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창간호(1920.6.15.) 50-52호
1.
조선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곧 역사의 조선인과 현대의 조선인의 두 종류가 있다. 역사상의 조선인은 어떠하였는가. 스스로를 하느님[天帝]의 아들이라 하고 남들도 (조선인을) 하늘민족[天族]이라 칭하였다. 그들은 오직 나 밖에는 내가 없고 나 아닌 남은 눈꼬리에 보이지 아니 하였다. 그 정신을 잠깐 말하면, 그들(=역사의 조선인)의 생각은, 내 쓴 것이 남의 단 것보다 낫다 하였다. 자세히 말하면 남의 벼슬[爵祿]이 자기 회초리[楚撻]만 못하다 하였다. [편집자주-그만큼 자긍심과 자존심이 강하였다는 말] 오늘날의 사람같이 오직 남의 꽁무니만 좇지 아니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사천년 전을 소급하여 논[溯論]하자면, 아닌 게 아니라 모든 것이 황폐[草萊]하여, 높은 산과 큰 하천[高山大川](의 이름)을 제가 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종교상에 있어서 제일이라 하는 일신교(一神敎)를 제가 창개(創開)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요, 천하 대본이라는 온대(溫帶)에 가장 적당한 농업을 제가 발달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요, 인간 건강 증진에 빼놓을 수 없는 의학을 제가 연구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며, 인간 생활의 모든 부문[百般]에 아니 그러한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팽우(彭虞; 단군의 명으로 산천에 질서가 있도록 한 전설의 인물-편집자 주)가 있었고 대종[大倧; 천신(天神), 곧 하느님-편집자 주]을 숭봉(崇奉)하였고, 육장(六章)에 주곡(主穀)이 들었고, 부오(扶吳)가 났었고 모든 방면에 구기는 것이 없었다. 오늘날과 같이 치산(治産)에 혹은 동쪽에 가서 떼어오고 혹은 서쪽에 가서 꾸어 와서 겉으로는 그런 듯 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하며, 한쪽으로는 박힌 듯하되 참은 아무것도 아니 것과 달랐더라.
2.
어디서부터인지 검은 구름이 둥둥 떠서 들어오더니 천지가 아득하여지며 남쪽에서 번개가 번쩍 하고 북쪽에서 벼락이 우르릉 하더니, 어느덧 아지끈 하고 벼락이 쳤다 하고 보니, 아까 광명한 듯한 세상이 그만 마귀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윽고 한쪽이 밝아지며 크고 작은 것[洪纖巨細]을 분변할 수 없던 것이 하나씩 둘씩 짐작할 수 있게 되며 산이 우뚝 서고 물이 출출 흘러가니, 이제야 선 것은 선 것으로 보이고 누운 것은 누운<50> 것으로 보여 물건 개개가 낱낱이 제 각각인 줄을 알게 되었다.
이때에 한 마리 갈매기가 긴 날개를 떨쳐 왜- 하고 지나가자 어느 것이 아니 그랬으리오마는 귀가 번쩍 뜨고 눈이 환해져서 머리도 끝도 업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게 되니 이것이 곧 인생의 개벽이라는 것인가 보다.
천지와 인생을 통틀어 우주라 하니, 천지의 개벽을 따라서 인생도 개벽함은 물론이거니와 인생의 개벽이라 하면 물질보다도 아마 사상계일 것이라. 보라, 저 서양에 있어서 문예 부흥이니 종교 개혁이니 하는 것이 떠들고 노래하여도 한때의 의식을 풍부 화려하게 하자는 뜻밖에 무엇이 있지 아니하면 무엇을 그리 기릴 것이리오. 좀 가깝게 와서 인도의 석가는 무엇으로며, 다시 중국에 와서 왕양명은 무엇이며, 드디어 우리에게 이르러 원효는 어떠한가.
