던 機關下에서 그를 統一케 함이 目下 最善한 方法이라 할지니 그는 第二로 要하는 바 活動의 舞臺가 잇서야 할 것이다.
第二는 活動의 舞臺 及 基礎를 鞏固히 할것이라. 이는 名實相符上-반듯이 업지 못할 바이니 萬若 其名만 有하고 其名에 符合하는 實體가 업스면 이는 死人의 尸體와 如히 實體는 이미 地下에 入하고 다만 名字뿐이 世間에 남아 잇슴과 무엇이 다르리요. 故로 旣히 靑年會라 稱하고 組織的 名詞를 付하엿슬지댄 此에 伴하는 活動의 舞臺가 잇서야 할 것이다. 玆에 活動의 舞臺라 함은 經濟的,<19> 且 營利的 意味를 늘 包含하야 말하는 것이 안이오 純粹精神 及 肉體의 健全을 盡할만한 엇더한 機關이 잇서야 하겟다 함이다. 이를 具體的으로 말하면 體育機關을 設함도 好하며 簡單한 新聞雜誌縱覽所를 設함도 好하며(特히 地方)講演 又는 演說 機關을 設함도 好하며 音樂會를 設함도 好하며 日躍講習機關을 設함도 好하니 是等의 諸機關 下에 一般의 靑年이 一致團合하야(地方 地方) 舊弊를 破壞하고 新 事業을 建設할 準備와 預期를 圖할 것이며
第三은 新舊 思想의 衝突을 根底로부터 解決할 것. 以上에 述함과 가티 舊弊를 破壞하고 新業을 建設코저 하면 吾人은 먼저 現下의 大 問題되는 新舊 思想의 衝突을 根本으로 解決치 안이함이 不可하다. 元來 新舊 思想의 衝突은 現代 世界를 通한 唯一의 思潮라 할지라. 然한데 朝鮮에 이른바 新舊衝突이라 함은 남들은 이미 一世紀 式半世紀 以前에서 解決한 問題를 우리는 겨우 이제야 論議케 되엇나니 故로 此 思想을 一日이라도 速히 解決하야 頑固의 陳人으로써 適當한 諒解을 엇게 되어야할 것이다. 그리하야 그의 解決方法은 靑年된 者-率先하야 諸般의 事業에 着手하는 同時에 吾等의 父老로 먼저 이 時代는 靑年의 時代라 自認하고 又 信賴할만한 信用을 어더야 할 것이다. 盖老年의 美德은 經驗에 잇고 靑年의 美德은 勇斷에 잇나니 經驗의 餘弊는 躊躇에 失하고 勇斷의 餘弊는 輕薄에 失하는 것이라. 故로 老年이 靑年을 蔑視하는 一事는 오로지 輕佻浮薄을 問題로 삼는 바라. 故로 靑年된 者-이 點에서 自重自愼하야 勇斷이 잇서도 輕擧에 失치 안이하도록 經驗이 업스되 盲目에 歸치 안토록 이른바 「烝烝乂又不格姦」의 主義를 잡아 나아가는 동안에는 스스로 社會의 信任을 어든며 風氣의 主權이 돌아오리니 그러한 後에야 무엇이 新舊衝突을 근심할 바엿스리요.
吾人은 어대까지든지 各地 靑年會의 勃興을 歡迎하며 그리하야 그의 自覺이 잇기를 바라며 前進이 잇기를 바라며 事業의 好果를 엇기를 바라는 바로다(未完)<20>
最近 朝鮮社會運動의 二三
[개벽 제2호, 18쪽-24쪽]
朝鮮敎育會, 朝鮮學生大會, 朝鮮勞働共濟會의 趣旨及 目的은 如何한가.
