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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31. 2019

찔레꽃

심종록 시세상(4) 

[이 시는 <개벽신문> 제84호(2019.5)에 게재된 것입니다]

찔 레 꽃



누이를 다시 보았다

치솟는 전셋돈 감당할 수 없어

변방으로 쫓기듯 터를 옮긴 후였다

창신동 산 19번지 무너진 성벽 아래

최루탄 연기 안개처럼 짙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해 봄

낮은 지붕 하꼬방에서 미싱 돌리다

백골단에 쫓겨 들어온 앳된 사내 치마 속에 숨겨주고

사랑했던, 아티발 스무 알의 오기로

능멸하는 현실의 손목을 그었던

스물두 살 외롭던 마음이 잉걸처럼 타올랐던

아비 없는 자식을 낳고

핏기 없는 얼굴에 땀방울만 선명하던

썰물 빠져나간 개펄처럼 악착같이 버티다가

돈 때문에 인연까지 끊었던 누이가 이 봄날 아침

짙푸른 찔레덤불로 찾아왔다

소금 알갱이 같은 슬픔 먹먹하게 안고서


이연실의 찔레꽃을 듣는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 꽃. 

찔레 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 


사실은 찔레꽃을 먹는 게 아니라 찔레 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 거다. 씹는다고 해야 하나. 

연한 가시가 박힌 순의 껍질을 벗겨내고 미끄덩거리는 푸르스름한 속살을 입에 넣고 씹으면 사각거리면서도 약간은 달콤한 향기가 미뢰를 자극한다. 허기져본 사람은 알지. 찐득거리는 삶의 달착지근한 맛을. 올해도 여전히 봄은 오고 찔레나무는 또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온몸으로 푸름을 더해간다. 이상하게 찔레꽃만 마주하면 누군가의 죽음이 생각나면서 목이 멘다. 도무지 떨칠 수 없는 트라우마다. 그리고 국가적 대 재난이었던 세월호 참사 5주기. 별이 되어 떠난 아이들을 생각한다.


살아남은 사람의 몫은 더는 그런 불행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심정으로 떳떳하지 못한 것을 파헤치고 불의에 맞설 일이다. 그래도 떠나간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마다 봄은 오고 찔레꽃은 다시 피지만. 너는 왜 여전히 차가운 땅에 누워 저기 흐르는 하얀 구름들만 바라보고 있는지, 음~ 바라보고만 있는지(양희은 ‘찔레꽃 피면’ 중에서). 


심종록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는개 내리는 이른 새벽』『쾌락의 분신 자살자들』 등의 시집과 전자시집『빛을 향해 간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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