옳다. 원효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천지가 개벽한 지 몇천 년에 환웅이란 어른이 그동안 막혔던 사상계를 열어 그의 거룩한 생각을 들은 사람이 저자(市場)와 같으므로 신시(神市)씨라는 이름을 가진 후로 다시 이천년을 내려와 무디고 무딘 배달의 사상계를 열은 자가 이제 말하려는 우리의 ‘첫새벽’, 한역(漢譯)하여 원효, 다시 존칭하여 효공(曉公)이 아닌가. 인생은 인생이요, 인생이 사는 시대는 시대라. 예나 이제나 다를 것이 어디 있으리오. 오늘날은 보는 바와 같이 혹은 명예를 위해 몸뚱이를 팔고 혹은 생활을 위해 졸가리를 팔아 일껏 지켜오던 저 자신을 똥으로 거저 버리는 판에 그 명예스럽고 신성한 외국[外洋] 유학을 그만두고, 남이 알든가 비웃든가 모르는 가운데에 오직 저를 찾고 저를 세워 석가모니 이후에 처음으로 자아를 알고 육상산(陸象山)보다 먼저 심즉리(心卽理)를 발명하여, “上就理體名爲一心(원효의 대표저작인 ‘대승기신론별기’의 한 구절)”을<51> 말하고 중국에서 유일이요 창견(創見)이라 떠드는 현수(賢首)의 기신론소(起信論疏)가 ‘첫새벽’ 곳 효공(曉公)의 소(疏)를 도절(盜竊)한 것임을 볼 때 과연 효공이 “자아를 개벽함”의 거룩함을 찬송하며, 겸하여 현대인의 의식 없음을 한탄하노라.
생각하라. 우리의 사상계가 나아가 남에게 가르칠 것이 있으며 물러와 스스로 지킬 것이 있는가. 아침에는 ‘오이켄’의 생각을 쫓고, 저녁에는 톨스토이에게 쏠리며, 심지어 채플린 식의 골계적(滑稽的) 노릇바치(코미디)에게 쏠리나니 참 한심하기 그지 업도다.
3.
과연, 지난 몇 백 년 동안 우리 사상계는 보잘 것이 없었나니 악착한 주자학파의 지배 아래 엎드려 일거수일투족에 도무지 자기 뜻이 없어서 고대의 발랄한 천부의 기상도 줄어지고, 중엽의 심원한 신독(信毒; 인도) 사상도 무너진 후 조그마한 생각의 싹만 나와도 호미질을 하고(싹을 파서 없애 버림 – 편집자 주) 고개만 들어도 두멍(큰 독)을 씌웠거니와 이제는 그렇지 아니하여 흥야항야(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여 이래라저래라 하는 모양) 할 놈이 없도다. 곧 그 머리를 ‘아멘’ 아래 수그려도 괜치 않고 그 눈을 ‘부처’ 쪽으로 떠도 그만이며, ‘마호메트’를 좇아도 제풀이요, ‘동학쟁이’가 되어도 제멋이라. 인제는 사람사람 각자가 제각기 새 방향을 정하고 새 진로를 열어 다 각각 일면의 시조가 될진저.
올려다보아 선편(先鞭: 어떤 일에 남보다 먼저 착수하거나 자리를 잡음)이 없고 제 스스로 정견(定見)이 없으며 내려다보아서 인도자가 되어야 할 우리여. 아아, 자아를 개벽할 자여. 종교상으로 천군(天君) 될 사람이 누구며 정치상으로 개소문(蓋蘇文) 될 사람이 누구며 예술상으로 담징(曇徵) 될 사람이 누구며 음악상으로 왕산악, 우륵 될 사람이 누구며, 항공계로(航空界)로 정평구(鄭平九; 조선 선조 때의 발명가(?~?). 임진왜란 때 오늘날의 비행기와 유사한 비거(飛車)를 발명하여 진주성 싸움에서 사용하였다.) 될 사람이 누구며, 사상, 물질 모든 문명상에 에헴 할 사람이 누구인고.