1. 朝鮮敎育會
吾人은 前號에서 이미 우리 朝鮮에 起하는 最近 新懸象에 對하야 滿腔의 同*으로 그들의 現在를 歡迎하고 그들의 將來를 祝賀하엿거니와 이제 그 現象을 繼續的으로 쓰고저 함에 當하야 吾人은 劈頭로 우리 朝鮮에 朝鮮敎育會가 出生함을 衷心으로써 贊成하되 마지 안이 하노니 其故는 同會의 趣旨와 目的이 朝鮮에 가장 急務인 活動임으로써요, 가장 適當한 指導임으로써요, 가장 必要한 啓發임으로써라. 同會는 그 趣旨 劈頭에 宣言하얏스되 가튼 社會의 完全한 發達은 其社會를 組織한 各個人의 圓滿한 發達은 待한 然後에야 可히 期望하나니 現下 우리의 社會狀態는 物質界 精神界됨을 勿論하고 萎靡混同함이 極度에 達하야 上下가 一樣으로 金錢萬能主義에 眩惑하야 私利를 是圖하는 外에 個人과 社會의 關界는 全然히 염두에 忘却하고 全半島의 精神은 다만 今日主義로 風靡함으로 純美한 舊文化는 一墮無餘한 中에 此에<18> 代할 만한 新文化의 建設은 아즉도 前途가 杳然할 뿐만 안이라 더욱이 世界的 思潮의 大 波瀾이 滔天의 勢로 全球를 掀動함에 際會하야 薄弱한 吾人의 査想界는 完然히 針路를 失하엿도다.
이로써 보면 同會着眼의 第一點은 個性과 社會의 並行 發達을 圖함에 잇다. 卽 社會의 發達은 個性의 啓發에 잇고 個性의 進步는 更히 社會의 向上을 促하는 點에서 同會는 吾朝鮮社會의 現在 混沌狀態에 入함과 個性의 唯物的 私慾에 陷함을 慨嘆하야 此를 根本으로부터 匡正할 目的으로 蹶然히 奮起한 所以라 하겟다. 元來 - 엇더한 社會를 勿論하고 그 社會의 現像을 病的 狀態로부터 拯濟하야 健全한 發達을 圖코저 함에는 먼저 그 社會에 最先急務로 要할만한 或 機關下에서 根本的 且 基礎的 改造를 要치 안이함이 不可하나니 是 - 同會가 先見의 明으로써 吾 朝鮮社會의 最先急務인 人材養成을 劈頭로 絶叫한 所以이엇다.
挽近吾人의 改造라 改善이라 하는 呌聲이 各方面에 喧聒함은 可喜할 現狀이라. 此에 基因함인지 銀行이나 社會가 簇出하야 社會의 貧弱한 經濟界를 潤滑케 함도 勿論 急치 안임은 안이나 그러나 우리 社會의 根柢的 改造를 企圖코저 할진대 如干 形式的 外部的 制度의 一時的 改造로 到底히 能할 바 안이오, 먼저 一般 國民의 文化程度를 向上케 하며 人材를 養成함이 無하면 此는 木에 緣하야 魚를 구함과 異할 것이 업도다.
果然하다. 吾 朝鮮의 今日 現象에 잇서는 무엇이나 必要치 안임이 업스며 무엇이나 適切치 안임이 업스리라. 農도 必要하고 商도 必要하고 工도 必要하고, 宗敎, 學術, 文藝, 어느것이던지 必要치 안인 바 一도 無하다. 그러나 何者의 必要 何者의 適切을 勿論하고 그 必要를 建設하고 그 適切을 創造할만한 곳 그 建設과 創造에 需應할만한 人物이 無하면 그는 空中을 策하야 樓閣을 建設코저 함과 무엇이 다르랴. 이 點에서 同會가 朝鮮의 啓發을 먼저 人材養成으로 主觀한 所以는 實로 洞察한 先見이라 할진저. 然이나 人材의 養成은 決코 偶然한 感情과 一時的 興奮에 잇는 者―안이오. 반듯이 根氣잇는 活動과 努力잇는 硏究下에서 世界의 大運을 通察하며 時代의 文化를 鑑賞하며 民族의 程度를 解釋하야 適時代의 敎化와 合程度의 契機로써 適當한 引導가 잇지 안이하면 不可하니 是同會가 此點에 특히 着眼한 所以언저.
