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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31. 2019

개벽(開闢) 군(君)에게 드리는 글

-[개벽] 창간호(1920.6.15), 73-74쪽

성권(渻菤; 미상) 지음 / 박길수 현대어역 / <개벽창간100주년 준비위원회> 기획 




신화옹(神化翁)이 천지를 개벽한 지 오만년 되는 오늘날은 즉 ‘늙은[老] 자연’이라. 칼이 오래 되면 칼날이 무뎌지고[劒老無鋩]하고 사람이 늙으면 굳건함이 없어진다[人老無剛]는 말과 같이 신이 오래되어 영험함이 없어진[神老無靈] 오늘이로다. 


그러므로 부패한 ‘공기’를 따라서 천연도태(天然淘汰, 천연적으로 환경에 맞는 것은 존속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없어짐- 편집자 주)와 인위도태(人爲淘汰, 인위적으로 존속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이 결정됨- 편집자 주)의 큰 변혁 큰 번복이, 즉 천지도 개조 즉 세계도 개조 즉 정신도 개조 즉 물질도 개조되는 되는 신자연(新自然)의 발랄한 동기(動氣; 분위기) 하에서 근도(槿島; 무궁화 반도=한반도 – 편집자 주)의 개발을 촉진하여 무극적(無極的)으로 새로운 하늘[新天]을 열며[開] 새 땅[新地]을 열며[闢] 새 사람[新人]을 낳는[生] 그것을 일컬어 개벽(開闢)이라 하니, 그 단어의 뜻으로 논하면 천지를 낳아 놓는 그것이며, 그 책임으로 논하면 세계를 놀래 깨우치는[警醒]하는 그것이로다. 


그러므로 오래된[千古] 암흑을 깨뜨리는 동쪽의 한 샛별[曙星]도 개벽(開闢) 군(君)이며 사방의 적막을 깨뜨리는 동쪽의 한 천뢰(天籟; 하늘의 자연 현상에서 나는 소리)도 개벽군이니, 개벽군아, 군이 천지를 개벽코자 하거든 먼저 심의(心意)를 개벽하며, 심의를 개벽코자 하거던 먼저 도덕(道德)을 개벽하며, 도덕을 개벽코자 하거던 먼저 종교를 개벽하며, 종교를 개벽코자 하거던 먼저 정신을 개벽하여, 큰 파도[波瀾] 일어났다가 사그라지더라도 우부(禹斧,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썼다는 신비한 도끼)가 용문(龍門)을 쪼개서 깨뜨리는 듯 그 기품이 씩씩하고 강성하며[雄邁自强], 풍운이 오고가더라도 온지(溫犀; 제사 지내는 제물의 일종 – 편집자 주)가 경도(鯨渚 - 제사 지내는 성지)를 비추는 듯 영험하고 밝아서 암매하지 아니하여서[靈哲不暗], 


우선 우리의 조선의 인류를 자조(自助)하게 하라. 자조란 자아(自我)의 구주(救主)니라. 자재(自在)하게 하라. 자재란 자아의 고문(顧問)이니라. 개벽군아, 군이 군을 우선 개벽하여야 다른 사람을 개벽하리라. 사회를 개벽하리라. 세계를 개벽하리라. 생각해 볼지어다. 태양의 광선이란 우주의 등대로 화하고, 봄바람의 화율(和律)은 뭇 생명[群生]이 살며 어울리는 것[活劇]을 제공하니 이를 예로 삼아 증명할지라도, 자체적 광명이 있은 뒤라야 능히 다른 방면에 빛을 쏘아 보내는 힘이 생기며<73> 자신적(自神的) 화능(和能)이 있은 뒤라야 능히 각 생명[造物]에 용화성(溶和性)도 있나니, 그러므로 우선 자기의 개벽이 즉 개벽의 처음 제1 천황씨(天皇氏)라 하노라. 


그러한대, 금일 우리 민족[吾族]의 사상계에 하늘을 펼쳐 내던[陳天] 태고(太古)의 구름이 걷히지 않아서, 그의 눈앞[眼簾]을 가리며, 땅을 열어 내던[陳地] 천황(天皇)의 나무가 오래도록 존재하야 그의 얼굴 앞 담[面墻]을 가리며, 사람을 낳던[陳人] 복희(伏羲)의 풍화[風]가 불어와서  그의 귀[耳管]를 막으, 이것은 예부터 내려오는 마귀이며, 전해 받은 칠통(漆桶; 옻을 담는 통)이니 소견이 매우 야매하고 들은 바가 또한 오염된 자에 대하여, 정수리에 신침(神針)을 놓으며, 귓가에 신령한 목탁[靈鐸]을 울려 주어, 조선 문화의 개발에 천리마와 둔마[驥駑]의 발이 우열이 없도록, 학과 오리[鶴鳧]의 정강이가 길고 짧음이 없도록 한가지로 향상하여  새 조선을 개조코자 하는 개벽군이 남명(南溟; 남쪽 큰 바다, 대붕이 날아오르는)에서 하늘로 오르는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고, 고구(高衢; 天路, 大道 - 편집자 주)에 등 뒤에서 부는 바람[追風]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글을 쓰는 기자(記者)도 또한 백두(白頭)의 청년으로 청년의 개벽군을 환영하는 금일에 심신이 활발[活躍]하여 손으로 춤추고 발로 춤춤을 마지 아니하노라. 신성(神聖)하고 정직한 개벽군이여. 정직한 두뇌에는 청정한 신이 깃든다. 장엄한 자유신(自由神)이며 최찬(璀璨; 빛이 번쩍거려서 찬란함)한 문명화(文明花)이로다. 


개벽군이여, 단향목[旃檀]은 잎 하나에 향기가 나고, 호랑이 새끼는 처음 날 때부터 호쾌[雄]하다는 말과 같이 군이 벽두 초문에 퍼뜨린[津津] 청향(淸香)은 산야(山野)에 멀리서도 들리며 열렬한 웅기(雄氣)는 사회에 긴장을 불러 일으키니 한 잎에 향기 나는 단향목과 처음 태어나서 웅비하는 호랑이 새끼와 흡사하도다. 


아아, 흑인 노비[黑奴]를 감화케 한 나란부인(羅蘭夫人-롤랑 부인)의 오월화도 있었으니, 조선을 번영케 할 청년 <개벽>은 유월화가 되리라. 국제적 평화의 서광이 휘황하고 세계적 경종이 진동하는 오늘날에 이 세계의 인류가 된 이상에는 세계 개조의 책임이 우리의 어깨 위에도 있거니와, 더구나 조선인된 자는 스스로 조선의 조선으로만 간주치 말고 세계적 조선으로 자인하며 조선의 우리라고만 생각지 말고 세계의 우리로 스스로 인식하여서 조선의 개벽을 분려(奮勵)한 까닭으로 두 어깨 모두 무겁고, 중심이 스스로 뜨거운 개벽군의 교편(敎鞭)은 갈기가 강위를 달리고 목탁의 혀[鐸舌]는 활불(活佛)이 세상에 나타남과 같은지라. 


그러므로 기자는 사회를 위하며 공중(公衆)을 위하여, 환영하고 경하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야 “온 세상을 담아 마시는 우주 술잔을 들고 개벽을 환영하는 축사를 울리노라[四海爲醪 宇宙盃 歡迎開闢 祝辭雷]라는 시 한 구를 개벽(開闢) 군(君)에게 보내노라.<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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