세계의 모든 진보는 단두대와 화형주(火刑柱) 위를 도래하였나니라. 미북생(米北生) ‘휘릿푸스’의 연설 중 일절이라. 온갖 문명은 적라라한 희생자의 손을 거쳐 오는 것이다.<52>
권덕규(權悳奎.1890∼1950) 독립운동가ㆍ국어학자ㆍ사학자. 호 애류(崖溜). 경기 김포 출생. 1913년 휘문의숙(徽文義塾)을 졸업,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6년간 한글을 연구하였고, 1919년 3ㆍ1운동 때는 장지연(張志淵)․이인(李仁) 등과 제휴,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 후 휘문ㆍ중앙ㆍ중동 등 여러 학교에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으며, 주시경(周時經)의 후계자 중 한 사람으로서 1921년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1931. 1. 10. 조선어학회로 개명. 현 한글학회) 창립에 참여했다. 1932년 12월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원안을 작성하고, 1936년부터 이 학회에서 <조선어큰사전> 편찬에 참여하였다. 한글순회강습 등에 종사했으며 [한글]지에 <정음(正音) 이전의 조선글>을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각 신문ㆍ잡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저서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는 국어의 음운ㆍ문자ㆍ고어ㆍ이언(俚言)ㆍ어원ㆍ향가ㆍ횡서(橫書)의 편리 등에 대해 논하고, 여러 이론의 소개와 자신의 의견을 담은 국어교습서이다. 1944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는 호주가(好酒家)로도 유명하여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시] <첫 비>(개벽.1922.4) <가을의 한숨.(매일신보.1935.12.20)
[수필]<경주행(慶州行)>(개벽.1921.12) <강릉(江陵)과 경포대(鏡浦臺)>(중앙.1935.1) <나의 복지(卜地) 그리는 땅>(조광.1936.2) <버리다 만 산고(散稿)>(한글.1939.2)
[평론]<조선어문(朝鮮語文)에 취(就)하여>(매일신보.1920.1.7) <자아를 개벽하라>(개벽.1920.6) <해방 운운은 남성의 말>(개벽.1920.9) <조선 생각을 차즐 때>(개벽.1924.11) <훈민정음의 연혁(沿革)>(조선어.1927.7) <정음(正音) 이전의 조선글>(조선어.1928.2) <박연암(朴燕岩)의 ‘허생전’을 평함>(비판.1932.5) <훈민정음의 원본을 아직 얻어보지 못하였다>(한글.1935.3) <신여성기질론(新女性氣質論)>(중앙.1936.1)
[수필집]<세상은 떠들어야 한다>(조선일보출판부.1936) <을지문덕(乙支文德)>(정음사.1946)
[저서]<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광문사.1923) <조선유기(朝鮮留記)>(상문관.1926) <조선사(朝鮮史)>(정음사.1945) <조선유기략(朝鮮留記略)>(상문관.1946) [출처] 국어학자 권덕규(權悳奎)|작성자 재봉틀
自我를 開闢하라
權悳奎
一
朝鮮人은 두 가지로 볼 수 잇나니 곳 歷史의 朝鮮人과 現代의 朝鮮人과의 두 種類가 잇다하노라. 歷史上에 잇서 朝鮮人은 어떠하얏는고. 스스로 天帝子라 하고 남이 天族이라 하야 오즉 나밧게는 내가 업고 나 아닌 남은 눈ㅅ고리에 보이지 아니 하얏나니 그 精神을 暫間 말하면 그들의 생각은 나의 쓴 것이 남의 단 것보다 낫다 하얏다. 仔細히 말하면 남의 爵祿이 제의 楚撻만 못하다 하얏다. 이제 사람가티 오즉 남의 꽁문이만 좃지 아니하얏더라. 이제로부터 四千年前을 溯論하건대 아닌게 아니라 모든 것이 草萊하야 高山大川을 제가 定치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오. 宗敎上에 잇서 第一이라 하는 一神敎를 제가 創開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오. 天下大本이라는 溫帶에 가장 適當한 農業을 제가 發達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오. 人生健康增進에 不可缺할 醫學을 제가 硏究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며 人生生活의 百般에 아니 그러한 것이 업는지라. 그럼으로 彭虞가 잇섯고 大倧을 崇奉하얏고 六章에 主穀이 들엇고 扶吳가 낫섯고 모든 方面에 구기는 것이 업섯는지라. 이제와 가티 治産에 或 東에 가아 띄어오고 혹 西에 가아 꾸어오아 거트로는 그런 듯하다가도 속은 그러치 못하며 한쪽으로는 박인 듯하되 참은 아모 것도 아니 것과 달랏더라.