이제 世界的 大戰亂의 結果―新文化의 運動을 惹起케 됨은 <19> 特히 著明한 事實인즉 今日 우리의 社會를 沈溣中에서 挽回할 唯一의 方策은 다만 이 時代에 適應한 敎育을 獎勵振興함에 專在하도다. 噫라 今日 朝鮮의 敎育問題는 閒人의 閒談 材料가 안이라 우리 民族의 將來 消長에 관한 岐點이며 死活에 關한 問題라. 現下 朝鮮內에 散在한 零星한 敎育機關中에서 純然한 우리 朝鮮人의 財力과 努力으로 經營하는 者 - 幾個나 有하뇨. (이하 中略―본문) 우리 半島文化 發展의 萬一을 補導키 爲하야 全半島의 父兄으로 하야곰 敎育의 急務임을 促醒하는 同時에 敎育에 關한 온갓 問題를 硏究解決코저 함이 決코 偶然의 事가 안이라. (下略―본문)
進化學者 따윈 氏의 이른바 適者生, 不適者死의 原理는 卽 人은 時代에 適하면 生하고 不適하면 死할 뿐이라 함으로 解釋하야도 또한 適切하니라. 同會가 朝鮮啓發을 主張함에 曰 「다만 이 時代의 適應한 敎育을 獎勵振興함에 專在하다.」하고 그리하야 其는 「將來 朝鮮의 死活問題라.」하엿고 進하야 「朝鮮人은 이러한 重大問題를 朝鮮人 自手로 經營하며 努力하는 者 - 幾希하다.」喝破함에 至하야는 朝鮮人된 者 - 一番猛省하야 同會의 目的에 共鳴치 안이함이 不可하며 同會의 趣旨에 感服치 안이치 못하리라. 그리하야
終에 決言하되 「敎育에 關한 온갓 問題를 硏究解決코저 함이라 斷定함에서 吾人은 처음으로 同會의 目的이 那邊에 在한 것을 徹底히 理會하엿다. 卽 同會는 世界文化와 朝鮮의 現下及將來의 過程如何를 的當히 解釋한 下에서 朝鮮의 敎育理想을 엇더한 象徵으로 標本을 삼으며 따라서 그의 施措는 엇더한 方針으로 指南을 삼을가 硏究할 것이며 그리하야 그의 實行 方針은 外로 社會에 對한 敎育적 餘論을 振興케 하고 內로 그 輿論에 依하야 直接 敎育當局으로 더불어 그 善否를 選擇하며 그 眞僞를 妥協한 上―步一步―彼岸에 向하야 敎育의 向上을 促進코저 함에 잇다하겟다.
대개 言키는 易하되 行키는 難함은 人世의 弱點이라. 吾人은 此敎育會의 理想과 目的을 以上과 如히 主觀한 上―同會의 實行實踐이 그 理想에 符合하도록 勵行하기를 切望하노라.
2. 朝鮮學生大會
以上에 述한 바와 如히 吾人이 朝鮮敎育會의 目的과 趣旨를 들어 그의 現在를 歡迎하며 또 그 將來를 祝하는 所以는<20> 慇懃이 그 裏面에 朝鮮學生의 現在를 爲함이며 또 그 朝鮮靑年의 將來를 爲함이 안일 것이냐. 思하라. 現在 吾人의 모든 努力과 모든 活動은 다가티 무엇을 爲함일 것이냐. 一言으로 此를 蔽하면 오로지 學生靑年의 將來를 爲하야 百年의 大計를 튼튼히 세워주고저 함에 잇다하리라. 이 點에서 學生된 者 - 社會를 第2의 家庭으로 알며 第2의 鄕里로 알며 第2의 父兄으로 認定하야 그 期待와 그 要望에 應할만한 學業에 努力치 안이함이 不可하며 그리하야 그들 現代 靑年的 修養上 - 自覺自省의 上에 그 意志를 튼튼히 세워야 할 것이다.
元來 우리의 社會는 아즉도 黎明의 初期에 彷徨하는 故로 靑年된 者―家庭에서 適當한 敎訓을 들어보지 못하얏고 또 그 社會上으로도 系統잇는 感化를 밧지 못할 것은 事實이다. 오즉 修養이라 할 것은 다만 學校敎育이라 하는 一日 幾 時間의 師長의 訓育 그것 뿐 이엇다. 一日 幾 時間의 師長의 口頭訓鍊 뿐으로 一個人의 人格이 完全되지 못할 것은 孟子의 이른바「一日曝之十日寒之」라한 格言에 依하야 넉넉히 證明할 것이 안이냐. 그럼으로 現下 우리 朝鮮의 學生되는 자는 自己 스스로 自覺하고 自己 스스로 自修하는 卽 自力的 工夫를 要치 안이함이 到底不可하도다. 그러나 自覺自修라 함은 決코 容易한 事業이 안이니 그는 完全한 人格을 具備한 大人으로도 오히려 能치 못하거던 하물며 意志未定한 靑年에게 그를 實行과 放任함이리오. 그럼으로 靑年의 自覺自修라 함을 다못 一個人의 意志에 放任치 勿하고 엇더한 機關 엇더한 指導下에서 그를 實踐履行하면 반듯이 相當한 效果가 나타날 것이니 吾人은 이點에서 朝鮮學生大會는 學生의 自覺自修를 要하는 점―가장 업지 못할 好個機關으로 自信하엿노라. 同會는 그 趣旨에 일넛스되 「近來 時代思潮의 激變을 從하야 各地方에서 笈을 負하고 都門을 向하야 雲集하는 者 - 踵을 接하게됨은 참으로 可喜할 現象이다. 그러나 京城은 우리 朝鮮文化의 中心地인 同時에 靑年誘惑의 中心地요 靑年墮落의 發源地라. 온갓 文明의 施設에 備하야짐과 가티 그 反面에는 온갓 誘惑墮落의 機關이 擴張되어감은 掩할 수 업는 事實이라. 그리하야 地方의 純潔한 靑年學生이 漸次 都會의 感染됨을 따라 留學의 初志를 貫徹치 못하고 도리혀 墮落의 淵에서 沈淪하야 貴中한 自己의 一生을 誤할 뿐 안이라 延하야 一家와 社會에 莫大한 損失을 끼치게 됨은 우리의 往往目睹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 學界의 一大恨事안이리요.」하야 學生의 中途墮落을<21> 切切히 解剖하엿고 그리하야 人生의 前途를 險難한 航路와 如하다 斷定하고 그 航路의 豫定을 完全히 成功코저 하면 專히 自己修養 如何에 在하다 하엿스며 그리하야 그 修養은 自己의 自覺을 할 것이라 한 點에서 吾人은 同會의 趣旨에 滿腔의 同情을 表함과 同時에 朝鮮의 前途가 一種 神聖한 光明의 中에 무쳐잇는 듯하다. 그리고 同會는 그 目的을 表明하되 曰 各自 專門의 學業을 專心攻究하는 餘暇에 同志가 서로 團會하야 趣味를 談論하며 知識을 交換하며 患亂을 相求하며 情誼를 相通하며 品性을 陶治하며 至誠을 合하야 우리 學生界의 健實한 風紀를 確立하리라 宣言하엿나니 이 實로 朝鮮學生의 向上進步하는 兆朕이라 할지로다. 然이나 吾人으로 不得已 一言을 送하야 學生諸君에게 寄할 所以는 諸君이 이미 口頭로 宣言함과 가티 「우리의 航路에는 무수한 暗礁도 잇슬것이오. 狂瀾과 怒濤와도 싸을 것이오. 苦痛도 잇슬 것이오. 悲哀도 맛볼 것이오. 跌蹉에 嘆할때도 잇슬 것이오. 失望에 泣할때도 잇스리라. 」하엿스니 諸君이 事實로 그를 맛보고 그와 싸울 때에도 諸君의 胸中에 이미 豫期한 理想과 가티 造次의 間에도 離치 말며 顚沛의 下에도 *치 勿하야 오즉 健全과 忍耐와 努力과 完全으로써 輕躁忘失에 빠지지 안토록 社會를 爲하야 百年의 大計를 建設하도록 盡心할지어다.