二
어대로선지 검은 구름이 둥둥 떠들어 오더니 天地가 아득하야지며 南쪽에서 번개가 번쩍하고 北쪽에서 霹靂이 우루룽하며 어느덧 아직근하고 벼락이 나려졋다 하고 보니 아까 光明한 듯한 世上이 그만 魔鬼의 世上이 되고 말엇도다. 이윽고 한쪽이 번하야지며 洪纖巨細 分辨할 수 업든 것이 하나씩 둘씩 斟酌하야지며 山이 우뚝서고 물이 출출 흘러가니 이제야 선 것은 서어 보이고 누은 것은 누어<50> 보여 物件 個個가 낯낯이 제인 줄을 알게 되엇다. 이 때에 한 마리 갈메기가 긴 날애를 떨쳐 왜ㅢ하고 지나가자 어느 것이 아니 그랫스리오마는 귀가 번쩍 뜨고 눈이 환하야져서 머리도 끗도 업는 외마듸 소리를 지르게 되니 이 곳 人生의 開闢이라는 것인가 보다. 天地와 人生을 통틀어 宇宙라 하니 天地의 開闢을 딸아 人生도 開闢함은 勿論이어니와 人生의 開闢이라 하면 「物質로 보다도 아마 思想界일 것이라. 보라 저 西洋에 잇서 文藝의 復興이니 宗敎의 改革이니 하는 것이 떠들고 노래하야도 한 때의 衣食을 豊富華麗하게 하자는 뜻 밧게 무엇이 잇지 아니하면 무엇을 그리 기릴 것이리오. 좀 갓갑게 오아 印度의 釋迦는 무엇으로며 다시 支那에 가아 王陽明은 무엇이며 드디어 우리게에 이르러 元曉는 어떠한가. 올타 元曉의 이악이가 낫스니 말이지 天地가 開闢한지 몃 千年에 桓雄이란 어른이 그동안 막히엇든 思想界를 열어 그의 거룩한 생각을 드른 者ㅣ 저자와 가틈으로 神市씨라는 이름을 가진 後로 다시 二千年을 나려와 무듸고 무듼 倍達의 思想界를 열은 者― 이제 말하랴는 우리의 「첫새배」 漢譯하야 元曉, 다시 尊稱하야 曉公이 아닌가. 人生은 人生이오. 人生의 사는 時代는 時代라. 예나 이제나 다를 것이 어대 잇스리오. 이제에 보는 바와 가티 或은 名譽로 몸ㅅ동이를 팔고 或은 生活로 졸가리를 팔아 일껏 직히든저를 똥으로 거저 바리는 판에 그 名譽스럽고 神聖한 外洋遊學을 그만두고 남이 알던가 비웃던가 모르는 가운대에 오즉 저를 찻고 저를 세워 釋迦牟尼 以後에 첨으로 自我를 알고 陸象山보다 먼저 心卽理를 발명하야 「上就理體名爲一心」을<51> 말하고 支那에서 唯一이오 創見이라 떠드는 賢首의 起信論疏가 「첫새배」 곳 曉公의 疏를 盜竊한 것임을 볼 때에 果然 曉公의 自我를 開闢함의 거룩함을 讚頌하며 兼하야 現代人의 無意識함을 歎하노라 생각하라 우리의 思想界가 나아가 남에게 가르칠 것이 잇스며 물러와 스스로 직힐 것이 잇는가. 아츰에는 「오이켄」의 생각을 쫏고 저녁에는 「톨스토이」에게 쏠리며 甚至於 「짜푸링」式의 滑稽的 「노릇바치」에게 쏠리나니 참 寒心하기 그지 업도다.
三
果然이지 몃 百年 來의 우리의 思想界는 보잘 것이 업섯나니 악착한 朱子學派의 支配알에 업드리어 一擧手一投足에 도모지 自意가 업서서 古代의 潑剌한 天賦의 氣象도 줄어지고 中葉의 深遠한 信毒思想도 문허진 後 조고마한 생각의 싹만 나와도 허믜질을 하고 고개만 들어도 두멍을 씨웟거니와 이제는 그러치 아니하야 興야 恒야 할 놈이 업도다. 곳 그 머리를 「아-멘」알에 숙으려도 괜치 안코 그 눈을 「부처」편으로 떠도 그만이며 「마호며트」를 조차도 제풀이오 東學장이가 되어도 제멋이라. 인제는 人人 各個가 제여금 새 方向을 定하고 새 進路를 열어 다 各各 一面의 始祖가 될진저. 치어다 보아 先鞭이 업고 제 스스로 定見이 업스며 나리어 引導者가 되어야 할 우리여. 아아 自我를 開闢할 者여 宗敎上으로 天君될 者ㅣ 누구며 政治上으로 蓋蘇文될 者ㅣ 누구며 藝術上으로 曇徵될 者ㅣ 누구며 音樂上으로 王山岳, 于勒될 者ㅣ 누구며 航空界로 鄭平九될 者ㅣ 누구며 思想, 物質 모든 文明上에 에헴할 者ㅣ 누구인고.
世界의 모든 進步는 斷頭臺와 火刑柱上을 渡來하얏나니라
米北生 『휘릿푸스』의 演說 中 一節이라. 온갓 文明은 赤裸裸한 犧牲者의 手를 거쳐 오는 것이다<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