3. 朝鮮勞働共濟會
勞動은 世界를 通한 大問題라. 故로 勞動問題라 하면 누구나 그를 알게 되엇고 따라셔 그의 眞意義와 眞活動에 至하야도 常識이 잇는 者 - 거의 다 그의 略義를 說明하게 되엇다. 世界的 勞動問題라 하면 吾人이 本誌上에 再三喋喋하엿고 그리하야 朝鮮의 勞動問題는 程度上 스스로 彼歐米의 勞動問題와 差異가 生할 것은 勿論의 事임은 또한 本誌上 (世界3大問題의 波及과 朝鮮人의 覺悟여하 參照)에 略言하얏슴으로 玆에 贅說치 안이하거니와 吾人은 참으로 朝鮮의 勞動問題는 此朝鮮勞動共濟會에 依하야 適當한 解決을 어들줄르 確信하노라.
勿論 理想과 事實은 這間에 距離가 自有한 것이라. 同會가 同會에서 宣言한 趣旨와 目的을 徹底히 實現될는지는 此는 別問題의 屬하고 단 同會의 趣旨와 目的이 朝鮮 現下의 勞動狀態에 適合한 點에서 吾人은 雙手를 擧하고 同會의 將來를 誠心으로 祝하느라. 同會는 그 趣旨劈頭에 萬斤의 鐵槌로 階級的 不汗黨을 打破하야 曰<22> **** 名을 賣하고 權을 弄하야 他의 力을 食하고 他의 勞를 衣하야 高樓臣閣, 錦衣玉食으로 一生의 安樂을 擅行하는 歷史的 遺物은 現代의 悖德이라 此를 鳴鼓하고 廓淸함은 上帝의 正義이며 誠勤히 作業하야 自力을 食하고 自勞를 衣함은 人世의 正職이라. 此를 敬待하고 扶持함은 人道의 本體로다. 故로 勞動이 神聖하고 勞動者가 尊貴하다함이 엇지 神의 거룩한 活聲이 안인가. (中略-원문) 名譽도 勞動者에게 黃金도 勞動者에게 安樂도 勞動者에게 與하라고 上帝께서 苦待하시나니라.
우리의 過去는 理性의 訴求로는 甚히 矛盾의 中에서 살아왓도다. 一邊에는 飽하야 死하는 者 - 잇슴과 同時에 一邊에는 飢하야 死하는 者 - 잇섯다. 그리하야 飽한 者의 境遇는 아모 活動이 업고 아모 努力이 업고 아모 補助가 업섯다. 안이 그뿐만 안이라 그들은 理想의 不汗黨으로부터 實地의 「불한당」에 昇格하엿다. 생각하야보라. 朝鮮에 이른바 士農工商이라하는 士 그者의 行爲는 大槪 - 무엇을 하고 잇섯는가. 그는 徹頭徹尾로 遊衣遊食이 그의 名譽職이엇섯다. 漢律唐詩를 배우고 四書三經을 배우고 地閥의 南人北人과 老論少論을 배운 後에는 그다음에 活動은 仕宦이 그들의 唯一의 正大한 活動이엇다. 勿論 仕宦의 熱이야 무엇이 글을 것이 잇스며 仕宦의 職務야 무엇이 不可할배 잇스리오마는 그들의 仕宦의 目的은 仕宦 그者의 勤務보다도 그 裡面에는 名聲과 權力이라 云하는 두가지의 機械로써 自己의 老後將來의 生活計를 力圖하엿섯다. 그들은 仕宦중에서 불상한 農民의 粒粒皆辛苦를 騙取하야 그 子孫의 百年大計를 세우고저 함이 그들의 理想이엇섯다. 보라 南村北村의 雲霧에 솟아잇는 洋屋內에 所謂 朝鮮兩班의 富豪 - 幾人이나 自己의 正當한 努力으로부터 財産을 圖得한 者 - 잇는가. 大魚는 中魚食 中魚는 小魚食 小魚는 乂小魚食의 格으로 李末의 天下 - 이른바 士者는 上으로 官職要路에 在한 者로 下에 一初試不得한 浮浪兩班의 末流에 至하기까지 그들의 生活은 全部가 農工商의 努力者로부터 엇더한 壓迫的 條件下에서 强盜的 提供을 밧고 살아왓다. 그러한 惡風이 流行한 결과, 正當한 努力者도 自己의 生活을 活動할 原力을 일어버렷고 從하야 一般人民은 遊衣遊食으로써 無上安樂, 無上의 手段으로 알아왓다. 그 結果―勞動을 絶對로 壓忌하고 勞動者는 一種의 賤役, 一種의 「못생긴」者들의 하는 바 魚肉의 材料로 보아왓다. 結局 社會는 腐敗하고 衰弱하고 **되어 不知不識間 - <23> 今日의 現象이 되어왓다. 이제 이 朝鮮에서 衰弱의 原氣를 돌우켜 多少 健康의 狀態에 回復하랴면 무엇보다도 먼저 遊衣遊食의 徒輩를 打滅하고 努心努力의 兩班을 扶助함이 實로 無上의 上策이라 할지니 이點에서 朝鮮勞働共濟會의 出來는 實로 天賜福音이 半島에 下降하엿다 할지로다. 然한데 同會의 目的은 그 會名과 가티 勞動者를 共濟코저 함이 더욱 現下 朝鮮事情에 適合하다 하겟다. 同會는 曰
勞動者의 利害는 서로 갓고 地位도 또한 서로 갓도다. 子女를 敎育치 못하고 職業을 保障치 못하고 疾病과 災難을 救濟치 못하야 다만 使喚과 賤待로 他를 爲하야 養蠶을 하엿고 他를 爲하야 石工하엿스니 스스로 膺을 撫하고 三思하면 他를 惡함보다 自己를 自責함을 마지 안이할 뿐이로다.
보라. 얼마나 抑鬱하고 얼마나 悲痛한가. 吾人은 實로 萬斛의 淚를 傾하야 此에 同情치 안임을 得하겟는가. 同會는 그 抑鬱과 그 悲痛을 解放키 爲하야 目的을 宣言하엿스되
1, 知識啓發 2, 品性向上
3, 患難救濟 4, 職業紹介
5, 貯蓄奬勵 6, 衛生奬勵
7, 其他 一般 勞動狀況의 調査硏究
이로써 吾人은 同會의 目的을 徹底히 알게 되엇고 그리하야 그 目的이 吾朝鮮現下 勞動狀態에 適合함을 알앗도다. 그리하야 同會가 誠心誠意로써 努力하고 活動하는 間에는 朝鮮의 現象을 事實的으로 改造하야 彼遊衣遊食의 不汗黨의 輩를 一擧 剿盡하고 神聖만 勞動의 贊美가 四野에 들릴 줄로 깁히 밋노라. (未完)<24>
일즉히 죽을 覺悟를 하라 그러면 生死가 共히 愉快하리라
올을지어다 어서 올을지어다 너의 魂이어 너의 席은 天에 在하도다 비록 그 肉體는 地中의 死에 沈淪할지라도
젊은 사람은 남에게서 惠得함보다도 借用함보다도 제의 力으로써 아주 買得할 것이다
아모리 量度하야도 自助할 途가 업는 時에 自己의 命을 窃取함은 容許치 못할 窃盗罪이다
너절하고 칙칙한 그 野心만은 族棄하라 그 罪에는 天使도개파리(犬의 蠅)가 되리라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